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子山) 이문걸(이文杰) 선생이 부산 동의대학교에서 퇴임하신지도 어언 10여 년이 흘렀으니 이맘 연세라면 아흔이 가까웠으려나? 문학의 '문'자도 모르는 시골 무지랭이 출신인 내가 자산 선생을 알 까닭도 기회도 없었지만, 세상 몇 다리만 거쳐 가면 모두가 한 핏줄이라더만 선생은 우리 주인님과 연(緣)이 있었더구만 그랴.
우리 주인님이 지금으로부터 반 세기도 넘은 1960년대 부산광역시 기장군에 있는 장안중학교(시골중학교라고 깔볼 수만은 없는 게 서슬퍼랬던 혁명시대 서울시장을 거쳐 내무부장관까지 지냈던 김현옥씨가 그곳 교장으로 부임했다고 한동안 매스미디어를 달궜던 기억도 있구만)에 다닐 때 국어 선생님이 자산(子山)이었다는구만 그랴. 주인님의 추억담에 따르면, 선생은 수업 중 늘 시를 읊어 주고 학생들에게 시를 외라고 권유했다는 구만. 해서리 결혼 후 난 주인님으로부터 걸핏하면 미당 선생의 '국화 옆에서', 영랑 선생의 '오메 단풍 들것네', 지훈 선생의 '승무(僧舞)', 영운(嶺雲) 선생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등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살아왔응게 굳이 따지자면 선생께서 내게 끼친 악영향도 그닥 작진 않으리니...
여튼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선생의 연작시「풀꽃심상」중 제 42편 '연꽃'을 감상하며, '네 아픔은 곧 내 아픔이란 이유로 혼절하고 마는 연꽃의 단심(丹心)은 누구를 향한 연정일까나.
연 꽃
저승에 두고온 인연이
피멍으로 가라앉은 화덕에
한 아름
마른 솔가리를 지폈다
태양도 목말라
돌아누운 대낮
진흙 밟고 승천하는
욕진(欲塵)의 번뇌
네 아픔은
곧 내 아픔이려니
인과의 탁한 물속에서
혼절하는 꽃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