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다지만 농사 십여년만에 처음으로 농사꾼다운 배추 농사를 지었다. 가까이 사는 친구에게 쌈으로 먹고 겉절이 해 먹으라고 배추 세포기 보냈더니 대뜸 칭찬이 날아왔다. '어찌 이렇게 잘 길렀어 이제 진짜 전문 농사꾼이구먼'
그리고 한 욕심을 더 얹어 말했는데, 내년에는 너네 밭 한쪽에 함께 배추를 길러보자고 했다는데. 그동안 함께 수확하던 막내 시누이네를 내쫓을까 친구를 들여놓을까. 말하나마나지. 욕심내나마나지.
그가 잘라놓은 배추속처럼 싱싱하고 화사하게 웃었다.
우리가 봐도 놀랄만큼 배추 농사가 풍년이다. 노란 고갱이가 겹겹이 단단하게 들어차 있어 꽃처럼 이쁘다. 냄새를 맡아보니 고소한 배추 냄새가 진동을 했다. 흐르는 물에 씻어 먹어본 고갱이는 고소하면서 달큰했다.
배추 절이는 일을 청솔님이 하기로 했다. 짭짤한 소금물에 흠씬 담갔다가 나란히 놓은 뒤 소금을 한움큼씩 집어 배추 밑둥쪽에 올려놓으면 된다고 내가 시범을 보여 주었다. 쭈구리고 앉아 정성을 들이는 폼이 아즘마를 능가한다. 뒷모습을 찰칵! '자기 정말 잘하는데' 그의 입이 함지박만해진다.
보통 겨울에는 7시간 정도 배추를 절이면 된다. 배추속이 지나치게 꽉 들어차 있고 크기가 커서인가. 7시간이 지난 저녁 7시에 확인을 해보니 아직도 멀었다. 잎사귀 부분만 절여졌을 뿐 줄기 부분은 뻣뻣한 채로 있다. 한번 뒤집은 다음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양평은 일교차가 심하다. 밤이 되면서 급속도로 기온이 하강하는데, 산쪽에서 내려오는 냉기가 가슴 깊은곳까지 파고드는 오싹해지는 느낌이다. 그러니만큼 방안이 더없이 따스하고 아늑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배추가 절여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당연히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더욱 추위에 약한 나는 어릴적처럼 머리만 내놓은 채였다.
아 생각난다 생각나. 두메산골 외갓집이 생각난다. 아래 윗집으로 큰외삼촌네와 작은 외삼촌네가 사셨었다. 외사촌은 여덟명이었다. 걸어서 삼십분 거리였으므로, 그리고 함께 노는 일이 재미있었으므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달려나와 반겨주셨으므로, 언니 둘과 나는 자주 놀러가고는 했다.'족제비한테 물려가지 않고 잘 왔구나' 외할아버는 허허 웃으시면서 쪼끄만 나를 놀리는 이 말을 빼놓지 않으셨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밤에 일어났다. 특히 겨울밤에 말이다. 이불은 많지않고 아이들은 열명이 넘었으므로 방법은 딱 한가지였다 따뜻한 아랫목에 큰 이불을 외숙모가 펴시면 우리는 그 이불을 중심으로 빙 둘러 드러누웠다. 처음에는 당연히 발과 발이 마주치면서 야단법석이 일어났지만 어느틈에 그 작은 발들은 제 자리를 잡았고 자고나면 아침이었다.
그날처럼 우리도 나란히 누웠다. 이불을 끌어당겨 덮고 방바닥에 누우니 나는 그날처럼 괜히 신이 날 뿐만 아니라. 이 시간 이 사람이 더없이 소중하고 소중하게 다가온다. 자꾸 얼굴을 돌려 그를 바라보게 되고 자꾸만 그를 쓰다듬게 된다. 이 감사함! 그 분 때문에 더 그럴것이다.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을 이겨내고 노력하고 노력하여 자수성가한 그의 친구이자 상사였던 분 , 자식들 잘 길러내고 이제 한 숨 돌리고 자신을 위해 제대로 살아보려 하던 참이었는데. 병마가 두서너달만에 그를 데려가버렸다. 친했던 그 분의 마지막에 다녀 온 것이 어제 저녁이었다.
배추가 절여지고 있다. 우리도 배추처럼 잘 절여지고 있는 중이 아닐까. 배추처럼 시퍼렇게 저 잘났다고 뽐내던 시절 내려놓고, 적당히 자신을 죽이고 부피를 줄여 한 공간에서 부대끼고 뒤섞이는 지혜를 터득하고 있는 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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