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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5 철도여행기318 대전16 - 신비의 돌탑 진안 마이산 벚꽃축제 기차여행 - 진안 마이산 도립공원 - 제11회 마이산 벚꽃축제 | |||||||||||||||||||||
오늘의 여행 사진은 아래의 사이트를 클릭을 하면 된다.
http://sakaman18.com.ne.kr/photo_151.htm
# 이용 열차 04월 15일 1. #1203 무궁화호 영등포(08:34)->대전(10:29) : 7,900원(단체 할인) 2. #1212 무궁화호 대전(19:00)->영등포(20:52) : 7,900원(단체 할인)
# 이용 교통 수단 04월 15일 1. 전용버스 청마고속관광 041) 855-3445 안종칠 기사님(충남 공주 업체) 코스 하행 : 대전역[10:40]->남대전IC->대전통영고속도로(35)->산내분기점->남부순환고속도로(300)->서대전분기점->호남고속도로지선(251)->논산분기점->호남고속도로(25)->익산IC[12:00]->봉동->진안 마이산 북부주차장[13:00] 상행 : 진안 마이산 남부주차장[16:00]->봉동->익산IC[17:05]->호남고속도로(25)->논산분기점->호남고속도로지선(251)->서대전분기점->남부순환고속도로(300)->산내분기점->대전통영고속도로(35)->남대전IC[18:15]->대전역[18:35]
# 볼거리 04월 15일 1. 제11회 진안 마이산 벚꽃축제(진안군청에서 발췌) 가. 초청말씀 마이산의 봄은 파스텔을 뿌려 놓은 듯 흐드러진 벚꽃과 탑영제의 푸른 물빛이 어우러져 찾는 이의 가슴에 절정의 감동을 선사합니다. 어느새 마이산 벚꽃축제가 11회를 맞이하였습니다. 진안홍삼·한방특구지정을 기념하고 청정진안 마이산에서 다채로운 공연행사와 벚꽃거리에 많은 문화프로그램을 마련하였습니다. 마이산에서 펼쳐지는 즐거운 봄 소풍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나. 행사개요 a. 추진방향 a-1. 진안 홍삼ㆍ한방특구 지정 기념하고 청정진안을 집중 부각시켜 관광객 관심 유도 및 방문 극대화 a-2. 이벤트 공연을 통한 재미있고 신나는 놀이문화 정착 a-3.각종 이용편의시설 확충 및 친절서비스 제공으로 지역이미지 제고 a-4. 관광명소, 진안 홍삼 특산물 등을 병행 홍보 시너지 효과 거양 b. 행사기간 2006. 4. 14(금) ~ 4. 18(화) (본행사 : 4. 14 ~ 4. 15) c. 행사장소 마이산 남ㆍ북부 주차장일원 d. 주요행사 d-1. 식전행사 : 식전행사(진안좌도풍물굿, 고적대 행진), 기념식 d-2. 공연행사 : 치어리더페스티벌, 줄타기공연, 청소년댄스, 트롯공연 d-3. 참여행사 : 군민노래자랑 d-4. 이벤트 : 벚꽃축하공연 d-5. 문화의거리 : 민속놀이마당(널뛰기, 윷놀이, 투호), 도자기 만들기체험행사, 솜사탕만들어 주기, 매직풍선, 네일아트, 페이스페인팅, 마임퍼포먼스, 캐리커쳐, 수지침 및 아로마 등 d-6. 홍삼홍보관 : 홍삼ㆍ동물캐릭터 포토존, 홍삼캔디, 홍삼ㆍ약초판매장설치 d-7. 먹거리장 : 풍물시장 운영, 향토음식 무료시식 운영
2. 마이산 마이산은 1979. 10. 16.전라북도에서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공원면적은 17.221km2로 큰편은 아니다. 구역으로는 진안읍 5개리, 마령면 4개리에 걸쳐 있으며 많은 문화재와 볼거리를 가지고 있다 마이산은 산 자체가 국가지정 명승 제 12호로 지정되었고, 수성암으로 이루어진 673 m의 암마이봉과 667 m의 숫마이봉의 두 봉우리로 형성되어 있으며 신라시대에는 서다산, 고려시대에는 용출산이라 했고, 조선시대부터 말귀를 닮았다 하여 마이산이라 불리어 왔다. 마이산은 중생대 후기 약 1억년전까지 담수호였으며 대홍수시 모래 자갈등이 밀려 호수를 메우고 물의 압력 의하여 이루어진 수성암이며 약 6 ~ 7천만전 지각 변동에 의하여 융기되어 마이산을 이루었으며 지금도 민물고기 화석이 간혹 발견되고 있으며 자연이 만든 최대의 걸작품이다. <문화재> 마이산도립공원에는 국가지정 명승 1점(마이산 - 12호) , 천연기념물 2점(청실배나무 - 386호. 줄사철나무 군락 - 380호), 보물 1점(금당사 괘불탱화 - 1266호), 지방기념물(마이산석탑 - 35호), 지방유형문화재 2점(금당사 목불좌상 - 18호. 강정리 5층석탑 - 73호)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마이산의 전설> 마이산은 아득한 옛날 남녀 두 신선이 이곳에서 자식을 낳고 살았다 하는데, 등천할 때에 이르러 남신이 이르기를 "우리가 등천하는 모습을 아무도 봐서는 안되니 밤에 떠납시다"하였으나 여신은 밤에 떠나는 것은 무서우니 새벽에 떠나자고 했다 한다. 그러나, 새벽에 떠날 즈음 마침 새벽 일찍 물 길러 나왔던 동네 아낙이 등천하는 두 신선을 보고 놀라 소리치는 것을 듣고 등천이 틀린 것을 안 남신이 화가 나서 "여편네 말을 듣다 이 꼴이 되었구나"하고 여신으로부터 두 자식을 빼앗고서 발로 차 버리고는 그 자리에서 "바위산"을 이루고 주저 앉았다 한다. 이것은 구전되어 내려온 전설이기는 하지만 마이산을 진안쪽 북에 보면 아닌게 아니라, 동편 아빠봉에 새끼봉이 둘 붙어 있고, 서편의 엄마봉은 죄스러워서인지 수치심에서인지 반대편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모습이라 새삼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3. 천황문과 화엄굴 약수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사이에 있는 고개 정상이 천황문이다. 이 곳은 백두대간에서 호남, 금남정맥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이며,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으로 산태극 수태극의 중심지이다. 천황문에서 숫마이봉 쪽으로 100m쯤 올라가면 중턱에는 하나의 동굴이 있는데 이곳이 화엄굴이며 사시사철 맑은 석간수가 흘러나오며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 이 약수를 마시고 정성을 다하여 기도를 드리면 옥동자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으며 이는 숫마이산의 정기를 마시므로써 아들을 간절히 바라는 옛 어머니의 정성이 담겨있을 것이다. 또한 이 약수를 마시며 공부를 하면 과거에 등과한다는 전설도 같이 전해온다.
4. 은수사 은수사는 현재 조계종단 소속인데 조선 초기에는 상원사라 했고, 숙종 무렵에는 상원사는 없어지고 사지만 남아 있었는데 그 뒤 누군가 암자를 지어 정명암이라 했다. 은수사 황혜수 주지스님에 의하면 "正"은 5획으로 오행, "明"은 일월이므로 정명암이란 이름은 음양오행의 순환을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한다. 아무튼 정명암도 퇴락하여 없어졌다가 1920년에 이주부라는 분에 의해 증창되었고, 이때 은수사로 개칭되었다. 은수사란 이름은 한글학회의 <지명총람>에 의하면, 태조가 이곳의 물을 마시고 물이 은같이 맑다고 하였으므로 지어진것이라 한다. 은수사는 본시 불당겸 요사채로 쓰인 건물과 그 위 산신도각이 있었을 뿐이었으나 근래 극락전, 태극전, 대웅전과 요사채를 건립하여 바햐흐로 대가림으로 도약을 기약하고 있다. 이 은수사에는 국내 최대 크기였던 법고(1982년 제작)가 소장되어 있다. 한편, 조선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상, 삼신할머니상이 상원사지에서 출토되었다. 또한 은수사 경내에는 천연기념물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마이산 줄사철군락이고(천연기념물 380호), 또 하나는 은수사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386호)이다.
5. 탑사 탑사는 태고종단에 소속된 사찰로 마이산 속에 쌓여진 신비한 돌탑무리에 자리잡아 세워진 사찰이다. 이 사찰은 이름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마이산 석탑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1928년의 기록에 의하면 그때까지도 이갑룡 처사는 불교를 표방하지 않은 듯 하다. 그러나 더 후기에 와 마이산을 찾는 치성인들의 수가 불어나자 이처사의 기도처이자 지성처인 토막은 어느 때인가 함석지붕으로 새로이 지어지고 자연스럽게 삼신상과 불상이 안치되어 사찰화되었다. 그러나 법당에 부처를 모시고 생활관을 겸하는 인법당(인법당) 처지를 면하지 못하다가 1980년 태고종단으로 등록하고 1986년 전면4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지붕인 대웅전을 완공하고 뒤이어 나한전과 동양최대의 법고라는 북을 소장한 종각과 관리사를 건립하여 대사찰의 면모를 갖추어가고 있다.
6. 마이산 탑군 자연이 만든 최고의 걸작이 마이산이라 한다면, 인간이 만든 최고의 걸작은 역시 마이산의 탑군이 아닌가 생각된다. 마이산 탑군은 전라북도 지정 지방기념물 제 35호로 지정되어 보호 관리되고 있다. 자연석을 차곡차곡 쌓아 마치 송곳처럼 정교하게 만든 탑들은 태산처럼 위엄을 느끼게 한다. 주탑인 천지탑은 부부탑으로 2기로 되어 있으며 높이는 13.5m이고 남.북으로 축조되어있다. 주탑인 천지탑을 정점으로 조화의 극치를 이루며 줄줄이 세워져 있고, 팔진법의 배열에 의하여 쌓았다고 전해지며, 당초에는 120기 정도가 있었으나 현재는 80여기가 남아있다. 맨 앞 양쪽에 있는 탑을 일광탑, 월광탑이라 하며 마이산 탑군은 태풍에 흔들리기는 하나 무너지지 않는 신비를 간직하고 있으며, 탑들을 보면 양쪽으로 약간 기울게 쌓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조탑자가 바람의 방향등을 고려하여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7. 금당사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 41번지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보물 제1266호로 지정된 금당사괘불탱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8호인 금당사목불좌상,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22호로 지정된 금당사석탑등이 잇다. 지금의 자리에 새로 세운 것은 1675년(숙종1)의 일이다. 1978년 명부전, 1987년 산신각, 1990년 극락전을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당우는 극락전, 지장전, 삼성각, 요사 등이 있다. 금당사의 선행 사찰이라는 금동사에 관해서는 현재 두 가지의 설이 있다. 금당사가 처음부터 현재의 위치에 건립되었다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진안지에 고금당이란 기록이 보인다. 고금당은 현 금당사에서 서쪽으로 약 350m 나옹암으로 올라가는 초입지점에 있는데,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고금당이라 부르고 있으며, 예전에 금당사가 있던 자리로 알고 있다.
# 먹거리 04월 15일 1. 석식 : 계룡휴게소(호남고속도로지선 계룡 부근에 위치) 떡라면 : 3,000원
# 여행 설명 가. 여 행 명 : 신비의 돌탑 진안 마이산 벚꽃축제 기차여행 나. 여 행 일 : 2006년 04월 15일(당일) 다. 출 발 역 : 영등포역(08:34) 라. 여행 비용 : 어른 43,000원, 어린이 35,000원 마. 포함 내역 : 왕복열차비(무궁화호)+연계버스비 바. 여행 주관 경인관광여행사(http://www.ktx7788.co.kr)
사. 일정표
* 유의사항 - 봄꽃의 개화시기는 날씨변화에 따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 현지이동시 차량정체로 인하여 일정의 지연이 있을 수 있습니다. - 식사비는 별도입니다.
- 04월 15일 -
0. 07:40 영등포역 2층 대합실 구내약국 앞
오늘도 어김없이 여행가이드이다.
여행인원이 25명이니까 대략 45인승 버스의 반 정도의 인원이라 어려움은 없을 듯 하다.
영등포역 2층 대합실에서 손님과 미팅 후 승강장으로 나간다.
2. #1203 무궁화호 영등포(08:34)->대전(10:29) : 7,900원(단체 할인)
먼저 KTX가 빠른 속도로 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가고, 뒤이어 나타난 부산행 무궁화호에 오른다.
손님들이 자리에 앉은 것을 확인 후, 대전역에 내려서 동광장으로 나가면 청마고속관광이라고 붉은색의 버스가 대기 중이며, 저를 따라 오시면 된다고 간단히 안내를 해드리고 나 역시 자리에 앉았다.
2시간은 비교적 짧은 편이다.
대전역에 도착해서 좌측의 길을 따라 나오면 동광장이다(반대의 서광장과 비교를 하면 너무 조용하기에 이 곳이 대전역이 맞나 의문이 들 정도이다)
3. 전용버스 대전역(10:40)->마이산 북부주차장(13:00)
버스에서 인원 확인을 마친 후 천천히 출발을 한다.
가장 최근에 마이산을 방문한 것이 작년 9월이다.
그 때는 전주에서 시외버스를 이용하여 진안까지 이동 후 진안터미널에서 군내버스로 마이산 북부주차장까지 이동을 하였다.
오늘은 대전에서 출발을 하기에 어떤 경로로 운행을 하는지 유심히 살펴보았다.
판암IC를 지나 대전통영고속도로를 타고 무주IC를 이용 후, 국도를 이용하여 진안 마이산으로 이동을 하는 것이 가장 최단거리일 거 같은데, 남대전IC를 이용하여 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 그리고 호남고속도로지선,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익산IC로 나와 국도를 이용하는 듯 하다.
이런 경로로 가게 되면 이동거리가 더 길어지고, 소요시간이 더 길어지지만(경유 소비도 더 많아짐), 운전은 기사님의 재량이라 내가 이래라 저래라 간섭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신나게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여산휴게소에서 15분여 정도 머물고, 익산IC로 나와 국도를 이용하여 식당가가 많은 마이산 북부주차장에 도착하니 13시이다.
대략 2시간 20분여를 달린 것 같다.
도착하자마자 마이산 입구까지 안내를 하고, 도보이동시 이 곳(북부주차장)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계속 앞으로 이동을 하여, 남부주차장으로 나와서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말씀을 드렸다.
4. 마이산 도립공원 산책(13:10-15:20) 마이산 북부주차장 식당가(13:10)->천황문(13:25)->화엄굴(13:30-40)->은수사(13:50-14:00)->탑사(14:10-40)->부부의탑(14:55)->금당사(15:10-20)->마이산 남부주차장 축제장 도착(15:30)
북부주차장에서 남부주차장까지는 2.6km이며, 비교적 짧은 거리라 큰 어려움은 없다.
흙이 전혀 없이 암석으로만 된 두 봉우리가 흡사 말의 귀와 같은 모습이라 하여 불리는 마이산!(신라 때는 서다산, 고려 때는 용출봉, 조선초기에는 속금산으로 불려오다가 조선 태종 때 진안읍에서 제사를 지내다 바라보니 말 귀와 같다고 해서 마이산이라고 함)
이제 슬슬 마이산 산책을 시작해볼까?
입구의 매표소가 보이는데 셔터가 내려가 있다.
그렇다면 혹시?
그렇다, 어제부터 오늘(2006.04.14-15)까지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조금 전 마이산 북부주차장에서 주차비를 받지 않은 것이다(남부주차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산책을 시작해 본다.
15분여 정도 천천히 계단을 오르면(계단이 많이서 약간은 땀을 흘려야 할 것이다, 평소에 많이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의외로 힘들 수도 있다) 천황문이다.
천황문에 도착을 하니 좌측으로 화엄굴, 아래로 내려가면 은수사, 오른쪽은 암마이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오른쪽 등산로는 자연환경이 심하게 훼손이 되어 식생복원을 위하여(식생을 복원하기 위한 자연휴식년제 실시) 2014년까지 폐쇄된 관계로(오르려면 한참 기다려야 하겠군요) 화엄굴을 구경을 하고, 바로 은수사로 내려가야 한다.
왼쪽의 등산로로 150여m를 오르면 숫마이봉 아래에 위치한 화엄굴이다.
화엄굴 안에는 사시사철 석간수가 흘러나오는데,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이 약수물을 먹고 정성을 다하여 기도를 드리면, 숫마이산의 정기를 받아 옥동자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이는 숫마이산의 정기를 마시므로써 아들을 간절히 바라는 옛 어머니의 정성이 담겨있을 것이다)
또한 이 약수를 마시며 공부를 하면 과거에 등과한다는 전설도 같이 전해온다.
이런 신비스러운 전설이 있는 화엄굴의 약수는 아쉽게도 음용수로는 사용을 할 수가 없다.
조류(비둘기)가 수시로 드나들고, 무속인의 촛불 등으로 오염이 되어 음용수로 사용을 할 수 없다(무슨 의미인지 잘 아실 것이다)
화엄굴에서 정면을 바라보면 암마이봉이 보인다.
화엄굴을 구경을 하고 은수사로 내려간다.
중간에 자연보호 표지판이 보이는데 아무리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는 당연한 문구가 전혀 낯설지 않다(그런데 아래에 011, 012 광고를 보니 그 시절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이제부터는 오르는 길이 없이 모두 내리막길이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은수사가 보인다.
법고가 눈 앞에 보이는데, 타 사찰과 달리 누구나 법고를 치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고 한다.
이용방법은 쉽다.
북채를 가볍게 잡고 북 중앙을 세 번 정도 정타를 하면 된다.
법고를 치며 스트레스를 풀고 은수사 주위를 구경해본다.
무량광전, 산신각 그리고 산신제를 지낼 때의 숫마이봉 아래 마이산 제단이 있는데 국태민안과 시화연풍을 기원하는 마이산제를 매년 10월 11일 오후에 실시한다고 한다.
옆으로 가면 섬진강발원지 기념석과 옥정수라는 약수터, 청실배나무가 있는데 이 것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이 곳을 은수사를 찾아 기도를 하면서 그 증표로서 씨앗을 심은 것이 지금의 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아래를 보면 줄사철나무 그리고 태초의 나무인 신목과 부상을 배경으로 일월과 오악이 그려져 있으며, 권위와 송축의 의미를 지닌 일월곤륜도가 있는 태극전이 보인다.
더 내려가면 은수사와 숫마이봉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멋진 풍경이 나오는데 이런 곳을 사람들이 그냥 지나 가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사진사들이 마이산을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찍으라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열심히 호객행위 중이다.
나 역시 마이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아래로 천천히 이동을 한다.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마이산 탑사이다.
이 곳의 탑을 만든 이갑룡 처사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1860년 3월 25일 전북 임실 둔덕에서 효령대군 16대손 이성우씨의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던 그는 부모의 상을 당하여 묘 앞에 움막을 치고 3년간의 시묘살이를 마친 뒤, 인생의 허무 무상함을 통탄, 전국 명산을 전전하며 수양을 쌓던 중 마이산에서 솔잎으로 생식을 하며 수도를 하던 중 신의 계시를 받아 이 곳에서 만불탑을 축성을 하였다. 천지음양이치와 팔진도법을 적용하여 30여년에 걸쳐 탑을 완성시킨 뒤, 용화세계 억조창생의 구제와 만인이 짓는 죄를 대신해 비는 기도로써 일생을 보내다가 1957년 98세를 일기로 세상을 마치셨다.
이갑룡 처사의 노력과 정성이 들어간 탑을 보며, 신비함을 느껴보자.
자연이 만든 최고의 걸작이 마이산이라 한다면, 인간이 만든 최고의 걸작은 역시 마이산의 탑군이 아닌가 생각이 될 정도로 신비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가공되지 않은 자연석을 차곡차곡 쌓아 마치 송곳처럼 정교하게 만든 탑들은 태산처럼 위엄을 느끼게 한다.
전국 팔도의 명산에서 가지고 온 돌이 하나 둘씩 들어가서 심묘한 정기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니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주탑인 천지탑을 정점으로 조화의 극치를 이루며, 줄줄이 세워져 있고 팔진법의 배열에 의하여 쌓았다고 전해지며, 당초에는 120기 정도가 있었으나 현재는 80여기가 남아있다.
맨 앞 양쪽에 있는 탑을 일광탑, 월광탑이라 하며 마이산 탑군은 태풍에 흔들리기는 하나 무너지지 않는 신비를 간직하고 있으며, 탑들을 보면 양쪽으로 약간 기울게 쌓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조탑자가 바람의 방향등을 고려하여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예술의 경지인 석탑을 구경해볼까?
맨 앞에는 물레방아 그리고 일광탑, 월광탑 등이 보이는데 하나씩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 일광탑 : 이 탑은 나도산의 정기를 받아 쌓아올린 일광탑으로서 만물의 이치가 시작함을 나타낸다. 생물의 탄생의 존귀함을 나타내고 자연의 기본 섭리를 말한다. 나도산 옆에서 이른 아침부터 태양은 떠 오르기 시작한다.
나. 월광탑 : 본 탑은 암마이산의 정기를 받아 쌓아올린 탑으로서 끝남을 의미한다. 암 마이봉 옆구리 쪽에서 기를 충만하는 것과 이 형상은 풍채가 웅장하며, 일반대중과 가까이 하고자 하는 이갑룡 처사의 초기 작품으로 보인다.
다. 약사탑 : 이 탑은 보이는 쪽에서 왼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는데 왼쪽 암벽에서 나오는 음기운이 강하여 옆으로 기울여서 쌓은 탑이다. 만 중생의 정체와 육체로부터 오는 모든 병사를 치유케 하기 위하여 마음에 병, 육체의 병을 치유하는 약사탑이다.
라. 중앙탑(흔들탑) : 이 탑은 이갑룡 처사님께서 쌓은 탑인데 탑사 내의 정 중앙에 위치해 있고, 탑신들이 중앙에서 힘을 동서남북으로 펼쳐준다. 천지탑과 일광, 월광탑 상하 정 중앙에 서 있는 탑으로서, 탑군의 정 중앙에서 일자 탑 중에 제일 높은 탑이다. 탑신의 중앙에서 기운을 자리잡고 있어 많이 흔들리면서도 무너지지 않는다 하여 흔들탑이라고도 한다. 또한 앞에 자리한 용궁은 섬진강의 발원지라 할 수 있는 용궁샘이다. 이 탑은 흔들린다고 해서 절대 손을 대거나 탑신에다가 돌맹이를 올려 놓아서는 안된다. 그 이유는 작은 돌멩이를 자꾸만 올려 놓으면 탑신의 무게중심이 틀어져 결국 무너지게 되기 때문에 절대 돌을 올려 놓아서는 안된다.
마. 삼불미륵단 : 여기에 모셔진 삼불미륵 부처님은 1900년 초에 이갑룡 처사님께서 직접 조각하여 법당에 모시고 기도를 하시던 미륵부처님이다. 이갑룡 처사님께서는 탑을 축조하시는데 유교와 도교, 불교를 삼합하시고, 중생제도를 위해 일념으로 기도를 하셨다. 탑은 이갑룡 처사님의 공덕을 중생(우리)의 죄를 대신하기 위해 30여년의 세월을 정성으로 올리신 탑이다. 지정된 곳(촛대)에서만 초를 켜시고, 옆 우물에는 동전이나 초를 우물 안에 절대 켜시면 안됩니다. 기도객이나 관람객께서는 탑에 절대 손을 대지 마시고, 기도 단상과 탑에는 동전이나 돌 쌓기를 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탑에 돌을 올리는 것은 탑을 붕괴 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특히 주의하여 주십시오.
바. 천지탑 : 이 탑은 이갑룡 처사님께서 만 3년의 고행 끝에 1930년경에 완성된 탑으로서 축지법이 가장 많이 들였다 한다. 보는 쪽에서 왼쪽에 있는 탑이 음탑이고, 오른쪽에 있는 탑이 양탑이다. 이 탑은 만 3년이 걸려서 쌓은 탑이고, 타원형으로 돌아가면서 쌓았다. 삼각형 부근에 있는 조그마한 돌들은 쿠션역할, 작은 돌들이 서로 뭉치면서 탑신을 지켜준다. 넓은 판석 자연석은 하루에 한 덩어리씩 올렸고, 맨 꼭대기 돌은 백일신장 후 올렸다 한다. 탑 주변의 일자 신장탑은 33신장군으로서 천지탑을 보호하는 신장군탑 들이다. 천지탑 앞에 있는 다섯 개의 일자형 탑은 오방탑이다. 오행을 상징하고 인간은 하늘 아래로 내려오고, 땅에 서고 사대(지,수,화,풍-땅, 물, 불, 바람)에서 태어난다고 한다.
가장 아래의 물레방아, 일광탑, 월광탑, 이갑룡 처사의 동상을 지나 탑사와 산신각 더 위로 올라가면 폭포수탑과 천지탑이 보인다.
그리고 1983년 4월 이혜명 스님이 식수한 능소화(벽을 타고 자람), 줄사철나무, 진안고원 섬진강 최상류에 위치한 섬진강 발원지 용궁(약수터)에서 시원한 약수를 마신다.
이렇게 탑사를 구경을 하고 아래로 내려가면, 벚꽃 길이 시작이 된다.
아쉬운 것은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벚꽃의 개화가 아직 50%가 채 되지 않기에 약간은 을씨년스러운 모습이다.
아래로 내려가면, 1769년 10월 13일 한날 한시에 태어나 열 여덟에 부부가 된 담락당 하립과 삼의당 김씨의 이야기가 있는 부부시인의 기념비이며, 매년 10월 13일 백일장이 열리는 부부시비 그리고 마이산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고여 만들어진 호수인 탑영제는 명경지수로 아늑한 풍경을 자랑하는데 유유히 오리보트가 떠 다니는 중이다.
탑영제를 지나 계속 되는 벚꽃 길을 걸으며, 벚꽃이 피지 않음을 아쉬워한다.
금당사가 보인다.
타 사찰과 다른 점이라면 대웅보전, 연못(금당영지) 위에 위치한 미륵존불이 눈이 부시도록 금색이 찬란하다(물론 진짜 금은 아니다)
극락전에 17세기 이후에 걸작을 자랑하는 괘불탱화, 수천년이 된 은행나무를 깎아서 만든 목불좌상이 있는데 유심히 살펴보았다.
재미있는 것은 그 앞의 불상이 손님을 맞이하려는 듯 넉넉한 웃음을 지으며,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니 이 곳에서 사진을 찍지 않고 그냥 지나갈 수는 없었다.
이제 남부주차장이 점점 가까워진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떡방아를 찧는 할머님, 열심히 토종돼지를 굽는 아주머님 등 축제의 분위기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남부주차장 매표소와 금당사 일주문을 지나니 한창 이벤트 장에서 벚꽃축제 공연이 이어지고, 주위의 먹거리 장터에서는 눈을 즐겁게 하고, 코를 간지럽히고도 남을 만큼의 냄새, 맛있어 보이는 토속음식 천지이다.
왁자지껄한 축제장을 구경을 하고, 버스에 탑승하여 인원확인을 마치고 정확히 16:00에 출발을 한다.
참고로 마이산의 경우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되면 북부주차장이 아무래도 남부주차장보다 차편이 많은 편이다.
5. 전용버스 마이산 남부주차장(16:00)->대전역(18:35)
이제 아쉽게 마이산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대전역을 향하여 달린다.
국도 그리고 익산IC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 계룡휴게소에서 30여분 정도의 시간을 드린다.
5-1. 저녁식사 계룡휴게소 떡라면 3,000원
나는 이 곳에서 간단히 떡라면으로 식사를 대신하고, 손님들은 인근의 벤치에 앉아 미리 준비해 온 간식거리로 식사를 대신한다.
잠시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아침과 같은 경로로 대전역 서광장에 도착하니 18:35분이다.
6. #1212 무궁화호 대전(19:00)->영등포(20:52) : 7,900원(단체 할인)
인원확인 후 승강장으로 나가 열차에 오른다.
지정된 자리에 앉아 편안히 휴식을 취하며, 오늘의 여행에 대해 정리를 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영등포역에서 내릴 때 오늘 고생을 하신 손님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천천히 집으로 돌아오면서 오늘의 여행을 마친다.
ps. 오늘은 그리 힘든 코스도 아니고 인원이 적었지만, 손님들이 8명, 9명 단위의 단체손님이라서 그런지 의외로 힘이 들었다(계속 음악 틀고, 춤을 춘다고 하셔서 거절을 하느라 고생을 좀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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