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위에 비친 저 달은 진짜인가? 혹시 진짜 달의 반사체에 불과한 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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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위에 비친 달은 진짜 달을 찾아가기 위한 첫 발과 같다.
물 위에 비친 달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진짜 달을 찾아가볼 엄두조차 내지 않는다. 호수 위에 비친 달, 처음에는 그것이 진짜 달인 줄 알고 달을 보기 위해 계속 호수를 찾는다.
그런 다음 호수 깊은 곳 어딘가에 진짜 달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호수의 바닥을 향해 뛰어들게 된다.
깊고 깊은 호수의 바닥에 감추어진 달을 찾아서 물속으로 뛰어든다.
그러나 빈손으로 물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호수 어디에서도 진짜 달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어쩌면 호수 위에 비친 저 달은 반사체에 불과한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떠오른다.
놀라운 통찰력의 순간, 우리는 비로소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물위에 비친 달이 반사체라면, 진짜 달은 어디에 있는가?
저 달이 반사체라면 그것을 반사하는 달은 저 반대편에 있을 텐데, 호수 위 어딘가에서 반사를 하고 있을 텐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우리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볼 생각을 한다.
그리고 비로소 여행이 시작된다!
사랑으로 인해 혹은 사랑의 아픔으로 인해서 우리는 명상의 맛을 볼 수 있다.
사랑으로 인해 우리는 호수 위에 비친 달의 반사체를 볼 수 있다.
비록 진짜 달이 아닌 반사체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사랑은 우리를 결코 만족시켜주지 않는다. 오히려 더 큰 불만족을 일으킨다.
사랑으로 인해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수많은 가능성을 볼 수 있게 되지만, 그렇다고 사랑이 가능성이라는 물건을 우리 집으로 배달해주지는 않는다.
사랑은 우리를 좌절하게 만든다. 좌절감이 우리를 내면으로 향하도록 방향을 바꾸어 놓는다.
내면을 향한 방향전환은 깊은 좌절 속에서만 가능하다.
사랑을 하는 사람만이 명상의 기쁨을 알 수 있다.
단 한 번도 사랑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 단 한 번도 사랑 속에서 좌절을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 단 한 번도 달을 찾기 위해 호수로 뛰어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 그러다 빈손으로 물 밖을 나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결코 진짜 달을 찾기 위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들은 달의 존재에 대해 전혀 알아채지 못한 채 그냥 살아갈 뿐이다.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종교적인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코 종교적인 사람이 될 수 없다.
예컨대 정치인들은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사랑하는 것은 권력뿐이다. 혹은 돈에 큰 집착을 보이는 사람들은 돈만을 사랑한다.
그들은 오직 한 가지 종류의 사랑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돈에 대한 사랑이 그것이다. 그들 역시 종교적인 사람이 될 수 없다. 돈을 소유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기란 그다지 쉽지 않다. 아니, 불가능하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돈을 소유한 것처럼 살아있는 사람을 소유할 수는 없다.
살아있는 사람은 사력을 다해 저항할 게 뻔하다.
자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움을 벌인다.
자신의 자유를 빼앗기고 싶어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사랑은 자유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물론 사랑은 귀하지만, 자유를 버릴 만큼의 가치는 없다.
사랑을 하고 싶어하는 것과 사랑의 감옥에 갇히게 되는 상황은 다르다.
사랑을 소유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은 누구나 좌절감을 맛보게 된다.
소유욕이 클수록, 사랑은 불가능하다. 소유욕이 클수록 상대방은 더 멀리 도망치게 된다.
소유욕이 작을수록, 서로에게 느끼는 친밀감이 커간다.
전혀 소유하려 들지 않는다면, 사랑하는 두 연인 사이에서 자유라는 꽃이 활짝 피어나게 된다.
위대한 사랑의 꽃이 두 사람 사이에서 피어난다.
다른 사람을 소유하려는 노력은 반드시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다.
좌절감 속에서 혼자 남겨지게 된다. 다른 사람을 소유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유가 사랑보다 훨씬 더 귀하다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자유가 우리를 본래자아에게로 이끌어준다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자유가 곧 명상이 된다. 자유가 곧 깨어있는 의식이다.
자유와 명상은 동전의 양면이다.
자유에서 출발하여 각성에 도달할 수도 있고, 각성에서 출발하여 자유에 도달할 수도 있다.
사랑은 일종의 집착이다.
그러나 사랑은 또한 누구에게나 필요한 본질적인 경험이기도 하다.
성숙을 위한 필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오쇼-사랑과 자유에 관하여 말하다>
출처: Daum 카페 '달마의명상일기' 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