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교수
곰실공소
엄주언 마르티노는 19세에 자발적인 신심과 열정으로 스스로 신앙 교리를 찾아
그 가르침대로 살면서 춘천 지역 최초의 공소로 할 수 있는 곰실공소를 세웠다.
1920년 9월 본당으로 승격되고 이후 1928년 죽림동 주교좌성당으로 이전하여 자리를 잡게 된다.
신앙선조들의 발자취를 밟으며 이렇게 작은 성당들이 참으로 따스하게 다가온다.
죽림동 주교좌성당
곰실 공소가 이전하여 자리를 잡았고
박해의 교난은 없었지만 6.25 때 공산당에 의해
성직자와 신자들을 잃게 되어
죽림동 주교좌성당 뒤에 성직자 묘지가 있다.
죽림동 성당에서도 새벽미사를 드리고
신자들로 내부사진을 못 남겼구나...
다음에 가면 기억하려나?^^
양양성당
1914년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싸리재 남쪽의 옹기점에
교우들이 모여 교우촌을 만든 곳.
이 곳이 영동 지역 최초의 공소이며 이 공소를 전신으로 하여
만들어진 곳이 양양 성당이다.
38선에서 가장 가까운 성당인 양양성당에 3대 주임이었던 이광재 신부는
함흥교구와 연글에 있던 수녀원의 폐쇄로 피난하는 수녀들과
덕원 신학교의 신학생, 신부들과 많은 신자들이 38선을 넘도록 도왔다.
춘천교구는 이광재 신부님을 기억하고 현양하며 그 신앙을 올바로 계승하기 위하여
'38선 도보순례'를 매년 10월초에 실시하고 있다.
오래전에 왔을때는 몰랐는데
강릉부관아
현재의 시청과 같은 역할을 하였지만
사법의 기능도 함께하여 죄인을 심문하거나 옥에 가두는 곳이었다.
<치명일기>에는 강릉 지역의 순교자는 심 스테파노 안 명이지만
여러 연구 결과 및 구전, 순교자 증언록에서 이 관아에서 심문을 받고
순교하였거나 병인박해 때 심문도 없이 참수형으로 많은 교우들이
순교하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임당동 성당
성지는 아니었지만
감자옹심이를 먹으러 가는 길에 우연히 들어가게 된 성당.
이게 무슨 일인가?
가톨릭 성가 책에 많이 등장하는 이문근 신부님의 출신 본당이었다.
신부님은 성가 책 네 번째 미사곡을 작곡하셨고 여러 성가 작곡과 편곡도 하셨다..
이것도 우연히 방금 알게 되었는데....
이 성당이 미스터 선샤인 촬영지였다고 한다?
가슴 아플 내용 같아서 첫 회를 보고는 그 뒤는 찾아보질 않아서
확인할 길이 없고 ㅠ.ㅠ
보통은 성당신자 업소를 가려고 하는데
이번엔 감자옹심이를 먹고싶어서
네비의 도움으로 가장 가까운 옹심이 집을 찾아 길을 떠남.
티맵으로 가까운 옹심이 집을 찾아가던 중이었는데
성당에서 조금 가는 길에 보이는 허름한 옹심이 간판.
더 가까운 곳에 있는 옹심이 집이 있었네? 네비에서는 안보였는데? 못찾은건가?
어쨋든 갑자기 들러 허기를 달랬던 곳...
알고 보니 이 집도 유명 맛집이었고 점심영업만 하는 집인가 보다.
주문한 뒤에 주인장이 손님 응대의 통화소리 들으며 알게 되었다는!!!
우리도 마치기 직전에 들어간 모양이다.
조금만 늦게 가도 맛을 못 볼 뻔~
모르고 들어간 식당에선 노포의 흔적이 역력하고
감사?하게도 늦은 시간이라 적은 손님으로 편히 식사할 수 있었다.
감자옹심이가 원래 이리 사각사각한건가?
국물과 김치가 노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금광리 공소
1887년 영동 지역 천주교의 모태와 같은 곳
19세기 말경에 천주교인들이 이주하여 옹기 굽는 일이나 농사를 지으면서
은밀하게 전교를하고 있었다.
한때 영동 지역의 전교 거검 본당으로서 1921년 에는 양양성당과 함게
영동 지역 두 개의 본당 중 하나일 정도로 신자 수가 많았다.
출입제한에 깜짝 놀래다가 다시 보니 옆문을 이용하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입장.
단단히 고리를 걸지 않으면 바람에 문이 심하게 열리는 듯
그래서 단단히 걸어 놓고 나옴 ^^
시골 공소의 아늑하고 따스함이 느껴졌다.
이른 아침 출발에 빵과 커피를 사서 차 안에서 해결하기로 하였다.
이른 아침에 문여는 빵집? 찾았다...우리가 잘 아는 그 파리와 관련된 빵집!
숙소에서 멀지 않는 곳이라 가는 길 근처 아름다운 성당이 있다는 것을 인터넷으로 발견~
인터넷 선진국에 감사하며 성지아닌 아름다운 성당을 들러본다.
잠시 성체조배하고 다음 일정으로...
이쪽 벽을 따라가면 십자가의 길이 연결됨.
아주 특이하고 아름다운 구조.
동영상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