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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쌀쌀해지고 배춧값이며 고춧값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걸 보니 김장철이 다가오나 봅니다. 김장, 하니 제가 사랑에 빠졌던 김치의 추억이 생각나 몇 가지 사진과 이야기를 긁어 모아 보았습니다. 직업상 소위 '셀러브리티'라고 하는 분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김치와 관련된 분들이 세 분 계십니다.
<1> 가장 처음 제게 충격을 안겨주신 분은 도예가 신경균 선생입니다. (사진 출처 : 디자인하우스/행복이가득한집) '이도자완'으로 불리는 조선시대 사발을 완벽하게 재현해낸 것으로 유명한 신정희 선생의 3남으로(그의 아들들 넷 모두 도예가가 되었다죠) 아들 중에서도 가장 아버지의 작품성을 많이 닮은 것으로 평가되는 분이죠. '모름지기 그릇을 만드는 사람은 음식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어, 그릇뿐 아니라 요리도 곧잘 하는 분입니다. 사모님인 임계화 여사 역시 요리와 염색 등으로 유명하고요.
신경균 선생이 만든 그릇들. (사진출처:디자인하우스/행복이가득한집) 어쨌거나, 그 부부를 찾아뵌 날 저같은 것도 손님이랍시고 거하게 한상 내오셨는데 정말 밥상을 보고 입이 떡 벌어지더군요. 마당에서 갓 뜯은 상추, 쑥갓, 깻잎 등의 온갖 쌈과 장독대에서 조금씩 꺼낸 17종의 장아찌들.. 그리고 주인공처럼 가운데 놓여있던 김치. 그 김치에 젓가락을 댄 순간, 저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발을 디딘 것이지요. 어릴 때부터 워낙 신김치를 좋아했지만, '세상에 이런 맛이!' 하고 경탄이 절로 날 정도의 그 맛이란! "선생님, 도대체 이 김치의 정체가 뭔가요?" 휘둥그레진 눈으로 묻는 저에게 그는 절망과도 같은 말을 친절히도 내뱉더군요. "OO군 고랭지에서 수확한 최상급 배추를 OO지역의 천일염으로 절인 뒤 OO지역의 고추로 버무려 김치를 담근 다음, 담양 OO 근처의 대나무 숲에 묻어두고 2년간 숙성시킨 묵은지" 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습니다. 아...! 이 무슨 끔찍한 고문이란 말입니까? 그말인즉, 오늘 이 자리가 아니면 두번 다시 먹을 수 없는 김치라는 뜻이지요. 그뒤로 몇달간 신경균표 묵은지 상사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았습니다. 어떤 김치나 반찬을 먹어도 그날의 그 김치 맛이 아니었거든요. 이대로 평생 더벅머리 총각 황진이 앓듯 앓아야 하나... 한탄하고 있을 무렵, 또다른 김치 명인이 나타났어요.
<2> 그분이 바로 봉우리 김치 이하연 선생입니다. 역삼동 특허청 근처에서 김치 한정식을 운영하며 각종 김치 관련 대회에서 여러 번 수상을 한 분이지요. 봉우리 김치의 덕소 김치/장 저장고에서 (사진출처:디자인하우스/photo by 전재호) 미모가 뛰어난 데다 한복 맵시가 뛰어난 멋쟁이(드라마 <황진이>에 협찬했던 한복 디자이너에게 늘 한복을 해다 입으시는....)라서 온갖 매체에서 유난히 러브콜이 잦은 분이며, 영화 <식객2-김치전쟁>에서 김치 관련 고문을 맡기도 했지요. 과연 김치 전문가라 그런지 이분의 김치 내공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그동안 신경균 선생 때문에 앓았던 김치 상사병이 이분의 김치를 먹고 나았으니까요. 더욱 기쁜 소식은, 이하연 선생의 김치는 원한다면 얼마든지 사먹을 수 있다는 점이었죠! (물론.. 얼마든지 사먹기엔 가격이 꽤 셉니다.. 쿨럭;) 이분께 배운 것이... 1. 좋은 김치는 좋은 재료에서 시작된다 2. 우리 밥상에서 김치는 조연이 아니라 주연이다 3. 추억이 깃들어야 진짜 김치다 라는 것입니다. (사진출처:디자인하우스/photo by 전재호) 이분의 김치 역시 신경균 선생의 그것 못지 않게 전국의 내로라 하는 챔피언들만 재료로 해서 만듭니다. (사진출처 : 네이버 블로그 펌 by happysong) 이분 때문에 알게 된 재미있는 김치인 맨드라미 물김치.
<3> 한국 음식을 이야기할 때 꼭 등장하시는 이분....
궁중음식연구원의 한복려 선생님이십니다.
김치란 임금부터 서민까지 두루 먹는 음식인데, 궁중의 김치는 뭐가 다를까 참 궁금했었거든요. 사람들이 농담삼아 하는 말처럼 산삼 깍두기라도 만드는 걸까, 하고 유심히 지켜보았는데 답은 참 간결하더군요. '가장 좋은 재료로 재료의 가장 좋은 부분을 쓴다'는 것이었어요. 즉, 좋은 재료로 정성껏 만들면 누구든 임금처럼 먹을 수 있다는 단순하면서도 뜻깊은 진리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김치 '석박지'. (사진 출처 : 프락치 ^^) 이것은 궁중에서 먹든 백김치 종류로 모양이 석류처럼 벌어졌다 해서 '석류김치'라 불립니다. (석류는 이미지를 위해 뿌린 것일뿐 실제로는 들어가지 않아요)
세상은 넓고, 김치 종류는 많습니다. 다가오는 김장철, 김치 맛나게 담그시고요 ^^ 개인적으로 이하연 선생님이 이야기하신 '추억이 깃들어야 진짜 김치다'라는 말씀을 전하고 싶네요. 맞벌이 때문에 아무리 바쁘더라도 아이에게 '어머니가 직접 찢어주시던 김치'에 대한 추억을 심어주라고 하시던 말씀... 함께 김치를 만들거나, 갓 버무린 김치를 하나 집어내어 아이들 입에 넣어주는 풍경... 이런 것들이 김치를 두고두고 맛있게 만든다고요. 김치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유산균은 요구르트의 유산균보다 병원균을 죽이는 효과가 훨씬 크고 아토피나 비만 예방에도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죠. 올해 배추가 너무 풍년이라 가격이 폭락한다고 해요. 김치 많이많이 담가 먹자고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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