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ng isilang ka sa mundong ito Laking tuwa ng magulang mo At ang kamay nila,ang iyong ilaw At ang nanay at tatay mo'y 'Di malaman ang gagawin Minamasdan pati pagtulog mo.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엄마와 아빠는 꿈이 이루어지는걸 보았지 우리의 꿈이 실현된것이며 우리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지
At sa gabi'y napupuyat ang iyong nanay Sa pagtimpla ng gatas mo At sa umaga nama'y kalong ka ng iyong amang Tuwang-tuwa sa iyo
넌 우리에겐 너무도 소중한 아이였지 네가 방긋 웃을 때마다 우린 기뻐했고 네가 울 때마다 우린 네곁을 떠나지 않았단다
Ngayon ng malaki ka na Nais mo'y maging malaya 'Di man sila payag walang magagawa Ikaw nga ay biglang nagbago Naging matigas ang iyong ulo At ang payo nila'y sinuway mo.
아들아 넌 모르겠지 아무리 먼 길도 갈 수 있다는것을 우리가 너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을 위해서는 신에 맹세코 너를 끝까지 돌봐주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한다면 너를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을거라는것을..
Di mo man lang inisip na Ang kanilang ginagawa'y para sa iyo 'Pagkat ang nais mo"y masunod ang layaw mo 'Di mo sila pinapansin.
계절이 여러번 바뀌고 벌써 많은 세월이 흘러 지나갔구나 시간이 너무도 빨리 지나가 버린거지 이제 너도 어느새 다 자라버렸구나
Nagdaan pa ang mga araw At ang landas mo'y naligaw Ikaw ay nalulong sa masamang bisyo At ang una mong nilapitan Ang iyong inang lumuluha At ang tanong 'Anak, ba't ka nagkaganyan?
그런데 무엇이 널 그렇게 변하게 했는지 넌 우리를 떠나고 싶어하는 것 같구나 큰소리로 네마음을 말해보렴 우리가 너에게 뭘 잘못했는지 말이야
At ang iyong mga mata'y biglang lumuha ng di mo napapansin Pagsisisi at sa isip mo'y nalaman mong Ikaw'y nagkamali. Pagsisisi at sa isip mo'y nalaman mong Ikaw'y nagkamali. Pagsisisi at sa isip mo'y nalaman mong Ikaw'y nagkamali.
그런 너는 어느새 나쁜 길로 접어 들고말았구나 아들아 넌 지금 망설이고 있구나 무엇을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말이야 넌 너무도 외로운거야 네 옆엔 친구 하나 없는거지 아들아 넌 지금 후회의 눈물을 흘리고있구나 우리가 너의 외로움을 덜어 주련다 네가 가야 하는 곳이 어디이든지 우리는 항상 문을 열고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필리핀 마닐라의 한 작은 클럽, 매일 밤 라이브 공연이 펼쳐지는 그곳에
프레디 아길라, 그가 있다.
무명시절 인연을 맺은 후 30여년 동안 꾸준히 지켜왔던 그의 작은 무대.
이곳에서도 신청곡 1위는 아낙. 여전히 필리핀에서는 하루 몇 번씩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고,
프레디 아길라가 음악활동을 펼쳤던 곳에는 그의 동상이 서있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사람들은 그를 친애하는 캅(Captain)이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그는 여전히 필리핀의 국민가수인 것이다.
필리핀 타갈로그어로 자식이라는 뜻의 아낙(Anak)은 부모와 자식 간에
벌어지는 감정적인 갈등을 그린 노래다.
아낙은 세계 28개국에서 번안되며 당당히 800만장의 판매고를 올림으로써
프레디에겐 세계적인 성공을 가져다 준 노래.
프레디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이 노래를 만들었는데 의사(정치가)가 되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하고 17살에 가출해 기타를 들고 클럽을 전전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프레디가 세계적인 가수로 성공하는 것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이미 부모가 되어 아낙(아들)을 낳고, 다시 아낙의 아낙을 본
프레디 아길라는 그래서 더 깊은 회한으로 이 노래를 부른다.
이 음악을 작곡할때 연필과 종이, 녹음기, 그리고 기타하나로 십분도 않되서
작곡 하였으며 악보를 보지도 만들줄도 몰라서 가사를 적으면서 그 가사위에
기타 코드를 적어가며 녹음기로 녹음 하면서 만들었다.
지금도 악보를 못 보지만 많은 노래를 이렇게 만들었다.
80년대 초 라이오넬 리치/마이클잭슨 등 팝의 황제들과 함께 당당히
빌보드챠트 5위라는 기록을 남긴 프레디 아길라.
그러나 그 명성에 걸맞지 않게 그가 살아가는 곳은 마닐라에서도
가장 가난한 빈민가이다.
집 한구석에 마련된 교실 한 칸, 운동장으로 쓰이며 졸업식이 열리는
집 앞마당, 협소하고 비루하기 짝이 없지만, 이 지역의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유일한 공부방. 그는 빈민가 아이들의 아버지인 것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연필 한 자루까지 공연을 통한 수익금으로 채운다.
그가 가장 큰 성공을 누렸을 당시, 필리핀은 마르크스 독재에 신음했던
가혹한 시절이었다. 그때 프레디 아길라와 필리핀 전체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일대 사건이 벌어진다.
마르크스 독재를 피해 망명중이던 니노이 아키노가 필리핀으로
돌아오던 중 공항에서 암살된 것.
분노한 민중은 거리로 나섰고, 독재에 항거했다.
프레디 아길라는 그들의 중심에 서서 그들의 숨결로 노래를 했다.
그때부터 그는 필리핀 민중의 삶을 노래하는 가수가 되었다.
자유를 외치는 곳,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곳에 항상 그가 있었다.
이제 그는 단지 가수가 아니라 사랑과 존경이 담긴 전설이 되었다.
거센 항쟁의 시기가 물러갔지만, 프레디 아길라의 노래는 여전히
필리핀 사회를 보듬고 있다. 그는 여전히 술집여자, 해외 이주노동자,
감옥에 갇힌 이들의 아픈 삶을 노래하고 어루만진다.
항상 열려 있는 프레디의 집안 대문 너머로는
오늘도 아이들의 노래 소리가 맑게 울린다.
60살 그는 여전히 거인이며 수퍼스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