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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인류가 누리는 현대문명의 편리함은 전적으로 전기에 의존하고 있다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각종 가전제품으로부터 정보통신기기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의 모든 문명의 利器들은
(항공기와 자동차등 일부 교통수단을 빼고) 거의 전기에너지로 움직인다.
그러면 현대문명의 총아라 할 수 있는 전기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20세기 들어 양자역학과 입자물리학 등 현대과학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물질은 원자라는 기본입자로 쪼갤 수 있는데 이 원자는 다시 양성자와 중성자가 합쳐진 원자핵과 핵의 외곽에
분포하는 전자로 이루어 진다.
모든 원자는 서로 반대방향의 전기력(전하)을 가진 전자와 양성자를 동일한 갯수로 가지고 있고 그 때문에
전자의 음전하와 양성자의 양전하는 서로 상쇄되어 전기적으로 중성이다.
그러나 원자핵의 가장 바깥에 있는 전자는 불안정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주위의 조건에 따라
수시로 이탈하거나 다른 원자핵과 결합하면서 자리를 바꾸게 되고 그결과 각종 화합물(분자)이 만들어지는데
이 것을 물질의 화학적 변화라 한다.
사물의 화학적 변화는 이러한 원자의 외곽에 있는 전자의 자리바꿈(교환)에 의해 일어나는바, 전자가 교환되는
근본 이유는 자연에 존재하는 기본적인 힘의 하나인 전자의 음전하와 양성자의 양전하 사이에 작용하는
전기적 인력과 척력(미는힘)때문이다.
생물의 성장과 노화,음식물의 소화나 부패,물질의 연소,햇빛에 의한 풍화작용,뇌와 신경의 작용 등 삼라만상의
모든 화학변화는 원자들이 끊임업이 전자를 교환하면서 벌어지는 미시적인 전기현상이 원인이다.
천둥과 번개는 거시적인 전기현상이고 빛과 자외선,적외선,X선, 전자파 등도 실은 전기와 자기가
진동하면서 일으키는 현상이다.
고대로부터 오랜세월 전기와 자기는 미신과 신비주의 또는 가짜 의술에나 사용되는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수수께끼같은 존재였다.
전기와 자기에 대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실험을 통한 합리적인 방법으로 연구한 사람은 영국의 의사였던
윌리엄 길버트(1544-1603)이다.
왜 자석바늘을 공중에 매달아 두면 항상 북쪽과 남쪽으로 나란히 정렬되는가?
왜 瑚珀은 털가죽으로 문지르면 종이조각이나 머리털을 잡아 당길까? 이런 의문에 사로잡힌 길버트는
여러 실험끝에 바로 지구가 거대한 자석일지도 모른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는데,
자신의 아이디어를 시험하기 위하여 미약한 전기력을 검사하기 위한 최초의 검류기를 개발하는등
전기와 자기의 이해에 있어서 중세적 사고의 틀을 깨고 근대과학으로 가는 길을 처음 열었다.
뉴턴의 보편적 중력법칙이 발견된 17세기 후반, 과학적 사고의 시대로 들어서면서 과학자들은
전기와 자기에 대한 지식을 늘려나가게 되었는데
미국의 만능천재 벤자민 프랭클린(1706-1790)은 뇌우속에서 연을 날리는 모험끝에 번개가 전기라는 것을
입증하였고 이를 토대로 피뢰침을 발명하였다.
1800년 이탈리아의 볼타(1745-1827)가 은판과 아연판을 번갈아 가며 쌓고 그 사이마다 소금물에 적신 마분지를
끼운 장치로 연속적인 전류를 처음 만들어 내기 이전의 인위적으로 생성된 모든 전기는 정전기였다.
비유하자면 시냇물처럼 계속 흐르는 것이 전류라면, 대전된 전기력이 연못처럼 고여 있는 상태가 정전기이다.
볼타(전압의 단위 볼트는 이사람 이름에서 따왔다)에 의해 연속적인 전기가 만들어지자 과학자들은 전지의 양 끝에
전선을 연결해서 화학용액에 담그면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종전까지 화학자들이 물질의 구성성분을 조사하는 방법은 물질들을 서로 섞거나 가열하는 것었으나,
전류를 이용하는 전기화학이 과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조사하려는 물질의 용액에 전지의 양극을 담그면 해당물질이 분리되어 각전선의 끝에 한종류씩 모이는 전기분해라는
방법이 시작된 것이다.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과학자이자 전자기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불세출의 거인 마이클 패러데이(1791-1867)의
등장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탄생하였다.
산업혁명의 시대에 농촌에서 일거리를 찾아 런던 변두리로 이주해온 대장쟁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패러데이는
정규학교는 다니지 못하였으나 읽기 쓰기 정도는 깨우치는 기초교육을 받았고,14세부터 제본소의 견습공으로 일하였다.
제본소에 있다보니 자연히 여러 책들을 접할 기회를 가졌고,특히 물리세계의 작동원리에 관한 서적에 빠져들었다.
패러데이가 21살이던 1812년.당시 영국의 왕립과학연구소의 소장이자 당대 최고의 명성을 날리던 전기화학의 창시자
험프리 데이비(1778-1829)에게 간청하여 우여곡절 끝에 조수도 아닌 용기 세척공으로 채용된 사실은
패러데이 본인과 인류를 위해서 매우 의미있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뛰어난 관찰력과 천재적인 영감을 가진 젊은 세척공은 점차 두각을 나타내며 데이비의 강력한 조력자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스승을 넘어서서(자신을 능가하는 제자에게 질투를 느꼈던지 데이비는 패러데이의 업적을
표절로 몰아세웠고 그일로 둘 사이는 소원해졌다) 역사에 남을 위대한 과학자로 성장하는 과정은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였다.
집요한 실험과학자 패러데이는 1821년 전기와 자기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다 전기력으로 자석을 움직이게 하는
전기모터의 원리를 발견하였다.10년뒤인 1831년 이번에는 모터의 원리와 반대로 자기력으로 전기력을 생성시키는
발전기의 원리도 그가 발견하였는데(그때 영국뿐 아니라 유럽각국의 과학자들은 경쟁적으로 이 실험에 뛰어 들었다)
외부에서 힘을 가하여(예를 들면 수력이나 증기의 힘으로 터빈을 돌려서)자석을 움직여 주면 전기가 만들어지고,
그에 따라 터빈의 운동에너지가 전기에너지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철심고리를 이용하여 현대의 전력 공급시스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치인 변압기의 원리를 제시하였으나
당시로서는 과학자나 일반인들의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수준에 머물었고 실용성은 희박하였다.
결국 이 분야가 일상생활에 널리 보급되는 것은 진공펌프와 필라멘트 전구의 발명이 이루어지고 다시 이들에게 필요한
효율적인 발전기가 요구되는 전력공급시스템이 갖추어진 후였다.
그런 다음 전력망을 통해 작동되는 온갖 목적의 전기모터가 개발되고 19세기말에 에디슨의 라이벌로 유명한
니콜라 테슬라(1856-1943)가 고전압 교류전력 공급시스템(에디슨은 직류방식을 테슬라는 교류방식을 주장하였는데
결국 장점이 많은 테슬라의 교류가 채택되었다)을 보여주자 비로소 변압기가 필요하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전기의 생산과 공급, 사용에 있어 핵심장치인 발전기와 변압기,전기모터
이 모두가 패러데이의 발명품이다.
패러데이는 뛰어난 실험과학자이지만 전기와 자기를 포함하는 자연의 모든 힘이 깊은 통일성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을 가진 탁월한 이론가이기도 하였다. 우주공간은 전자기력을 운반하는 力線으로 종횡무진 뒤덮여 있고
이 선들이 교차하는 점이 바로 물질로 지각되는 곳이라는 力場field of force의 개념을 그가 최초로 제시하였다.
현대물리학의 양대산맥인 상대성이론(중력장)이나 양자역학(양자장,힉스장)은 바로 패러데이가 주장한
장이론을 당연한 실체로 받아 들이지만 정규학교를 다니지 못한 수학문맹자의 주장이 뉴턴이래 정교한 수학으로
무장한 당시 과학자들에게는 황당무계한 추측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전류는 어디까지나 전선을 통해 흐르는 구체적인 유체의 일종이지 감지할 수도 없는,공간을 가로 지르는 추상적인
역장이니 하는 말은 헛소리로 치부될 따름이었다.
그래서 패러데이의 과학적 성취는 모두에게 칭송을 받았지만 정작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인 전자기력에 대한 장이론은
그의 생전에 거의 무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패러데이의 전자기력 이론의 심오함과 정확성을 간파하고 이를 수학적으로 증명하여 패러데이의 위대함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정반대의 재능을 가진 또 한명의 거인이 필요했으니 그가 바로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1831- 1879)이었다.
영국 북부 스코틀란드 지역 영주의 외아들로 태어난 맥스웰은 일찍부터 수학과 과학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다.
14세 때는 다양한 종류의 곡선을 만들어 내는 방법을 탐구하는 논문을 써내 에든버러 왕립학회에
제출하기도 하였으며, 에든버러 대학을 거쳐 명문 케임브리지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25세 젊은 나이에
대학교수로 임명되었다.
그 무렵 그는 전기와 자기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에 몰두하기 사작하였는데,
관련서적을 모두 훑어본 그는 전기와 자기에 관한 지식이 아직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냈다.
패러데이의 이론을 제외한 모든 이론은 뉴턴학파의 전통에 따라 전기와 자기도 중력처럼 직선적 원격작용이라는
관념에 기반을 두고 이를 현란한 수학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당연히 패러데이의 역선개념(장의 개념)은 수학적으로 나타낼 수 없다는 이유로 외면 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맥스웰은 스스로의 직관으로 패러데이의 관점이 옳다고 믿었고 새로운 방법으로 그 것을 증명해 보고자 결심하였다.
공간에서 작용하는 패러데이의 역선의 개념에 기초한 장이론에 도달하려는 작업은 3단계에 걸쳐 10년 이상의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1865년 맥스웰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적 성취의 하나로 인정받는 "전자기장의 동역학 이론"이라는
희대의 역작(맥스웰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언급한 표현)을 완성하였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전자기적 에너지를 저장하고 운반하는 감추어진 매커니즘으로서 장field이
공간속 에너지의 자리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에너지는 전기장과 자기장을 만들어 수직의 방향으로
진행하게 되는데 그에 따른 요동이 전자기파로 나타난다고 예측하였다.
전자기파는 파장에 관계없이 속도가 일정(이것이 광속이다)하며 전자기파 중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빛이라고 하였는데 그의 생각은 훗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이어지게 된다.
전류가 흐르는 회로는 분명 에너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것으로 전기모터를 돌리거나
기계적 일을 할 수 있지만 과연 에너지가 있는 곳은 어디인가?
맥스웰에 의하면 에너지는 전선속을 타고 흐르는 유체가 아니라 장field속, 즉 전선주위의 공간에
분포되어 있다.
이는 대단히 급진적인 생각으로 19세기 과학자들로서는 대단히 받아 들이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 들은 당구공처럼 만질 수 있고 측정할 수 있는 대상만 가지고 생각하도록 훈련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물리세계의 근본요소들은 인간의 감각기관에 지각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낸 첫번째 인물이었다.
우리가 유일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이런 근본요소들과 느끼고 만질 수 있는 대상(물질) 사이에 성립하는
수학적 관계뿐이며 그 이상은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만 기호를 할당하고 방정식을 세우는 방식으로 대상을 추상적으로 묘사하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맥스웰은 자연현상을 물체끼리 힘을 주고 받는 역학적 방식으로 설명하는 뉴턴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로 가는 새로운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론이 제대로 이해되려면 올리버 헤비사이드(1850-1925)에 의한 맥스웰방정식의
일반화 및 축약,하인리히 헤르츠(1857-1894)의 전자기파 발견 등 맥스웰주의자들의 노력이 덧붙여진
1890년대 이후, 그의 사후 약 20여 년의 세월이 더 필요하였다.
이런 역사적인 사건을 과학사학자인 토머스 쿤은 패러다임의 전환paradigm shift 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과학사에서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사건이다.
흔히 패러데이와 맥스웰이 뉴턴과 아인슈타인 사이를 이어주는 교각을 세웠다고 말한다.
뉴턴은 자신의 성과가 "거인들의 어깨위에 서 있어서"라고 밝힌 적이 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이 영국을 방문했을때 기자들은 자연스레 그가 뉴턴의 어깨 위에 서 있는지 묻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의 대답은 이러했다."그것은 그다지 옳은 표현이 아닙니다.나는 맥스웰의 어깨 위에 서 있었으니까요."
만약 맥스웰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자신은 패러데이의 어깨 위에 있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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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미있는 이야기네요...
아니 이 복잡한 장문의 글을? 역시 대단하심다..
여전히 잘 지내시죠? 수학의 역사...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