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단비가 내리던 5월의 어느 날. 여의도 월드비전 1층에 자리한 조그만 사무실에 떠들썩한 웃음과 눈물이 가득하다. 그곳에서 마주한 낯익은 얼굴. 월드비전과 7년여의 세월을 함께해온 이광기 홍보대사이다. 후원자님들께 생생한 나눔 이야기를 전하려 일산에서부터 직접 운전해 달려온 이광기 홍보대사. 그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진심이 담긴 한 마디 한 마디에 함께 있던 사람들의 마음이 울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조용히 그의 목소리에 빠져든다. 이곳이 인터뷰 자리라는 것도 잊은 채.
“2014년 이후, 오랜만에 아프리카 우간다를 다시 찾았어요.”
“떠나기 전부터 큰 부담이 되었어요. 후원자님과 아이들의 좋은 ‘이음’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 제가 꾸며진 마음과 행동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전하면, 보시는 분들도 분명 눈치채실 거라 생각해요. 어떤 행동과 말을 하든 그 안에 살아 움직이는 진심이 있어야 하죠. 이번에도 억지 감동이 아닌 자연스러운 진심을 영상에 담고 싶었어요. 그 마음이 시청자분들에게 잘 전달되면 좋겠어요.”
지난 4월, 이광기 홍보대사는 SBS 나눔방송 ‘희망TV’ 촬영을 위해 우간다로 향했다. 월드비전 직원들과 함께 한 2년만의 아프리카 방문이다. 이야기를 시작하려니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의 얼굴이 하나 하나 스쳐 가는지 그의 표정이 복잡해진다.
아이들과의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 생각에 잠긴 이광기 홍보대사
“아이들을 동정하는 시선으로 보지 말고 깊이 공감하고 오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어요. 그러다 보니 몸과 마음이 더욱 힘들었던 것 같아요. 촬영 기간 동안 총 6가정의 아이들과 만났어요. 모든 아이와 깊이 대화하며 그 아픔을 체휼하려 하다 보니 나중엔 조금 지치더라고요.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그때 찍은 영상과 사진들을 보니까 아이들과 진심으로 교류한 게 너무 잘 담겨져서 감사했어요. ‘방송을 보시는 분들께도 이 마음이 잘 전달되겠구나’ 싶었죠.”
짧은 기간이었지만 깊은 인연을 맺고 온 여섯 가정의 아이들. 그중에서도 특히 이광기 홍보대사의 마음을 울린 아이는 열입곱소녀 샤론이었다. 다섯 살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은 샤론. 남겨진 4명의 동생과 조카들에 두살배기 갓난아기까지. 샤론은 스스로를 챙기기에도 벅찬 나이에 다섯 아이를 돌보는 가장이 되었다.
두살배기 아이와 함께 매일 일터로 향하는 샤론
“샤론의 손에서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어요.”
“자신의 꿈은 뒤로 한 채, 다섯 아이들의 학비를 벌기위해 새벽부터 일을 한데요. 힘들 법도 한데 ‘동생들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며 다부지게 이야기하더라고요. 제 딸아이와 고작 한 살 차이인데… 아이의 손을 맞잡는 순간 감정이 복받쳤어요. 가녀리고 작은 손이 어찌나 거친지. 그 손을 꼬옥 잡고 이렇게 말해줬어요. ‘그동안 너무 힘들게 살았구나. 너와 동생들이 환하게 웃는 날이 분명 올거야. 절대 희망을 잃지 마. 그리고 너희들 곁에서 나와 많은 사람들이 응원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줘.”
자꾸만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인터뷰의 인트로는 조용하게 시작하고 싶었는데’라며 멋쩍게 웃는 이광기 홍보대사. 아프리카에서 이미 넘치도록 눈물을 쏟았는데도 여전히 남아있나 보다. 오랜 시간 내전을 앓아온 우간다에는 샤론처럼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아이들이 많다. 겨우 1만 2천 원 남짓인 학비가 없어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도 태반. 더욱 심각한 문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 ‘노딩 신드롬(Nodding Syndrome)’이다. 계속해서 이유 없이 고개를 끄덕거리고 점차 몸이 말라가며 기절과 발작을 반복하는 질병, 노딩 신드롬.
“가장 충격적이었던 순간은 노딩신드롬을 앓고 있는 아이들을 만났을 때에요. 상태가 가장 심각했던 15살 패트릭은 정말 몸이 빼빼 말라 있었어요. 어찌나 가볍던지. 패트릭의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욱 마음이 아팠죠. 아이의 아픔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엄마의 찢어지는 마음이 한 아이의 아빠로서 너무 느껴져서…”
“더욱 슬픈 사실은 단돈 1,500원이 없어서 약을 살 수 없다는 거였어요. 희귀 전염병이다 보니까 치료 방법은 없지만, 증상을 완화시켜주는 약은 있는데… 믿기지 않는 현실에 그저 아이를 품에 안고 기도했어요. ‘어린 생명들의 아픔이 치유되길 바랍니다. 부디 아이가 희망을 잃지 않길. 아이의 엄마가 지치지 않고 끈을 놓지 않길 기도합니다.”
페트릭을 소중히 품에 안은 이광기 홍보대사의 모습
“티없이 맑은 하늘이 원망스러웠어요.”
“요즘 우리나라는 미세먼지 때문에 난리이죠. 아프리카 우간다의 하늘은 어찌나 맑고 넓은지 놀라울 정도예요. 어떨 때는 막 화가 나더라구요. 너무나도 티없이 맑은 하늘 아래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삶은 왜이리도 힘든 건지. 아이들도 저 하늘처럼 맑고 환하게 살아가면 좋을텐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아이를 잃는다는 게 얼마나 무너져내리는 아픔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이광기 홍보대사. 그렇기에 이번 우간다 방문은 더욱 특별했다. 먼저 떠나보낸 아들 석규가 더욱 떠올랐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조금 일찍 천국에 갔지만, 더없이 환한 모습으로 그에게 나눔의 씨앗을 선물한 작은천사 석규. 아이는 사랑하는 아빠의 꿈 속에 나타나 그의 마음을 뜨겁게 울렸다. ‘아빠, 이제 내 친구들을 도와주세요.’ 이 한마디가 바로 이광기 홍보대사가 오늘도 변함없이 나눔을 실천하는 힘이다.
“저를 통해서 그리고 이번 방송을 통해서 많은 분에게 공감의 마음이 피어나길 바래요. 동정과 연민을 뜻하는 ‘심파티(sympathy)’와 공감의 ‘엠파티(empathy)’는 딱 한 글자 차이에요. 아주 작은 차이이죠. 우리의 마음도 이렇게 조금씩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아프리카 아이들 참 불쌍하다’가 아니라 ‘나처럼 우리 아이처럼 꿈과 희망을 품은 꽃봉오리들이 지구 반대편에 있구나’ 알아주시고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 마음들은 분명 지구 반대편 아이들에게도 전해질 거에요.”
‘진정한 나눔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마지막 질문에 “아직 못다 핀 꽃봉오리들이 예쁜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내가 가진 영양분을 나누는 것”이라고 답한 이광기 홍보대사. 그의 따스한 마음은 전 세계 아이들뿐만 아니라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