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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이씨 입향지역(양산시 원동면 선장마을)
![]() ![]() 2008/05/22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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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仙庄)마을
선장(仙庄)마을은 원동면 소재지로부터 북쪽으로 4.6km 떨어진 곳에 위치 하고 있으며,
우리면내에서 가장 높은 토곡산 밑에 있으므로 항상 맑은 물이 흘러 내려 청정한 공기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고,
과거에는 미곡과 인삼, 당귀, 청궁 등 약초 특산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였다.
약 400년전 영천 이씨가 먼저 정착한 것으로 전해지며, 이후 청송 심씨, 경주 최씨 등이 주축을 이루며 살아왔으나 지금은 여러 성씨가 모여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이 마을은 처음 바깥 선장골 이라 하였으며,
인근 내포마을에 속해 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널밭, 맹주검, 물바지, 사지목, 안선장골, 소태나 무골, 웃각단 등의 자연마을을 통합하여
신선이 하강한 곳이란 전설에서 마을 이름을 "선장(仙庄)"이라 하였다 한다.
이 선장마을 주민은 대부분 미곡을 주로 생산하고 있는데.
1948년 무자년의 수해로 신선들의 전설이 얽힌 귀목나무 정자도 유실되었고,
심덕 섭씨 가 경영하던 물레방아도 흔적 없이 되었으며, 6.25 동란시에는 공비들의 약탈로 많은 시달림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선장 이장 최차수씨는 이 마을에 있던 큰댁에 왔다가 공비에게 피살당하기도 한 많은 마을이었다.
그 후 이 마을 주민들은 근면, 성실과 절약하는 정신으로 재건에 힘쓴 결과 1980년대에는 원동면내에서도 대학생이 가장 많은 마을로 이름나기도 했다.
선장마을은 항상 물이 맑으므로 이 곳 선장천에는 사계절 피서객과 등산객이 끊임없이 모여들고 있으며, 그 중 여름철에 도시민들이 가장 많이 방문한다.
선장마을에 소속되어 있는 명전마을은 선장에서 동남쪽 약 4km 지점의 고산 비탈진 곳에 위치한 조그마한 자연마을로서 추계추씨 일문이 세거(世居) 하면서 문중(門中)을 이루고 있으며,
지금도 그 후손들은 선조의 묘를 성묘하기 위하여 매년 모여들고 있다.
명전마을은 약 300년 전 청송심씨가 밀양 단장 국화전에서 반란을 피해와서 은거하던 곳이며,
창원정씨, 문화류씨, 신안주씨 등이 모여 살다가
6.25 동란 때 는 공비들을 피해서 마을을 비워두었기 때문에 한 때는 공비들의 본부가 되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각성이 모여서 평화로운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명전마을의 본명은 맹주검이라 했는데, 지금은 한자로 "명전(明田)"이라 쓰고 있다.
널밭은 선장마을에서 동북쪽으로 약 4km 지점에 위치한 고산마을이다.
임진왜란 당시 김해에 살던 김씨 노파가 애기를 업고 왜놈을 피해 정착한 곳이라 전하며,
날씨가 궂으면 마을 앞산에서 산고둥이 울었다고 전하기도 하고, 잡초를 주식으로 하면서 목숨을 연명하였다 하여 널밭이라는 지명이 되었다 한다.
달성 서씨가 먼저 정착하여 땅을 개간하고 농사를 지었으며,
그 후 울산 박씨, 분성 배씨등이 마을을 형성하여 오다가 현재는 각 성씨가 살고 있다.
내포(內浦)마을
내포(內浦)마을은 원동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5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포(浦)라는 말은 항구를 의미하는 한자니 현재 함포마을 앞 낙동강 지류의 안쪽마을이었으므로 내포(內浦)라 하였으리라.
구전에 의하면 옛부터 미곡을 생산하고 있었는데,
마을 사람이 목이 말라 식수를 구할 때
정수(井水)를 발견하여 목마름을 면하였으므로
이 곳을 용정천 이라 불렀으며,
양지마을에는 김해 김씨가 살고, 음지마을에는 영천 이씨 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여러 씨족들이 정착하여 평화롭게 살고 있다.
첫댓글 우리 양산 김해종중 자료를 주셔 감사합니다. 츨처는 어떻게 구했는지 ? 우리 할배는 어디계시는지 인물역사도 구하고 싶어요.
지도 지명유래 뒤져서 찾아십더
서파공파쪽은 자료 구하기가 상당히 힘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