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말 외 1편
권선희
영기가 면도칼로 손목 세 군데나 긋고
수술에서 깨어났을 때
큰형 팔뚝 움켜잡고 했다던 말
나 좀 살려줘,
형
둘째 영기가 이제는 맘 잡겠다고
오른쪽 새끼손가락 자르고
퇴원하던 날
두 손을 두 손에 가두고 했다던 엄마 말
니는 죽은 니 아부지와 내가 만든
고귀한 선물이다 이 상노무 새끼야
숙희 이야기
구룡포발 대구행 아성여객 차장이었을 때
숙희는 한 마리 비둘기였다지요
빨간 명찰 말년 병장 숙박계 날려쓰던 겨울 밤
싸나이 팔뚝에 머리 파묻고
처음 날개를 벌렸다지요
헐거운 여인숙 그 방을 두고
머리채 질질 반장 손에 끌려간 새벽은
세찬 바람으로 오래 울었다지요
태광호도 중심 잔뜩 부풀어 돌아오는데
아무튼 포장치고 회 뜨는 쉰 살 숙희
세꼬시 썰리듯 살아도
첫차처럼 올라탔던 싸나이는
여적 내려오지 않는다지요
명치끝에 아예 눌러 붙었다지요
― 권선희 시집, 『꽃마차는 울며 간다』 (애지 / 2017)
권선희
춘천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으며 2000년 봄, 작정하고 들어간 구룡포에서 어울려 살며 글을 쓴다. 시집 『구룡포로 간다』 『꽃마차는 울며 간다』를 냈다. 구룡포 일본인 가옥 거리를 거점으로 포구의 역사를 다룬 르포집 『구룡포에 살았다』(2인 공저), 해양문화재단에서 실시한 ‘대한민국 해양영토대장정’에 기록작가로 참가해 2,100km 바닷길을 항해한 기록집 『우리는 한배를 탔다』를 묶었다. 또 국토해양부에서 선정한 해안길을 안내한 도보여행기 『바다를 걷다, 해안누리길』(공저), 경북해양문화집 『뒤안』,환동해 생활 총서 『경북 동해 해안선 인문여행』 등 주로 바다와 관련된 작업물을 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