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나종호 기자]이집트 여행의 시작은 역시 피라미드였다. 이집트에 당도한 나폴레옹이 “병사들이여, 여기 40세기의 역사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며 경탄했다는 그 피라미드들이다. BC 2700년 무렵 고왕국시대의 왕인 조세르가 계단식 피라미드를 쌓아 올린 이후 파라오들은 재임
중 경쟁적으로 자신의 무덤을 꾸몄다. 그중 가장 유명하고 기하학적으로 완성도 높은 것이 카이로 서쪽 기자에 있는 쿠푸왕의 피라미드다.
이집트에는 100개가 넘는 피라미드가 있지만 기자에 있는 것들이 가장 보존 상태가 좋다.
BC 2656년부터 23년간 재임했던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1.5t짜리 돌 230만개로 쌓은 것이라고 한다. 바닥 정사각형의 한 면 길이가
230m에 달하고 높이는 136m다. 원래 146m였지만 정상부의 돌이 무너져 내렸다.
쿠푸왕 피라미드 옆으로 카프라왕과 멘카우라왕의 피라미드가 자리하고, 카프라왕의 피라미드 앞에 그
유명한 스핑크스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카프라왕의 얼굴이라는 사람 머리에 사자의 몸을 가진 형상으로 피라미드를 수호하듯 서 있다. 그
스핑크스 앞에서는 매일 저녁 ‘빛과 소리의 쇼’가 벌어져 이집트 7000년 역사를 현대인들에게 들려준다.
피라미드 내부는 따로 돈을 내면 들어가 볼 수 있지만 모두 도굴해갔거나 박물관에 옮겨져 있어 돌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미로와 같은 급경사의 좁은 통로를 내려가다 보면 숨쉬기가 불편하고 이상한 냄새만 난다.
이곳을 찾은 날은 마침 이슬람의 휴일인 금요일. 피라미드를 구경온 아이들은 허물어져 내린 돌 무더기를 오르내리며 놀이터로 삼고 있었다.
피라미드는 석회석 외벽이 모두 한꺼풀 벗겨진 모습인데, 이슬람이 이집트를 통치하면서 회교 사원을 짓기 위해 뽑아다 써서 그렇다고 한다.
스핑크스는 코가 깨지고 없었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 수도였던 멤피스의 묘지 지역 사카라에 들러 귀족들의 무덤에 들어가면 볼거리가 많다.
벽과 천장에 빈 틈 하나 없이 그린 상형문자와 그림들은 4000년 전 이집트인들의 생활상을 눈 앞에 그대로 펼쳐 보인다.
그래도 묘지는 묘지. 축조 과정의 불가사의함을 빼면 사막 먼지만 풀풀 날릴 뿐이다. 그 허전함을 카이로의 박물관 유물에서 메울 수 있다.
지은 지 100년이 된 박물관은 이집트 역사를 압축해 놓은 보물창고다. 박물관 앞뜰은 전 세계에서 모여든 관광객들로 북적였고, 크고 작은
석상들은 미술 학도들의 훌륭한 스케치 소재였다. 이집트인들이 섬기던 신들의 모습, 파라오와 왕비들의 석상, 그리고 40파운드(약
8000원)의 입장료를 따로 내고 봐야 하는 파라오들의 미이라까지 다리 아플 틈도 없이 관광객을 끌어들인다. 이집트의 가장 강력한
왕이었고 소설로도 쓰인 람세스2세의 미라가 가장 잘 보존돼 있었다.
하지만 이집트 박물관의 압권은 투탕카멘왕의 황금 관과 황금 마스크다. 8세에 즉위, 스무 살도 안 돼 갑자기 사망한 투탕카멘의 무덤은
유일하게 도굴이 안 된 채 발굴됐다. 그의 무덤에서 쏟아져 나온 2099점의 유물은 세계 고고학계를 경악케 했다고 한다. 일곱 겹으로
만들어진 관을 하나씩 빼내자 금 도금을 한 관이 드러났고, 그 속에 황금 마스크를 쓴 미라가 누워 있었다.
다음은 나일강을 거슬러 룩소를 찾을 차례다. 신왕조시대 강력한 왕들이 있던 곳이라 왕들의 무덤도 많고 장제전(장례식을 위해 지은 건물)도
많다. 역시 모두 돌이다. 멤논의 거상(巨像), 일코르나산 ‘왕가의 계곡’에 있는 투탕카멘의 무덤 등 수많은 무덤들을 구경하고 룩소신전을
찾았다. 교회 역할을 한 신전 앞에는 탑 역할을 하는 오벨리스크가 2개 서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룩소신전 앞의 오벨리스크는 하나뿐이다.
19세기 이집트 왕이 된 무하마드 알리가 하나를 뽑아 프랑스 왕에게 선물로 바쳤다. 2년 걸려 운반한 오벨리스크는 지금 콩코드광장에 서
있는데, 그 대가로 시계탑을 받아 왔다. 오벨리스크는 모두 200개가 있었는데 이집트에는 6개만 남아 있다. 상당수는 유럽으로 가져가다가
지중해에 빠트렸다고 한다.
피라미드, 스핑크스와 함께 이집트 유물의 베스트3에 드는 카르낙신전은 무려 2000년에 걸쳐 이집트 왕들이 조금씩 지어 나갔다. 한때 1만명
이상의 사제들이 머물던 곳으로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이집트 신전은 아스완에서 남쪽으로 320㎞ 떨어진 아부심벨의 람세스신전에서 절정을 이룬다. 가장 강력한 왕이었던 람세스 2세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거대한 신전이다. 아스완 하이댐을 쌓을 때 수몰지구에 들어가자 유네스코의 주관으로 기금을 모아 석상들을 완전히 해체, 원래
위치보다 60m 높고 서쪽으로 120m 옮겨 다시 축조했다.
이 밖에도 이집트와 그리스·로마의 만남인 알렉산드리아, 모세의 발자취가 살아 있는 시나이반도, 물 색깔이 아름다운 수중 레포츠의 천국인
홍해변 후르가다 등 볼거리·즐길 거리가 엄청나게 많다.
수많은 돌기둥과 그 기둥에 새겨진 그림들은 이집트의 옛 영화를 웅변한다. 하지만 그 돌들을 운반하고 세우고 깎기 위해 끊임없는 노역에
시달렸을 민중들의 아픔 역시 느껴진다. 곳곳에서 발견되는 나일강 범람의 흔적과 도굴의 흔적들도 마음을 아리게 한다.
(나종호기자 najh@chosun.com )
이집트 여행수첩
●교통=대한항공이 카이로 직항 노선을 주 2회 운항한다. 중국과 터키를 거쳐 지중해의 키프로스를 지나는
항로다. 가는 데 12시간, 오는 데 10시간 정도 걸린다. 대개 단체관광이라 여행사들이 마련한 교통편을 이용한다. 덜덜거리는 택시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요금 흥정을 잘해야 한다.
●비자=이집트 입국 때 비자를 받을 수도 있고 사전에 주한 이집트대사관(02-749-0787)에서 받아도 된다. 단수비자 2만4000원,
복수는 2만9000원이다. 이집트 관광청 홈페이지(www.visitegypt.co.kr)에 기초 정보는 다 들어 있다.
●환율=1이집트파운드(100피아스트르)가 한화로 약 200원에 해당한다. 미화를 현지에서 조금씩 바꿔 사용한다. 이집트는 ‘박시시’라는
팁을 주는 풍습이 있고 화장실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요구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곳에서는 잔돈이 필요하므로 50피아스트르짜리를 준비한다.
●여행시기=4~10월이 여행 하기 알맞다. 비교적 따뜻한 기후지만 여름철은 피하는 것이 좋다. 겨울철에는 기온이 크게 떨어질 수도
있으므로 겨울옷을 준비한다. 3월에는 모래폭풍이 불어 국내 항공 운항이 중지되는 등 교통 장애가 많으므로 피한다.
●전압=한국과 같이 전압은 220v, 주파수 50㎐이다.
●전화=주요 호텔에서만 국제자동전화가 가능하며 요금이 무척 비싸다. 카이로 이외의 지역에서는 국제통화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경찰=카이로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떠날 때까지 언제 어디서나 관광경찰을 만난다. 관광객 보호와 유적지 보호가 그들의 임무다. 차량으로
지방에 이동할 때는 관광경찰에 미리 신고, 정해진 시간에 출발하는 콘보이(Convoy)를 따라야 한다. 그래선지 치안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