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양화진 홍보관 4층 사무실에서 100주년기념교회 이재철 목사를 만났다. 이 목사는 1시간 30분 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 양화진, 유니온교회, 용인 순교자기념과, 장로 권사 호칭제, 음부 강하론 등 논란이 됐던 사안들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다음은 이재철 목사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지금까지 목사님과 관련된 많은 논쟁들이 있었다. 그 중 100주년기념교회가 양화진의 괸라자로 창립되었는데 소유자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교회와 나는 관리자의 선을 넘어선 적이 없다. 소유자처럼 행한다는 것은 그렇게 말하는 분들의 일방적인 주장일뿐 타당한 근거를 제시한 적이 없다.
그분들이 근거라고 제시하는 것들은 이미 경찰, 지방검찰, 고등검찰에서 증거물로서 가치가 없다고 했고, 고등법원에서도 기각됐다. 대한민국 사법부가 판정한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로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앞으로도 누구든지 사유화한다고 말을 하면 언론에서 구체적으로 물어봐 달라. 4년 동안 우리가 한 것은 100주년기념교회가 창립되기 전에 양화진을 사유화했던 분들로부터 양화진을 한국교회의 성지답게 법질서를 바로 잡은 것이다.
사유화라는 단어는 사유화를 통해 어떤 이득을 얻을 때 쓰는 말이다.
생각해보라. 누군가는 묘지를 팔고, 단체 참배객을 안내하여 수입을 얻고, 유명교회 목사님의 기념비를 세워주며 이득을 얻었지만, 교회와 나는 4년 동안 양화진을 이용해 단돈 1원도 사익을 챙긴 적이 없다. 단 1평이라도 묘지를 사사로이 팔았거나, 참배객들에게 돈을 받고 착복했다면 사유화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오히려 우리의 헌금과 수고와 노력으로 양화진을 성지로 지켜왔다 나와 우리교회는 양화진을 이용하기 위함이 아니라, 양화진에 이용당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선교사 자녀들이 예배를 드리는 유니온교회를 쫓아내고 100주년기념교회가 예배를 드린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선교기념관에서 예배 드리던 유니온교회와 우리 교회가 함께 마포구청으로부터 행정조치를 받은 것이다. 선교기념관은 건축법상 묘지관리사무소로 허가된 건물이므로 허가된 용도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유니온교회는 우리가 자신들을 쫓아냈다는 소문을 퍼트리며 '업무방해죄'로 검찰에 형사고소와 항소, 고등법원에 재정신청까지 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이 과정에서 협의회 어른들과 나는 짧게는 3시간, 길게는 10시간까지 조사를 받았다. 100주년기념교회가 유니온교회를 쫓아내거나 업무를 방해하지 않았다는 것이 확증된 것이다.
한국기독교 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가 왜 100주년기념교회를 세웠겠는가.
만약 양화진이 잘 관리되고 있었으면 우리교회가 굳이 태동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협의회는 양화진묘원의 훼손을 막고 적절한 관리를 위해 영락교회, 새문안교회, 정동교회에 전담 관리를 부탁했다. 또 온누리교회에는 용인순교자기념관 관리를 부탁했다. 그러나 모두 사양했다. 그래서 100주년기념교회를 세운 것이다.
2005년 7월 10일 100주년기념교회가 세워지고 나서, 2005년 8월 4일과 11일에 협의회 집행부와 내가 유니온교회 측과 두 번 만났다. 그 자리에서 100주년 기념교회가 새로운 관리지가 되었음을 유니온교회는 축하했고, 여러 가지 건설적인 논의가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8월말부터 음해가 시작됐다. 불과 3주 만에 유니온교회의 태도가 급변한 이유를 나는 알 수 없다.
여하튼 우린 위임받은 책임과 의무를 다 해야 했다. 묘원은 국내 장묘 및 장사법에 적용된 도시공원에 준한 관리에 들어갔다. 더 이상 불법매장은 금했고, 살아 있는 내국인이 자기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 세운 기념비도 적법한 절차를 거쳐 제거했다. 그 와중에 아프리카 가나 출신인 유니온교회의 보아탱 목사님은 100주년기념교회가 양화진의 관리자임을 부정하고 나섰다.
협의회 2대 이사장 고 강원용 목사님께서 100주년기념교회가 양화진의 새로운 관리자임을 유니온교회에 문서로 재확인시켰지만, 유니온교회는 오히려 강원용 목사님을 비난하는 편지를 한국교회에 돌렸다. 강원용 목사님의 소천 이후 3대 이사장이 된 고 정진경 목사님께서 유니온교회 측을 불러 마련한 대화의 자리에서는, 유니온교회 젊은 대표가 이야기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무례도 서슴지 않았다.
그 기간동안 우리교회 교인들의 시집살이는 차마 공개할 수조차 없이 눈물겨웠다. 예를 들면 주일예배를 위한 선교기념관 안팎 청소는 우리 교인들만의 몫이었고, 유니온교회가 선교기념관의 부엌문을 열어주지 않아 한 겨울을 내내 우리 교인들은 주일에 실외에서 찬물로 그릇을 씻어야만 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확인한 협의회는 문제를 본격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유니온교회로 하여금 예배시간을 변경토록 했다.
유니온교회는 한경직 목사님의 호의에 의해 20년 가까이 선교기념관을 사용하다보니 호의를 베푼 주인을 잊은 것이다. 1986년 어간의 유니온교회 구성원들과 현재의 유니온교회 구성원들은 전혀 다른 분둘이시다. 현재 유니온교회에 선교사님의 후손은 없고, 자신의 사업이나 일을 위해 한국에 나와 있는 소수의 미국인들과 영어예배에 참석하기 원하는 한국인들로 구성된 몇 십 명의 구성원이 전부다. 그러니, 초기상황을 아는 분들이 계시지 않아 부정확한 정보에 의해 판단을 하게 된 것이다.
애초 문제를 제기했던 선교사님의 자손들 역시 유니온교회의 교인이 아닌 데다, 더욱이 초기상황을 알 수 없는 연령이지 않은가? 그러나 협의회의 어른들은 모두 그때부터의 증인들이시다.
협의회는 누가 주인인지 객인지를 정확히 함으로써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해야 했다. 그래서 2007년 5월 말이 되어, 그해 8월 5일부터 예배시간을 조정해 줄 것을 통보했다. 오전에는 100주년교회가, 오후에는 유니온교회가 드리라고 했다. 미국에 이민 간 한국인들이 미국교회를 빌려 예배를 드릴 때 한국인들은 미국인들의 예배시간을 피하여 오후에 드리지 않는가. 예배시간을 그렇게 조정함으로써 주객의 관계를 분명히 해야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리라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그 공문을 보낸 직후부터 유니온교회는 자신들을 쫓아내려 한다는 소문을 퍼트리며 한국교회에 유인물을 돌렸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