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분갈이
전원주택을 짓고 있는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원예치료사이자 플로리스트인 그녀는 크고 좋은 시설을 갖춘 실내외 정원을 갖는게
꿈이었다. 난 독신인 언니의 오랜 염원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고생을 알고 있기에 내 꿈이 이루어진 것처럼 기뻤다. 아침 일찍 묘목 시장에 달려가 집들이 선물로 철쪽과 수국을 배달시켰다. 그리고 크고 작은 화분들을 옮겨줄 만한 인력과 트럭을 예약한 뒤 이틀 후 우리집 화초 오십여 개를 선배에게 보냈다. 오래전부터 각오했던 일이었으나 막상 보내고 나니 덤덤하기는커녕 속이 어지럽고 울렁거려 링거를 맞았다.
십여 년 전,
나는 학원 개업식날 들어온 열댓 개의 화초가 부담스러웠다. 집에 가져다 둘까 하다가 햇빛이 잘 들어오는 곳에 옮겨놓고 매일 물 주고 분무질을 하였다. 때맞춰 영양제도 꽃아주었다. 그런데도 삼 개월 지나자 분만 남기고 시들시들 죽어가는 화초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키울 줄도 모르면서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자신 없으면 예쁠 때 남 주지 은근 욕심쟁이다, 죽은 화분은 놔두는 게 아니라던데 저렇게 놔두고 있는 것 봐라, 등등 교직원들의 핀잔이 들려왔다. 순간 욱 했으나 틀린 말도 아니고 해서 못 들은 척하였다. 나는 화분 정리에 들어갔다. 그리고 죽은 화초의 화분 흙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는 생각처럼 쉽게 진행되지 않았다. 화분 바닥에 달걀 크기만 한 스티로폼들이 들어있어 일을 더디게 만들었다. 다 정리하고 보니 죽은 화초가 세 개, 흙보다 스티로폼이 더 많았다.
아직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화초들을 집으로 옮겼다.
다음 날 화훼농장을 찾아가 왜 화분 속에서 스티로품이 나오냐고 물었다. 화분이 무거우면 손님들이 들고 갈 수가 없어서 스티로폼으로 채울 수밖에 없다는 것, 또 사람들이 화분에 물을 너무 많이, 자주 주어서 일부러 넣어준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인간들 욕심과 상술에 멀쩡한 생명들이 무자비하게 짓밟힌다는 생각이 들었다. 빈정이 상한 나는 흙과 비료와 삽을 사가지고 돌아와 분갈이를 하였다. 스티로폼을 빼내고 살아있는 뿌리들만 골라 흙에 잘 내릴 수 있도록 해 주니 내 정성 탓인지 금방 회생해 잘 자라주었다. 새싹이 돋고 꽃이 피니 화양연화가 따로 없었다.
그날 이후부터 내게는 이상한 버릇이 생겨났다.
오지랖 넓은 사람이 되어 네 것 내 것 따지지 않고 시들시들한 화초만 보았다 하면 주인 허락도 받지 않고 분갈이를 해버렸다. 그러다 보니 소문이 나 여기저기서 죽어가는 화초들을 내게 떠넘기는 일이 생겨났다. 그렇게 하나둘 들여 온 화분이 무려 오십여 개가 넘고 있었다. 베란다는 물론 거실까지 다 차지해 버리는 통에 관리에 과부하가 걸렸고, 가족들에게 눈치가 보였다. 작년 겨울이었다. 집에 놀러 온 선배는 내가 가꾸는 화초들을 보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며 화초의 노예는 되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 집 정원 공사가 끝나면 이 화초들을 거기로 옮겨 심는 게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물었다. 망설이다가 선배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며칠 후
화초들이 떠난 자리를 청소하고 있는데 작년에 사무실을 개업 한 후배로부터 영상 통화가 걸려 왔다. 후배는 다짜고짜 화초틀 때문에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다며 녹보수, 아글라오네마, 금전수, 행운목. 스킨답서스, 파키라. 필리아 폐페, 군자란, 개운죽, 천양금, 염좌 등을 보여주었다. 분무질에 후배의 손은 벌겋게 부어 있었고 화초들은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개업식날 잠깐 얼굴 내밀곤 그동안 사무실 한 번을 방문하지 못한 것이 미안하던 차. 그동안 갈고 닦았던 화분에 대한 배경지식을 전수해 주었다. 그리고 흙과 비료와 몇 개의 화분에 모종삽을 사무실로 배달시켰다 햇살 좋은 날 후배와 나는 사무실 앞 공터에 자리 잡고 앉아 분갈이를 시작했다. 후배는 설마 모든 화분에 스티로폼이 들어있겠냐며 들어서 가벼운 화분만 하자고 하였다. 그러나 무겁다고 느꼈던 화분까지 스티로폼이 나와서 어쩔 수 없이 모든 화분을 분갈이해야 했다.
그동안 분갈이의 경험은 내게 흙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었다.
무릇 생명을 지닌 것들은 흙을 떠나서 살 수 없다는 이치를 새삼 터득한 것이다. 어느덧 나는 흙 밟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흙을 밟는 동안 따뜻한 흙의 정기가 혈관을 타고 들어온 듯 잡념이 사라지고 마음도 정화되니 정신이 개운해져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땅으로 돌아와
기원起源에 충실해야 온전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매일 몸으로 느끼고 있다.
흙을 가까이 하라. /
흙에서 생명의 싹이 움튼다. /
흙을 가까이 하라. /
나약하고 관념적인 도시의 사막에서 벗어날 수 있다. /
흙을 가까이 해야 /
삶의 뿌리를 든든한 대지에 내릴 수 있다. //
시멘트와 철근과 아스팔트에서는 /
생명이 움틀 수 없다. /
구두와 양말을 벗어 버리고/
일구어 놓은 밭흑을 맨발로 접촉해 보라
법정스님, <흙 가까이> 부분
김숙진
생각키우기 학원 운영 for0326get@hanmail.net
꼬불꼬불한 삶의 철길 위를 안전하게 달려나가기 위해서는 멀리 보는 마음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