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기간
2014. 10, 4 ~ 2014. 12. 31
"작가님께서는 이 기간 안이라도 방문하실 때
작품을 찾아가시면 됩니다."
박은후선생님...
박은후샘은 귀에 해드폰을 얹고 눈을 지그시 감는 하오의 음악이 아주 예쁩니다.^^
말씀이 느린 듯 절도 있고, 강한 듯 부드러운 '접대용' 전화도 아주 달콤합니다.
근래엔 당신이 들인 감물 쪽물 황토물 천을 목에 두르거나 터번처럼 얹으면
염색천이 좋다며 표정이 살아나는 옷치장에 귀티가 자르르 흐릅니다.
이 날도 모자에서 댓님까지 짝 빼입으셨는데
작품 곁에 손수 섰더라면 이벤트가 되었을 것을
부끄러워 살며시 숨어버렸답니다.
어제는 집사람과 딸이 함부로 작품을 들어 목에 걸어보는 것을 말리지는 않았죠.^^
문명자님...
김강식 샘의 사모님이시죠. 강진에서 도예를 하시는 작가신데, 이러다저러다 약력도 못 실어 죄송합니다.
김강식 샘은 9년 전 도암중에서 만나 인연이 되었죠. 들꽃을 좋아하고 알음도 많으시고 또 해남에 땅도 있어
꿈이 무르익어가던 때였는데, 이제보니 강진에 터를 잡아 집짓고 행복하시다구요...
모처럼 전통도자기의 친근한 기억을 되살려주는 작품을 내셨군요.
작품 전시가간은 연말까지로 잡았으나 여건상 언제고 작품을 반출하셔도 됩니다.
강식샘... 이렇게 자주는 아니더라도 놀이가 있을 때 만큼이라도 냉큼 제 손을 잡아주어 감사합니다.
이번에 사모님을 못 뵈었으니 한가한 날 다시 들러주세요~~~
백두선샘...
"김진수의 '진-갤러리'에서 데뷔를 하였으니 요 담엔 자네 땅에다 만장하신 솟대이벤트를 벌여
재조 있는 목공예가로 팔소매를 대내외에 걷어부치소."
뚝심과 재주는 비례한가요? 재주가 아무리 많아도 해치우는 결단의 저돌성이 없다면
한낱 공염불인걸 생각하면 맞는 말 같습니다.
가지 목의 나무를 깎을 줄 알았는데 저렇게 반 목부작인 것들을 찾아 다듬으니
오데서 다 꿔왔다냐 싶게 우리는 엄두가 안 납니다.
역시 두선이니깨 되얐지 도선이였다면 결단코 아니었을거라 속으로 웃었지요.
새들이 기러기도 아니고 오리도 아닌 제법들 두루미거나 황새씩이니 음마
거짐 봉황들인 것도 있네요!!^^
물론 요라게 기우뚱하는 물떼새나 저어새, 넓적부리도요??
저 꽁지 빠진 쇠백로도 아심찮코 여 짜부라진 쥐오리도 애틋해요.
뭣인가 내 궁둥이 허전한 과거와 같고 또 뭣인가 내 모가지 시린 미래도 같아서리...
굽은 나무를 깎아 한 구멍에 끼워서 세우는 여느 단순한 오리들은 싸고 쉽죠.
그런데 저렇게 무겁고 길며 '기이하고도 사실적인' 형상에 와서는 균형잡기도 어렵거니와 멋도 내야겠어서
반다시 새의 두 다리가 근사하게 뻗어 있어야 할 이유가 생겨버린 것이죠.
치마를 입혀 두 다리를 시원하게 드러내놓았습니다. 대나무의 마디는 곧 새의 무르팍인 것도 노림수.
대나무를 창날처럼 깎아 두 곳에 찔러 세워야 하는 아이디어는 이 솟대에서 바라는
가장 난이도가 높은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ㅋ 창조의 고통을 제가 그냥 넘기면 섭하죠.^^
요 친군 '모빌 솟대'입니다. 몸통과 지지대의 연결부위를 고정으로 하지 않고 빙빙 돌 수 있게 설계하였어요.
바람 부는 날 가만 보니 머리가 아니라 꼬리를 날카롭게 치켜들고 엉덩이로 바람과 맞서는 것을 보았어요.
귀여운 장난감병정 같으니라구.^^
20년 동안 풀꽃을 살피느라 갸웃 땅만 보고 걷던 제 외딴 속 철새들 같습니다...
탁자도 의자도 트럭으로 왕복 두번 씩 날라다 앉혀주는 착한 후배가 여기 있다는 말 어디서 안 하겠습니다.
듣는 선배가 샘나면 절 미워할 것 같아서요.^^! 함께 기술지도도 조금 있었을
같은 학교 이상균샘께도 감사합니다.
김흥준님...
도예가로서 갖고 다녀도 되는 자존심과 뚝심과 떡대를 다 지닌 작가.
그날 6시에 도착한다는 것을 장 파하고 오면 뭐하냐며 전주에서 내려오려는 것을 말렸죠.
거기도 무슨 강좌로 전깃줄에 매달린 연처럼 되야가지고 오도 가도 못하였던 것을 나는 다 알고 있었죠.
달항아리를 가지고 온다 했는데 마침 김수현샘이 달을 좋아하나 봐요.
오든 가든 기횔 잡아봐야겠죠.
이영희선생님...
제가 엊그제 들깨를 베다 낫으로 팔을 찍었는데 히죽 웃으며 병원에도 안 가려고 했지요.
아픈 건 잘 견디는 사람이죠. 열 바늘을 꿰고 나와서야 실을 믿고 팔을 자유롭게 놀립니다.
오다가 문득 이영희샘이 생각났어요. 왠지는 모르죠.
편안하여서일까... 아무렇지도 않아서일까... 무던? 아니고 바늘로 꿰멘 의사처럼 뭔가 고마워서일 겁니다.
처음에 갈라진 틈이 조금 멀어서 집에 수술바늘이나 있었으면 싶었죠.
그 자리에서 꿰매고 싶은 충동이 일었으니!
그러면 저 예쁘고 뭉뭉하고 귀여운 고양이들처럼 금세 싱글벙글하였을 터이니.^^
이번엔 고양이과의 호랑입니다. ㅎ 김진수... 88년이면 제가 삼십대 초반이겠네요.
해직의 낌새가 가까이 오던 어느 날 순천금당고 미술실에서 새긴 판화입니다.
해직 이후에 여기저기 민주진영의 기금마련전 같은 데 많이 팔려나간 인기판화였죠.
그것을 오늘에 와서 펼치니 감회보다는 반성이 앞서군요. 80년대에 성장이 멈춰버린 화가!
이건 이태 뒤인 90년 작이니...
떼보인 나를 업고 할머니(어머니)가 달마중으로 달래던 '달맞이꽃'.
이런 것들을 끝으로 이제 새 작품에 들어갈 갤러리 개관이었습니다. 기념판화로서의 뜻보다
청산과 전환의 의미가 더 있습니다. 질료며 기법, 생각이며 혼이
될수록 구습을 따르지 않겠다는 다짐을 벼르고 벼러야겠습니다...
도담마을에 초가을의 아침이 또 밝았습니다.
아침안개 자오록한 둔덕에 앉아 흰 겨울을 기다리겠습니다.
기왕에 오신다면 그대도 마냥 함께 오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