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 둘레 잡목을 낫으로 베어내다가 얼핏 떠오른 한 생각. 생활 속에서 발견하는 과학이야기를 여러 사람들과 나누면 어떨까. 삶 속에서 익숙하게 쓰고 있지만 그 원리를 잘 모른다거나 원리는 잘 알지만 생활 속에서 이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것들이 의외로 많은 거 같으니까. 사람마다 경험이나 지식이 다를 수도 있기에 이를 서로 틈틈이 나누어 보는 것도 좋겠다. 그러니 생활 속에 이를 느끼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다면 더 좋겠다.^^일종의 그룹 홈스쿨링이라 해도 좋겠다.
나는 학교 다닐 때 과학이라면 아주 지긋지긋했다. 화학은 골치 아프게 외워야했고, 물리는 원리를 알아야 하는 데 문제마다 골머리만 아팠다. 배움이 즐거움이나 성장의 기쁨이 아니라 공부와 시험이란 지옥의 고통이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만은 절대 물려주고 싶지 않는 경험이자 자각이다. 배움이 즐겁지 않다면 이미 그건 공부가 아니지 않는가.
몸으로 살아가는 시골살이 덕에 내가 조금씩 달라진다. 시골에서는 뭐든 손수 하는 것들이 많다보니 우리네 일상 곳곳에 과학이 숨쉬고 있다는 걸 알았다. 과학의 원리를 몰라도 좋았다.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하면서도 원리를 하나씩 알아가는 즐거움은 컸다. 농사를 지으며 생물학을 다시 보게 되고, 밥상을 차리면서 화학을 새롭게 알게 되고, 도끼질을 하면서 물리가 우리네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 지를 되새김질하듯 맛보고 있으니 말이다.
그 첫 이야기로 쐐기를 보자. 쐐기는 사진에서 보듯이 뾰족한 쇳덩이다. 아주 단순하다. 그런데 여기에는 어마어마한 과학이 숨쉬고 있다. 산골에 살다보니 나무를 도끼로 갈라야할 때가 많다. 도끼도 쐐기의 하나.
근데 도끼질만 할 줄 알았지 쐐기를 몰랐다. 학창 시절에 수십 번도 더 배운 것인데도 말이다. 삶과 이어지지 않는 교육이란 이렇게 사람을 치매수준으로 만든다. 도끼만으로 장작을 패다보면 뜻대로 잘 안 된다. 물론 장작 굵기가 그리 굵지 않고, 길이가 짧다면 장작을 한방에 가를 수도 있다. 근데 우리는 아궁이에 넣는 장작 길이가 보통 60센티 정도는 된다. 참나무나 아카시나무처럼 조직이 치밀한 나무가 아니면 이 정도 길이 나무라면 한방에 잘 갈라지지 않는다.
근데 문제는 첫 방에 나무 중심을 맞추는 것도 어렵지만 다음 번 도끼질이 먼저 찍었던 곳에 다시 맞아주어야 하는 데 이게 어렵다.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도끼날 끝은 일 미리도 체 안 된다. 그 작은 틈을 일 미터가 넘는 도끼자루를 손으로 잡고, 팔로 휘둘려 같은 자리에 다시 맞춘다는 건 요행이거나 신만이 할 수 있는 짓이 아닌가.
그동안 시골 생활은 그저 몸으로 때우는 거라는 믿음 하나로 우직하게 살아온 셈이다. 그러다 몇 년 전, 도끼를 바꾸어야할 때가 와, 읍내 대장간을 들렸다. 칠순 가까이 되는 대장간 할아버지는 얼굴이 참 고우신 분이었다. 그냥 쟁이가 아니라 삶의 기품이 묻어나는, 위엄을 갖춘 그런 분이셨다.
내 이야기를 듣더니 쐐기를 쓰라고 알려주었다. 그 순간 머리가 뻥 뚫린다. 학창 시절에 배웠던 쐐기에 대한 기억마저 희미하게 살아나면서 날듯이 집으로 왔다. 당장 장작을 쐐기로 가르기 시작했다. 그 기쁨, 그 희열, 이게 바로 엑스터시[ecstasy]다.
쐐기는 사진에서 보듯이 아주 간단하다. 근데 한 곳에 고정하고 망치로 쐐기를 때리니 반복해서 같은 곳을 쉽게 때릴 수 있다. 게다가 한번 들인 망치 힘은 쐐기 속에 고스란히 남아, 다음 망치질에 그 힘을 보태어준다. 힘의 낭비가 없어, 일이 제대로 된다. 자신이 들인 힘이 고스란히 일로 나타날 때 그 기쁨이란!
하여, 나는 이 쐐기질에서 신의 모습을 본다. 마음먹은 곳을 마음먹은 대로 가르는 기술. 도끼질이 잘 안 될 때는 짜증이 나지만 쐐기를 통해 힘을 온전히 내 뜻대로 발휘하게 하니 쐐기야말로 이 순간만은 쐐기가 내게 신이나 다름없다. 일을 두 배 세 배 빠르게 하면서도 정확하면서도 즐겁게 하게 해주니 말이다. 게다가 이렇게 삶의 영감까지 얻고 글까지 쓸 수 있으니 그 고마움은 아무리 잘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쐐기를 과학 이론으로 보자면 <빗면의 원리>다. 쉽게 이야기하여 빗면이 길수록 즉, 경사가 완만할수록 적은 힘이 드는 원리다. 뾰족한 도끼날이 나무를 파고들면 양옆으로 그 힘이 전해져 장작이 쉽게 갈라지게 된다. 옥수수 대를 베는 낫질도 비스듬히, 벼를 베는 것도 다 비스듬히 하면 일이 쉽다.
여기서 팁 하나 : 도끼질 요령은 나중에 좀더 길게 이야기할 게 있는데 간단한 팁 하나만 더 보탠다. 나무를 베어 놓고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작은 틈이 생긴다. 조직이 치밀한 참나무 같은 경우는 벤 지 한 시간 정도면 벌써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이 틈에다가 쐐기를 대면 일이 더 쉽게 된다. 나무 스스로 갈라지려는 힘을 잘 살리는 셈이다. 쐐기가 사람이 만든 빗면이라면 나무의 틈은 자연이 만든 빗면이기에 그렇다. 서두르지 말고 나무가 틈을 보일 때 도끼질을 하면 일은 일이 아니라 예술이 된다. 수필도 되고, 시도 되며, 노래도 되며, 춤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