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夏至)
6월을 장미의 계절이라고들 하던가. 분당을 상징하는 꽃으로 장미를 많이 심었는데 이즈음은 가로수나 활엽수에 가려 아파트담장 길가 장미는 쇠퇴해 간다. 오히려 퇴비주기와 전지작업이 없는 탄천 장미는 잘 퍼져나간다. 송이가 작아도 군락을 이뤄 풍요롭고 향은 찔레꽃을 닮아간다.
자전거로 한탕 뛰고 돌아와 보니 일찍 불암산을 다녀온 찬년 카톡이 들어와 있다.
산 바위 푸름 까마귀 냇물 왜가리가 내용이다, 자연에 담금 이야기로 긴 설명이 필요 없다.
다른 카톡엔 김정은 사망소식이다. 사실이라면 대단한 변고다. 확인해보니 어디에도 사망소식은 없다. 대신 CNN뉴스 하단에 로맨스와 사랑이란 타이틀이 눈에 든다, 일 년 중 낮이 가장 긴 날로 로맨스를 축하하기에 더 좋은 시기는 없다했다.
벨로루시에서는 전통적으로 처녀 청년들이 한밤중의 태양을 축하하며 호수에서 목욕하는 사진이 붙었다. 스웨덴의 젊은이들은 하지기간 많은 양의 보드카를 마시고 춤을 추는데 놀랍게도 축제 9개월 후에 많은 아기들이 태어난다 했다. 영국 젊은이들이 솔즈베리 평원의 스톤헨지에서 가장 낮이 긴 날에 그들의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이 올라있다.
우리가 아는 하지는 첫 감자와 보리를 수확하는 기쁨과 물에 발목을 적신다며 논농사가 바빠지는 시기에 비해 유럽은 사랑을 확인하는 젊음의 축제이다. 우리 고등학생 때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수음을 배우고 이성에 대해 열병을 앓는다. 조숙한 아이면 사랑을 나눈다. 예쁜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픈 상상이 미래에 대한 걱정을 앞서게 마련이다.
서른을 넘기 전에 꿈을 이루는 것이 보편적이다.
종로5가 옷집에서 드레스를 입고 식장에 가는데 을지로 3가에서 찻길이 막혔다,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다아내는 웨딩드레스를 감아 잡고 나는 아내의 옷 가방을 들고 명동 YWCA회관을 향해 달렸다. 기독교인이어서 식장비가 무료다. 하객들은 근처 식당에서 갈비탕을 드셨다. 교회에 감사헌금으로 3만원 주례목사님께 약간의 사례금을 드린 것이 전부다.
신혼집으로 주안 현장근처에 셋집 얻었고 매번 연탄불을 꺼치는 바람에 난방 없이 그해 겨울을 넘겼다. 사십년 전 나의 이야기다.
한국 젊은이들의 결혼관이 비관적으로 기운다, 우선 살집 마련이 요연하다. 아기 양육은 특히 맞벌이라면 지옥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남자들은 여자들이 터무니없이 바라는 것이 많다했고 여자는 남자가 그 정도는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여자아이는 아예 그동안 키워주신 부모님께 저축한 돈 일체를 드리고 빈손으로 결혼 하겠다고 한다.
조사에 따르면 어린 학생들이나 이십대 초반의 젊은이들은 반반 부담이 정당하다고 한다. 십여 년이 지나면 비용부담 문제는 자연 해결될듯하다. 사람들은 결혼을 하지 못하다 보니 N방 같은 요상한 사이트가 생겨나고 각종 범죄도 짝을 찾지 못해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했다, 결혼이 답인 것이다.
결혼하면 일정기간 임대아파트를 제공하고 아이의 출산 육아 보육 교육을 책임져주는 공약의 대선주자가 나왔으면 한다.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밀고 싶다. 하지가 사랑을 확인하는 축제기간이란 CNN의 소식에 심정을 써본다.
2020년 6월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