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올해도 ‘걷기도’를 잘 마쳤습니다. 아무리 사서하는 고생이라지만 바보짓 같습니다. 올해도 떠나기 며칠 전부터 증세가 있었습니다. 발목이 갑자기 시큰거리기도 하고, 몸이 추위에 ‘후덜덜’ 떨기 일쑤였습니다. 의지와 달리 마음은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행여 집에서 금족령이 내릴까 싶어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했습니다만, 늘 내키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녁나절 고속버스로 강진에 도착하자 오대환 목사님이 반겨 맞아주었습니다. 저녁식사 전에 미리 가볼 곳이 있다고 했습니다. 먼저 간 곳은 강진 시인 김영랑의 시문학파 기념관이었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 초대 손님으로 오 목사님이 출연한다고 배너가 붙어 있었습니다. 그가 낸 시집 <긴 동행+사랑>의 출판 기념을 겸한 행사입니다. 이어 들른 곳은 소위 ‘이태리 한옥’인데, 낼모레 이사할 새로운 보금자리였습니다. 예상치 못했는데, 내일이 은퇴 종지부를 찍는 인사구역회라고 했습니다.
30년 전, 김포에서 비슷한 무렵에 목회를 시작하여 동행하면서, 오랫동안 우정을 쌓았습니다. 20대 후반의 나와 40대 초반의 그는 생각이 비슷했고, 끼도 닮았습니다. 그리고 하룻밤을 지내보니 지금의 그 분은 현재의 나보다 마음이 더 젊었더군요. 나는 은퇴 후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그 댁(宅) 이름을 ‘동심재’(童心齋)라고 지어 드렸고, 그는 내게 보성 ‘호두 두 알’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첫날, 눈이 참 많이 내리더군요. 강진 사람들이 모두 걸어 다닐 정도였습니다. 강진에서 고개를 두 개 넘으니 곧 해남 땅이었습니다. 좁은 옛길을 걸으니 차는 별로 없고, 눈도 풍취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해남에 이르자 사정이 달랐습니다. 차도 많고, 눈도 바람에 날려 온통 어수선했습니다. 쏟아지는 눈 폭탄은 중장비로도 치우지 못했습니다. 길은 미끄럽고, 눈보라는 사나워 결국 중간 숙소로 정한 목적지에 다다를 수 없었습니다.
해남군 황산면 원호리에서 일입니다. 때는 다섯 시 반이니 벌써 사위는 어두워지고, 숙소를 만날 가능성은 전무 해 보였습니다. 기온이 내려 앉아 길은 빙판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별 수 없는 일, 삼거리 버스 정류장에서 시간표를 보다가 건너편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초저녁부터 몇 남자가 주작(酒酌)거리고 있었습니다. 숙소를 물었더니, 대뜸 “숙소 없어요. 끝!” 하더군요. 참 머쓱한 일이었습니다.
잠시 멋쩍게 서 있자니, 술자리에 있던 한 사람이 말을 붙이더군요. “택시를 타야 돼요”. 그 사람의 지당하신 말씀에 주변에서 핀잔을 주길, ‘이런 눈길에 택시가 다닐까, 오늘 시내버스도 안다녔는데..’ 라며 부정적인 말만 늘어 놨습니다. 그런데 그는 핸드폰으로 택시기사에게 전화를 걸더니 ‘올 수 있느냐, 미도여관에 방이 있느냐, 차비가 얼마냐’를 물어주었습니다. 그의 말투가 헤프고, 바보스러워 함께 자리하던 사람들은 무시하였고, 택시기사도 그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난감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호기를 부리듯 내게 나이를 따지고, 고향을 묻더니, 가까이 와서 불을 쬐라는 것입니다. 그가 마음의 뜸을 들여 놓으니 주변 사람들도 나그네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더군요. 결국 한참을 걸려 택시가 왔고, 고개 너머 여관으로 데려다 주었으며, 고맙게도 따스운 온돌방에서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을마다 바보 하나 쯤 있어야겠구나!’ 우리와 상관없는 남을 위해 곁을 내어주는 바보, 남이 청하는 도움에 귀 기울여 주는 그런 바보 말입니다.
그럭저럭 해남을 지나, 진도대교를 건너 진도읍으로 가는 중에 누군가가 길을 막아섰습니다. 자동차 전용도로의 갓길로 걷는데, 경찰차가 다가 온 것입니다. 사실 위험한 길이었습니다. 편도 2차선은 눈 때문에 겨우 1차선만 다녔고, 그나마 사람이 다닐 갓길은 눈이 쌓여 통행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두 경찰관은 ‘읍내로 모셔다 드리겠다’며 굳이 거부하는 나를 태웠습니다. 애써 항변했지만, 속으로 공권력조차 고마웠습니다.
마지막 날, 팽목 항으로 가는 길에 익숙한 동행이 있었습니다. 그는 목포에 들러 어머니를 뵙고 저녁에 합류하였습니다. 역시 길은 ‘홀로’가 아닌 ‘동행’이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물론 이상훈 집사님에게도 내가 좋은 동행이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그대를 위해 기도하는 친구들이 내내 그대를 안고 가기를, 그대를 위해 기도하는 친구들이 그대 마음속에 안겨 가기를”(‘그대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매크리나 위더커).
첫댓글 걷기도 전체 여정을 도전하기에는 쉽지 않아서 한 나절이라도 동행이 되고 싶었습니다만
올해도 함께 하지 못해서 송구스럽습니다.
몇 해 동안 목사님 걷기도 일정에 늘 폭설이 내려서 마음이 졸였습니다.
팽목항에서 눈물을 뿌린 어머니들과 아버지들을 위하여 기도하겠습니다.
감사^^
권사님도 언제 한 번 동행해 보십시오! 1박1일 이지만 참으로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적극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