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陶工 14대손 이삼평씨와 '일본 속의 한민족사' 탐방]
정유재란때 日 끌려온 이삼평家
1616년 최초 백자 구워낸 이후 名品 '아리타 도자기' 가문으로
417년 전 왜군에 끌려간 한국 도공(陶工)의 14대손(孫) 앞에서 역사 교사들은 두 손 모으고 귀 기울였다. "아리타(有田)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초대 이삼평(李參平) 할아버지가 일본에 와서 처음 도자기를 만들기 시작한 지 내년이면 꼭 400년이 됩니다." 14대 이삼평(54)씨 인사말에 "와!" 하는 함성과 함께 박수가 쏟아졌다. 지난 19일 일본 규슈 사가현(縣) 아리타를 방문한 우리나라 초·중·고 교사 293명이었다. 조선일보가 주최하고 신한은행·GS가 후원하는 '일본 속의 한민족사' 탐방단인 이들은 전날인 18일 밤 페리를 타고 부산을 떠나 19일 하카다(博多)항에 닿아, 버스 9대에 나눠 타고 아리타에 있는 도산신사(陶山神社)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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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왜군에게 끌려가 조선의 백자(白磁)를 전수한 이삼평의 14대손 이삼평(사진 왼쪽)씨가 한국에서 찾아온 역사 교사 293명을 만났다. 이씨 옆은 강의를 맡은 정영호 전 단국대 교수. /아리타(일본)=한현우 기자
"제가 아버지로부터 이름과 함께 가업을 물려받은 것은 2005년 8월 11일입니다. 초대 이삼평의 350주기에 맞춰 이 신사의 본전(本殿)에서 아버지와 술잔을 주고받으며 이름의 계승을 초대 할아버지께 보고 드렸습니다." 스무 살 때부터 아버지 밑에서 도자기를 빚어온 이씨는 "아버지가 '네가 이곳에 있는 것은 먼 옛날 조상이 한국에서 이곳에 왔기 때문이니 혼신의 힘을 다해 고향인 한국에 은혜를 갚으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10년 전 은퇴한 13대 이삼평은 현재 95세다. 이날 교사들 앞에서 이삼평 도자기에 대해 강의한 정영호 전 단국대 교수는 "5년 전 이곳에 왔을 때 13대 이삼평을 만났었는데 아직도 정정하게 생존해 있다니 무척 반갑다"고 말했다. 13대 이삼평은 지난 2009년 부산에서 열린 이삼평 첫 귀국 전시회에서 "우리 가문이 도자기에 종사하지 않으면 조상 뵐 면목이 없다"며 "자기의 백색(白色)이 잘 빛나는 조각 기술을 전수하겠다"고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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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대 이삼평의 작품으로 재래식 가마에서만 가능한 색의 번짐이 돋보인다.
"처음 일본에 끌려온 초대 할아버지가 언어와 문화가 전혀 다른데도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신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딸 하나밖에 없지만 그 아이가 가업을 잇겠다고 하면 물려줄 생각입니다. 최초의 '여자 이삼평'이 되는 것이죠." 1658년 세워진 신사의 가파른 계단을 한국 교사들이 오르내리며 도자기를 일본에 전수한 조상과 그의 14대손을 번갈아 만났다. 서울 왕북초등학교 김희애 교사는 "이번 탐방이 아니었다면 인구 2만명밖에 되지 않는 아리타까지 찾아오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책으로만 읽던 역사를 유물과 유적, 후손까지 만나 입체적으로 경험하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