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집중하는 여행을 다시 꿈꾸다
-도둑맞은 집중력_요한 하리를 읽고-
베네치아로 들어가는 수상버스 위, 우리는 낯설고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지자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서둘러 인증샷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 순간을 영원히 남기고자 동영상 버튼을 누르고, 아차하면 휴대폰을 아드리아해에 빠뜨릴까봐 손에 힘을 꽉 쥔 채 렌즈를 내밀었다. 맞은편 다른 수상버스 위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눈앞의 장관을 카메라 속 작은 화면을 통해 보고 있었다. 곳곳에 운하를 도는 곤돌라 위 관광객들도 연신 셀카에 몰두했다. 우리는 이곳까지 멀리에서 날아와서는 눈 앞에 펼쳐지는 놀라운 광경 앞에서 정작 작은 렌즈 너머로 경탄하고 있었다. 가이드가 말했다. “눈에 담으세요. 사진 찍을 시간은 있어요.”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 사실 떠나기 전에는 책이 눈에 잘 안 들어왔다. 목차, 프롤로그 정도 훑어보고는 당차게 결심했다.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여행을 하겠어. 서로를 바라보고 여행지의 의미를 찾는 시간을 만들자. 3개월 정도 준비하며 이탈리아 관련 유튜브를 정말 많이 봤다. 추천 알고리즘이 관광지, 예술, 종교, 음식 등 엄청난 정보를 자동으로 끝없이 날라다 주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여행을 음미하는 동시에 마음을 다잡고 14시간 동안 책을 완독했다. 과연 나는 이 여행에서 무엇을 얻었나. 성 베드로 성당 안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얼마나 집중해서 보았나. ‘다른 세상 속에 내 모습이 담긴 사진’에 혼이 빠졌던 것은 아닌가. 유튜버가 알려준 포인트를 찾아 인증샷을 찍는 게 왜 그리 중요했을까. 마치 유튜브 속 이미지를 재현해서 SNS에 올리는 수행평가를 끝낸 기분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아쉬운 마음이 더 커졌다. 요한 하리는 집중력이 훼손되는 방식을 알려주었다(206쪽). 웹사이트와 앱들은 우리의 정신을 길들여 잦은 보상을 갈망하도록 설계되었다. 우리가 계속 ‘좋아요’와 ‘하트’를 갈구하게 만든다. 결국 내가 핸드폰을 잠시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이유다. 또한, 여행지에서조차 멀티태스킹 중독을 줄일 수 없었다. 오히려 평소보다 접속 시간이 더 길었다. 눈 뜨자마자 커튼 밖 낯선 공기를 느끼기보다 핸드폰을 켜고 시간별로 기상 상태를 체크 했다. 파워 블로거 여행 후기를 스캔했다. 버스 창밖으로 펼쳐지는 토스카나 지방의 아름다운 사이프러스 풍경에 서둘러(!) 감탄을 마치고는 나의 시선은 차 안에서도 유튜브를 찾았다. 진행하는 가이드의 전문성에 조용히 의구심이 일었다. ‘어, 내가 아는 유튜버는 그렇게 얘기 안하던데..?’
한마디로 순간에 몰입하지 못한 여행이었다. 온라인 미션을 오프라인에서 실행해 본 체험이랄까. 정말 사진을 이렇게밖에 찍을 수 없냐는 핀잔을 내내 들어준 남편에게 괜히 미안했다. 하나라도 놓칠까봐 긴장하며 서로에게 집중하지 못한 시간이었다. 어떻게 만든 기회였는데...
집중력을 회복해서 다시 떠나는 여행을 상상해 본다.
떠나기 전 관련 책을 많이 읽는다. 마음에 다가오는 한두 개 주제를 깊이 생각한다. 여행지에서 휴대폰 접속 횟수를 정한다. 온전히 내 눈으로 보고,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내 혀의 감촉을 느껴 본다. 숙소 주변 풍경과 현지인들의 사는 모습을 관찰한다. 생각이 배회하도록 내버려 둔다. 가이드의 담담한 경험담에 경청한다. 궁금한 것을 질문한다. 위대한 걸작을 한동안 응시한다. 내 마음을 흥분시키는 것에 집중한다. 내가 담기지 않은 사진도 찍는다. 함께하는 사람과 더 많이 대화한다. 서로를 더 많이 바라본다. 함께 멋진 장관 앞에 그저 서 본다. 담담하게 여행 일기를 쓴다.
돌아와서 일주일째 매일 핸드폰 없이 집 주변 산책을 나섰다. 딴생각에 대한 죄책감을 사해(!) 준 요한 하리에게 고마웠다. 마음껏 생각의 나래를 펼치며 걷는 기분이 참 좋다. 전속력으로 질주하던 일상의 속도를 줄이자 내 사고는 자유롭게 떠다니며 공상과 상상을 넘나든다. 어제를 되돌아보고 내일을 그려보다 지금 나와 연결한다. 요한 하리는 나에게 자신의 삶에 집중하는 여행을 다시 꿈꾸게 해주었다.
첫댓글 너무 좋네요 쌤~ 퇴고까지 일찌감치 마친 모범생 재순쌤!
최근 여행기와 책의 주제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한 편의 멋진 글이 완성되었네요.
쌤의 반성도 좋고, 누구나 공감할 것 같은 이야기예요.
잘 읽었습니다. 책을 읽은 다음 지금부터가 시작이겠죠? ^^
생각을 배회하도록 공간을 줘보면 얼마나 많은 것이 달라질까요?! 기대해봅니다.
마치 나의 여행하는 모습을 본 거 같네요^^ 유투브의 말이 진리인양 안보면 안 남기면 큰일나는냥..내 마음을 흥분시키는 것에 집중한다. 저도 다음에 여행하면 꼭 해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