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아, 위에서 이슬을 내려라. 구름아, 의로움을 뿌려라. 땅은 열려 구원이 피어나게 하여라.”(이사 45,8)
교회는 오늘 16세기 스페인의 성인 십자가의 성 요한 학자를 기억하고 기념합니다. 1542년 스페인 아빌라의 폰티베로스에서 태어난 성인은 어린 시절 극심한 가난을 체험한 후, 가르멜 수도회에 입회하여 사제가 됩니다. 이후 요한은 ‘아빌라의 성녀’로 잘 알려진 예수의 데레사 성녀와 함께 가르멜 수도회의 개혁을 추진하는 가운데 영성 생활의 스승 역할을 한 성인이십니다. 성인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가르멜의 산길’, ‘영혼의 어두운 밤’, ‘영혼의 노래’ 등과 같은 영성서적을 통해 교회의 위대한 신비가로서 활동하는데 그의 서적들은 영성신학의 고전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대림시기 계속 읽고 있는 평일 독서 말씀은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그 가운데 특별히 오늘 독서의 이사야서의 말씀은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하느님이 주실 구원의 은총이 어떠한 것인지를 잘 드러내줍니다. 왕국의 멸망과 바빌론 유배라는 참혹한 시련과 고통의 시간을 견뎌 내야만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 모든 시간의 끝을 알리는 희망의 신호, 구원의 은총이 하느님의 사랑에 의해 베풀어질 것임을 예언자는 예고합니다. 이 같은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은 두려움과 공포, 삶의 시련으로 인한 고통에 몸부림 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명 커다란 희망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예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벌레 같은 야곱아, 구더기 같은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 너의 구원자이시다.”(이사 41,14)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에게 다가가 그의 떨리는 손을 잡아주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따뜻이 말하며 그에게 도움을 약속해 주는 음성은 분명 두려워 떨고 있는 이에게는 그 말과 존재만으로도 따뜻한 위로가 되어 주며 그 말로 그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마치 이와 같이 두려워하며 주저앉아 웅크리고 있는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떨고 있는 우리를 감싸 안아 주시며 우리에게 용기와 힘을 불어넣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의 이 같은 사랑의 마음을 이사야 예언자는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다시금 이야기함으로서 하느님 그 분을 사랑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줍니다. 예언자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가련한 이들과 가난한 이들이 물을 찾지만, 물이 없어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탄다. 나 주님이 그들에게 응답하고, 나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으리라. 나는 벌거숭이산들 위에 강물이, 골짜기들 가운데에 샘물이 솟아나게 하리라. 광야를 못으로, 메마른 땅을 수원지로 만들리라.”(이사 41,17-18)
이사야 예언자의 이 말씀처럼 하느님의 사랑은 광야를 못으로 만들며, 메마른 땅을 물이 넘쳐나는 수원지로 만들어 줍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넘치도록 베풀어지고 있음에도 그 사랑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을 방해하는 적들이 존재합니다. 바로 이 적들의 존재를 오늘 복음을 전하는 마태오 복음사가는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마태오는 이렇게 말합니다.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마태 11,12)
마태오 복음사가는 ‘폭력을 쓰는 자들’이라는 표현을 통해 우리에게 베풀어지는 하느님의 사랑이 가득한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막는 이들, 우리 모두가 그 하느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이들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드러냅니다. 그 결과 하늘나라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알리던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였던 세례자 요한 때부터 끊임없는 폭행을 당해왔다고 선포합니다. 어찌 보면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복음을 선포하던 예수님이 이제까지 보였던 태도와는 달리 직접적으로 자신의 심정과 답답한 상황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예수님이 하는 일을 방해하는 이들, 그래서 자신의 구원만을 거부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구원까지도 모두 어그러뜨려 버리는 폭력을 일삼는 이들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하늘나라를 빼앗는 그들의 패악한 행동에 대한 예수님의 답답한 심경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마음을 돌려 세례자 요한이 선포한 하느님 나라의 도래의 외침을 듣고 그를 통해 회개의 삶으로 즉각적으로 변화할 것을 다음과 같은 말로 촉구하십니다. 오늘 복음의 가장 마지막 말씀이자 의미심장한 그 말씀.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 11,15)
예수님의 이 말씀이 마음 깊이 비수가 꽂히듯 박혀옵니다. 들어야 할 말과 듣지 말아야 할 말을 구별하지 못하고 듣지 말아야 할 쓰레기 같은 말들, 내 마음을 진창으로 만들어 버리는 비수 같은 말들만을 주워 들으며 내 마음과 영혼을 병들게 하는 이들, 오히려 우리가 꼭 들어 마음 깊이 새겨 놓아야 할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못해 상처 받은 내 영혼이 치유될 길이라곤 전무한 이들, 그래서 영혼은 더욱 병들어 갈 수 밖에 없는 가련한 상황에 있으면서도 들을 귀를 갖지 못해 듣지 못하는 이들이 바로 우리들의 비참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 11,15)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을 인용한 오늘 복음환호송의 말씀을 기억하고 마음에 꼭 새기십시오. 오늘 복음환호송의 그 말씀처럼 하늘 위에서 이슬이 내리듯, 구름이 의로움의 비를 뿌리듯 그리고 땅이 열려 구원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그 모든 구원은 바로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 // 두려워 떨고 있는 우리에게 들리는 따뜻한 음성으로, 힘들어 지쳐 쓰러져 있는 우리의 어깨를 쓰다듬는 따뜻한 손길로 다가옵니다. 그 사랑을 막는 모든 적들,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심과 교만, 사랑을 나누기보다는 나의 것만을 챙기려하는 탐욕 그리고 가난한 이웃들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내 마음의 적들을 버리고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온전히 그 모든 것을 얻기 위해서는 바로 이 대림의 시기, 하느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필요합니다. 닫힌 내 마음의 문을 열고 귀를 열어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그 분의 음성에 따라 그 분이 이끄시는 사랑의 초대에 응답하여 그 분이 마련하신 구원을 온전히 누리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는 시기가 바로 이 대림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오늘 화답송의 시편저자의 외침처럼 너그럽고 자비하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오시는 주님을 합당히 준비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하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시네.”(시편 145(1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