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문헌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 칸딘스키의 예술론 / 칸딘스키, 열화당, 1983
흰색은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는 침묵이다. 그것은 젊음을 가진 無요, 태어나기 전부터 無인것이다.9
메테를링크는 원칙적으로 순수히 예술적인 방법을 통해서 자기의 분위기를 창조해내었다. 그의 물질적인 수단(음침한 산, 달밤, 늪, 바람, 올빼미의 울음)은 실제적으로 상징적인 역할을 하며 내면적인 소리를 내도록 해 준다.
메테를링크의 중요한 기술적인 무기는 언어이다. 언어는 내면의 소리이다. 이 내면의 소리는 일부가(아니 어쩌면 대부분이) 지시된 대상에서 싹터 나온다. 그러나 만일 대상이 보이지 않거나, 다만 그 이름만 들릴 경우에 듣는 사람의 마음은 비물질화된 대상의 추상적인 인상만을 받아들이고, 바로 그것에 일치하는 감동이 '마음'속에 일어난다. 그리하여 초원 속의 푸르고, 노랗고, 붉은 나무는 우리가 나무라는 단어를 듣자 곧 마음 속에 느끼는 실체적인 상태, 즉 우연하게 나무라는 형태로 실체화한 존재인 것이다. 38,39
색깔은 감수성이 그다지 발달하지 않은 심성에 대해서는 순간적이고 피상적인 인상을 남길 뿐이다. 그러나 가장 간단한 효과조차도 그 질에 있어서는 다양하다. 빛과 밝은 색, 더욱이 따뜻한 색들은 강하게 눈을 끈다 .주홍색은 인간을 언제나 매혹시키는 불꽃처럼 자극한다. 짙은 레몬색을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마치 고음의 나팔소리가 귀를 해치듯이 눈에 고통을 준다. 눈은 불안하여 얼마 동안은 응시를 계속할 수 없게 되어 푸른색이나 초록색에 몰두하면서 쉬고자 한다.
그러나 더 예민한 심성을 가진 사람에게 이러한 색깔들의 효과는 더욱 깊게 작용하고 강렬한 동요를 준다. 그리하여 우리는 색깔들을 응시했을 때에 생기는 제 2의 결과, 즉 색깔들의 심리적인 효과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심리적인 효과는 그에 상응하는 정신적인 동요를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물리적인 인상이 중요하다는 것은 이러한 정신적 동요에 이르는 첫걸음이기에 그러한 것이다. 52
따뜻한 붉은색은 자극적인 반면, 고통을 야기시키거나 흐르는 피에 대한 연상 때문에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경우에서 색깔은 상응하는 물리적 감각을 일깨우는데, 이 감각은 틀림없이 심성에 예민한 영향을 준다.
만일 이 경우가 타당하다고 하면, 색깔이 눈뿐만 아니라 그밖에 다른 감각들에 미치는 물리적 효과를 연상에 의해서 매우 쉽게 정의할 수 있겠다. 그리하여 우리는 밝은 노란색이 레몬의 맛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시다는 인상을 준다고 말할 수 있다. 53
시각은 미각뿐만 아니라 그 밖에 다른 감각과도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우리는 색깔들을 쓰다듬듯이 느끼고 싶어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색깔들에 대해 거칠다든가 또는 찌르는 듯하다고 묘사하기도 하였고, 또 어떤 색들은 벨벳처럼 촉감이 부드러운 것으로 묘사하기도 하였다.(예컨대 어두운 군청색, 크롬 게통의 초록색, 꼭두서니풀색의 진홍색 등을 말한다.) 따뜻한 색과 차가운 색에 대한 차이조차도 이러한 구분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다. 어떤 색깔들은 부드럽게(예컨대 꼭두서니풀색의 진홍색) 나타나고, 또 다른 색들은 딱딱하게(예컨대 코발트 녹색, 청록빛 녹색) 나타나기 때문에 튜브에서 새로 짜낸 색깔들이 '마른'것처럼 보인다.
'향기 짙은 색깔'이란 표현을 자주 접하기도 한다.
색깔의 소리는 매우 정확하여 가령 밝은 노랑색을 저음(低音)으로, 또는 어두운 진홍색을 고음(高音)으로 표현하는 사람을 찾아내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연상에 의하 설명은 여러 가지 중요한 경우에 있어서 우리는 만족스럽게 하지 못할 것이다. 색채요법(色彩療法)에 대해서 들어 본 사람들은 .54
색깔 있는 광선이 전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 다른 색깔들이 다양한 신경병 치료에 적용되어 왔다. 붉은빛이 심장을 자극하여 흥분시키는 반면, 푸른빛은 일시적인 마비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 만일 이와 같은 작용의 효과가 동물이나 식물에서 있는 그대로 관찰 될 수 있다면 연상 이론은 부적당한 것으로 증명된다. 어쨌든 우리는 이와 같은 주제가 현재로서는 개발되지 않았으나, 색깔이 물질적인 유기체로서의 육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이 자명하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연상이론은 심리학 분야를 이 이상 더 만족시키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색깔은 심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색깔은 피아노의 건반이요, 눈은 줄을 때리는 망치요, 심성은여러 개의 선율을 가진 피아노인 것이다. 예술가들은 심성에 진동을 일으키도록 하기 위하여 합목적적으로 건반을 두드려 연주하는 손과 같다.
그러므로 색채조화가 인간의 심성을 합목적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데 마땅히 궁극적인 근거를 두게 됨은 명백한 일이다. 이것은 내적 필연성의 원칙을 나타내고 있다. 55
색깔의 소리 - 이 분야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이론과 실험이 행해졌다. 여러 가지 유사성(물리학적 공기 진동과 빛의 진동)에서 우리는 회화에서도 대위법을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것이다. 다른 한편 실험을 통해서, 음악적 소양이 없는 아이들이 색깔(예컨대 꽃)의 도움을 받아 멜로디를 외울 수 있도록 하는 데 성공하였다. 사챠르진 운코브스키 부인은 이 분야에 대해 여러 해 동안 연구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음을 자연의 색깔로써 묘사하고, 자연의 소리를 그릴 수 있는, 말하자면 음을 색채적으로 보고, 색을 음악적으로 들을 수 있는' 특수하고도 정확한 방법을 만들어내었다. 54각주
색깔의 따뜻함 또는 차가움은 일반적으로 노랑 또는 파랑으로 향하는 경향을 말한다. 74
완전히 정반대적인 운동으로서의 파란색은 노란색에 제동을 건다. 이때 파란색을 첨가할 경우 종국적으로 두 개의 대립적인 운동은 서로 무화되고 완전한 부동과 정지상태가 생겨난다. 여기에서 초록색이 생겨나는 것이다. 77
노란색이 직접 관찰될 경우에 그 색은 인간에게 불안감을 주고, 찌르고, 흥분시키고, 색깔에 표현된 폭력의 성격을 나타낸다. 그리하여 이것은 끝내 대담하고 끈질기게 감정에 영향을 주고 만다. 77,78
노란색은 전형적인 지상의 색깔이다. 노란색은 우리에게 깊은 심도감을 줄 수 없다. 파란색을 써서 찬 색으로 만들 때에는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병적인 색조를 띠게 된다. 노란색을 인간의 정신상태와 비교해 보면 그것은 광기를 색채로 표현한 것 같은 인상을 주지만, 우울증이라든가 심기증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발작적인 광포, 맹목적인 착란증, 광조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78
푸른색은 전형적인 하늘색이다. 푸른색이 극도로 심화되면 안식의 요소가 생겨난다. 검은색으로 침잠하면서 푸른색은 인간적이라 할 수 없는 슬픔의 배음을 얻게 된다. 그리하여 끝도 없고, 끝을 가질 수 없는 엄숙한 상태로 무한히 침잠하게 될 것이다. 밝은 쪽으로 넘어가면서 푸른색은 거의 적당치 않게 되고 무관심한 성격을 띤다. 그리고 높고 밝은 푸른 하늘처럼 인간에게서 멀어져 가고 냉담해진다. 그리하여 색깔이 밝아지면 밝아질수록 그 음향은 더 상실되고, 드디어 침묵적인 정지상태에 이르렀을 때에 그 색깔은 희게 될 것이다. 음악적으로 표현한다면 밝은 청색은 플륫과, 어두운 청색은 첼로와 유사하며, 색조를 더 심화시키면 콘트라베이스의 경이로운 음향과 유사하다. 그리고 깊고 장중한 형식을 갖춘 청색의 음향은 파이프오르간의 저음과 비교할 수 있다. 79
절대적인 초록색은 존재하는 모든 색 중에 가장 평온한 색이다. 그것은 어느 쪽을 향해서도 운동하지 않으며, 기쁨과 슬픔, 정렬 등을 결코 반영하지 않으며, 그 무엇을 요구한다든가 어디로 불러내지도 않는다. 이와같이 운동이 항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피곤한 인간과 심성에 쾌적하게 작용하지만, 휴식의 시간이 지나가면 쉽게 지루해질 성질의 것이다. 초록색조로 그린 그림들은 대부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80
노란색으로 그린 그림은 항상 정신적인 따뜻함을 발산하고, 또 푸른색의 그림이 감정을 가라앉히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 초록색은 지리하게 느껴지는 효과이다. 초록은, 자연이 일 년 중에 질풍노도의 계절인 봄을 견디어내고 자기 만족적인 평온 속에 침참해 있는 여름의 지배적인 색깔이다. 절대 초록이 바이올린의 조용하고 길게 봅은 중간 저음을 통해 음악적으로 가장 잘 나타난다.81
흰색은 때때로 무색이라고 생각되었으며(특히 '자연에는 흰색이 없다'고 본 인상주의자들 덕분인데), 흰색은 물질적인 성질이나 실체로서의 모든 색깔이 날아가 버린 세계의 상징과 같다. 81
흰색은 대침묵으로서 우리의 심성에 작용한다. 흰색은 음악에서의 휴지(休止)라고도 할 수 있는 무음처럼 내적으로 울린다. 흰색은 죽은 것이 아닌,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는 침묵인 것이다. 83
검은색과 비교하면 어떠한 다른 색깔도, 말하자면 가장 약한 음향을 가진 색깔일지라도 더 강하고 더 명확한 음향으로 울리는 것이다. 그것은 흰색과는 다르다. 84
회색은 음향과 운동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부동성은 두 개의 능동적인 색깔 중간에 존재하는, 그리하여 그것들이 만들어낸 색깔인 초록색의 정지와는 다른 성격이다. 회색은 그렇기 때문에 절망적인 부동성이다. 이 회색이 짙어지면 짙을수록 절망감은 더해 가고 질식시키는 힘이 나타난다. 색깔이 밝아질 때에는 일종의 공기가 유통되고 숨쉴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겨난다. 그리고 그 색깔은 숨겨진 희망의 요소를 갖게 되는 것이다. 84
빨간색은 우리가 생각하는 바와 같이 한계가 없고 특징적인 따뜻한 색이다. 그것은 생기에 차 있고 활동적이며 동요하는 색으로서 내적으로 작용하지만, 사방으로 자기 힘을 소모하는 노란색이 지닌 경솔한 성격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빨강은 모든 에너지와 강렬함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목적을 의식한 무한한 힘을 강력히 필요로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거의 외부로 향하지 않고 주로 자기 내부에서 비등하고 작열하는 빨강은 소위 남성적이고 성숙한 색깔이다. 84, 85
밝고 따뜻한 빨강(사탄 레드)은 중간노랑과 일종의 유사성을 가지고 있으며(색소로서도 매우 많은 노랑을 가지고 있다), 힘, 에너지, 지향성, 결단성, 기쁨, 승리(완승) 등등의 감정을 일깨운다. 빨강은 음악적으로 말하면 튜바가 배음적으로 울려내는 -완강하게 파고드는 강한 음색-팡파레의 음향을 상시시킨다. 전사와 같은 중간 상태에서 빨강은 격렬한 감정을 지속시킨다. 그것은 변하지 않고 작열하는 격정과 같으며 다른 것을 쉽게 압도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 충실한 힘과 같다. 85
갈색을 필연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형언할 수 없는 내적 아름다움, 즉 억제미가 나타난다. 진사빛 빨강은 튜바처럼 울리고, 또 강하게 두들긴 북에 비교할 수 있다. 86
주황은 자기 힘에 자신을 가진 사람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건강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 주황은 앤젤루스 기도를 알리는 중음의 교회 종소리처럼 울리며, 또는 강한 앨토 음성처럼, 라르고를 연주하는 비올라처럼 울린다. 주황은 빨간색이 노란색에 의해서 인간에게로 더 가까이 오게 됨으로써 생겨난 색이며, 다른 한편 빨간색이 파란색에 의해서 인간에게서 멀어져 감으로써 생겨난 색이 보라색이다. 87
보라색은 물리적이고 심리학적인 의미에서 볼 때 냉각된 빨강인 것이다. 때문에 보라색은 일종의 병적인 요소, 불꽃이 꺼져 버린 것(석탄찌꺼기처럼 !) 같은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내부에 비극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중국인들은 이 색을 상복에 직접 사용하였다. 보라색은 잉글리쉬 호른이나 갈대피리의 음향과 유사하다. 그리고 색의 깊이에 있어서는 목관악기(예컨대 파곳)의 저음과 유사하다. 88
단순한 색깔에 관해서 지금까지 언급한 모든 특징들이 매우 잠정적이고 일반적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리고 색깔의 특징으로서 인용되는 감정(즉 기쁨, 슬픔 따위와 같은)도 역시 그러하다. 이 감정들은 심성의 물질적인 상태일 뿐이다. 색깔에서의 색조는 음악에서의 음조와 같은 것으로서 매우 예민한 본성인데, 심성이 지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예민한 진동을 일깨워 준다. 아마도 모든 색조는 종국적으로 언어적인 표현이 가능하겠지만, 그러나 말로써 완전하게 표현해낼 수 없는 어떤 것이 그대로 남을 수 있다. 말하자면 색조에 사치스럽게 부족된 것이 아닌, 색조 내부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어떤 것이 그대로 남을 수 있다. 그러므로 언어는 색깔에 대한 단순한 암시일 뿐이요, 색깔을 상당히 외적으로 표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색깔의 본질성이 언어에 의해서든, 또 다른 매체에 의해서든 대체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에 기념비적인 예술의 가능성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