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후 녀석은 우리 내외에게 배우를 해보겠다는 등 의지를
보이드니 어느 순간부터 다른 일을 하며 지내다 어느 날인
가 전집같은 두툼한 책을 한아름 가지고 와서 제방에 들여
놓고 "아버지 지금부터 저는 6개월동안 방송통신대학에 등
록하여 공부를 하게됐으니 좀 조용히 하시고 도와주세요"
라고 하는 것이었다. 사실 녀석은 한 해 두 해 나이가 들어
가면서 장래 문제에 대한 즉 직장과 결혼 등에 대해 의기의
식을 느낀 모 양이었다 .
오직 인라인에만 매달려 신경을 쓰다보니 수학능력 시험에서
170점인가를 받아 아예 전기 대학은 엄두도 못내고 안산
에 있는 전문대인 공과대학 체육과에 겨우 턱걸이로 입학했다.
그런데 이 입시시험을 보기전 아예 대학입시를 포기한 녀석에게
"네누나들은 학원에 안가고도 숙대와 건국대에
들어갔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시대에 너는 전문 대학이라도 가야
하지않겠느냐, 네가 안간다면 어쩔 수 없지만 후에 절대 우리내외
원망은 말아라" 라며 설득을 했지만 대학은 안간
다는 것이었다. 그런 녀석이 고등학교 3하년 1학기가 끝날
즈음 느닷없이 "아버지 저 대학가야겠으니 학원좀 보내주
세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 없는 돈이었지만 부
모로서 어찌 녀석의 말을 들어주지않겠는가 울며 겨자먹
기로 학원에 보냈건만 너무 늦어 전술한 그점수 밖에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한여름을 지나는 싯점인 7월하순에 녀석은 그의 공부를 끝
냈다면서 어느날 자전거를 한대 몰고와서는."아버지 저 이
제 앞으로 한들간 저와의 싸움에 들어가니 여기 싸인좀 해
주세요" 라며 삼각 깃발을 내미는 것이었다.
이야기인 즉슨 지금부터 8월 한 달간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할 건데 반드시 이 경기에서.내가 해내야 앞으로 내인생 삶
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며 8월 한 달을 자신과의 전쟁으로
선포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속으로 "맞아 맞고말고 너는 반
드시 해낼 수가 있어"라며 되뇌인뒤 "그래 잘해봐;라며 말하곤
그 삼각깃발에 싸인을 해주었다.
녀석은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나 평소 체육시간에 달리기를
하면 항상. 꼴치였기에 제누나들과 달리기 얘기만 하면 "응.
나는 달리기 못해; 하던 아이가 어느핸가 이를 악물고.보라
매공원에서 연습하드니 학교내 장거리에서 일등을 했고 이
어 서울시 초등학교 대표로 뽑혀 대전서 열리는 전국 소년
체육대회에서 3등을 했던 녀석이기에 이번 전국투어에서도
반드시 해낼 것이라 믿었고 결국 찬바람이 불어오는.8월31
일날 전국을.자전거로 완주하고 돌아왔다.
녀석은 서울을 출발 춘천과 홍천을 거쳐 속초로 간뒤 삼척
포항에 이뤄서 울릉도를 이틀에 돌아 동해남부로 해서 부산
마산. 여수 순천 목포를 거쳐 충청도와 경상도 경기도를 돌아
서울에 도착했는데 특히 이 전국 자전거 투어에서도 녀석
의 사교성이 기지를 발휘하여 울릉도에서는 대구에서 자전
거점을 하다 그만두고 을릉도로와서 노후를 보내는 집에서
무료로 숙식을 하고 그기 어른의 소개로 전국 군데군데서
운영하고 있는 자전거점에서 공짜로 수리를 받고 다녔으며
낮엔 달리고 밤엔 공중화장실 근처에서 자리를 펴고 핸드폰
충전을 했으며 시골 동네에선 동사무소 등에서 격려와 지지를
받고 숙식까지 했다고 한다.
그리도 공부하기 싫어하든 녀석이기에 공대에서도 일학년을
겨우 마치고는 더 배울 게 없다며 아버지가 그래도 다니라면
순종하겠지만 등록금이 아깝다며 중퇴하기에 중퇴한 그날부터
나는 녀석에게 용돈울 끊었다. 그랫드니 녀석은 음식점과 술집
등 그동안.인라인을 타며 사귄 선후배들의 조언을 받아
아르바이트를 했고 나에겐 일체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런 녀석이 여자는 무조건 예쁘야된다며 어느날은 정말 그림같은
아가씨를 집으로 데려와서 우리내외에게 여자친구
라며 소개를 했고 그런 시절을 5,6년 넘게 보내드니 이제 나
도 사업을 해야겠다며 그래서 기술과 경영철학을 공부한다며 2013년
봄 떡볶이집에 가서 약3개월을 수련한 뒤 제 큰
누나에게 돈을 빌리고 신용대출을 해서 숭실대 근처에 떡볶기점을 입
점하고 오픈을 했는데 처음엔 30만원 그담엔 50,60.80,100,130,150
그야말로 우리머리론 상상도 안되
는 매출을 올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녀석이 돈맛을 알았는지 명절에도 쉬지않고 장사
를.했는데 작년 설과 추석엔 직원들을 고향 등 집으로 보낸뒤라
사람이 없어 제엄마와 둘이했는데 150만원의 매출을
올린 것이었다. 그런 녀석은 꿈이 크서 새벽4시까지 장사를 하기에
"현아 그러다 몸상하니 12시까지만 하고 자거라;
해도 듣지않고 하던 어느날 "아버지 옆 치킨가게도 인수해야겠어요"
하드니 , 아버지 이가게 팔고 경기도 광주에 투자한
파이프인테리어 사업에 전념해야겠어요" 라며 폭탄선언울
하는 것이었다.
이유인즉 옆치킨 가게를.인수할려는 계획을 세웠었는데
건물이 팔려 새주인이 들어오며 점포의 보증금과 임대료
를 대폭 인상하는 바람에 마음이 변한 것이었다.
그기에 직원들이 속을. 썩이는 바람에 더더욱 장사할 맘이
안난다는 것이었다.
떡볶이점 직원들은 그의 20대 중 초반으로 녀석들은 직업
에 대한 애착심 등.개념이 없어서 그야말로 엿장수 맘이다.
점포내에서 자는 것도 아니라 아침 11시 장사준비하러 나오며 알일이
녀석들에게 전화로 깨워야 겨우 출근하는 것이다.
이런일이 2년 넘게 되풀이 되다보니 아들은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 그야말
로 한번 장사가 싫어지니 막무가내로.안하겠
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내외는 몇번이고 설득을 했지만
허사였다.
그런데 녀석이 가게를 팔려고 내놨지만 임자가 나타나지 않
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낸 어느 날 인상좋은 예쁜 한
아가씨를 집으로 데려와선 우리.내외에게 소개를 하는 것이 었다.
"고향은 경남 함안이고 아버지는 소방공무원이며 자신과
7살차이이고 자신의 생각과 이상이 맞아 잘 준비하여 결혼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양가 부모님들의 도움없이
스스로 말이다.
참으로 기특해서 생전 처음으로 녀석을 칭찬하고 그뜻을
쾌히 승낙했다. 그리고 아가씨는 서울로 와서 아들의 일을
돌보며 미용성형학원에 등록시켜 장래 계획을 세우는 한편
혼인 준비를 착착하는 것이었다.
지난 9월 양가 부모들의 상견례를 시작으로 날을 잡고 식장
을 잡고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신부집은 경남에 개혼이며 우리는 세 번째 혼례라 식장은
신부가 있는 경남 창원으로 하고 우린 하객범위를 종반간
외에 아들녀석 친구로만 잡았기에 버스를 픽업해서 가기로
하고 모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드디어 12월 5일 마침내 아들의.혼례는.경남 창원에서 조촐하게 치뤄졌다.
우리쪽 손님이 40여명 사돈댁은 개혼이라 200여명으로 말이다.
1984년 내나이.38세에 본 아들이 이제 제2의 인생출발을 하고 걸음을 떼었다.
부모라면 누구나 그러하듯 사람답게 반듯하게 사는 건
다름아닌 "부부의 돈독한 애정과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손
낳아 잘기를 것이며.범사에 모범을 보여 잘살거라"
하는 주문외에 뭐가 있겠는가!
이리하여 우리.벗들을 초대하지않았으니 부족한 이 동문울 꾸짖지말고 쾌히 용서해주시길 바라네
끝으로 내가 존경하는 고등법원장을 지내신 장로님 한분
이 계시는데 이어른의 지론이 "글도 글답지않은 내용으로
독자들의 아까운 시간을 빼앗지말라 그건 죄악이니라"
라고 하셨는데 잡다한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하네
친구들의 건강과 행운이 늘 같이하길 빌며
을미 섣달.열여드랫날에
불초 벗 선산인 태환. 근 상.
첫댓글 요즘 보기 드문 훌륭한 아들을 두었네! 장하고 고마운 친구아들 화이팅!!
고맙네 늘건강하시게나
친구 오랫만에 카페에 들어와 글을 읽었네 어디에 가도 적응할 휼륭한 아들일세 자네 글도 잘 쓰네 소질이 있네
고맙네!
그리고 자네 요즘 어떻게
소일하고 계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