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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한 글-
#1
유대인은 흔히 '상술의 천재'라고 한다. 그래서 '유대인 상인'이라든가 '유대인의 상술'이라는 말을 듣기만 해도 '돈버는 비법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실제로 유대인들 중에는 성공한 상인들이 많이 있다. 유대인의 이러한 특성은 그들의 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다. 유대인의 상술은 끊임없는 박해와 이주의 역사 속에서 철저하게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쓰라린 역사를 통해 유대인은 상술의 기회를 포착하는 감각을 얻게 되었다. 유대인에게는 소위 말하는 세속적인 성공이 인생의 커다란 목표였다.
그들에게 지위 향상의 의지는 보통 이상의 것이었다.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도 투자할 시기에는 과감히 도전하였다. 이러한 예는 유대인의 할리우드 투자에서 잘 드러난다. 사실 영화사업은 성공과 실패가 분명한 것으로 한번 인기를 끌면 막대한 이익을 얻지만, 실패하면 파산하는 위험성이 높은 분야이다. 이러한 할리우드를 지배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유대인들이다. 투기적인 요소가 있는 할리우드 사업은 '인생의 승부사'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재능과 감각으로 큰 부를 모을 수 있는 절호의 승부처가 되었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지폐를 만들어 널리 유통시켰다. 언제 박해가 시작되어 도망가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무거운 동전보다는 가벼우면서도 고액인 지폐가 편리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근대 경제를 발전시킨 최대의 공적으로 남는다. 어음이나 수표 등을 처음 만든 것도 유대인이다. 유대인 사회는 유럽에서 중동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수많은 점처럼 분포해 있으면서도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국경을 초월하여 장사와 금융 분야에서 서로를 도왔다. 그래서 그들끼리는 현금 없이 신용장이나 수표로 거래하는 일이 가능했으며, 지참인이 지불하는 수표도 고안해 냈다.
유대인은 장사 솜씨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누리를 하지 않고 물건을 파는 것, 다시 말해서 제값을 다 받고 물건을 파는 것을 생각해낸 것은 유대인이었다. 백화점이 바로 그것이다. 백화점은 상품의 제값을 다 받고 모든 상품을 고루 갖춘 가게라는 원칙과 특징을 가졌다. 백화점은 미국에서 유대인이 만든 것으로 처음에는 손수레를 끌고 이 동네 저 동네로 떠돌이 장사를 다니면서 벌어 모은 돈으로 세운 것이다. 한 대의 손수레에다 여러 가지 상품을 싣고 다니던 것을 한 지붕 밑에 여러 가지 상품을 고루 차려 놓고 팔고 있음이 다를 뿐이다.
백화점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유대인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그 때까지는 없었던 것을 만들어 낸다. 그때까지 서구 사회에서는 '구두는 구두 상점에서, 냄비는 철물상에서'라는 사고에 얽매여 있었다. 하지만 유대인은 기존 시장으로부터 내몰렸기 때문에 기독교인과 같은 전문점을 열 수 없었다. 그들은 이렇게 불리한 상황을 역이용하면서 '백화점'이라는 개념을 생각해 냈다.
백화점에서는 여러 상점을 돌아다니는 불편 없이 한 상점에서 사고 싶은 물건을 모두 살 수 있었으며, 상품을 대량으로 구입하기 때문에 그만큼 단가를 내릴 수도 있었다. 세계경제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유대인의 상술은 각양각색이어서 한두 마디로 나타내기는 매우 어렵지만 그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혹은 그들과 상담을 나눌 때 흔히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을 간추려보면 대략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유대인은 어릴 때부터 생활 속에 숫자를 끌어들이고 숫자를 생활의 일부로 여긴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우리의 경우 일반적으로 "오늘 날씨가 매우 덥군요"라던가, "날씨가 어제보다는 풀렸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유대인은 이를 숫자로 표현한다. 즉, "오늘은 화씨 80도입니다" 또는 "오늘은 어제보다 화씨 15도 정도 내려갔습니다"라고 정확한 수치로 표현하기를 좋아한다. 유대인은 오래 전부터 일상생활을 통하여 숫자에 익숙해지고 친밀해졌기 때문에 계산이 정확하고 돈벌이의 기회를 갖추게 된 것이다.
둘째, 유대인은 모든 계약을 신과의 약속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인은 계약한 일에 대해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이행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자신을 대신하여 사형대에 오르게 된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후 천신만고 끝에 약속된 시각에 돌아왔고, 이들의 우정과 신의에 감탄한 왕이 그들을 사면했다는 일화는 유대인이 얼마나 그들의 약속에 충실하고 신의를 중히 여기는 백성인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유대인을 계약의 백성이라고 부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만큼 계약에 충실하고 또한 이를 반드시 이행하는 신용이야말로 유대인 상술의 핵심이다.
셋째, 유대인은 현금주의에 매우 철저하다. 그들은 상거래를 하는 상대는 물론 상담 시간까지도 현금으로 평가한다. 유대인 상술에는 천재지변이나 인간들에 의한 재난으로부터 내일의 생명이나 생활을 보장해 주는 것은 현금밖에 없다는 특징적인 관념이 깔려있다. 인간도, 사회도, 자연도 매일 변해간다는 것이 유대교 신의 섭리이며 유대인들의 신념이기도 하다. 유대인들에게 변하지 않는 것은 현금뿐이다.
수천 년간의 방랑생활과 박해 속에서도 유대인이 세계 제일의 재벌인 '로스차일드'나 구미(歐美)의 수많은 재벌들을 낳은 까닭은 바로 모든 사물을 수치화하는 습관, 계약을 충실히 이행하는 신용 그리고 철저한 현금주의를 생활화하고 있기 때문으로 이해될 수 있다. 유대인은 상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라곤 하지만, 어디에 가든지 그 지역의 상인들끼리 단단히 짜고 시장을 지배하는 등 아주 불리한 조건 속에서 장사를 해야만 했다.
이 때문에 유대인 상인들은 사업의 개척자로서 살 수밖에 없었다. 영화산업, 국제통신업, 광고업, 미디어산업, 정보산업 등 새 분야를 유대인들이 뚫고 들어가게 된 것이다. 또한 개척자로서 살아야 하는 운명에 처했기 때문에 유대 상인들은 마치 당돌하다 할 만큼 기지에 찬 발상을 무기로 삼게 되었다. 기지에 찬 아이디어, 그것은 틀에는 맞지 않는 사고나 상식 밖의 발상에 의해서만 생겨나는 것이다. 규격화된 머리로는 아무리 머리를 짜낸들 기지에 찬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유대인들은 일찍이 깨달은 것이다.
유대인이 비즈니스에 있어 다른 어느 집단이나 민족의 추월을 불허한다는 평가는 유대인이 돈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과 궤를 같이 한다. 유대인은 돈에 관한 한 더러운 돈, 깨끗한 돈을 가리지 않으며 돈으로 사람을 평가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유대인의 격언 중 하나로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세 가지는 번민과 불화와 비어 있는 지갑이다…… 돈은 악도 저주도 아니다. 돈은 인간을 축복해주는 고마운 것…… 부유함은 견고한 요새이고 빈곤은 폐허와 같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돈에 관한 그들의 사고를 엿볼 수 있는 내용이다. 지금도 그런 전통은 이어지고 있다.
최근 막대한 부를 축적한 러시아 마피아들의 자금세탁에 가장 애용되는 나라가 이스라엘이며 실제로 이스라엘 정부는 이를 규제할 법률이 없어 밀려드는 검은 돈에 전전긍긍하는 처지이기도 하다. 유대인은 또한 암산에 능하고 언어능력이 탁월한 민족으로 꼽히고 있다. 계산기에 뒤지지 않을 정도라는 암산능력과 보통 2개국어 이상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언어능력을 가지고 있다. 외국인을 평가할 때 한 요소로 외국어 구사능력이 작용할 정도다. 어려서부터 비즈니스에 참여하며, 계약에 철저하고 신용을 가장 중요시하는 것도 유대인들의 특징이다.
유대인과의 비즈니스에 있어 신용이 최우선이며 신용이 쌓이면 위험해도 밀어준다. 그러나 그들로부터 신용을 얻는 과정은 매우 까다로운데 그들은 엄격하고 정확하게 신용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민족이 우월한 점만 가진 것은 아니다. '사브라'라는 말은 선인장의 열매를 말하는 것으로 겉에는 가시가 많지만 속은 붉은 색으로 단맛이 나는데, 그만큼 유대인들이 사귀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종종 "유대인들은 모든 것을 돈으로 평가한다"는 비난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사람들"이라고까지 평하기도 한다.
#2
앞에서 어느 정도 언급되었지만 다음은 인터넷사이트에서 밝힌 유대인들의 기본적인 상술을 인용한 것으로 유대인 및 유대인 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세상은 78대 22의 법칙이 존재한다: 유대 상술의 기초가 되는 법칙에 78대 22의 법칙이 있다. 예를 들어 정사각형과 그 정사각형에 내접하는 원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정사각형의 면적을 100이라 하면 내접하는 원의 면적은 약 78이 되고 나머지 면적은 약 22가 된다. 공기 중의 산소의 비율도 비슷하다. 세상에는 돈을 빌려주고 싶어하는 사람과 돈을 빌려쓰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중에는 빌려주고 싶어하는 사람이 단연코 많다. 은행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돈을 빌려서 일부 사람들에게 빌려주고 있다. 만일 빌려쓰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으면 은행은 당장 파산한다. 다시 말해서 유대인 식으로 말하면 이 세상은 빌려주고 싶다는 78에 대하여 빌려쓰고 싶어하는 22의 비율로 성립되어 있는 것이다.
부자를 상대로 돈벌이를 해라: 일반 사람에 비해 부자들의 수는 적으나 부자들이 가지고 있는 돈은 압도적으로 많다. 다시 말해서 일반 사람이 가지고 있는 돈을 22라 하면 부자가 가지고 있는 돈은 78이 된다. 즉, 78을 상대로 장사하는 편이 큰 돈벌이가 되는 것이다.
생활 속의 숫자에 익숙해야 한다: 숫자에 익숙해지고 능통해 지는 것이 유대인 상술의 기초이며 돈벌이의 기본이 된다. 유대인은 더위나 추위도 숫자로 환산하여 말한다. 장사할 때만 숫자를 들고 나온다면 이미 때가 늦다. 한국에는 이론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일에 부딪치면 '불가사의하다'라고 말한다. 불가사의는 숫자의 단위다. 숫자인 이상 해명할 수 있어야 한다. 숫자 단위를 들어보자. 일, 십, 백, 천, 만 이렇게 시작해서 억, 조, 경 여기까지는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경 다음에는 해, 정, 제, 극, 항하사, 아승지, 나유타, 불가사의로 숫자의 단위가 되어있는 것이다. 불가사의 다음이 무량대수이다. 불가사의란 단위는 매우 크지만 무량대수보다 작다. 그런데 숫자에 능통하지 못한 한국인 가운데 불가사의가 숫자의 단위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깨끗한 돈, 더러운 돈은 없다: 한국인은 돈벌이할 때 그 돈의 정체에 대해 까다롭다. 물장사나 여관 등으로 번 돈은 더러운 돈, 착실하게 일하여 부당하게 그러나 싸게 지불된 노임은 깨끗한 돈이란 식으로 구별하기 좋아한다. 라면 장사로 번 돈에 "이 돈은 라면 장사를 해서 번 돈입니다"라고 절대 씌어있지 않다. 술집 마담 주머니 속의 만 원짜리에도 "이것은 취객한테서 우려낸 돈입니다"라고 씌어있지 않다. 돈에는 출신성분이나 이력서가 붙어있지 않다. 다시 말해서 돈에는 더러운 돈이란 없는 것이다.
현금이 최고다: 유대인 상술에는 천재지변이나 인간들에 의한 재난으로부터 내일의 생명이나 생활을 보장해 주는 것은 현금밖에 없다고 되어 있다. 유대인은 은행 예금조차도 믿지 않는다. 오직 현금 최고주의뿐이다. 인간도, 사회도, 자연도 매일 변해 간다는 것이 유대교 신의 섭리이며 유대인들의 신념이기도 하다. 변하지 않는 것은 현금뿐이다.
이자를 노린 은행예금은 손해다: 유대인들이 은행예금을 신용하지 않는 데는 까닭이 있다. 은행에 예금하면 확실히 이자가 붙어 예금은 증가되어 간다. 그러나 예금이 이자를 낳아 불어나가는 동안 물가도 상승하여 화폐가치가 떨어진다. 그리고 본인이 사망하면 상속세로 많은 금액을 국가에서 가져가 버린다. 아무리 많은 재산이라도 3대만 상속하면 바닥이 난다는 것이 세법상의 원칙이다. 이것은 전세계 어느 국가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재산을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는 것이 빼앗기지 않는 방법이다. 한편 현금은 이자가 불어나지 않는 대신 절대로 줄어드는 일이 없다. 유대인에게 있어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은 손해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자를 연구하라: 유대인 상술에 있어서 중요한 상품으로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여자를 상대로 하는 것과 입을 상대로 하는 것이다. 이것은 유대인 상술 4천 년의 공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공리인 이상 증명은 불필요하다고 말한다. 유대인 역사가 가르치는 바에 의하면 남자는 일해서 돈을 벌어오고 여자는 남자가 벌어온 돈으로 생활을 해 나가야 된다는 것이다. 상술이라는 것은 남의 돈을 끌어들이는 것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돈을 벌려면 여자를 공격하여 여자가 가지고 있는 돈을 뺏어내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이 유대인 사상의 공리이다. 상술이 남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여자를 노려 장사하면 꼭 성공한다. 반대로 남자를 상대로 장사를 하려면 열 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원래 남자는 돈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남자는 돈을 소비하는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 화려한 드레스, 반지나 브로치, 목걸이, 액세서리, 고급 핸드백…… 이러한 상품들은 그 어느 것이나 넘쳐 흐를 정도의 이윤을 가지고 상인을 기다리고 있다.
큰 입을 노려라: 입을 상대로 하는 장사란 입에 들어가는 것을 취급하는 장사를 말한다. 예를 들면 청과물, 어물, 주류, 미곡, 과자 등이 그렇고 이 식품을 가공하여 판매하는 음식점, 바, 카바레, 클럽 등도 그렇다. 먹은 것은 반드시 소화되어 배설된다. 다시 말해서 입에 들어간 식품은 시시각각으로 소모되어 몇 시간 후에는 또 다른 상품이 필요하게 된다. 그렇지만 입에 넣는 상품은 여성용 상품만큼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 유대인에 버금가는 화교상인 중에 입을 상대로 하는 상품을 취급하는 사람이 많다. 유대 상인이 화교상인보다 상술이 뛰어나다고 말하는 것은 유대상인의 대부분이 여성을 상대로 하는 상품을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 텔아비브 무역관이 꼽는 다음의 '유대인의 비즈니스 십계'도 유대인과 유대인의 상술을 이해하는 데 참고할 만하다.
* 계약은 생명처럼, 우리 조상은 하나님과도 계약했다.
* 서명은 신중하게, 운명이 왔다갔다 한다.
* 막히면 뚫어라, 모든 길은 마음에서 나온다.
* 온 세상이 장사거리, 흰 구름도 쥐어짜면 비가 된다.
* 올바른 장사를 하려면 시장으로 가라.
* 평생 신용을 지켜라, 신용이 없으면 문이 열리지 않는다.
* 한 우물을 파라, 결국 맑은 물이 용솟음칠 것이다.
* 항상 수집하는 정보에 거래 성패가 좌우된다.
* 체면과 형식에 사로잡힌 자는 알맹이가 없으니 멀리 하라.
* "유대인이 세계 경제를 좌우한다"는 이방인은 곧 칼을 들이댄다.
#3
유대인의 성공 비결은
유대인이 2천 년의 역사를 통해 하나의 민족으로서 살아남을 수가 있었던 것은 유대인이 단일 종교를 가지고 있었으며, '배우는 민족'이었던 점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학문과 장사'에 뛰어난 지혜를 가지고 철저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학문과 장사'는 토지 소유가 필요 없고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유용한 삶의 수단이었다. "조건이 나쁘니까 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유대인은 없다. 어려움이 있다면 어떻게 하면 그 불이익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하고 필사적으로 골몰한다.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이기는 방법을 연구한다. 그것이 유대인이다.
이와 함께 유대인의 성공 비결은 자기를 만들어 가는 데 있으며 이것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5천 년에 걸친 역사를 통해서 자라난 유대인의 전통에서 찾을 수 있다. 오랜 역사 속에서 길러진 유대인 특유의 전통이 성공률이 높은 민족을 낳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진웅기, 1979). 물론 세계에는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오랜 역사를 가진 민족이 적지 않다. 중국, 그리스, 이집트, 인도 등이 좋은 예이다. 그러나 중국인, 그리스인, 이집트인, 인도인들이 유대인만큼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는 할 수 없다. 대체 그 차이는 어디서 생기는 것인가.
중국, 그리스, 이집트, 인도 등에서는 그들의 오랜 역사나 전통이 아무리 찬란한 것이라 해도 그것은 과거의 기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유대인은 자신의 역사와 전통을 산 교훈으로 되씹어 왔다. 단순한 기록으로 책장 속에 처넣어 두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온 것이다. 자기를 지키기 위한 방법은 오로지 한 가지, 지력(知力)과 재력(財力)을 간직하는 것, 이것만이 유대인이 생존해갈 수 있는 절대조건이었다.
그것은 국가·민족·계급·지위를 넘어 누구나 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가치이다. 유대인들은 자기의 생존과 민족의 존속을 건 두 가지 가치 추구에 매진해왔다. 여기서부터 유대인의 경제활동의 기본 전제가 생성되었다. 즉, 그들에게 비즈니스란 절대로 돈벌이만이 목적은 아니다. 그것은 민족이 살아남기 위한 싸움이다. 그들은 중세 그리스도교도가 절대로 손을 대지 않던 돈놀이, 징세인(徵稅人), 국왕 귀속의 재산관리인, 유통업 등의 직업에 종사해 사람들의 반감과 원망을 한 몸에 받아왔다. 특권이 없다는 것은 반대로 최대의 특권을 가졌다고도 할 수 있다.
그들은 비밀리에 돈을 움직이는 기술, 국왕이나 귀족의 개인적·가정적 비밀을 장악함으로써 배후에서 국가를 마음대로 움직이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근대사회에 접어들면서 그들의 비즈니스 재능을 '십이분' 발휘할 시기가 찾아왔다. 그것은 자본주의사회, 특히 20세기의 미국에서였다. 여기에서는 돈벌이 자체가 선(善)이다. 유대민족이 자본주의 챔피언으로 발전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대인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돈벌이가 능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유대인은 세계에서 가장 지적 생산력이 높은 인간이라 할 수 있다. 지적 노력을 통해 유대인들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유대인은 다만 노력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응력이 풍부하고 창조력이 뛰어나다. 유대인은 성공하는 비율이 매우 높았다. 흔히 유대인은 머리가 좋다고 말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수많은 유대인들이 세계 곳곳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이처럼 뛰어난 활약을 보이는 데는 어떠한 비결이 있는 것일까? 말할 것도 없이 그 원인은 유대인들이 우선 자신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유대인에게는 자신을 창조한다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 같은 독특한 창조력은 유대적 사고방식이나 생활방식에서 생겨난 것이다. 유대인의 성공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유대인 종족 특유의 집념에서 오는 듯하다. 어느 분야에 종사하든지 유대인들은 끈질기게 자기 일에 몰두한다.
차별 없는 공정한 경쟁 무대만 마련되면 유대인들의 성공률은 어느 분야에서도 두드러지며,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또한 유대인의 성공은 대부분 기존 틀과 맞지 않는 무엇인가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에서 나왔다. 그런 개성에서 새로운 창의력과 기발한 아이디어가 싹텄고 대성한 것이다. 학문 분야나 기업 분야나 마찬가지다. 미국 내 벤처기업에 진출한 유대인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사실이 그런 유대인의 독특한 기질을 말해준다. 이와 함께 유대인의 성공비결은 구체적으로 높은 교육열과 독특한 육아 및 교육 방법 그리고 그들 특유의 상부상조 정신에서도 찾을 수 있다.
#4
유대인의 남다른 교육열
유대인의 교육은 그들의 생존과 발전을 담보하는 귀중한 유산이다. '자식 농사'가 최대의 사업이라는 것이 유대인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교육은 유대인 사회의 굳건한 기본 가치이며 미래의 장을 여는 열쇠로 인식되고 있다. 사실상 유대인의 저력은 높은 교육 수준과 창의적 연구에서 비롯되고 있다. 전세계 인구의 0.3%밖에 안 되는 유대인이 노벨상 수상자의 30%를 차지하는 비결 역시 '교육'이라고 단언해도 큰 무리는 아니다. 유대인은 배운다는 것이 의무라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유대교에서는 배운다는 것과 기도를 올린다는 것은 동일한 일이었다.
배운다는 것은 신을 찬미하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유대인이 '배우는 민족'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즉, 유대인은 교육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유대인 교육은 탈무드의 교육인 것처럼 알려져 있으나 이것은 사실과 차이가 많다. 물론 전통 사회에서 유대인들은 탈무드 교육을 받아왔다. 그러나 오늘날은 소수의 유대인들만이 탈무드를 배우고 있다. 유대인이라고 모두 탈무드를 배우거나 능통한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그들의 역사의 일부로써 성경을 배우기는 하지만 탈무드는 정통파 유대 종교인들만이 배운다.
유대인의 전통적인 육아법은 민족공동체적 삶을 중시하는 것이 특색이다. 또 합리적이고 실용적이어서 현대의 과학적 육아법과도 잘 접목된다. 그들은 아이를 신의 선물이라 여기어 부모와 공동체가 함께 키우고자 애쓴다. 아이가 태아일 때부터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며 개성을 존중해 준다. 유대인을 지칭하는 '헤브라이'라는 말의 뜻은 '혼자서 다른 편에 서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그들은 아이에게 "남보다 뛰어나라"고 하지 않고 "남과 다르게 되라"고 하며, 형제자매 간에도 능력을 비교하지 않고 각자의 개성을 키워 주려고 애쓴다. 또한 자녀를 지혜롭게 만드는 교육에 열정을 쏟는다. 역사적으로 많은 박해를 받으면서 터득한 '지혜로운 사람만이 살아 남는다'는 생존의 법칙을 오늘날까지 이어온 것이다. 지혜는 단편적인 지식과는 다르다. 그들 속담에는 "물고기를 잡아 주면 하루를 살 수 있지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면 일생을 살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즉, 암기력을 높이거나 임시 대응 능력을 가르치기보다는 일상생활 속에서 사고력을 키우고, 어릴 때부터 배움을 즐겁고 소중히 여기도록 키우는 것이다.
그들은 늘 자녀와 토론하고 대화하며, 잠들기 전에 책을 읽어 주고, 여행이나 현장학습을 통해 산 지식을 몸으로 익히도록 한다. 또 부모들도 만학도로서 공부하거나 사회교육에 참여하며 자녀에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들은 사회 발전이 경쟁에서 살아남은 소수 엘리트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개성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의 조화와 협동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본다. 그래서 자녀들에게도 잘나고 돋보이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사회 속에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이러한 육아 원칙들의 바탕에는 민족과 전통을 소중히 여기는 종교적 신앙심이라는 뿌리가 있다. 종교 교육은 가정에 안정감을 주며,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조리 있는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한다. 가정의 육아 원칙은 학교 교육의 원칙으로 이어진다. 유대인의 유치원에서는 글자를 가르치지 않는다. '조기교육'과 '조기학습'을 엄격히 구분하는 것이다. 대신 생활도구와 현장 중심의 체험활동, 사회성과 역사의식을 키우는 그룹활동, 대화와 토론 중심의 교육,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하되 과목별로 전문 교사가 지도하는 자유놀이 교육, 프로젝트 중심의 활동과 같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전인 발달'이라는 원칙에 충실한 통합교육을 한다.
또한 멀티미디어와 교구를 통합한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게임 교재들로 유아들에게도 과학기술과 사회역사를 가르친다. 초등학생이 되면 각자의 이메일을 지급해 주며, 2학년부터 영어 교육을 실시한다. 이런 교육은 아동들에게 어릴 때부터 높은 사회의식과 함께 정보화시대에 대한 적응력을 갖게 해준다. 유대인의 교육과정은 학교와 교사뿐 아니라 가정과 지역사회가 모두 한 몸이 되어 이루어진다. 모든 아이들을 함께 잘 키우려는 적극적인 교육과 이를 보장하는 사회구조가 국민 모두를 국보급의 인재로 만드는 것이다.
유대인의 가정교육은 주로 어머니에 의해 수행되는데 모친의 교육은 어느 교육 기관보다 중요하다. 유대인이 뛰어난 이유는 유대인 어머니의 특별한 자녀교육법 때문이라고 주장될 정도로 어머니의 육아 교육은 중요하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아이를 키우지 않고, 아이가 원하는 대로 키운다. 또한 유대인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교육시킨다. 유대인은 한 아이에 대한 헌신적인 교육이 유대인의 민족적 장래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자각한 민족이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민족은 교육된 민족이다"고 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유대인이 다른 민족보다 두뇌가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유대인은 다만 자신들이 유아 교육이나 습관들이기, 부모와 자식 간에 생각을 나누는 방법 등 교육적인 측면에서 보다 많은 관심을 쏟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실 유대식 육아법이나 교육법을 살펴보면 "머리가 좋게 태어났기보다는 머리가 좋아지도록 키워진다"고 하는 말을 함축하고 있다. 그들은 머리를 끊임없이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가정이나 학교의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아이들이 머리를 쓰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
어릴 때부터 유대인답게 사는 길은 "몸보다 머리를 써서 사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나라에서와 같이 지능을 높여준다는 각종 프로그램을 찾아서 아이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아이가 어디에 관심과 흥미를 갖고 있는지, 어떤 특별한 창의성이 있는지, 어떤 잠재력을 품고 있는지를 학부모, 교사, 가족 구성원들이 주의 깊게 관찰해서 과학, 문학, 음악, 미술, 체육 등 아이의 관심 분야를 계발시키기 위해 꾸준히 지도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철저히 배운다는 것은 유대인에게는 하나의 습관이 되어 있다.
유대인의 학문에 대한 열의와 관심은 교육을 중요시하는 유대인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유대 역사에서는 학자가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 간주되어 왔다. 정치가 혹은 위대한 사업가라 하더라도 유대인 사회에서는 그 사회적 지위가 학자 다음이었다. 유대인들은 아이에게 교과 과정을 가르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배우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라고 믿고 있다.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온갖 지식을 주입식으로 가르쳐 주고 시험에 합격하는 능력을 갖게 하는 우리의 교육 방법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유대인들은 리포트를 평가할 때도 가능한 한 많은 자료를 수집하도록 요구한다. 평가 기준도 리포트의 내용이 아니라 그 수집한 자료들을 어떻게 다루었느냐에 중점을 둔다고 한다. 모든 것을 단순한 암기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로 머리를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면 평생을 살 수 있다"라는 익숙하고도 평범한 그들의 속담 속에 유대인들의 교육방식이 투영되어 있고 그것이 세계의 중심 자리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끔 도와준 원동력인 것이다. 유대인들이 좋아하는 이야기 중에 '작은 유대인(Little Jew)'이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느 키 작은 유대인이 알래스카 벌목장에 취직하였다. 주인은 이 작은 인부를 혼내주려고 큰 도끼를 맡기고는 힘든 일을 시켰다. 하늘을 치솟는 듯한 아름드리 나무의 숲 속에 선 이 사람은 마치 벌레처럼 작게만 보였다. 그러나 그의 일 솜씨는 그 어느 키가 큰 사람들이 따라 오지 못할 정도로 뛰어났다. 이것을 본 주인이 그에게 물었다. "벌목은 어디서 배웠소?" "예, 사하라 정글에서 배웠습니다." "사하라 정글이라고? 그게 아니고 사하라 사막이겠지" "예, 제가 가서 나무를 몽땅 잘라버려서 사막이 되었죠."
유대인들은 자주 이 유머를 자녀 교육에 사용한다. 아무리 체구가 작아도 그 속에 정신이 살아있으면 무엇보다도 크고 위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이다. 사실상 유대인들은 세계 어느 민족에 비해 교육을 중요시해 왔고 또 실천하고 있는 민족이다. 지식이 결국은 남보다 앞선 생각을 낳을 수 있고 그것이 생존은 물론 향상된 생활을 보장한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부동산이나 기업 같은 유형 자산을 물려주기에 앞서 실용적인 지식 습득에 정력을 쏟는다. 실용적인 기술교육은 중세시대 이후 사회적인 차별을 받아온 유대인 사회의 전통이 되어왔다. 당시 유대인들은 자녀들에게 반드시 기술교육을 시켰다. 어느 하늘 아래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기술을 습득시킨 것이다. 그런 전통이 발전해서 오늘날에는 전문직종 교육을 자녀들에게 중점적으로 실시한다.
유대인 부모들은 자녀의 자질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면밀히 관찰하고 자녀가 장차 갖게 될 직업에 관련된 전문교육을 선택하게 한다. 외국어 구사 능력의 강조도 유대인들의 민족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유대인들은 아주 일찍부터 모국어 이외에 서너 개의 외국어를 배우는 것을 일상화하였다. 아마도 자기 조국이 없어지고 남의 나라 땅에서 살아야 했던 오랜 방랑생활이 가져온 결과로 여겨진다.
#5
유대인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박해의 역사를 걸머지고 세계 각처를 떠돌던 유대인들 가운데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와 세계 시장을 지배하는 자본가들 그리고 예술, 과학, 영화 등 온갖 분야에서 세계적인 인물들이 배출되고 탁월한 업적을 성취한 비밀은 무엇보다도 교육을 통한 지적 능력의 극대화와 네트워크를 통한 결속력 강화에서 찾을 수 있다. 유대인들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 교육을 중요시해 온 민족이다. 교육적인 가정을 이야기할 때 흔히 유대인을 떠올린다.
교육을 중시하는 점에서는 한국인과 유대인은 차이가 없는 듯하다. 그러나 그 방법은 크게 다르다. 유대인 부모는 어린이에게 먼저 이야기부터 들려주고 수수께끼로 사고력을 훈련시키며 재미있게 배우게 함으로써 공부는 즐거운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한다. 유대인 어머니는 아이가 빨리 글자를 깨우치게 하는 조기교육에는 관심이 없다. 유대인 부모는 입학 첫날 자녀에게 "학교에 가면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는데 무엇이든지 모르면 선생님께 물어봐라"라고 한다.
이에 반해 우리의 경우는 "학교에 가면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라"라고 한다. 한 쪽은 자율성을 강조하는 반면, 다른 한 쪽은 타율적이라 할 수 있다. 유대인은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나중에 커서 훌륭한 어른이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호기심을 키우고 모르는 것은 당당하게 물어보며,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논리적으로 생각을 펴 나갈 수 있는 아이로 자라도록 배려한다.
유대인의 가르침 중에는 "사람은 잘 배워야 한다. 하지만 수동적으로 배우는 습관을 가져서는 안 된다"라는 말이 있다. 아이가 수동적으로 배우는 데 익숙해진다면, 인간의 천성적인 창의력은 서서히 사라지기 때문이다. 유대인 가정교육은 어린이의 개성을 최대한 존중하고 신장시키며 자주성과 독립성을 훈련시킨다. 개성을 살리는 예로 유대인 가정에서는 형제의 능력을 비교하여 면박을 주지 않는다. "형제의 머리를 비교하면 양쪽을 다 죽이지만 개성을 비교하면 양쪽을 다 살릴 수 있다"는 유대인 격언은 개성을 중시하는 유대인의 교육관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 나라 부모들은 아이에게 많은 기대를 갖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위치에 서기를 바라며 남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수많은 학원에 보내거나 과외를 받게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하지만 유대인 부모들은 아이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에 종사할 것을 권하지 않는다. 아이의 생각이 좀 엉뚱하다 하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일이라면 아이의 든든한 상담자와 조력자 역할을 해준다. 사람이 추구하는 행복은 다 다르다는 것을 알기에 개성 있는 삶을 가꿔 나가는 것을 도와주며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행복이란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유대인의 자녀교육에는 어두운 곳을 통해 밝은 곳을 보는 인간으로 성장하라는 그리고 어떠한 어려움을 만나든 좌절하지 않고 그 어려운 체험을 통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말라는 소망이 담겨져 있다. 유대인에게 배우는 일은 곧 선이며 성스러운 의무이다. 그래서 문맹률이 아주 높던 중세 유럽에서 유대인 사이에는 거의 문맹이 없었다고 전해지는 것도, 또 많은 세계적인 학자를 배출하고 있는 것도 유대인이 배우는 일에 대해 이와 같은 태도를 늘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것만이 배우는 것이 아니며, 가정에서 배우고, 일터에서 배우고, 놀이에서 배우고, 사교에서 배우는 등 어느 곳에서든지 배운다. 유대인은 오랫동안 혜택받지 못한 사회제도 속에서 살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은 성공하는 예가 대단히 많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유대인 자신이 스스로를 창조해 가기 때문이다. 유대인에게 있어서는 자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가장 큰 밑천이다. 이러한 창조력은 유대적 사고방식이나 생활방식에서 태어났다. 사실상 유대인은 과학, 정치, 예술 등 모든 방면에서 새로운 세계를 낳은 원동력이 되어왔다.
유대인 비즈니스맨들 중에는 이전에 장사를 하면서 호되게 어려움을 겪었을 때의 계약서를 사무실 벽에 걸어두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다. 그러한 생각은 "실패한 일을 모두 잊어버리고 새로이 시작한다"는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다. 요컨대 유대인에게 있어 실패나 패배는 다음 성공을 위한 출발로서 언제나 뇌리에 새겨져 있어야 하는 것이다. 유대인이 논쟁을 즐기는 민족이라는 특성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들은 상대방의 의견을 잘 들은 다음 항상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그리고는 서로 납득이 갈 때까지 논쟁한다.
"유대인이 두 사람 있으면 세 가지 의견이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러한 성향은 유대인이 가지는 커다란 힘의 원천이라 볼 수 있다. 말하는 상대에게 반대 의견을 내기 위해선 자기 생각을 확실히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언제나 머리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유대인은 다른 어느 민족보다도 낙관적인 성향의 민족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 같은 낙관주의 덕분에 그들은 수없이 짓밟혀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으며 가혹한 운명도 견딜 수 있었다.
유대인의 속담 중에는 "어둠이 짙을수록 빛은 가까이 있다" "두려움을 동반하지 않는 희망은 없고, 희망을 동반하지 않는 두려움도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유대인의 긍정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유대인의 네트워크도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해주고 있다. 유대인 네트워크는 유대인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여 그 힘을 발휘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유대인 네트워크에 못지 않은 것으로 화교 네트워크 역시 주목할 만하다. 그 수만 보아도 5천 5백만 명으로 엄청날 뿐만 아니라 이들의 이주 역사 또한 수세기에 이를 정도로 장대하다.
불모의 대륙이나 황량한 벌판, 적도의 밀림 속에서 풍요의 땅을 찾아 기약 없는 유랑의 길을 떠났던 이들은 1세대가 씨를 뿌리고 2세대가 가꾼 터전 위에 이들의 3·4세대는 이주지의 유랑민이 아닌 어엿한 주민으로 굳게 뿌리를 내렸다. 그렇다면 이를 가능하게 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혈연·지연으로 묶인 인간관계가 바탕이 된 단결, 즉 네트워크의 활용이었다. 이렇듯 유대인과 화교는 전세계 곳곳에 사람과 자본을 심어 놓는 이른바 현지화·세계화 전략을 꾸준히 전개해 왔다. 우리도 이들 못지 않은 '코리안 네트워크'를 짤 수 있는 소중한 해외자산이 있다.
전세계 170여 개국에 퍼져 있는 550여만 명의 해외동포가 그들이다. 이들을 연결시켜 주는 코리안 네트워크의 구축이야말로 21세기 무국경·무한경쟁시대를 헤쳐나갈 수 있는 지름길이다. 이러한 취지 하에 지난 96년 코리안 네트워크 구축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출발한 해외한인무역협회와 2002년에 구축된 상공인, 무역인, IT인, 과학기술자 단체 등의 통합네트워크인 세계 한상(韓商)대회는 주목할 만하다.
한상대회는 분산됐던 한민족 역량을 결집할 수 있는 네트워크 구축을 목표로 개최되고 있다. 한상네트워크는 모든 재외동포 경제인과 경제단체를 통합하여 네트워크화하고 한민족 상권을 형성하며, 모국과 재외동포를 연계하여 세계적인 민족 공영권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해외 교민 수가 전체 인구의 15% 가량이나 돼 유대인 다음으로 해외 교민의 비중이 크다는 점에서 이들을 하나로 통합해 나간다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로선 본국 기업과 연계가 가능한 업종에만 한정돼 있으나 코리안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본국 기업과 교민들이 함께 공통분모를 모색해 간다면 전략적 코리안 네트워크의 장래는 매우 낙관적이다. 민족 동질성을 유지하는 사이버 한민족 공동체인 한민족 네트워크를 확충하는 일도 시급하다. 모국과 해외동포들은 이를 통해 하나의 민족이라는 자부심을 높여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민족 네트워크는 실사구시적이어야 한다. 개념으로만 끝나서도 안 되며 행사 위주로 되어서도 안 된다.
그야말로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우리 동포들을 한민족의 정체성을 토대로 하나로 묶어 서로 서로 도와서 상호 간에 이익이 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한민족 네트워크의 개념을 단순 교역 차원에서 정치·경제·문화 등 다각도로 교류 가능한 채널을 발전시켜야 한다. 네트워크의 핵심은 신뢰이다. 이제는 서로 서로 믿고 도와야만이 네트워크 시대에 다같이 살아남을 수 있고 상생(相生)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때이다. 21세기는 네트워크의 사회이며 '민족'이라는 동질성과 정체성이 네트워킹에 커다란 위력을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