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인푸어(紅印普 ) 현대푸어공차(現代普 貢茶)
|
범화균 선생은 대만의 삼의차창(三義茶廠) 창장을 역임하고 1979년 퇴임한 뒤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다. 강소성에거 출생하여 파리대학 수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차엽공사에(中國 茶葉公司)에 초빙되어 근무하였다.
운남성의 불해(현맹해) 차창 건설을 위해 준비위원으로 파견, 1940년 맹해차창 임시차창장으로 일하며 민간인으로부터 차청을 구입, 푸어차품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첫째 운남홍차(雲南紅茶)와 중차패 원차(中茶牌 圓茶)를 성공적으로 만들었다. 그 중에서 홍인푸어원차(紅印普 圓茶)와 녹인푸어원차(錄印普 圓茶)등도 포함되었다. 홍인에 대하여 살펴보건대 차병의 일차포장지면에 8개의 중자(中字)를 둥글게 둘러 인쇄하고 그 중간에 붉게 차(茶)자를 각인하였다. 이 후 속칭 홍인(紅印)이라 불려지게 되었다. |
중차공사의 생산 푸어차품은 그 종류가 많았으나 홍인원차처럼 중자 중앙에 차자를 홍색을 사용한 것은 이 홍인푸어원차와 홍인운남 타차(
茶)등 두 종류 뿐이다.
이는 독특하고 전무후무한 일이다. 1949년 불해차창이 중공정부에 의해 접수되면서 맹해차창으로 개명되고, 제 1대 창장에 당경양(唐慶陽)선생이 취임하였다. 범화균이 시작한 "홍색자 푸어원차는 한가지로 맹랍 최고품 차청으로 만들고 맹해 일대의 차청은 녹색 차자 푸어차를 만들었다."고 선언하였다.
맹랍현은 맹랍진과 이무진등 소이 홍인차청의 원료 공급처인 이무차산 대엽종수(大葉種樹)의 차산지역을 말하는 것이다. 모두가 한가지 최우량품으로 현재 푸어차품 중에서 군계일학과 같은 독보적인 우수한 차이다. 범화균 선생이 계획하고 창설한 불해차창 시대부터 이백여년을 거슬러 올라가 휘황 찬란했던 푸어공차의 역사의 영향으로 푸어공차의 웅풍(장엄함)으로 탄생한 것이 홍인푸어원차이다.
창장당(唐)선생의 말에 의하면 홍인푸어차의 제조준비도중에 당시의 정세가 불안하였고 동란중에 치안상태가 나빠 어려움이 많았으나 중공정부의 접수후부터 회복되어 과거 공차(貢茶)적 명성과 과거의 공차(貢茶)에 대한 숙원을 이루는 현대 푸어공차라고 할 수 있는 홍인푸어원차가 탄생된 것이다. 제 1병(餠) 홍인푸어원차는 1940년 불해차창 임시창방에서 출창한 후 한가지로 계속
|
|
<조기홍인원차 내비 (위) 후기홍인원차 내비> |
|
조기녹인원차(早期綠印圓茶)
|
녹인원차와 홍인원차는 같은 양식의 차로서 다만 중자차(中字茶) 표기 가운데 차(茶)자를 녹색으로 표기했다고 해서 얻어진 이름이다. 녹인원차에는 조기와 후기로 나누어진다. 이 두 차품이 둘로 나누어진 것은 홍인원차가 나누어진 것과 비슷한 연대이다. 본래 녹인원차와 홍인원차는 자매품이다. 대략 40년대의 생산차가 조기이고 50년대 이후 산품이 후기이다.
|
一.조기녹인 범화균 선생이 불해임시차창방에서 맹랍지방의 최고급 차청을 구입하여 만든 차가 홍인이고, 맹해부근에서 좋은 차청을 구입해서 만든 차가 녹인푸어원차이다. 사모에서 파달흑산 일대까지 포괄적으로 800여년 이상 재배된 차나무 고목의 차나무왕을 비록해서 오래된 차나무가 많은 난노산을 위시하여 푸어왕국의 6대차산의 하나인 유락산 서남방으로 뻗은 산맥의 주위가 오래된 고목차나무밭이 산재해 있는 우수한 차청의 푸어차산지이다. 이러한 조건 아래서 만들어진 조기녹인원차는 일류 푸어차로서 믿을만하다.
조기녹인원차를 녹인갑을원차 혹은 갑을녹인이라고도 부른다. 원래 갑을녹인을 설계할 때 갑을로 나누어 좋은 것을 갑(甲), 차품을 을(乙)로 생산할 계획을 하였었다. 그래서 좋은 차청을 수매하여 한 곳에 쌓아 놓으니 1,2급을 나누기가 쉽지 않아 홍인 1급과 녹인 1급만을 만들었다. 이때 녹인의 포장지는 이미 갑을로 분류하여 인쇄를 마쳐 놓은 상태에서 갑을이라고 인쇄된 부분에 남색잉크로 지워져 녹인원차를 포장하여 1종으로만 만들었다. 뒷날 사람들은 이를 남인푸어원차(藍印普 圓茶)라고도 칭하였다. 40∼50년이 경과한 오늘에 이르러 남색으로 갑을(甲乙)을 지운 잉크가 퇴색하여 갑을 글자가 나타나게 되자 많은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갑을(甲乙) 두 가지로 처음부터 별도로 만들어 판매시 가격의 조정이 어려워 갑을자를 지웠다고도 한다.
사실 갑을급 차품은 같은 것이고 또 매년 생산되는 차청이 같지 않고 포장지를 먼저 갑부터 사용했을 수도 있고 갑이 약간 더 오래되었을 수도 있다. 혹자는 심리적 원인으로 제조의 차이감을 느낄 수도 있다. 갑을녹인원차는 차의 품질이 비교적 안정되어 있고 떫은맛이 없으며 진운, 차향, 차미, 차기 모두가 일류이나 시중가격은 홍인의 절반수준에 머문다. 수장적 가치가 있는 차로서 갑을녹인원차중 상당수가 매변현상이 있고 매변차는 반수 이상이 딱딱하게 굳어 있어, 구입시 양손으로 쪼개어보아 차의 상태를 확인하고 시음해 보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소장중임)
|
<상단 녹인"갑" 하단 녹인 "을"> |
二.후기녹인 녹인후기원차를 약칭으로 후기녹인차라 칭한다. 이 차의 품질은 비교적 복잡하다. 50년대부터 60년대 말기에 이르도록 맹해차창에서 차등급차품으로 대량생산하여 모두 녹인패를 표지로 사용하였다.
매년 차청품질이 지역마다 달라 큰 차이의 품질을 보이고 있으며, 더욱이 60년대에 이르러 오래된 고목차나무를 햇 차나무로 교체하면서 후기녹인차는 관목형 신차수차청으로 만들어 통상적으로 녹인미(錄印尾)라 불렀다. 50년대 초기 소량 생산된 차중에 조기녹인과 같은 차성의 차품으로서 외포지가 없는 차를 녹인두(錄印頭)라 했다.
60년대 중기에 운남칠자병차(云南七子餠茶)가 출현되었고 점점 녹인원차의 포장도 대체되고 차성 또한 이미 바뀌었다. 더욱이 1973년 푸어차를 쾌속진화시키는 숙차적발효공정기술개발로 칠자(七子)병차는 모두 신차수차청으로 만들어 모두 발효숙차방식으로 제조 출품하였다. 연이나 녹인미 차병(茶餠)은 신차차청을 사용하였으나 숙차방법이 아닌 생차(生茶)방법으로 제조하였기 때문에 숙병적 녹인차보다 좋다. 후기 녹인차 종류에는 무지녹인, 대자녹인, 소자녹인 등 3종류이다.
|
|
<조기녹인(남인갑을) 차통> | |
|
홍연원차(紅蓮圓茶)
|
⑴포장지 없는 녹인원차(無紙錄印圓茶) 50년대와 60년대 20여년 중 중국대륙 사회에서는 시대적으로 대 격동기였다. 자유개인경영형태에서 강박에 의한 조합합작사형태의 공유화(公有化) 또는 국유화(國有化)하여 인민공사(人民公社)형태로 바뀌었다.
60년대 중기 시작한 문화대혁명으로 인하여 운남푸어차의 생산에도 득실(得失)이 있었다. 불안정한 정세 중에서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생업은 계속 진행되고 있었고 많은 차창(茶廠)들은 이름없는 푸어차를 만들어 포장지가 없이 대 광주리나 큰 나무상자에 넣어 판매하였다. 이때는 이미 상표의 중요성에 별 의미가 없었다. 모든 것이 국유화 상태였고 또한 포장지를 절약하는 의미도 있었다. 맹해차창도 갑을녹인포장지를 다 사용한 뒤 장기간 동안 포장지 없는 녹인푸어원차를 생산하였으며 이를 무지녹인(無紙錄印)이라 칭했고 이들 푸어원차를 녹인두(錄印頭)라고도 불러졌다. |
|
|
대자녹인원차(大字錄印圓茶)
|
서로 사기 위한 쟁탈전의 대상에 제일의 차품이 되었다. 일반 푸어차 가게에서 무지 녹인 중 홍인원차품에 비할 수 있는 미품(美品)을 찾아 환희하는 자도 볼 수 있고 한편 저가로 좋은 차를 얻을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부에 도전하는 사람도 있었다.
홍연원차는 무지녹인차 중에서 골라낸 좋은 차로서 앞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대나무에 포장하여 1952년 맹해차창에서 홍콩에 판매한 무지녹인차이다.
차성과 품질이 아주 우수하고 수량도 그다지 많지 않은 녹인두 푸어원차로서 본인이 홍연원차(紅蓮圓茶)로 이름을 지은 좋은 푸어차이다. 푸어차 도매상 류선생의 홍콩 금산루(金山樓) 차창고에서 2상자(1상자 12통)의 홍연원차를 찾아내어 당시 보통의 무지녹인차로 대만에 팔았다.
|
|
|
원차철병차(圓茶鐵餠茶)
|
50년대초 중차공사(中茶公社)에서는 소련과 신민주주의국가에 차잎교역을 확대하기 위한 "확대소신소(擴大蘇新銷)" 계획을 세우고 자금을 받아 하관차창건설계획을 세워 과거 푸어원차 제조기술을 개량하여 설계시 차모양을 뜨는 금형을 전부 금속으로 하고 면포대의 지금까지의 차형 뜨는 것을 사용치 않았다.
특별히 맹해차창에서 공급받은 차청으로 원차철병이 만들어졌다. 중국차경(中國茶經) 제 249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관압타차(關壓
茶)는 전서 맹고, 봉산, 대차산(서쌍반나 사모)등지에서 하관차창 창설용으로 배급제조" 원차철병을 판매하였으나 오래지 않아 각지 차상인으로부터 차가 너무 단단하여 차를 탈 때 부수기 어렵고 진화하기가 어렵다는 반응이 많았다. 홍코의 상인들은 습관적으로 습기를 가하여 쾌속숙성 진화시켜 찻집에서는 국화를 띄워 국화푸어차로 판매하기도 하였다. 차가 너무 단단하여 수분의 침투가 쉽지 않아 일정하게 띄우기(숙성)가 어려워 환영받지 못하였다. 하관차창은 이로 인하여 쇠금형 원차철병의 생산을 중단하였으며 최초의 철병형 차품이 되었다. |
1993년 11월 13일 일본인 참관단이 하관차창을 방문시 방문기념으로 1병(餠)을 창장 풍영배씨가 방문단에 정증하여 진귀한 선물이 되었다. 원차철병은 서쌍반나경내 6대차산의 제일 좋은 푸어차청으로 만든 차이다. 그 당시 맹해차창에서는 후기홍인원차등을 위탁 민간제조차창과 공동으로 합작 제조하였다. 맹해차창에서는 후기홍인원차와 같은 질의 차원료를 하관차창에 보내 만든 것이 원차철병이다.
그래서 원차철병의 차성와 품질은 홍인조기와 후기의 중간적인 입장에 놓인 차로서 그 차향기도 조기 홍인의 난향과 후기홍인의 야장향의 중간인 청장향(靑樟香)으로 원차철병이 청장향 푸어차품의 대표차이다. 차가 너무 단단하여 찻잎 속에는 공기 접촉이 거의 없어 이미 40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진화속도가 느려 같은 시기의 차에 비해 차운(茶韻) 미도(味度)등이 신선하고 맑은 단맛과 수성이 활발하여 설면생진(舌面生津)의 경계에 있다. 원차철병은 아주 풍부한 젊음의 개성과 활력이 충만한 미(美)를 지니고 있는 차로서 푸어차에서 가장 탐스러운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있는 아주 좋은 차이며 소홍인(小紅印)이라 불려지기도 하는 명예를 가지고 있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상당량의 원차철병은 태반이상이 매변이 있는 차로서 홍콩으로 운반되어졌다. 차의 외포지는 미술자체의 도형으로 소자녹인과 같다. 맹해차창의 외포지인 정해자체와는 같지 않다. 때문에 당시 일반 상인들은 보통의 하관차 품질로 대접받았다. 차가 너무 단단하여 모두 습기 찬 창고에 넣어두었다. 이때 일부 극소량이 구석진 곳에 쌓여있어 매변으로부터 피할 수 있었으며 이들 차들이 현재 아주 훌륭한 차로 나타나고 있다. 일부 상인들은 이와 같이 훌륭한 60년대 산 원차철병의 매변현상이 있는 차를 칠자철병(七子)으로 대치 판매하여 고기눈을 진주로 파는 이익을 거두어 들이고 있다. 일반 푸어차를 하는 사람들은 이를 감별할 능력이 충분치 못하여 좋은 원차철병을 선택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개인적으로 얻은 원차철병을 정밀 감별해 본 바 매변이 없는 차의 곁표면은 황금색에 유광(油光)을 뛰고 동시에 차의 변두리가 아주 작게 떨어져 나가 울퉁불퉁하게 일정하지 않은 요철(凹凸)형국이었다. 매변이 지나간 차의 표면은 짙은 어두운 색으로 유광(油光)의 밝기가 부족하다. 차의 몸통이 아주 고르고 변두리가 단단하고 두꺼워 차를 쪼개어 내부를 보면 검고 푸른 곰팡이가 있다. 어떤 차의 몸통은 비교적 푸석하고 암율색(暗栗色)으로 파괴되었고, 떨어지고, 부서져 그 원인은 습창진화가 너무 되었기 때문이다. |
|
칠자(七子)철병의 표면은 회암색이고 차의 줄기는 비교적 가늘고 길며 튀어나오고 현저하게 흑녹색 곰팡이를 볼 수 있다. 원차철병과 칠자철병은 크기가 같다. 전체적으로 느끼기는 원차철병이 칠자철병보다 크게 느끼기는 칠자철병은 차의 표면이 평평하고 원차철병은 완만한 곡선의 사발모양이기 때문이다.
풍청장의 경험에 의하면 3∼4개의 원차철병을 검토해본 결과 건창에 곰팡이가 없는 좋은 차품이다. 곰팡이가 지나간 차성과 맛은 칠자철병과 같다. 이미 원차철병의 푸어차 특성을 잃었다. 홍인의 외포장지를 사용한 원차철병이 홍콩 시장에 유통되고 있는 것은 상인의 말에 의하면 맹해차창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어찌하여 하관차창의 원차철병이 홍인 외포지를 사용하여 맹해차창에서 나왔을까? 혹은 맹해차창에서 시험적으로 만든 차가 아닌지 알 길이 없다. 개인적으로 1병을 얻어 감정해 본 결과 원차철병푸어차로 곰팡이 흔적이 있고 차성 품질은 칠자철병과 같고 가치는 그리 높지 않다.
상단:좋은차(건조)하단:매변(건조불량) |
<원차철병 금속 금형> |
|
칠자철병차(七子鐵餠茶)
|
50년대 하관차창의 원차철병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른 사실을 타차창에 알리지 않아 60년대 초 곤명차창에서 하관차창처럼 철재금형으로 칠자철병푸어차를 제조하였다.
수량은 얼마나 제조했는지 알려지지 않았고, 시중에서 볼 수 있다. 칠자(七子)철병은 내비(內飛)가 없고 통포장도 보지 못했다. 차를 포장한 종이는 면지로 도안과 글자는 원차의 설계로 운남칠자병차(云南七子餠茶) 상표를 인쇄하여 처음으로 운남칠자병차 상표를 이 차가 사용하였다. 이 차의 차청은 어디서 온 것일까? 차품은 곰팡이가 있고 감정 중 확실한 것은 곤명일대의 차청으로 만든 차일 가능성으로 인정할 수 있고 차의품질은 차급(次級)의 상당히 좋은 차이다.
|
손으로 비빈 것이 확실하고 잎의 줄기가 가늘고 길며 고르다. 생차로 제조한 차이나 아깝게도 건조정도가 미숙하고 수분의 함유가 많아 대부분 심한 곰팡이로 변하였다. 본인이 접촉한 칠자철병 중에는 곰팡이 흔적이 없는 것을 보지 못했다. 탕색은 검고 수성은 두텁고 미끄러우며 후운(목에서 느끼는)은 단맛이 돌아 나온다. 물맛은 무겁고 차의 기는 강하다. 아주 은은하게 약한 장향(樟香)이 있다.
이차는 매변(곰팡이)현상이 오래 전에 지나가 곰팡이 맛은 없고 니기향(泥氣香:흙향)으로 바뀌었다. 탕맛은 입안에서 찌르는 감각이 있다. 큰 주전자에 타서 특히 땀을 많이 흘린 뒤 큰잔으로 두어 잔 마시면 해갈과 체력 정신회복에 효과가 좋다. 곰팡이가 생겼던 차는 차 중에 누룩균이 남아 있어 지방(脂肪)과 혈압을 내리는데 유효하고 담을 삭이는데 효과가 좋아 일본 차 시장에서는 이 매변푸어차를 요조차(窈窕茶:예쁘게 하는 차라는 뜻)라고 부른다. 85년 12월 호 일본의 "健康"誌에 위의 차의 곰팡이는 특히, 고혈압, 당뇨, 거담 및 항암에 효과가 있다고 발표되자 수요가 급등하여 거의 시장에서 이 차가 품귀되었다. 90년에 발견된 광운후기원차가 이 차와 같은 곰팡이가 발견되었으나 광운공병의 차품이 널리 알려지지 않아 소량 시장에서 발견할 수 있다.
|
문혁대병(文革大餠)
|
신차수관목 대엽종차이다. 문화혁명시 제조된 차로 차의 기가 강하고 지금까지의 푸어차보다 크다.
가벼운 숙병 발효 후 계속 발효된 차로서 아직도 강한 차성이 남아 약간 쓰고 떫은맛이 있다. 마신 후 인후에서 단맛이 나오는 좋은 차이다. 건창 보관되어 비교적 발효가 늦은 편이다. 시중에는 초기의 진품은 희소하여 구하기가 쉽지 않다.(소장중임)
|
|
<문혁대병 외포지의 도안자> |
< 문혁대병차통 > | |
|
은호타차(銀毫
茶)
|
은호(銀毫)타차는 임창구, 임창진, 임창차창(臨滄茶廠) 생산품이다. 차청은 맹고차산과 봉산차산에서 조달되어 하관차창의 책임아래 만들어졌다.
임창진과 맹고차산은 모두가 쌍강현경내로서 두 지역의 거리는 남북으로 수십㎞ 떨어져 있으며 임창차창에서 사용되는 차청은 대부분 맹고차산과 맹고차종을 생산하는 차밭에서 공급받았다.
이들은 운남중부차산의 차나무로서 이는 모두 맹고차종( 庫茶種)이며 대표적인 차는 봉산의 복록공차 맹롱의 말대긴차(末代緊茶) 임창의 은호타차 등이다.
|
이 맹고차종의 특색은 차청이 여리고 가늘며 탕은 짙고 강하다. 차향은 순후(純厚)하며 아주 약하게 쓴맛이 비친다. 은호타차는 2급의 차청을 원료로 썼고 경발효의 숙차이다.
차를 타 마실 때 3∼4회 이후부터는 숙미가 없어진다. 탕색은 짙은 밤색이고 쓰고 단맛이 비친다. 단맛이 목에서 우러나오고 차운(茶韻)은 신(新)이다.
시중에는 후기의 은호타차가 유통되며 맹고차구의 원료로 품질이 상당히 좋다. 단 5∼6分 숙차로 숙기가 강하다. 조기의 은호차에서 볼 수 있는 청순미는 없다. 조기와 후기의 판별은 그 포장방법, 맛 등으로 쉽게 구별된다. (소장중)
|
|
상단: 조기 은호타차 하단: 후기 은호타차
| |
|
사보공명(思普貢茗)
|
공차(貢茶), 공명(貢茗), 공병(貢餠) 등의 차이름은 현대에 와서는 특별한 뜻으로 쓰이고 있다. 즉 운남지방의 좋은 차청을 사용하여 운남성의 지역 또는 다른 나라에서 완성차를 만들어 해외 또는 대륙내지나 심지어 운남성 내로 판매하는 차를 말한다. 어떤 차 가게에서는 차 포장통 위면에 공차(貢茶)자를 인쇄하여 그 차가 진귀하다는 뜻으로 만들어 파는 사람도 있다. 최근 맹해차창에서 시장확장을 위하여 장방형의 복록수희공차(福碌壽憙貢茶)를 만든 것은 예외이다.
공자(貢字)를 차이름에 사용한 것은 청나라 말(未) 이전과 1949년 이후의 생산차이다. 청 나라때 공차로서 북경 고궁박물관에 보관중인 금과푸어공차가 다시 볼 수 없는 공차이다. 중공정부이후 두 종류의 차창명의 공차는 복록공차(福碌貢茶)와 사보공명(思普貢茗) 뿐이다. 또 한편 광운공병이 1종이 있다. 사보공명은 홍화차업공사가 제조한 것으로 되어 있다. 왜 공명이라고 라여 출하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일반인들은 좋은 차만 마시면 되지 하필이면 제조공장과 그 내력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지만 그러나 차가 존재하고 있는 입장에서 만일 그 차가 세상에 나온 본래의 의도한 결과를 안다면 획실하게 조금이나마 정취와 차도의 개념을 증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더욱이 차성을 분석하고 차의 진위를 감정하고 왕왕 어떤 차의 배후의 역사적인 조건, 만든 사람의 노력과 영향력등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
복록공차는 태국 방콕의 홍리공사 감독 제품이고 사보공명은 홍화기업공사의 산품이다. 본인은 홍리공사와 홍화공사가 같은 1개의 회사라고 생각한다. 혹은 서로 관계가 있는 회사이거나 두 종의 차품은 자매 산품이다. 그 이유로 다음과 같이 4가지를 들수 있다.
첫째, 대나무 껍질 통포장의 구별: 좀 자세히 관찰하면 복록공차와 사보공명은 그 대껍질 통포장이 같은 제품이다. 일반적으로 같지 않은 차품의 포장은 대껍질 또한 다른 것을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와 같은 예는 맹해차창의 조기홍인, 후기홍인과 녹인 모두 다른 대껍질을 사용하였다. 공차와 공명은 같은 지구 동일 대껍질 원료를 사용하였다. 대껍질의 비교에서 모두가 같은 동일차창이고 그 시기도 큰 차이가 없다. 대껍질의 늙기, 죽순뿌리 부분 대잎 사용, 섬유질의 노쇄, 껍질의 크기, 뿌리 부분의 검은 부분등이 모두 같다.
둘째, 대껍질의 포장방법: 모두가 대껍질의 줄기를 사용했고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차통의 묶고 포장한 기술이 완전히 같은 것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는 한 공장에서 만들어낸 산품이다.
셋째, 내비에서 식별법: 복록공차는 한 통마다 1장의 큰 내표를 넣었고 사보공명은 없다. 두 차의 내비는 여러 곳에서 같다. 모두가 장방형이고, 모두 좋은 동판지를 사용했고 그 종이의 종류와 질은 50년대 대륙에서는 볼 수 없었고 거의 불가능한 고급 신조지를 같이 내비로 썼고 그림, 문자 등 설계가 1개의 이념에서 나온 것이고, 내비 중앙위의 수(壽)자 도형과 다이아몬드형 안에 HHC 영문이 상호 대칭 호응지세이고 하나는 흰 바탕에 녹색 하나는 붉은색 글자로 차의 안색에 조화를 이루었고 내비의 크기는 보기에 따라 기세(氣勢)가 같다. 특히 내비의 구도 설계 이념, 미적 감각(感覺)이 완전히 일치한다. 이것이 모두 한 사람의 솜씨이다. 이런 것 등으로 볼 때 두 종의 차는 같은 차창의 제품이고 같은 시기의 생산품이다. 넷째, 차이름의 식별법: 하나는 공차(貢茶) 다른 하나는 공명(貢茗) 이는 같은 종류는 기술의 개념을 뜻하는 것이고 둘 다 풍부한 예술적인 차의 이름으로 서로 호응하고 서로 이익을 넓힌다는 뜻. 두 종 모두 존귀함을 더한다는 것. 이 모든 것이 의도적으로 같은 것이다. 푸어차는 극히 드문 개별적인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통 차공장 이름을 쓴다. 복록이나 사보는 특정차의 이름이다. 같은 회사의 창의성으로 볼 수 있다. 이자(利字)와 화(和)자는 조기의 해외 화교들이 최고로 즐겨 사용하는 상업성 글자이다. 더욱이 서로 관계가 있는 기업집단, 지점 또는 지사(支社), 관계가 있는 상품, 늘 이용하는 것에 이화(利和), 방분(芳芬), 의덕차자(義德茶字)등은 상업정신에서 온 것이다. 복록공차의 내표에 적힌 홍화양합공사에서 복록공차를 만든 차장(공장)이란 곳이 나타난다. 이런 관계로 두 개의 조직이 하나의 조합으로 이룬 것이다. 극히 가능한 것이 홍리공사와 홍화공사가 합하여 하나의 총공사로 두 종류의 차를 대표하는 상호로 양분한 것이 아닐까? 사보공명은 차의 크기가 비교적 작고 얇다. 매병 무게 350g, 앞면이 작고 줄기가 넓고 납작하다. 색깔은 암홍(暗紅)색 내비의 크기는 5×7㎝, 백지에 붉은 글자로 "사보공명홍화차업공사(思普貢茗鴻和茶業公司)"라 쓰여 있다. 미(米)자 형의 꽃 테두리가 장방형(4각형)으로 되어 있고 HHC의 영문자가 다이아몬드형 속에 정중앙 위에 그려져 있다. 차의 운은 노(老), 복록공차보다 약간 더 진화되었고, 야장향에 맛은 미미한 신맛이 있고 수성은 두텁고 매끄럽다. 목에서 단맛이 돌고, 설면생진(舌面生津), 이 차의 기는 강하고 전형적인 사보지구 차품이고 이무정산의 차와 다른 봉산차산의 순후한 찻물맛과는 다르다.(소장중임)
|
|
진운호원차(陳雲號圓茶)
|
청(淸) 광서(光緖)년간에 이무구내(易武區內:현재 만랍현) 진세원(陳世元)에 의해 건창(建倉)되었다. 최 근래에 진운호 차가 발견되어 수장가에 의해 약간(아주 소량)보존되어 있고 등시해 교수로부터 학술자료로 한편을 양도받아 차의 향과 맛 기운들을 살펴볼 기회를 가졌다.
이무산 차잎의 원료로 만든 차로서 강한 야장향에 차기가 강하다. 내비는 그림과 같이 묻혀 있는 차의 면은 윤기가 흐른다. 소장중임(역자 주. 원저서에는 없음)
| |
|
조기광운공병원차(早期廣雲貢餠圓茶)
|
|
백침금연산차(白針金蓮散茶)
|
백침금연은 홍콩상인들은 "현대 여아차"라 특별히 이름지었다.
이 의미는 차청은 흰색의 가는 털과 금색의 차싹으로 1급의 가늘고 여린 차잎으로만 골라 옛날 공차와 같은 특급차품으로 여아차(女兒茶)급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단차로 만들지 않고 맛은 순하고 향은 연꽃향으로 엷은 녹색을 좋아한다."고 옛 사람들은 여아차에 대하여 위와 같이 표현했다.
백침금연이 이미 오래되었고 연꽃향의 푸어차로 대표적인 차이다.
|
시중에서 백침금연 종류는 많으나 연꽃향이 나는 백침금연의 최상품이 많은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백침금연산차는 4∼6분의 숙차에 속하는 것으로 차청안색(顔色)이 비교적 율홍색(栗紅色)에 경미한 숙미(熟味)가 있으며 차를 탓을 때 연꽃향이 없다.
극히 일부의 어떤 차는 2∼3분 숙차(熟茶) 또는 생차(生茶)로 만든 것으로서 이들 차청의색이 청율색(靑栗色)에 머리싹에는 금색이 띄며 아주 연한 흰 서리(白霜)빛을 머금은 듯하며 은은한 연꽃향이 나는 종류의 차로서 백침금연의 최고품의 푸어차라 할 수 있다.
백침금연은 대부분 맹해차구에서 생산된 차청이며 대엽종관목신차수의 최고급의 현대적 푸어차이다. 백침금연의 최고급품을 보았을 때 진기(陳期)는 약 20년 전후이고 탕은 매끄럽고 단맛과 침이 돌고 기는 강하고 차운은 햇맛이고 계속 진화하면 좋은 푸어차가 될 수 있다. (소장중)
|
|
| |
|
료복산차(廖福散茶)
|
료복산차와 하노이원차는 다 같이 북 베트남 푸어차청이다. 이 산차는 상호와 표지가 없다.
최초의 원시적 옹기에 담아 "료복차호(廖福茶號)라 붓으로 쓴 글자의 흔적이 있다. 료복차호는 일반차 자료에는 없다. 당시 소규모의 개인 차가게이다. 차청은 가늘고 길고 차 줄기는 억세고 율황색에 약간 흰 서리(白霜) 빛이 돌고 차는 가볍고 건조하며 광택이 부족하다. 생차로 제조하여 건창법으로 저장하였으며 탕색은 밤색 청향에 미미하게 난향이 묻어 나온다.
비교적 좋은 차로 신선한 변경푸어차의 특별한 차향이 있다. 차운은 신선하고 진기는 35여년, 단맛이 약간 나고 두텁고 매끄러우며 목이 부드럽다. 아주 좋은 베트남차청으로 변경푸어의 훌륭한 차이다. (소장중)
| |
|
|
|
운남칠자병차 처음 포장지
| |
|
은호타차(銀毫
茶)
|
은호(銀毫)타차는 임창구, 임창진, 임창차창(臨滄茶廠) 생산품이다. 차청은 맹고차산과 봉산차산에서 조달되어 하관차창의 책임아래 만들어졌다.
임창진과 맹고차산은 모두가 쌍강현경내로서 두 지역의 거리는 남북으로 수십㎞ 떨어져 있으며 임창차창에서 사용되는 차청은 대부분 맹고차산과 맹고차종을 생산하는 차밭에서 공급받았다.
이들은 운남중부차산의 차나무로서 이는 모두 맹고차종( 庫茶種)이며 대표적인 차는 봉산의 복록공차 맹롱의 말대긴차(末代緊茶) 임창의 은호타차 등이다.
|
이 맹고차종의 특색은 차청이 여리고 가늘며 탕은 짙고 강하다. 차향은 순후(純厚)하며 아주 약하게 쓴맛이 비친다. 은호타차는 2급의 차청을 원료로 썼고 경발효의 숙차이다.
차를 타 마실 때 3∼4회 이후부터는 숙미가 없어진다. 탕색은 짙은 밤색이고 쓰고 단맛이 비친다. 단맛이 목에서 우러나오고 차운(茶韻)은 신(新)이다.
시중에는 후기의 은호타차가 유통되며 맹고차구의 원료로 품질이 상당히 좋다. 단 5∼6分 숙차로 숙기가 강하다. 조기의 은호차에서 볼 수 있는 청순미는 없다. 조기와 후기의 판별은 그 포장방법, 맛 등으로 쉽게 구별된다. (소장중)
|
|
상단: 조기 은호타차 하단: 후기 은호타차
| |
|
|
<원차철병 내비> |
|
|
운남의 전통적 푸어전차 제조 방법으로 만든 차이다.
1975년 맹해 차창에서 2급의 어린 차잎으로 만든 푸어전차는 7562전차로 이름지어졌다. 차의 맛이 좋아 1980년 1985년에 각각 8062, 8562전차를 7562전차와 같은 품질의 차를 만들었다. 향이 아름답고 은은한 단맛에 침이 생기는 우량한 차로서 연대가 그리 길지 않고 진화가 충분치 않아 진미가 부족하나 더욱 발효 진화되면 좋은 푸어차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리라 본다. 현재 푸어차 초심자 용으로 적합하며 큰 주전자에 적은 량의 차를 휘휘저어 적당히 우려 마시면 해갈 음료로 아주 적합하다고 하겠다.
7562, 8062, 8562전차를 일명 푸어금전(普
金
)이라 칭하며 이는 여린 싹에 황금색 찻잎의 색깔 때문이다. 3∼4도의 경숙(輕熟)전차이다.(2001년 자료 수집 입수. 수장중) | |
|
|
천량차는 일명 화권차, 기둥차라고도 한다. 전통적 천량차는 호남성 복전차 차청(茯
茶茶靑)을 원료로 하여 만들었으며 현재 가장 오래된 천량차는 약 50년 된 호남성 익양차창(益陽茶昌)제품이다.
지금 시중에 나도는 천량차는 대부분 3∼5년 된 신차 푸어 천량차다. 호남성 진년 천량차와 신차 천량차 모두 불소 함량이 과다하여 5∼6년 전 서장지역(西藏地域)에서 과다하게 마신 스님들이 뼈가 삭는 암 환자가 많이 발생하여 사망하였다. 그 원인은 호남 복전차 원료 중에 불소 함량이 과다한 것으로 밝혀졌다.
천량차를 마시면 입에서 청량감이 느껴지는데 많이 마시지 않는 것이 좋을 듯! 한 때 대만에서도 고가로 판매되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위와 같은 이유로 인하여 값이 하락하고 거래가 활발치 않다고 한다. 한편 운남에서는 현재 각 개인 차창에서 기념적으로 완전 숙병으로 무게의 제한없이 크고 작게 천량차 또는 기둥차를 생산 판매하는 실정이다. -등시해(鄧時海) 2002.1.15 제공
51.노차수 교목 춘차 | |
| |
첫댓글 좋은자료 정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잃고 갑니다.
제가 소장하고 있는 전차가 나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