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때 본 영화 <원새컨드>
글 德田 이응철
내 평생 첫 번째 본 영화는 무엇인가? 60년대 <청년 이승만>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60년까지 12년을 집권했는데, 3차 집권이 56년-60년이니 1학년 때일 것이다. 저녁으로 띄엄띄엄 학교 운동장에 영화를 상영해 보러가곤 했다. 십리가 넘는 시골 산길을 동네 사람들을 따라 가서 보고 온다.
캄캄한 밤길에 고향 정족리에서 산을 세 개나 넘어 지금의 칠전동 신남초등학교 운동장에 당도해 대한뉴스와 영화 한편을 보고 올 정도로 초창기 영화는 인기가 대단했다.
56년에 선거용으로 선전하기 위한 것이리라. 청년 이승만이 아직도 생생하다. 주연 김진규 배우가 정말 청년 이승만인 줄 알았다. 일본 놈들의 고문에 몸서리쳤다. 손톱 끝에 불 고문을 당할 때 애국자 이승만의 절규에 숨죽이며 보던 사람들 모두가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그 때-.진정 황홀한 경험이었다. 그 뜨거운 심정으로 영화가 끝나고 험한 산길을 다시 오면서도 온통 영화 이야기로 흥분이 가라앉지 않던 66년 전이 생생하다. 학교 통학구역 주민들이 모두 달려온 운동장은 인파로 가득했었지.
이런 초창기 영화에 중국인민 또한 마찬가지임을 이번 추석에 느꼈다.
<원 새컨드> 스토리가 영화이야기다. 중국 정부가 드러내려는 것을 꺼리는 문화대혁명시기가 영화의 배경이다. 그래서인지 2021년 우리나라에서 수입할 때 차질이 있었다고 한다. 문화대혁명이 한창인 1970년대 중국 간쑤성 노동교화소에서 탈옥해 고비사막의 매서운 모래바람을 헤치고 고난의 탈주로 영화는 시작된다. 주인공 장주성은 중국에서 베테랑 배우 장역이다.
뉴스 필름에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딸이 등장한다는 소식을 듣고 탈옥해 벽지에 있는 영화관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두 달 단위로 상영되는 영화의 기다리는 산간 주민들-. 황량한 변방의 어느 마을 앞에 이르자 필름 배달꾼한테 정체불명의 필름도둑이 필름을 훔쳐 달아나는 모습을 목격하고 황급히 그 뒤를 쫒아 찾았으나, 아뿔싸 필름은 뒤엉키고 먼지가 묻어 폐기 직전의 두루뭉술일 줄이야!
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을 석권한 이 영화에 필름을 훔친 여주인공은 누구인가? 소녀 류가녀 역은 3000대 1에 낙점된 신예 류호준 배우였다. 한 마리 야생동물처럼 종잡을 수 없는 이 소녀의 행동은 동생이 필름 전등갓이 타버리자 새로 만들기 위해 12.5미터의 필름이 필요해 훔친 것이다.
이 영화의 최절정은 어디인가?
망가져 줄줄 늘어져 꼬인 실타래처럼 먼지투성이의 필름을 온 주민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세척하고 말리는 장면이 그야말로 압권이다. 영화 상영소식을 듣고 구름처럼 모여든 마을사람들의 열기와 협조 또한 대단했다. 한편의 영화를 보기위해 집에서 불을 지펴 증류수를 끓여서 머리에 이고 달려오는 아낙네들.
수십 미터가 넘는 훼손된 필름이 상하지 않도록 세척하고 보드라운 천으로 닦는다. 집에서 부채를 가지고 오라는 영사기사의 부탁에 모두 집으로 간다. 찾아온 부채로 필름에 물기를 말리기 위해 명령에 따라 부채질을 한다. 오로지 영화 한편을 보기위한 변방의 인민들의 뜨거운 협조야말로 이 영화의 최고조 장면이다.
영화 제목<영웅아녀>의 내용은 사실상 뒷전이다. 영화를 재생하여 영사기사가 상영하는 과정이 숨죽인다. 탈옥수의 초관심은 이 영화 앞 <중화뉴스 22호>에 딸의 모습이 잠깐이나마 나온다는 말에 영사기사와 훼손된 필름을 복원하는데 자기 숨은 기술을 고백하며 적극 동참한다. 영사기사의 훈훈한 인간미 또한 감동이었다. 탈옥수의 순간 강도짓으로 비록 포박되어 밖에 묶였지만, 영화는 무사히 성공리에 끝나고 판 영화로부터 딸의 모습이 담긴 두 컷의 필름을 주머니에 넣어주어 주인공 장주성은 다시 교화소로 끌려가면서 그 표정은 비통해 보이지 않았다.
2년 후……, 교화소에서 환한 얼굴로 출소한 장주성과 어엿이 숙녀가 된 류가녀의 만남-. 사막에서 교화소로 끌려갈 때 종이에 싼 필름에 자꾸 관심을 보이자, 호위병들이 앗아 사막에 던질 때였다. 딸의 필름을 날려버리는 장주성은 그 얼마나 울부짖었던가! 뒤따르던 류가녀가 소중히 주워 간직했다가 2년 후 건네주었지만 아뿔싸! 그 종이에 진짜 알맹이인 필름 두 컷은 바람에 날려 없다.
다시 그 기억을 살려 사막으로 달려갔다. 2년 전의 필름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그 장소를 상상해 가며 두리번거리지만, 사막에서 바늘 찾기를 한껏 시청자들께 가슴앓이로 남기면서 이 영화는 막을 내린다. 초등 1학년 때 청년 이승만을 본 영화가 내내 향수로 내 시심을 앗아가 버린 영화 <원 세컨드>! 참 좋은 영화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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