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소개
* 이 책은 시력 약자를 위한 큰글자책입니다.
‘가족은 무엇일까?’ 따뜻하고 안락한 공간, 서로를 위해 어떤 희생도 치를 수 있는 끈끈한 관계.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가족에 대한 관념은 이런 것이 아닐까? 중국 역사서의 첫머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마천의 『사기』에 등장하는 가족들은 우리의 이런 관념들과 어긋난 모습을 보여 준다. 가족 간에 치정과 살인 사건이 예사로 벌어지는 고대 중국 가족들의 ‘막장 드라마’를 읽다 보면, ‘사랑과 보호’가 넘치는 오늘날의 가족관계가 다행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북튜브 가족특강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인 『사기와 가족, 고대 중국의 낯선 가족 이야기』는 독자들로 하여금 과연 고대의 이야기들이 오늘날의 가족관계와 얼마나 다른지 다시 한 번 성찰하도록 한다. 신문 사회면이나 텔레비전의 막장 드라마들이 보여 주는 극단적인 사례들을 들추지 않더라도, 오늘날의 가족 관계를 둘러싸고 있는 욕망들 역시, 고대인들의 가족 관계와 정도만 달랐지 그 방향성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순수하고 완전한 사랑의 ‘판타지’를 바라지만 실제로는 ‘막장 드라마’ 같은 관계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 지은이는 『사기』라는 렌즈를 통해 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럴 때 비로소 다른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 ‘북튜브 가족특강’ 시리즈는 2019년 〈남산강학원 & 감이당〉에서 열린 가족특강(총 6강)의 내용을 여섯 권의 책으로 엮었다. 이 중 네 권이 1차분으로 출간되었으며(「기생충과 가족」, 「루쉰과 가족」, 「안티오이디푸스와 가족」, 「사기와 가족」), 2차분으로 두 권(「소세키와 가족」, 「카프카와 가족」)이 출간될 예정이다.
🏫 저자 소개
문성환
청년 쿵푸스들의 왁자한 공부 공동체 〈남산 강학원〉 대표 회원. 연구실 닉네임 문리스. 20대 말년에 '운이 좋게도' 일생의 스승과 벗들을 만나, 50대에 이른 현재까지 환희하고 엎어지면서도 꾸역꾸역 배우는 삶 위에 서 있는 중. 저서로 『최남선의 에크리튀르와 근대, 언어, 민족』, 『전습록, 앎은 삶이다』, 『닌하오 공자, 짜이찌엔 논어』 등이 있으며, 공저로 『‘소년’과 ‘청춘’의 창』, 『루쉰, 길 없는 대지』, 번역·낭송집으로 『낭송 전습록』, 『낭송 선어록』 등이 있다
📜 목차
책머리에
1부 _ 『사기』에 대하여
가족에 대한 여러 시각
『사기』는 어떤 책인가
궁형, 가문과 사명 사이에서
세상에 나올 수 없었던 책, 『사기』
『사기』의 구성
‘열전’과 ‘세가’, 풍부한 이야기의 창고
2부 _ 춘추전국시대라는 배경
봉건시대의 시작
제후국 사이의 격차
주나라의 쇠퇴와 전국시대의 시작
춘추시대, 패자들의 등장
3부 _ 춘추시대 가족 막장 치정극 : 제환공의 가족사
처남의 나라에서 죽은 왕 : 제양공과 노환공
형제간의 살육전
첫번째 패자 제환공의 등장
제환공의 가족사
4부 _ 부모 형제도 없는 살육전 : 진문공의 가족사
두번째 패자, 진문공 : 형제의 난 시즌 2
야비한 왕, 진혜공의 등극
진회공의 등극
진문공의 방랑
진문공, 조카며느리를 아내로 삼다
질의응답
📖 책 속으로
게다가 궁형을 선택한다는 건 사회적으로도 용납이 안 되는 거였습니다. 운명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갖는다고 자부하는 사대부가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궁형을 선택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모가 주신 신체발부를 보존하지 못하고 게다가 자손을 잇지 못한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사대부가 쉽사리 취할 수 있는 선택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사마천이 궁형을 선택했다고 할 때 여러 해석의 문턱을 만나게 됩니다. 왜 이런 선택을 했는가, 그 선택이 뭘 의미하느냐라는 것은 사마천이라는 인물을 다각적으로 이해하려 할 때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 될 수 있어요.(24쪽)
사실 항우는 천하의 제왕이 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사마천의 역사 감각에는 항우가 활약했던 이 시대에 천하의 주인은 사실상 항우였다라고 하는 마음이 있는 거죠. 한고조 유방에게 패배한 상대였음에도 「항우 본기」(項羽本紀)를 배치한 뒤에 한고조 유방에 대한 멋진 기록이 붙습니다. 항우에 대한 이런 식의 감각은 이후 승리자의 관점에서 역사를 다루는 후대인의 시각과 비교해 사마천의 역사가로서의 안목이 돋보이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31쪽)
『맹자』(孟子)로 가면, 맹자는 전국시대 사람이거든요. 『맹자』 첫번째 편이 「양혜왕」(梁惠王) 편이에요. 양나라 혜왕을 만났다는 거예요. 그 뒤로 가면 제나라 선왕(宣王)을 만나요. 이 나라가 제환공이 있던 제나라인데, 춘추시대에는 공(公)이었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왕(王)이라고 자기를 칭하는 거예요. 그래서 옛날 책들을 보면서 왕이라고 칭하는 시대를 보면 전국시대로 넘어왔다는 걸 알 수 있죠. 아직 공, 후, 이렇게 칭하는 시대는 주나라 왕 하나를 바라보면서 자신들을 감히 왕이라고 할 수 없는 시대라고 구분이 되는 거예요.(50-52쪽)
그러다가 제양공이 죽고, 두 형제간에 경쟁이 붙게 되죠. 제나라에 먼저 들어가서 권력 잡는 사람이 이긴다, 이렇게 해서 막 달려갑니다. 소백이 먼저 들어가는데 규의 측근이었던 관중이 소백을 향해서 활을 쏘거든요. 이 활이 소백을 정통으로 맞히긴 하는데, 허리띠 버클을 맞히죠. 그래서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는데 죽은 척을 해서, 규가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오게 됩니다. 그래서 먼저 도착한 소백이 정권을 잡습니다. 이 소백이라는 인물이 제환공이에요.(66쪽)
그런데 이때 제환공이 이 사건을 어떻게 다루는가 하면, 애강을 압박해서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듭니다. 이런 점이 제양공과 다른 점입니다. 그러니까 제양공은 자기의 사사로움 때문에 사실 국제질서에서의 관계를 다 무시했지만 제환공은 사건을 공적으로 처리하는 것으로 이 질서를 잡아 가는 거예요. 이것은 제환공이 특별히 대단해서도 아니고 제양공이 특별히 모자라서도 아닙니다. 항상 어느 시대나 사람들은 자기가 지금 겪고 있는 사건들에서 가장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행동한다는 것! 거기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가족주의라거나 혹은 부모인데…, 형제인데…, 엄마가 같은데…, 이런 문제들은 경우에 따라서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 이 말씀을 지금 드리고 있는 겁니다.(72-73쪽)
중이가 처음에는 거절해요. 안 된다고. 그런데 옆에서 중이를 호위하고 있었던 다섯 명의 대부들이 있었는데, 이 사람들이 나중에 진나라의 명문가 대부들이 되는 사람들이에요. 그 중 한 사람이 (이게 오늘 강의의 핵심이기도 한데) 우리의 꿈은 진나라를 뒤집어엎으려고 하는 건데, 이 정도쯤이야 어떻겠냐고 하는 겁니다. 정확히는 사공계자(司空季子)라는 신하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의 나라도 정벌하고자 하는데 하물며 그의 전처이겠습니까?” 딱 이렇게 얘기해요. 이 말은 되게 중요한 말이고 오늘 주제와도 관련이 있습니다.(92쪽)
🖋 출판사 서평
『사기와 가족, 고대 중국의 낯선 가족 이야기』
지은이 인터뷰
1. 책을 보면, 『사기』가 쓰여지던 시대의 가족은 오늘날과 사뭇 달라 보입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오늘날과 비교해 사마천이 〈사기〉를 쓰던 한나라 시대에는 최소한 구성원들의 독립성 측면에서 차이가 큰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게 좀 거칠기는 한데, 한나라에 이르러 비로소 구축되는 국가 공동체적 의례로서의 유학(儒學)이 가족에 부여한 위상이 최소한 동아시아 사회에서는 이천 년 넘게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는요. 그런데 또한 오늘날은 대략 100년 남짓의 시간 동안 급격하게 탈구축된 서구적 근대의 세례와 영향력 속에 가족 관계가 작동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의 가족과 『사기』가 쓰여지던 시대의 가족 사이의 차이는 어떤 것이 보편적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특수 대 특수의 양상으로 볼 수 있다는 겁니다. 다만 지금 여기, 그러니까 한국이라는 공동체 국가에서 이 양편의 가족 감각이 어떻게 현존하느냐의 문제인데, 지금은 상당히 압도적으로 서구 근대 가족주의적 모델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기』를 보는 것이 꼭 어떤 정답이나 해답인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가족에 대한 감각들을 내려놓을 길을 모색할 수는 있게 되죠.
그런데 『사기』와 같은 책에서 보이는 가족은 많은 경우 그저 같은 뿌리에서 출발했다는 정도입니다. 부모와 형제 등이 별 것 아니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별 것이어서 사실은 내 욕망의 일차적 경쟁자들이기도 한 거죠. 스스로 자기 존재를 개척해 내는, 삶에 대한 적극성이 지금보다 아주 원초적입니다. 지금 감각으로 보면 '가족끼리 어떻게 그래?'라고 말할 텐데, 사실 이게 말이 안 되는 게 지금도 신문 사회면을 조금만 들춰보아도 차마 상상할 수 없는 숱한 가족 간 사건들을 목도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이런 걸 스위트 홈 혹은 가족 삼각형이라는 중산층 부르주아 가족 모델 안에 가두려고 합니다. 이런 구조 때문에 가족 내 구성원의 독립성이 현저하게 저하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가족이기 때문에 참아야 하고, 가족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고, 가족이기 때문에 어찌어찌 해야하는 이 구조가 결국 가족 안으로 퇴행하는 관계들을 품게 만드는 거죠. 그런데 『사기』에서 보이는 가족들은 형제끼리도, 부모자식 간에도 살벌하게 경쟁합니다. 그게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하는 도덕적 판단 이전에, 우리 사회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지점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가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구요. 그리고 또 한 가지, 무엇보다 『사기』 속 가족 구성원들은 일단 집 밖으로 그러니까 가족 밖으로 나섭니다.
2. 책에서 소개해 주신 내용들 말고도 『사기』에는 많은 ‘막장 드라마’가 있을 텐데요. ‘가족’이라는 주제와 관련해서 더 소개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강의를 구상할 때, 처음의 목표(!)는 『사기』 속의 수많은 근친상간적 가족 막장 드라마를 소개해 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많습니다. 아니 조금 과장하면 『사기』에서는 거의 전편을 통해 막장 드라마가 펼쳐집니다. 예를 들면 아들의 신붓감으로 선택된 그러니까 며느리 후보였던 여인을 아내로 취하는 경우만 해도 몇 차례 등장합니다. 노나라 혜공이 본래 본부인에게 자식이 없었는데 신분이 낮았던 첩에게서 아들 식(息)을 얻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 식의 아내를 송나라에서 맞이하는데 막상 실제로 보니 예뻐서 혜공이 빼앗아 아내로 삼습니다. 그리고 아들 윤(允)을 낳아요. 이 아들이 태자가 됩니다. 그러니까 이게 벌써 꼬여 버렸습니다. 식과 윤은 같은 아버지를 둔 형제인데, 식은 원래 윤의 어머니와 부부가 될 인연이었으니까요. 이 식과 윤을 둘러싼 세습 갈등은 결국 이후 노나라의 큰 재앙이 됩니다.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위(衛)나라 선공, 초나라 평왕 때에도 나옵니다. 조금 다른 변주(?)로는 채(蔡)나라 경후(景侯)의 사례인데, 경후는 태자의 아내로 초나라 여인을 얻어 장가를 보냈는데, 이후 태자비와 간통을 합니다. 그러자 태자는 경후를 시해하고…. 뭐 이렇게 전개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막상 강의를 하고 보니, 가족 막장 드라마라고 하는 말 또한 특정한 가족 관념의 투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기』 속 사례들이 막장드라마가 아니라는 게 아니고 그 이야기들을 자칫 가족주의의 연장선상에서 보려는 시선에 고착되는 게 아닌가 하는 염려라고 할까요. 『사기』의 이야기들은 단지 막장 드라마로만 읽힐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다른' 가족 이야기를 좀 더 풍부하게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재료들입니다. 수도 없는 형제간의 분쟁, 부자간의 암투, 친족 간의 살육 등등…. 근친상간적 소재는 이런 여러 가족 이야기의 한 지류일 뿐입니다. 강의 때도 말했지만 그런 의미에서 『사기』는 전체가 가족 이야기 백과사전입니다. '세가'(世家)는 말 그대로 가족들의 분화도를 보여 주는 이야기이고, 제왕들의 세계인 ‘본기’(本紀) 역시 하나의 가족 드라마인 것입니다. 「진시황본기」, 「항우본기」, 「한고조본기」 이렇게 제목이 붙어 있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진시황은 여불위와 조희 등이 얽힌 출생의 비밀이 있는 제왕이었고, 항우는 최후의 순간까지 우미인과 지순한 사랑을 나누는 영웅이었으며, 한고조 유방은 위기가 닥치면 자연스럽게(!^^) 부인과 자식들을 먼저 버리고 혼자 목숨을 구해 달아나던 인물이었습니다. 『사기』 자체가 '또 하나의' 가족 드라마입니다. 막장 여부를 떠나 지금의 가족 관념을 낯설게 살펴볼 수 있는 '날 것 그대로의' 어떤 가족들 이야기가 장강 물줄기만큼이나 굼실굼실 흘러넘치는 텍스트입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3. 고대의 ‘가족’이라는 주제를 통해, ‘가족’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가능함을 보여 주고 있으신데요. 가족에 대한 어떤 다른 상상이 가능할까요?
근본적인 변화라기보다는…, 막상 저희(〈남산강학원〉)가 기획한 이 강좌가 시작되었을 때, 저는 '가족'이라는 다소 포괄적인 주제의 강의에서 '가족'에 대한 어떤 전제, 이를테면 무슨 일을 해도 '결국 가족밖에 없어'라는 식의 어떤 의식/무의식적 전제에 관한 질문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가족은 '역사적'인 것이다라는 식의 일반적이고 원론적인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적어도 우리 의식/무의식 위에서 거의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듯한 지반으로서의 '가족'에 대한 궁금증 같은 거랄까요. 그런데 저도 그렇고, 제 주변도 그렇고, 저희 세대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한국사회가 상당히 가족적이거든요. 혈연, 지연, 학연 같은 게 결국은 어떤 식으로든 핏줄로 연결되겠다는 의지의 연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핏줄이 가장 원형적이고 확실하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말은 한편으론 맞는 말이지만, 한편으론 거의 정반대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말입니다. 요컨대 "가족이어서…"라는 말이 어떤 원점이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유비적 확장이 거의 모든 것을 가족주의로 환원시킬 수 있다는 건, 사실 가족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에 다름 아닙니다. 그냥 이데올로기 같은 거죠. 그러니까 가족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라거나 가족에 관한 어떤 다른 상상력이란 이 전제에 대한 의심과 맞물려 있다고 봅니다. 역사적으로 우리가 보는 가족 이야기들(그것이 역사든, 문학이든, 혹은 기타 다른 무엇이든)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게 있다면 그런 게 아닐까요. 내가 가진 어떤 가족 관념의 확인이 아니라 내가 갖지 못한 가족 이야기로의 확장 같은 것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