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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수교장로회 아름다운 교회 | |
연합의 3가지 목표 비전 Vision |
①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과의 연합(요15:5,17:11) ② 주님처럼 섬김의 본을 위한 연합(요13:14-15) ③ 선함과 아름다운 실현을 위한 연합(시133:1-3) |
1. 교회 행사 및 소식
➊ 예배후 이어서 8월 제직회가 있습니다. 제직원들은 다 참석해 주시기 바
랍니다.
➋ 백수현군 유아세례 부모 문답식이 유아실에서 있겠습니다.
➌ 다음주 오전예배 때 유아세례식이 있습니다.
- 유아세례자 : 백수현군, 이주원군
➍ 박성희, 오계란집사님 아들 호준군이 어제 토요일에 캐나다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위해서 많은 관심과 기도 부탁드립니다.
갈릴리 호수에 나타난 2천년 전 고깃배
예수는 갈릴리 호수에서 활동하셨다.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거의가 어부와 뱃사람들이었다. 그런 탓인지 신약에는 '배' 이야기가 꽤 많이 나온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볼 때, 십 수년 전 갈릴리에서 찾아낸 2천년 전 고깃배는, 놀라운 고고학 유물이란 값어치 이상으로 깊은 뜻을 지니게 된다.
이 고깃배는 1986년 1월 이스라엘의 루한 (Rufan) 형제가 우연히 찾았다. 유발과 모세 두 사람은 갈릴리 서쪽의 긴노사 (Ginodar)라는 키부츠에 살고 있었다. 그들은 2년째 계속 된 가뭄으로 갈릴리 호수의 물이 많이 줄자, 옛날 동전이나 주울까 해서 바닷가에 나갔었다. 그러다가 타리카에 부근 바짝 마른 모래톱에서 삐죽 나온 물체를 보게 되었다. 찬찬히 살펴보니 오래된 고깃배의 한 모서리가 틀림없었다.
그것은 아주 큰 발견이었다. 인간과 더불어 오랜 역사를 이룩해 온 갈릴리 호수였지만 아직까지 옛날 배가 발견된 적은 없었다. 두 사람은 얼핏 예수가 탔던 배가 아닐까 생각했다. 예수께서는 여러 차례 갈릴리 호수에서 배를 탄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가? 정말로 예수가 탔던 그 배일까? 분명히 아니겠지만, 만에 하나 그 배일 수도 있다. 루한 형제는 이 사실을 이스라엘 문화재관리국에 알렸다. 곧 왁스만과 라베가 달려왔다. 두 사람은 첫눈에 후한 형제의 말이 사실임을 알아차렸다. 배 밑창과 몸체를 쇠못으로 이었으므로 철기시대 이전 배는 아니었다. 장붓 구멍 (장부촉을 끼는 구멍) 과 장부(이쪽 끝을 저쪽 구멍에 맞추려고 얼마쯤 가늘게 만든 부분) 를 쓴 흔적이 배 밑창에서 나타났다. 그것은 2천년전 로마제국이 지중해를 누비던 시절에 배를 만들던 방법이었다.
➎ 이남순 권사님 파티마병원 805호실에 입원중입니다.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➏ 각 가정에 교패가 없으신 분은 비치된 교패를 가져 가셔서 대문에 부착해
주시기 바랍니다.
➐ 헌금위원들께서는 방송실에 비치되어 있는 전용 가운을 착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➑ 예배시간 10분 일찍 와 주시고, 오후찬양 예배시간에도 일찍 오셔서 다함께 찬양해
주시기 바랍니다.
➒ 예배 후 사용한 곳 정리정돈 및 전원상태를 꼭 확인 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시대의 배
아직까지 갈릴리 보트에 대하여 알려진 사실은 거의 없다. 그러나 타리카에 (Tarichae)에서 나왔다는 한 가지 만으로도, 갈릴리 보트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기에 충분하다. 타리카에라는 지명은 '믹달(Migdal)'을 일컫는 옛 그리스어이다. 믹달을 성경에서는 막달라(Magdala) 라고 부른다. 막달라 마리아는 바로 이곳 사람이다. 예수도 막달 근처에 간 적이 있으며, 바닷가에서 또는 배위에서 그를 따르는 무리들에게 고기잡이를 비유로 설교했었다.
오늘날 숱한 순례지들이 갈릴리 보트를 보려고 몰려든다. 그들은 이 배야말로 예수가 탔던 배라고 굳게 믿는다. 갈릴리 보트가 예수님을 태웠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이 배는 예수가 갈릴리를 건널 때 탔던 배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알게 해 준다.
갈릴리 보트가 이처럼 즐거운 꿈만을 갖게 하지는 않는다. 배를 옮길 때 진흙에서 나온 화살촉은, 이 배가 어쩌면 유대인의 슬픈 역사를 간직한 배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아울러 갖게 한다. 기원 67년, 로마군에 맞서 끝까지 싸우던 유대용사들은 마지막 믹달 전투에서 패하여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로 달아났다. 그러나 이들은 뒤쫓아 온 로마군에게 모두 잡혀 죽고 말았다. 피로물든 바다 위에서, 갈릴리 보트는 그 옛날 핏빛 물결 위에 스러져간 또 하나의 마사다였을지도 모른다
2. 노회․총회 행사 및 소식
➊ 총신원 개강예배
-일시 : 9.2(월) 오전 11시
-장소 : 서울 캠퍼스 B103호
이렇게 경제적으로 큰 가치가 있는 데다가 이스라엘의 땅과 기후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고대로 부터 많은 감람나무를 길렀는데, 다윗의 관리 중에는 감람나무를 맡은 사람이 있었다 (대상 27:28)는 기사에서도 우리는 감람나무의 중요성을 짐작 할 수 있다. 지금도 예루살렘, 사마리아 지역을 포함하여 이스라엘 전역에 걸쳐 감람나무를 많이 재배하고 있다. 감람나무 가지가 평화를 상징하는 이유는 노아의 방주 사건 때 노아가 보낸 비둘기가 물고 온 것이 감람나무 새 잎사귀였는데, 이를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다시 평화가 이루어진 것으로 본 것에서 비롯된다.
한편 로마서 11장 17절의 번역 때문에 참 감람나무가 있고 또 다른 종류의 돌 감람나무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나 로마서 17장의 돌 감람나무는 야생 감람나무라는 의미일 뿐 돌 감람나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돌 감람나무는 야생 감람나무로, 참 감람나무는 그냥 감람나무로 번역하는 것이 좋겠다. 식물학자들에 의하면 감람나무는 잘 기르면 1,000년 정도 살 수 있다고 한다. 현재 겟세마네 교회의 정원에 있는 감람나무들은 대략 수령이 500여 년 정도 된 것이라 한다. |
***** 식사 및 설거지 봉사자
<금주> 정지영, 임은득, 자원자
<다음주> 서은영, 임소을, 자원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실 때에 사람들이 종려 가지를 들고 호산나라고 부른 사건 때문에 (요 12:12, 13)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 종려나무 (히브리어 '타마르' 영어 'Date Palm')에 호감을 가지는 듯하다. 목재가 귀했던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지붕을 받치는 기둥이나 간단한 가구를 만드는데 종려나무를 이용했으나 현대는 그 열매만을 사용한다. 현재 이스라엘에는 기후가 상대적으로 더운 요르단 계곡, 사해 주변, 아라바 계곡 등에서 종려나무를 많이 기르고 있다 (사해 가까이 여리고가 종려의 성읍으로 불리웠다. 신 34:3 대하 28:15). 종려나무는 그 키가 곧고 크고, 또 여름을 지나면서 그 열매가 아주 탐스러워지는데, 아가서 7장 7절은 바로 이런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신부의 키가 종려나무 같고 그 아름다운 가슴이 종려나무의 열매 송이와 같다는 말씀이다. 이렇게 종려나무는 우아함이나 축복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에,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 까지 유대 여자들의 이름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다윗의 아들 암논에 의해 추행을 당한 압살롬의 누이 동생 이름이 바로 '종려' (다말=타마르)였다. 유대인들은 매년 가을의 초막절에 일주일 동안 초막을 치는데(모든 사람들이 초막을 치는 것은 아니며, 또 나주 그럴 듯하게 초막을 만드는 것도 아니다), 그 초막의 지붕으로 종려나무 가지를 사용한다. 종려나무는 암나무, 수나무가 있으며 암나무는 5~6년 생부터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50여 년 정도까지는 매년 30 Cm 정도 자라다가 그 이후는 성장이 둔화 되는데, 그 키가 약 20m 정도 되는 종려나무는 수령이 약 100년 된 것이라고 한다. |
**** 주일오전예배 /사회자 / 한용균 목사
묵상기도 ᠁᠁᠁᠁᠁ /늘은혜 성가대
예배의 부름 ᠁᠁᠁ / 요15:7
신앙고백 ᠁᠁᠁᠁᠁ / 사도신경
기원 ᠁᠁᠁᠁᠁᠁᠁ / 사회자
※. 찬송 ᠁᠁᠁᠁᠁ / 70
성시교독 ᠁᠁᠁᠁ / No. 13
찬송 ᠁᠁᠁᠁᠁᠁᠁ / 453장
기도 ᠁᠁᠁᠁᠁᠁᠁ / 김가연 장로
성경봉독 ᠁᠁᠁᠁ / 사사기 2:6-15
특송 ᠁᠁᠁᠁᠁᠁᠁ / 늘은혜 성가대
그러나 불행하게도 삭개오가 올라갔던 나무는 우리들이 알고 있는 뽕나무는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헬라어를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뽕나무라는 단어는 신약성서에서 누가복음에만 두 번 (눅 17:6, 19:4) 나온다. 17장의 나무 이름은 '쉬크미노스', 19장의 삭개오와 관계된 나무는 '쉬코모레아'인데, 개역 성서는 이 두 나무를 모두 뽕나무로 번역했으나 이러한 헬라 어의 차이점을 아는 공동번역성서는 17장의 '쉬카미노스'를 '뽕나무'로, 19장의 '쉬코모레아'를 '돌 무화과 나무'로 번역 했다. 거의 모든 외국어 번역 성서들도 이 둘을 구분하고 있다 (영어 성서의 예를 들면 17장의 '쉬카미노스'를 'mulberry tree'나 'sycamine'으로, 19장의 '쉬코모레아'를 'sycomore'로 번역했다) 그러나 개역 성서만이 이 두 나무 모두를 뽕나무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를 단순히 헬라어의 차이를 모르고 오류를 범했다고 말 할 수는 없다. 두 나무를 똑같이 뽕나무로 번역한 이유를 짐작할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9장의 쉬코모레아가 구약의 쉬크마인데, 70인 역 성서가 이 쉬크마를 헬라어 쉬카미노스로 번역한 것이다. (암 7:14, 왕상 10:27) . 결국 이 주 헬라어 이름 사이에는 옛부터 혼동이 있었다고 짐작 할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이 두 나무의 헬라어 이름이 다르며, 삭개오가 올라간 쉬코모레아가 뽕나무가 아닌 것은 확실하기 때문에, 다른 성서들의 번역을 따라 이 둘을 구분하는 것도 좋을 법하다. 공동번역성서는 삭개오가 올라간 나무를 돌 무화과나무라고 번역 했거니와, 무화과 나무는 헬라어로 '쉬케'로서 '쉬케모레아'는 이와 그 이름만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같은 무화과 속(屬)에 속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성서 식물에 관한 영서를 한국어로 번역한 책에서는 이를 개 무화과나무라고 이름 붙였다. 아모스 선지자가 스스로를 소개하면서 '나는 목자요 뽕나무(쉬크마)를 배양하는 자' 라고 이야기 했는데 (암 7:14), 이 '배양한다'는 표현은 짐승들이 먹을 수 있도록 쉬크마의 열매를 숙성 시키는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아모스 선지자는 목자이다). 그러나 고대에는 이 쉬크마의 열매를 사람들도 먹었다고 한다(현대 이스라엘에서는 먹지 않는다). 그러나 고대 이스라엘과 이집트에 있어 이 쉬크마는 그 열매보다는 목재로서 중요했다. 이 쉬크마는 이스라엘 땅에 자생하는 나무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목재 중의 하나였는데, 이 나무의 중요성은 다윗의 관리 중에 한 사람이 이 나무들을 관리했다는 기사에서 알 수 있다 (대상 27:28). 그리고 이 나무가 상당히 많았다는 것은 구약성서 여러 곳에서도 알 수 있다 (왕상 10:27 대하 1:15, 9:27). |
설교 ᠁᠁᠁᠁᠁᠁᠁ /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봉헌찬송 ᠁᠁᠁᠁᠁ / 452장
봉헌기도 ᠁᠁᠁᠁᠁ / 한용균 목사
교회소식 ᠁᠁᠁᠁᠁ / 김가연 장로
※. 찬송 ᠁᠁᠁᠁᠁ / 85장
유대 광야나 아라바 지역 (사해 남쪽에서 아카바 만 까지의 건조하고 메마른 지역인데, 이를 개역 성서는 아라바라고 음역하거나 사막이라고 번역했다)등 메마른 땅에서만 볼 수 있는 이 싯딤나무 (히브리어 '쉬타', 영어 'Acacia')는 법궤나 성막의 널판, 채, 띠, 상들을 만드는 데 사용 되었다(출 25,26장). 우리는 일반적으로 법궤를 만든 나무로 기역하며 이 나무를 찾는다. 이스라엘의 건조한 지역에서 크게 두 종류가 자라고 있는 이 나무가 아카시아 종류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모든 성서 식물에 관한 책들이 아카시아라고 소개 하고 있으며, 거의 모든 번역 성서들 역시 아카시아로 번역하고 있다(공동번역성서, 표준새번역성서). 다만 개역 성서만이 출애굽기에서 조각목으로, 신명기 10장 3절에서는 쉬타의 복수형 쉬팀을 싯딤이라고 음역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우리 한국 사람들은 아카시아라고 하면 잎이 쉬타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주 크고 봄에 향기로운 흰 꽃이 피지만 쉬타와는 전혀 다른 한국의 아카시아로 생각할지도 모르므로 아카시아로 번역하는 것은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나무에 특별한 종교적인 의미가 있어서 법궤등 성막과 관련된 기물들을 만들었다고 볼 수는 없다. 이스라엘 남쪽의 건조한 지역을 본 사람이면 이 지역 광야를 40여년 유랑한, 출애굽한 히브리인들이 무엇을 만들 만한 크기의 나무로는 싯딤나무밖에는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쉬타의 나무 둥치는 아주 가벼우나 저항력과 내구성이 뛰어난데, 이러한 특징을 살려 70인 역은 쉬타를 15번이나 썩지않은 나무로 번역했다. |
※. 축도 ᠁᠁᠁᠁᠁ / 한용균 목사
폐회 ᠁᠁᠁᠁᠁᠁᠁ / 성도의 교제
※. 표는 일어 서시기 바랍니다.
**** 주일오후예배 ****
오후3시 사회/ 한용균 목사
찬양 ᠁᠁᠁᠁᠁᠁᠁᠁᠁᠁᠁᠁᠁᠁ 주사랑 찬양
기도 ᠁᠁᠁᠁᠁᠁᠁᠁᠁᠁᠁᠁᠁᠁ 조금연 권사
성경 ᠁᠁᠁᠁᠁᠁᠁᠁᠁᠁᠁᠁᠁᠁ 고린도전서 10:1-11
구약성서에 4번 정도 나오고 있는 이 로뎀나무 (히브리어 '로템', 영어 'White Broom')를 우리는 엘리야가 그 아래서 죽기를 간구한 사건 때문에 잘 기억하고 있다(왕상 19:4,5). 엘리야가 이세벨의 분노를 피해 남쪽으로 도망하는 중 브엘쉐바에서 하룻길 되는 광야에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였다고 성서가 전하고 있는데, 오늘날에도 이 지역에서 로뎀나무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욥기 30장 4절의 '대싸리 뿌리로 식물을 삼느니라'는 말씀에서, 이 대싸리가 또한 로뎀나무라는 것을 알기는 쉽지않다. 대싸리 뿌리로 식물을 삼는다는 말은 이 로뎀나무 뿌리를 우리들이 칡 뿌리 먹듯이 먹는 것이 아니라, 그 뿌리로 숯을 만들어 그것을 팔아 먹을 것을 마련한다는 의미라는 설명이 있다. 로뎀나무의 뿌리나 줄기가 이스라엘에서 나는 식물들 중에 숯을 만드는데 가장 좋은 것이다. 오늘날에도 광야에 사는 베두윈 사람들은 이 로뎀나무로 숯을 만든다. 이는 성서를 통해서도 확인 할 수 있는데 시편 120편 4절을 보면 '로뎀나무 숯불'이라는 말씀이 있다. |
가족창 ᠁᠁᠁᠁᠁᠁᠁᠁᠁᠁᠁᠁᠁ 김현우 집사
설교 ᠁᠁᠁᠁᠁᠁᠁᠁᠁᠁᠁᠁᠁᠁ 한용균 목사
습관
기도 ᠁᠁᠁᠁᠁᠁᠁᠁᠁᠁᠁᠁᠁᠁ 한용균 목사
찬송 ᠁᠁᠁᠁᠁᠁᠁᠁᠁᠁᠁᠁᠁᠁ 보혈을 지나
주기도문 ᠁᠁᠁᠁᠁᠁᠁᠁᠁᠁ 오직 믿음으로
성서에 나오는 식물들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쉽게 기억하는 것이 바로 이 쥐엄나무(히브리어 '하롭', 영어 'Carob tree')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구약성서에 그 이름이 한번도 나오지 않고, 신약에 단 한 번 나오는데 (탕자의 비유, 눅 15:16) 누구나가 기억하고 보기를 원하는 나무가 되었으니 말이다. 우리는 누가복음의 '쥐엄나무의 열매는 돼지만 먹는 것인데 그것을 탕자가 먹었다'는 말씀 때문에 돼지의 음식을 사람이 먹은 것처럼 생각하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현재 시장에서 팔 정도로 그렇게 좋은 열매는 아니나 (한두 군데 파는 곳도 있다) 큰 콩깍지 모양으로 생긴 그 열매가 검게 익으면 사람들은 재미로 그것을 먹기도 한다. 성서 시대에는 적의 포위로 성 안의 사람들이 굶주릴 때 비상 식량으로 많이 먹었다고 한다. 열왕기하 6장 25절의 합분태(비둘기 똥)가 바로 쥐엄나무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바로 아람 왕 벤 하닷이 사마리아를 포위 했을 때 사마리아의 상황이 자식들을 잡아 먹는 지경까지 이르자 사람들이 쥐엄나무 열매를 먹었다는 것이다. 한편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먹은 메뚜기가 실은 이 쥐엄나무 열매라는 견해도 있는데 (왜냐하면 유대 광야에 사람이 식량으로 삼을 만큼 메뚜기가 많은 것이 아니었다) 그 두 단어의 히브리어 발음이 비슷하다는 것을 그 이유로 든다. 히브리어로 메뚜기는 '하가빔', 쥐엄나무는 '하로빔'이다. 쥐엄나무 열매가 '성 요한의 빵'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는 것이 이 주장을 뒷받침 한다 하겠다. 쥐엄나무는 이스라엘의 여기저기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 숲을 이루고 있는 곳도 있다. 예루살렘의 경우 거리의 가로수로 많이 심겨져 있다. |
<수요일 예배 및 기도회 2013. 9 04 저녁7시 30분>
설교자 : 한용균 목사
성경본문 : 빌립보서 3:13-14
설교 : 부름의 상
레바논 백향목(히브리어 '에레즈', 영어 'Cedar')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만들 때에 사용한 나무이다 (대하 2:3,8). 이 나무는 솔로몬만 성전과 자신의 왕궁을 만들 때에 사용하기를 원한 나무가 아니고, 고대 근동에서는 누구나가 목재로 쓰기를 원했던 나무이다. 앗시리아의 왕들 역시 원정을 와서 이 나무를 베어다 역시 신전과 왕궁을 짓는데 사용했다.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만들어진 신전이나 성문이 아주 향기로웠다는 앗시리아 왕들의 아카드어 기록이 많이 남아있다. 뿐만 아니라 기록으로서는 인류가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서사시인 길가메쉬의 서사시에도 이 나무가 등장할 정도이다. 하늘의 신들이 레바논의 백향목 숲을 보호하기 위하여 홈바바라는 괴물을 보내어 지키게 했는데, 이를 길가메쉬라는 우르의 용사가 물리치고 백향목을 베어 우르로 가져 간다는 것이 이 서사시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렇게 고대 근동의 모든 왕들이 왕궁이나 신전을 짓는데 사용 하기를 원할 정도로 좋은 목재인 만큼 과연 레바논 백향목은 그 키나 모습이 아주 훌륭하다.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레바논이 그 주산지로 이스라엘에서는 자생하지 않는다. 레바논 백향목은 1400m 에서 1900m 정도 되는 산지에서 자라는 나무인데, 지금은 레바논에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현대 이스라엘에는 예루살렘이나 네오트 케두밈(성서 식물원이라 할 수 있는 곳)에서 볼 수 있다. 이 나무는 그 모습 때문에 교만, 자만의 상징으로 이야기 된다. 레위기 14장 1절 이하를 보면 문둥병 환자가 그 병이 나은 후 제사장에게 가져 가는 것이 있는데, 그 중에 백향목과 우슬초가 있다 (성서의 문둥병은 현대의 나병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악성 피부병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였기 때문에 나을 수 있었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하나님께 교만한 이유로 인해 피부병이 생긴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 병이 나았다는 것은 교만을 회개하고 다시 겸손해졌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병이 나았음을 선고받기 위해 제사장에게 나아갈 때 교만의 상징인 백향목과 겸손의 상징인 우슬초를 가져갔다. 그러나 앞에서 밝힌대로 이 백향목은 이스라엘에 자생하는 나무가 아니라 일반인들이 쉽게 구할 수가 없기 때문에 레위기 14장의 백향목은 레바논 백향목이아니라 다른 나무라는 설명도 있다. 이들에 의하면 레바논 백향목으로 나온 경우에 한해서만 우리가 이야기하는 백향목이며, 그냥 백향목으로 언급된 경우는 이스라엘에 자생하는 비슷한 다른 나무라는 것이다. 한편 실제로 이 나무를 보고 나면 누구든지 머리 속에 그리던 모습과는 다르다는 말부터 하게 되는데, 에레즈라는 이 나무를 공동번역성서은 송백으로 번역했고 성서 식물학 책에는 실삼 나무라고 소개한 것도 있다 |
***** 다음주 예배 봉사위원
주일오전기도 : 이덕기 장로
주일오후기도 : 나명자 권사
주일오후찬양 : 김정윤 집사
**** 중보기도하기
이스라엘에는 우리가 겨자라고 이야기 하는 식물이 있는데, 학명이 Sinapis abla (직역하면 흰 겨자). 일반 명이 '보통 겨자' 또는'이집트 겨자'이다. 그런데 이 Sinapis abla는 1년 생 풀로서 그 키가 겨우 80 - 100 Cm 정도 자란다. 그러므로 이것을 예수님께서 염두에 두신 겨자로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성서 식물학자들은 학명으로 Brassica nigra (직역하면 '검은 배추'), 일반 명으로 '검은 겨자' 인 풀을 예수님이 말씀하신 겨자로 생각하고 있다.
이 Nicotiana glauca가 나무이고 그 씨가 정말 작기 때문에 예수님의 비유와 어울리는 듯이 보이나, 이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담배와 관련이 있는 나무로서, 예수님 당시에는 없던 나무이다 |
① 성도들의 삶과 가정과 생업과 재정 가운데 함께 하시고, 늘 하나님의 보
호와 인도하심 가운데 살아가게 하옵소서.
② 온 성도들이 성령충만하여 주의 뜻을 분별하고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며
거룩한 삶에 힘쓰고 능력있는 전도자로 쓰임받게 하소서.
③ 교회안 밖으로 회심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④ 질병으로 고통받는 분들의 치유,건강 회복,믿음과 예배생활의 회복을 위하여
⑤ 교회를 멀리 한 성도와 군복무중에 있는 형제, 유학중에 있는 성도를 위해
⑥ 심방을 통해 모든 가정이 축복되게 하소서.
⑦ 담임목사의 목회사역을 위해
이스라엘이 푸른 초장과 아름다운 들 꽃으로 뒤덮여 아름다운 때도 있다. 우기가 거의 끝날 무렵인 3월, 특히 중순경에는 네게브나 사해 지역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칠고 메마른 유대 광야조차도 푸르러 지고 노란 들꽃, 빨간 들꽃이 수천 송이씩 무리 지어 피는 등 아주 아름답다. |
➇ 나라(안보,평화,전쟁 막아주심,경제회복,사회안정)와 북한(무력도발,공산체제,
신앙자유,복음으로 통일)과 한국교회와 재건교단의 신앙의 회복,하나됨,복음능
력회복을 위해
➈ 새로 등록한 교우들이 잘 정착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맛보며
경험하게 하소서.
➉ 임신중에 있는 성도와 태아의 건강을 지키시고, 잘 자라서 순산케 하소서.
***** 2013년 9월 추천신앙도서
이것이 성공이다! / A.W. 토저 / 규장 / 13,000원
현재 시나이 반도에는 25만여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중 약 60%가 아랍계열의 유목민인 베두윈 족이다. 이들 베두윈들은 전통적인 방식을 좇아 물과 꼴을 찾아서 광야를 이동하고 있으며, 대추야자, 올리브, 귀리등을 재배하여, 식량과 가축들의 사료로 쓰기도 한다. 이들을 규제하는 법은 이집트 국법이라기 보다, 그들만의 부족법이다. 이들은 정착을 위한 농경이나 집을 짓지 않으며, 임시 거주처는 야자수잎 등으로 만들어 지는데 물론 지붕없는 구조로 지어진다. 엘 아이리쉬 지역이나 바란 오아시스 지역의 유목민들은 전통적인 방식이 아닌 반 유목민 형태를 지니고 있다. 시나이 반도의 여기저기에서 중동전의 전흔을 찾아볼 수 있는데, 수에즈 운하 근처의 높은 모래 둔덕들은 군용 참호를 만들었던 자리들이다. |
***** 2013년 9월 요절 암송 요절(사랑) *****
★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
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
<요한일서 4:9>
북부 시나이
이집트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시나이 반도 북단의 지중해 연안을 따라가는 길로서, 이 길을 팔레스타인 길, 블레셋 길, 또는 바닷길 (Via Maris)이라고 한다. 또한 이길을 고대 이집트에서는 'Way of Horus'라고 하여 군용도로로 활용하였다. |
*****뜨거운 기도....
- E.M 바운즈 목사 -
열정이 없는 기도는 현안에 아무것도 투자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투자할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런 기도는 빈손으로 나타난다. 빈손일 뿐만 아니라 아무 의욕이 없는 손이다. 십자가를 붙잡을 줄 모르는 손이다. 열정이 없는 기도는 그 안에 마음이 담겨 있지 않다. 그것은 공허한 것이요 내용물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용기이다. 진정한 기도라면 그 안에 마음과 영혼과 생명이 들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소리가 천국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강력해야 진정한 기도이다. 기도의 열정으로 충만했던 사람의 전형들 중에 하나는 사도 바울이다. 그의 간구는 뜨겁게 불탔다. 그의 간구는 그의 갈망의 대상에 집중되었고, 그것을 허락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을 향했다. 기도는 빨갛게 타올라야 한다. 응답 받는 기도, 역사하는 힘이 많은 기도는 역시 뜨거운 기도이다. 차가운 마음은 기도를 방해한다. 기도는 겨울처럼 냉랭한 분위기에서는 살아남을수 없다. 차가운 분위기는 기도를 얼어붙게 만들고, 간구의 샘을 메마르게 한다. 기도의 열차를 달리게 하는 것은 불이다. 뜨거운 마음은 기도에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왜냐하면 뜨거운 마음에서 열정이 솟아나기 때문이다.
역사 속의 시나이
불모의 땅이면서도 인류 역사상 그토록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은 드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아랍과 이스라엘 간의 1948년 ~ 1949년 에 1차 , 1956년에 2차 , 1967년에 3차 , 1973년 10월 4차에 걸친 전쟁의 격전지로서도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은 이 시나이 반도를 점령하고 있다가 1979년의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조인한 이후에 이집트에 반환하였다. 반환은 일시에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1982년 4월에 타바를 제외한 다른 지역이 반환되었고, 1989년에는 타바도 반환되었다. 현재 타바 국경지역에는 일부의 유엔 평화 유지군이 주둔하고 있다. |
***** 예수님에 대한 의심 (요 4:11)
오스왈드 챔버스의 글 (75)
우리들 각자는 특별한 상황에서 예수님께 대하여 이렇게 생각합니다. ‘설마 그렇게까지 기대하시지는 않겠지.’ 예수님에 대한 이러한 의심은 우리가 하나님과 거래하려고 할 때 빗나간 질문을 하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어디서 돈을 구할 수 있지? 어떻게 주님이 나를 돌보실 수 있다는 말인가?’ 또는 이러한 의심은 우리의 상황은 주님마저도 해결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라고 말하는 것은 쉽지요. 그러나 먹고는 살아야지요. 주님께는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주님이라 하실 지라도 지금 당장 우리에게 대책을 마련해 주실 수는 없으시지요.” “나는 예수님을 의심하지 않지만 내 자신에 대하여 의심스럽다”는 경건한 속임수를 주의하십시오. 자신에 대하여 의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없는 지 정확하게 압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그렇게 하실 수 있는지 의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주님께서 하실 수 있다는 생각에 상처를 받습니다. 의심은 주께서 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실지를 스스로 고민하게 되면서 생겨납니다. 의심은 내 속의 깊은 곳에 있는 열등의식에서 솟아 오릅니다. 만일 내 속에서 이러한 의심을 발견하게 되면 그 의심을 빛으로 끄집어 내어 고백하십시오. ? “주님, 당신에 대하여 제가 의심하였습니다. 주님의 지혜를 믿지 않고 내 꾀만 믿었습니다. 내 이해의 한계를 초월하시는 주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4세기 초 이집트의 막시미누스 황제 당시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심하였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캐더린은 용모와 학식이 출중했다. 이 사건 이후 시내산 수도원이 성 캐더린 수도원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 이 수도원의 역사적 배경은 3세기 중엽부터 수도사들이 찾기 시작했고, A.D. 330년에 헬레나 모후가 불붙는 떨기나무 자리에 성모 마리아에게 헌납하는 교회를 짓는다. 이 교회 제단 뒤에는 불붙는 떨기나무의 기념 에배당이 있고 이곳은 지금도 반드시 신발을 벗고 들어간다. 변화산에서의 예수님 모습을 나타낸 교회 전단 중앙에 있는 모자이크는 왼쪽부터 엘리야, 요한, 예수님, 베드로, 야고보, 모세의 모습이 새겨져 있고, 이 둘레에는 12 제자, 12 예언자, 건축 당시의 수도원장 롱지너스, 집사 요한등 모두 26명의 모습이 둘러져 있다. |
2013년 9월 01일 창원 아름다운교회(055-283-3450)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49-7
아름다운교회/한용균목사
나일강은 근원이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빅토리아 호수에서 시작하여 열대 초원을 흐르는 백나일과 에티오피아의 산악의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들이 모여 이루는 청나일이 수단의 카루틈 남방에서 합류하여 이집트의 젖줄이 된다. 여기부터는 전혀 유입되는 물 없이 곧장 지중해 까지 북으로 흘러간다. 아프리카 중부 고원의 봄비는 몇 달 후 이집트를 범람하는 큰 홍수로 변하는데 대개의 홍수는 수해를 동반하기 마련이지만, 수백 Km 를 흘러온 나일강은 카이로 북방에서 둘로 나누어져 나일 델타란 넓은 대평원을 만든다. 이렇게 형성된 땅이 한때는 세계의 곡창이라고 알려진 비옥한 땅인데, 이것은 홍수가 싣고 오는 아프리카 내륙 지방의 부엽토가 서서히 침전 되면서 자연의 퇴비를 깔아주는 결과이다. 이와같이 해마다 부엽토를 더해 가면서 이 비옥한 땅은 검은 색을 띠게 되었고 그래서 고대 이집트인들은 검은 땅이란 뜻에서 케미(KEMI)라고 불렀다. 이처럼 나일강은 자연의 선물을 남겨 주면서 서서히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는 것으로 약 6500 Km의 장구한 여행을 마친다. 연중 행사처럼 매년 어김없이 범람하여 수해가 아닌 수해를 안겨주는 나일강을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모든 것의 근원으로 보았고 또한 숭배하였다. 고대 이집트의 계절은 3계절로 되어 있는데 이것 역시 나일강의 범람과 연관 된 것으로 홍수가 나서 델타 지역이 물에 잠겨 있는 7-10월은 농한기, 물이 빠져나간 11-2월은 농번기, 그리고 3-7월은 추수기이다. 이렇게 수천 년을 해마다 범람하는 나일강을 사람의 힘으로 조종해 보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계속 되어서 19세기초 케네디 모하멧 알리 (Khedive Mohammed Ali)는 이집트 현대화 작업을 시작하여 나일강을 알렉산드리아의 식수원이 되게 하였고 카이로 북쪽에 갑문장치를 설치하여 많은 농토를 확보하기도 하였고, 1972년에는 아스완 하이 댐을 만들어 내년 범람하던 나일강은 인간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강변의 많은 땅들은 전천후의 농토가 되었다. 그러나 나일강의 선물인 천연 퇴비는 영영 잃어 버리게 되었다 |
마라나타(예수님이 다시 오십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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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알무알라카 교회의 부속건물로서 AD 4세기에 지어져 AD 9세기까지는 미카엘 교회(성 미카엘교회) 또는 가브리엘 천사 교회로 불렸었다. 이집트의 이슬람 왕조인 이븐 툴룬 왕조 (AD 868 ~ 905) 때인 이집트의 제 56대 교황 (주교) 미카일 3세 때 아흐메드 이븐 툴룬이 '이븐 툴룬 모스크' 건축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기독교도들에게 금 2만 디나르의 AD 1115년 예루살렘에서 랍비 아브라함 벤 에즈라가 방문한 이후에 재건하였기 때문에 이 이름이 유래되었고, 당시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까닭에 아라베슼크 문양을 하고 있다. 이후 이 회당은 현대의 아랍, 이스라엘 간의 갈등이 심화되던 AD 1965년 까지 천여년 동안 유대인 공동체의 중심지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현재 이집트 잔존 유대인들의 수는 100여명 정도이고 이들의 약간이 시내 중심지의 샤리아 아들리 (아들리가)에 있는 회당에서 모이고 있다. 이 회당이 다시 지어진 당시에는 주위에 29개의 사원과 20개의 예배당이 존재하고 있었다. 133,000명의 무슬림들과 10.000명의 콥틱 기독교인, 42명의 유대인들이 올드 카이로 지역에 살고 있었다. 종교가 서로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가족 공동체처럼 살았었다고 기록들은 말하고 있다. 이 자리에 세워졌던 최초의 회당 건설은 BC 350년경이며 당시의 이름은 선지자 예레미야 시나고그였다. 그러던 것이 BC 30년 경에 로마에 의해 파괴되었다. 아랍에 의해 로마의 통치자로부터 탈환된 이 지역에 콥틱 교회에서는 새로이 예배당을 지었던 것이다 |
•“하나님의 자녀임을 나타내는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특징은 바로 ‘기도’이다.”- E.M 바운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