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가 무척 좋아하는 단어 중에 '정통성'(orthodoxy)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한국사회의 유교적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은 부분이기도 합니다. '원조'(元祖 : original)를 강조하고 근본을 중요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식당이나 상품광고에 보면 유독 우리나라는 '원조'라는 말을 강조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교회도 정통이라는 말을 여기저기 잘 쓰고 심지어는 교단들도 '장자교단', 즉 자신들이 정통성있는 진짜 권위있는 곳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닌데(좋은 의미로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으므로) 문제는 이게 심해지면 '나만이 정통(진짜)이고 나머지는 다 가짜거나 모자라는 것이다' 라는 차별과 비하(혐오) 의식이 싹트기 쉽다는 것입니다. '나와 너는 다르지만 서로 인정한다'는 상호 존중과 호혜주의가 자리잡기 어려운 것이 정통성을 강조하는 사회의 단점이라 하겠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강조하고 있는 하나님의 중요한 성품이자 하나님 나라의 대표 이념인 '인애(긍휼)'(히, 헤세드)는 하나님의 호의(kindness)와 신실한 사랑(steadfast love)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님의 중요 성품이자 하나님 나라의 대표 이념인 '정의'(righteous)도 바로 이 하나님의 인애의 바탕 위에서 존재할 정도로 중요한 개념입니다. 그래서 성경도 매우 간략하게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사랑=하나님 나라'라는 공식이 성립됩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교회의 가장 강력한 정체성과 특징으로 '서로(피차에) 사랑하는(존중하고 환대하는) 공동체'를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다른 사람들이 너희가 나의 제자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 13:35)는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도 바울 역시 고린도교회에게 여러 파벌로 찢어져(분당) 서로를 증오하고 싸우는 곳은 교회가 아니라고 강력하게 책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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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은 오늘날 교회들이 서로 교파와 교단으로 찢어져 서로를 무시하고(이단시하고) 배척하는 상황에 대한 중대한 경고입니다. 초기교회의 큰 기준들(대표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고백)에 문제가 없다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마땅한 교회(성도)의 태도여야 하는데 개신교, 거기서도 특히 한국개신교는 한국 특유의 유교적 배타주의가 성경의 가르침과 교훈을 뛰어넘어 있는 상황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기조가 이제 교회 내를 넘어 외부로 넘쳐 사회에서 온갖 혐오와 증오를 부추기는 온상 중 하나가 되고 있는 형국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아니라 어둠과 독이 되고 있는 슬픈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호의는 유대인과 이방인, 남자와 여자, 부자와 가난한 자, 노예와 주인을 가리지 않고 베풀어졌습니다. 초기교회 역시 그랬습니다. 사실 이 부분이 로마 제국 시대에 여러 사회적, 정치적 압박과 핍박 속에서도 수 많은 사람들(특히 하층민과 빈곤층)에게 복음이 전파될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입니다. 물론 한국교회 역시 선교초기에는 이러한 역사적 교회의 '정통성'과 동일한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교회의 진짜 '정통성'은 자신의 기준과 규칙만이 진짜고 나머지는 다 가짜라는 차별적 의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애를 바탕으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서로를 존중하고 환대했던(그러면서도 약자를 차별하고 탄압하며 압제하고 착취하던 불의한 권력과는 타협하지 않았던) 초기 교회의 기준과 모습 속에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바와도 일치합니다.
한국사회의 좋지 않은 관습에 기반을 둔 잘못된 정통성은 버리고 성경과 역사적 교회의 신앙고백,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했던 초기교회로부터 지켜 온 진짜 정통성을 다시 회복하는 것은 오늘의 교회와 성도에게 주어진 시급한 사명이자 더 이상 여기에 따르지 않으면 하나님의 징계(심판)이 멀지 않았다는(구약의 이스라엘을 기억해 보세요) 경고이기도 합니다. 부디 우리 모두에게 다시금 올바른 교회의 모습으로 돌이킬 수 있게 해 주시는 주님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권영진 목사(정언향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