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돌목의 전설
음력 10월 20일로 뱃사공 손돌(孫乭)이 억울하게 죽은 날.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를 비롯한 세시기에 의하면, 이날은
해로(海路)를 통해 강화도로 파천(播遷)하는 고려의 왕을 모시던 뱃사공 손돌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날이라고 항다.
이날을 '손돌뱅이죽은날', '손사공죽은날'이라고 부르기도 하다.
경기도 김포에서는 억울하게 죽은 손돌을 위해 매년 '주사 손돌공 진혼제(舟師孫乭公鎭魂祭)'를 지낸다.
동절기에 속하는 음력 10월 20일을 전후해서 부는 바람을 손돌바람[孫乭風], 추위를 손돌추위라고 하며, 손돌이 죽은 장소를
손돌목(孫乭項)이라고 부른다.
강화도 사람들은 손돌풍(孫乭風)이 불 때에는 배를 타지 않는다고 한다.
매년 음력 10월 20일에 뱃사람들은 풍랑이 있을 것을 미리 알았고, 집에 있는 사람들은 털옷을 준비한다고 한다.
그것은 억울하게 죽은 손돌의 넋이 바람과 추위를 몰고 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문헌과 구전 자료에 의하면 손돌목 전설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고려 때 뱃사공이었던 손돌이 몽고병사에게 쫓기어 강화도로 피신하는 고종(또는 공민왕)을 모시게 되었는데, 고종은 충신들과
함께 개경을 떠나 예성강 벽란도를 거쳐서 손돌이의 배를 타고 임진강과 한강하류를 거쳐 강화도로 가게 된다.
가는 도중 지금의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 소재 덕포와 강화도 광성진 사이의 해협이 협소하고 급류가 흐르는 목에 닿게 되었다.
이곳은 앞에 여러개의 검은 바위가 있어 마치 막힌 듯이 보이는 지형으로 처음가는 사람은 뱃길이 없는 것으로 착각하기 쉬운
곳으로 파천하는 고종은 심기가 어지럽고 마음이 초조한 나머지 뱃길도 없는 곳을 향하여 배를 젓는 손돌이를 의심하여 수차에
걸쳐 뱃길을 바로잡도록 주의를 주었으나 그때마다 손돌이는 아뢰기를 '보기에는 앞이 막힌 듯하오나 좀더 나아가면 길이
트이오니 폐하께서는 하념하여 주옵소서'라고 전언했다.
이곳의 지형적 특성을 알지 못한 왕은 자신을 험지로 유인한다고 오해하여 손돌을 참수시켰다.
그러나 손돌은 죽으면서도 바가지 하나를 물에 띄우고 바가지를 따라갈 것을 권하였다.
이것을 따라간 왕은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강화도로 들어갔다.
왕이 잘못 생각했음을 알고 죽은 손돌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손돌의 묘를 만들고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이 좁은 물길을 손돌목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이는 손돌이 억울하게 죽은 곳이기 때문이다.
이날이 바로 음력 10월 20일이다. 또한 손돌과 관련지어 이날 부는 바람을 손돌풍이라 부르고 추위를 손돌추위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