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良心을 찾는 길”
극기(克己)는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도 한다. 극기라는 말은 자기자신을 극복한다는 뜻이다 기(己)라는 글자의 본뜻은 『사사로운 욕심(慾心)이다』 사욕을 극복해 본심으로 돌아간다(復禮)는 뜻이 극기복례다.
우리는 흔히 본심을 양심(良心)이라 일컫는다. 타고난 착한 성품에서 우러난 마음이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인간은 착한 성품을 타고난다는 생각을 갖고 잇다. 성선설(性善說)이다. 그래서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에게 체념을 하지 않는다.
사람이 자라나면서 나쁜 짓을 저지르거나 약한 자를 괴롭히는 것은 욕심 때문이다. 인간은 육체를 지닌 동물이기 때문에이다. 인간은 육체를 지닌 동물이기 때문에 말초신경에서 오는 욕망 또는 충동을 느끼게 되고 그래서 착한 본심을 잃어버리는 수가 있다.
그렇지만 본심에 잠간 때가 묻었거나 물욕으로 해서 가리워졌을 뿐, 양심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욕을 극복(克復)한다면 본심은 금방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얘기가 있다.
도둑들이 물건을 많이 훔쳐 왔다. 둘이서 훔쳐 온 물건을 나누는 과정에서 갑이 을 몰래 값진 물건을 골라 자기 몫으로 슬쩍 숨겼다. 이를 눈치챈 을이 소리쳤다.『야 이마! 양심껏 해! 넌 양심도 없어?』 도둑도 급하면 양심을 들먹인다. 양심이란 어느 누구나 지니고 있고 어떤 경우라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고려시대 이조년(李兆年), 이억년(李億年)이라는 명신(名臣)이 있었다. 모두 5형제로 대단히 우애가 깊었다. 집안은 비록 가난했지만 열심히 공부했고 장래 세상을 위해 큰일을 해야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어느 날 소년 조년과 억년 형제는 길을 떠났다. 길을 가다가 두 소년은 길가에 떨어져 있는 금 덩어리를 발견했다. 횡재를 한 것이다. 굉장한 재물이었다. 형제는 금 덩어리를 두 몫으로 나눠 의좋게 가졌다. 소년들은 기분이 좋아서 콧노래를 부르며 다시 걸었다. 얼마 안 가서 나루가 있었다. 양천(陽川)나루다. 지금 漢江 下流, 서울시 陽川區가 그 당시는 陽川縣 이었다. 나룻배를 타고서 강을 건너가는데 강 한 가운데쯤 이르자 아우가 갑자기 금 덩어리를 물 속으로 던져버리는 것이다. 이를 본 형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
『얘, 어찌된 거야? 그 귀한 보물을 버리다니 너 정신 나간 거 아니냐?』 아우는 정색을 하고서 대답했다. 『형님, 왜 제가 황금 귀한 줄 모르겠습니까? 우리 집안이 넉넉지 못하게 살아가는 형편이니까 더욱 귀하지요. 그러나 그 금 덩어리를 줍고 난 후부터 제 마음에 物慾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형님이 없었더라면 남이 없었더라면 금 덩어리를 나 혼자 독차지 할 수 있는데 아깝게 반밖에 가지지 못하게 됐구나 하는 생각이 자꾸 나게 되고 또 형님이 기진 금 덩어리를 뺏어 가질 수는 없을까 하는 나쁜 생각이 자꾸 머리에 들더군요. 평소 우리 형제는 남달리 우애가 두터워 이웃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였는데 요사스런 황금으로 형제간 의를 상해서야 되겠습니까』 아우의 말에 형도 아우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네 말이 천만 번 옳구나. 실은 나도 네가 없었더라면 금 덩어리 두 개를 나 혼자 다 가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욕심이 자꾸 일어나더구나. 금 덩어리로 해서 우리 사이에 금이 가서야 되겠냐. 우애는 천만금을 줘도 사지 못하는 것이다』 형도 금 덩어리를 강물 속으로 던져 버렸다. 이를 본 사람들의 입에서 그 사실이 자꾸 전해져 후세 사람들은 그 나루를 『投金灘(금덩이를 던진 여울)』 이라 불렀다고 한다.
맹자는 말했다. 『인(仁)이란 사람의 마음이고 의(義)는 사람이 걸어갈 길이다. 그 길을 버리고 따라가지 않고 그 마음을 잃어버리고도 찾을 줄 모르니 슬프구나! 사람이 닭이나 개를 잃어버리면 찾을 줄 알면서 마음을 잃어버리면 찾을 줄 모른다. 그러므로 학문하는 길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 뿐이다』
사람은 아차 하는 순간에 마음을 놓쳐 잃어버릴 수가 있다. 그런 상태가 오래 되면 인생은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맹자는 아주 적절한 비유를 했다. 『닭이나 개를 잃어버리면 기를 쓰고 찾으면서 자기 마음을 잃어버리면 왜 찾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