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물 정권의 세 가지 무기, ‘레임덕’ 막으려다 ‘데드덕’ 간다:
슬로우레터 5월30일.
거부, 거부, 거부, 거부.
- 21대 국회 마지막날인 어제 윤석열(대통령)이 국회를 통과한 법안 4건에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국회가 폐회하면서 재의결 없이 자동 폐기됐다.
-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과 민주유공자법, 지속가능한 한우 산업 지원법, 농어업 회의소법 등이다. 대통령실 관계자가 이런 말을 했다. “일방적인 국회 운영에 대한 항의의 의미이기도 하지만 내용적으로도 받을 수가 없는 법안이었다.”
- 박찬대(민주당 원내 대표)가 “계속되는 거부권 행사는 정권의 몰락만 앞당길 뿐”이라고 경고했다.
- 세월호 피해자 지원법은 받아들였다.
22대 국회 첫날 1호 법안은 채 상병 특검법.
- 내용을 일부 보완했는데 조국혁신당에 특검 추천권을 준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종섭(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 대사 임명과 출국 금지 해제 등의 의혹도 특검 수사 대상이다.
- 빠르면 7월에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윤석열-이종섭 통화기록, 탄핵 태블릿될까.
- 임기훈(당시 대통령실 비서관)과 박진희(당시 국방부 보좌관) 사이에 25차례 통화 기록이 확인됐다. 윤석열의 ‘격노’와 수사 자료 회수 즈음해서 대통령실과 국방부의 ‘핫라인’이 가동됐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 한겨레는 윤석열-임기훈-이종섭-박진희-김계환(해병대 사령관) 순으로 윤석열의 의중이 전달됐을 거라고 분석했다.
- 항명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박정훈(당시 해병대 수사단장)은 이들의 통화 뒤에 김계환에게 VIP가 격노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 정청래(민주당 최고위원)가 “윤석열을 피의자로 전환해서 직접 수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국정 농단 사건 때 태블릿 PC가 스모킹건이었다면 윤석열-이종섭의 부적절한 대화도 스모킹건이자 트리거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 경향신문과 인터뷰한 한 변호사는 “윤석열이 수사 기록의 이첩 보류와 회수를 지시했다면 군사법원법에 규정된 권한 행사를 막은 위법행위”라고 지적했다.
공수처의 고민.
- 공직자고위범죄수사처가 윤석열을 직접 수사할 것인지도 관건이다.
- 한국일보는 “대통령에게는 포괄적 지휘 권한이 보장된 반면 박정훈에게 독립된 수사 권한이 있는지는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수사권이 없는 사안에 대한 조치 의견 변경이 직권 남용인지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 박근혜 국정 농단 사건 때 검찰이 박근혜를 피의자로 입건하긴 했지만 실제 소환 조사는 탄핵 이후였다.
군 사망 사고의 구멍.
- 며칠 전 육군 얼차려 사망 사건도 있었다. 군은 중대장 등이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사건을 경찰에 이첩했다.
- 군 사망 사건은 군사법원 관할이 아니다. 곧바로 경찰로 넘겨야 하는데 채 상병 사건에서 보듯 군에서 먼저 수사적 판단을 하고 이첩하는 과정에서 군이 개입할 여지가 크다는 게 문제다. 채 상병 사건은 대통령실 개입이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 한국일보는 “경찰이 초동 수사에 접근하지 못하면서 생기는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 도규엽(상지대 교수)은 “범죄 혐의가 인지되는 즉시 군과 민간 경찰이 합동으로 초동수사를 하거나 이첩을 독촉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쟁점과 현안.
김건희 수사 검사들 모두 남았다.
- 어제 검찰 인사 결과다. 디올백 사건과 주가조작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들이 일단 자리를 지켰다. 법무부는 “주요 현안 사건 담당 부서장들을 유임시켜 업무 연속성이 유지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 이재명 수사 검사들은 일부 자리 이동이 있었다.
- 한겨레가 만난 한 검찰 간부는 “구색이라도 맞추기 위해 유임시킨 것”이라며 “부장까지 교체했다면 김건희 방탄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에서 넘어온 ‘오물 풍선’.
- 260개 정도가 넘어왔다. 거름과 신발조각, 폐건전지 등의 쓰레기가 가득 들었는데 일부는 경남 거창군까지 날아갔다. 김여정(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담화를 내고 “표현의 자유 보장을 부르짖는 자유민주주의 귀신들에게 보내는 진정어린 성의의 선물”이라고 말했다.
- 한겨레는 사설에서 “이런 사태가 일어나게 된 근본 원인을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이 지난 10일 대북 전단 30만 장과 USB 2000개 등을 담은 애드벌룬 20개를 북한으로 날려 보낸 걸 두고 하는 말이다.
- 한겨레는 “나는 괜찮고 너만 문제라는 자세로 긴장 완화가 이뤄질 리 없다”면서 “남북은 상대를 자극하는 전단과 오물 살포를 자제하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 깊게 읽기.
지난해보다 더 적다.
- 올해 2월 한국에서 태어난 아기는 1만9362명이다. 3월도 1만9669명에 그쳤다.
- 1분기가 그나마 출생율이 가장 높은 편인데 역대 최저 기록을 갈아치웠다. 올해 연간 합계 출산율이 0.6명대로 떨어질 거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지역은 솔로 지옥.
- 출생율 못지 않게 심각한 것은 성비 불균형이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여성 1명당 남성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경북이다. 20대와 30대 성비가 각각 1.33과 1.17에 이른다.
- 20대 여성이 남성보다 많은 곳은 서울 밖에 없다. 전남 신안군은 20대 성비가 1.56에 이른다. 여성 100명에 남성이 156명이나 된다는 이야기다.
- 직업군의 차이도 여성의 지역 이탈의 원인이다. 남성은 제조업, 여성은 서비스직 취업 비중이 높은데 서비스직은 수도권에 몰려 있고 제조업은 비수도권에 많다. 지난해 제조업 노동자 452만 명 가운데 남성이 326만 명에 이른다. 지난해 서울로 전입한 20대 여성이 18만 명인데 남성은 16만 명이었다.
- 더컨버세이션은 “한국에서 1980~2010년에 태어난 남성 80만 명이 결혼 상대를 찾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다르게 읽기.
충주 사과 미국에서 반값에 팔리는 이유.
- 충주시 홍보 담당자인 충주씨(김선태 주무관)가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했다. 박근혜(전 대통령)의 사과를 패러디한 말이다.
- 미국의 한 마트에서 충주 사과가 1.29달러에 팔린다는 사진이 소셜 미디어에 돌았다. 한국 쿠팡에서는 같은 상품이 2kg 한 상자에 2만9000원, 개당 가격은 3200원꼴이다.
- 충주시에 따르면 미국 수출용 사과는 2011년부터 계약 재배를 하고 있다. 이미 지난해 수출 가격이 결정됐기 때문에 올해 가격이 올랐다고 높여 받을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아야 한다.
- 북한 핵 이야기다. 5년 전 문재인(당시 대통령)과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은 단계적 비핵화에 합의했다. 서의동(경향신문 논설위원)은 “적어도 이 시기의 김정은과 북미 협상 결렬 이후의 김정은은 구분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정은도 이때는 진정성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 임기 말 바이든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북한 비핵화를 위한 중간 단계(interim steps)’는 5년 전 문재인 정부가 구상했던 단계적 비핵화와 기본 구조가 같다.
- 물론 5년 전과는 상황이 다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도 악화됐고 설령 대화가 시작되더라도 북한은 훨씬 더 큰 대가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서의동은 “생존에는 핵으로 족하겠지만 번영을 위해서는 외교를 할 수밖에 없는 북한이 다시 대담한 선택을 할 가능성은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정작 문제는 대북 외교의 ‘의도도 능력도’ 지금 정부에선 보이지 않는다는 점 아닌가.”
오늘의 TMI.
삼성전자 노조 첫 파업 선언.
- 어제 파업을 선언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은 조합원이 2만8400명에 이른다. 전체 직원의 23% 수준이다.
- 임금 6.5% 인상을 요구했는데 회사는 5.1%를 제안해서 결렬됐다. 임금도 임금이지만 성과급 기준이 투명하지 않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지난해 반도체 부문 실적 악화로 DS 부문 직원들은 성과급이 0원이었다. 노조는 “경제적 부가가치(EVA) 기준이 아니라 영업이익 기준으로 성과급 지급 기준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삼성전자 직원들 평균 연봉은 2022년 1억3500만 원에서 지난해 1억2000만 원으로 줄었다.
하수처리장 데이터로 만든 마약 지도.
- 필로폰은 인천과 시화, 코카인은 서울과 세종.
- 하수처리장에서 시료를 채취해 분석한 결과다. 잔류 마약류 검출량으로 추산했더니 5만2000명이 날마다 필로폰을 투약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수 처리장 34곳에서 한곳도 빠짐없이 필로폰이 검출됐다.
-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강수량과 유동인구 등을 따져서 트렌드를 보여주는 것일 뿐 특정 지역이 우범지역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해법과 대안.
월 60만 원 효과? 강진군 출생아 80% 늘었다.
- 올해 들어 3월까지 출생아 수가 52명이다. 지난해는 23명이었다.
- 강진군은 2022년부터 6개월 이상 주소를 둔 주민이 아이를 출산하면 7세까지 달마다 60만 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하고 있다. 합계 5040만 원이다.
- 육아 수당을 받는 265명 가운데 200명은 원래 강진에 살고 있었지만 65명은 육아 수당 도입 이후 전입했다.
밑줄 쳐 가며 읽은 칼럼.
3년 넘은 감기, 미국 물가.
- 오건영(신한은행 WM본부 팀장)은 미국 소비자 물가 지수가 3년 넘게 2%를 크게 웃도는 걸 두고 “인플레이션의 고착화는 경제 주체들의 마음속에 인플레이션이 자연스레 자리잡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인플레이션을 목표치로 되돌리는 것도 어렵지만, 언제든지 인플레이션이 재차 튀어오를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 감기가 오래 되면 고질병이 되고 언제라도 재발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인플레이션이 고착화하면 경기 부양 효과도 떨어진다.
윤석열과 한동훈의 원샷 게임.
- 윤석열이 이재명보다 한동훈을 더 싫어할 것이라는 말이 돈다. 점심 한 끼 같이 못하는 사이가 됐다.
- 허진(중앙일보 기자)은 두 사람이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본다. 한동훈(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당 대표에 출마하면 최악의 갈등국면으로 치달을 거라는 이야기다. 먼저 배신을 해야 내가 산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 12년 전 이명박(당시 대통령)과 박근혜(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은 죄수의 딜레마를 극복했다. 원샷 게임을 앞둔 윤석열과 한동훈 사이에도 그런 합의가 가능할까.
시간은 국민의힘 편이 아니다.
- “국민의힘은 무능과 무기력, 무사명감의 3무에 빠져 있다.”
- 이상렬(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연금 개혁이 늦어지는 책임의 상당 부분은 국민의힘이 떠안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모수개혁과 함께 구조개혁이 같이 가야 한다는 국민의힘의 주장은 원론적으로 맞다. 이상렬은 “지금 국민의힘은 응급 환자의 수술을 미루면서 건강검진부터 하자는 몽니를 부리는 것으로 비친다”고 지적했다.
- “그동안 국민의힘은 구조개혁과 관련해 어떤 노력을 했나. 어떤 안을 구상했고 어떤 설명을 했나. 국민의힘이 여기에 답할 수 있어야 연금 개혁의 진정성이 의심받지 않는다. (중략) 혹여라도 연금 개혁이 ‘이재명의 개혁’으로 각인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면 더욱 집권당 자격이 없다.“
식물 정권의 세 가지 무기.
- 역대급 여소야대 정부지만 행정부의 권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윤석열이 국민의힘 초선 당선자들을 모아놓고 “정부 여당으로서 권한이 있으니 소수라고 기죽지 말라”고 말한 것도 이런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유재동(동아일보 경제부장)이 세 가지를 꼽았다.
- 첫째, 예산을 편성할 수 있는 권리가있다.
- 둘째, 국회가 안 움직이면 시행령으로 밀어붙일 수도 있다.
- 셋째, 국회가 밀어붙이면 거부권으로 튕길 수 있다.
- 유재동은 “앞으로 윤석열 정부의 경제 정책은 법을 바꾸지 않고도 구현할 수 있는 ‘잔잔바리’ 대책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삼권 분립이 아닌 삼권 대립과 삼권 충돌의 국면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이념 색채를 줄이고 야당을 설득하면서 실사구시로 가야 한다. “그런데 총선 이후 정부 여당이 그런 쇄신의 태도를 보여준 게 있었나. (중략) 까딱하다가 윤석열 정부 후반부는 정말 레임덕(lame duck)을 넘어 데드덕(dead duck·심각한 권력 공백)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경고다.
피드백.
- 오늘은 매우 중요한 독자 의견이 두 가지 있습니다. 오늘은 소개만 하고 둘 다 따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 “슬로우레터를 매우매우 잘 읽고 있는 독자입니다. 그런데 5월29일 슬로우레터에서 ‘민생 법안 날렸다’라는 제목 아래 ‘인공지능 기본법과 K칩스법도 본회의 문턱을 밟지 못했다’고 쓴 건 매우 유감입니다. 슬로우뉴스조차 인공지능 기본법을 둘러싼 맥락을 살피지 않은채 여느 언론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통과되었어야할 민생법안으로 분류하는 듯 하니 말입니다. 언론에서 인공지능 기본법이 과연 통과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검토나, 최소한 이에 대한 비판적 입장에 대한 전달도 없이 인공지능 기본법을 마치 민생법안인 것처럼 통과를 촉구하는 것이 제대로 된 언론의 역할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슬로우뉴스라면 이러한 언론의 문제를 다뤘어야 하지 않을까요?”
- “안녕하세요? 매일 아침 출근길을 슬로우레터와 함께하는 언론인 지망생입니다. 늘 탁월한 통찰을 제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슬로우리포트로 다뤄주셨으면 하는 주제가 있어 의견 남깁니다. 슬로우레터는 제목에서부터 조선일보 또는 조중동을 직접 언급하는 경우가 많은데뇨. 슬로우뉴스가 이들 매체의 논조에 이토록 큰 관심을 갖는 이유가 궁금힙니다. 한국 언론과 사회에서 조선일보와 조중동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이들의 논조(또는 그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들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이들의 전망은 어떠한지 짚어주셨으면 합니다. 기존에 이런 내용을 다룬 콘텐츠가 없는 건 아니지만, 슬로우뉴스는 뭔가 다를 것 같다는 기대감으로 제안드립니다. 감사합니다:)”
https://slownews.kr/109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