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주사 천불천탑
2024. 12. 8.
여기에 있는 석불들은 1997년 제2회 화순 운주대축제 개최 당시부터 해마다 한 구씩 제작된 것이다. 1996년 제1화 화순 운주댜축제 당시에는 목조 불산제작 퍼포먼스를 통해 그 의미를 새기고 별도 석불을 제작하디 않았다. 2002년 에는 두 구를 제작하기도 했고 2006년 부터는 운주문화축제로 명칭이 바뀌기도 했다. 운주사는 하루에 천개의 불상과 천개의 탑을 세우게 되면 새로운 세상이 된다는 전설이 있는 간절한 소망의 천불천탑 기도 도량이기도 하다. 이러한 운주사만의 특별하고 간절한 소망의 기도 도량의 의미를 담아 축제를 개최할 때마다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손길로 석불 한 구를 모시게 된 것이다. 앞으로도 운주사를 찾는 많은 사람들은 물론이고 간절한 소망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석불 제작은 계속될 것이다.
운주사 구층석탑(雲住寺 九層石塔)
일반적인 탑과는 달리 별도의 기단을 구축하지 않고 암반 위에 여러 단의 방형 좌대를 조각하고 직접 세웠다. 탑신부에 그 안에 꽃이 새겨진 마름모꼴의 기하학적인 문양이 기득히 조각되었다. 특히 하부에 사선이 새겨진 지붕돌은 납작하고 넓을 뿐만 나니라 경쾌하여 전체적으로 웅장하면서도 세련된 향식을 하고 있다. 운주사의 여러 석탑 중에서 제알 높지만 상대적으로지붕돌이 넓어 안정된 습을 보여준다, 조성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화순 운주사 칠층석탑(雲住寺 七層石塔)
상자모양으로 다듬은 기단 위에는 원형의 1단괴임을 만들었고 그 위에 신라석탑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춘 탑신부가 자리잡고 있다. 초층과 2층 탑신은 4매의 판석으로 되었고 각 면의 모서리에는 기둥형식이 조각되었다. 3층 이상의 탑신은 모두 1매석이며 각 면에는 우주가 모각되었다. 각층의 두툼한 지붕돌은 정교하게 잘 만들어졌고 추녀와 처마가 직선형으로 표현되었다. 상륜부눈 유실되었지만 비교적 단정하고 소박한 신라 전형양식을 계승한 우수한 석탑이다. 석탑의 높이는 9.6m로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운주사 칠층석탑(雲住寺 七層石塔)
거북바위라 부르는 다소 경사진 암반을 완만하게 다듬어 기단부 없이 지대석으로 삼고 그 위에 탑신부를 세웠다. 1층 탑신은 4매의 판석으로 이루어졌느데 각 면의 모서리에 우주가 모각되고 면석 중앙으로 보조 우주가 하나씩 얕게 표출되었다. 2층에서 7층까지 탑신 4면에 X자문이 새겨져 있고 옥개석 상면의 우동마루가 두툼하게 튀어나오는 등 한국 석탑에서는 매우 희귀한 사례에 속한 탑이다. 이러한 기법은 모두 건축적인 요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암시한 것이며, 구려시대에 나타난 백제계 석탑의 특징으로 전체 높이는 7.17m이다.
운주사 와형석조여래불(雲住寺 渦形石造如來佛)
운주사 계곡 서쪽 산 정상의 머리를 남쪽으로 향하고 있는 석불 2구로 일명 와불(누워 있는 불상)이라고 한다. 좌상의 대불은 어깨의 폭에 비해 양 무릎 사이의 폭이 너무 넓어 인구(사람의 형상)의 균형을 잃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큰 불상에 속한다. 작은 불상은 인상의 수인(손 모양)이 시무외인 여원인을 취한 것 같으나 어색하고 사실적이지 않다. 또한 옷 주름은 수직선과 사선으로만 처리하여 매우 단순하다. 전설에 따르면 도선 국사가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다 세우고 이 와불을 마지막으로 일으켜 세우려고 했으나 새벽닭이 울어 중단했다고 한다. 이 두 석불은 운주사의 많은 석불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이미를 지닌 것이다. 크기도 각각 12.7m외 10.3m나 되어 국내에 있는 석불 중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석불군
서쪽 산기슭에 있는 와불로 가는 길 중간의 암벽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동쪽 산자락에는 석불군이 다섯이 있는데 비해 이곳에는 석불군이 한 곳 뿐이다. 암벽의 크기는 높이5m, 너비 15m이고, 공간의 넓이는 일부 암반이 떨어져 나가 3mX4mX2m이다. 이는 너무 깊게 암벽 감실을 조성하려다 상부 암반이 무너져 내린 결과로 추정된다. 암벽에는 높이 4m 지점에 지름 1m정도의 암벽을 다듬은 흔적이 보여 석불군 가 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곳에 대형 불상을 모시려던 것으로 짐작된다. 불상은 중앙에 좌상 그 주위에 입상들이 배열되어 있다. 불상은 9구이나 대좌는 12개이다. 이로 보아 불상 3구가 다른 곳을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운주사 대웅전 앞 다층석탑(雲住寺 大雄殿앞 多層石塔)
운주사 대웅전 앞에 위치하고 있다. 탑신은 4층의 옥개석까지 남아 있고 그 이상 부재의 존재 여부는 알 수없다. 지붕돌인 옥개석 상부는 일반적인 탑의 곡선 형태가 아니고 전탑과 같은 3단의 층급형으로 이뤄진 모전석탑 유형이다. 즉 돌을 작은 벽돌모양으로 만들어 쌓은 것이 아니라 통돌을 계단형으로 깎은 것이다. 특히 호남지방에서는 드문 예로서 각 층 옥계석의 모서리 부분에서는 가벼운 반전이 있으며 강진 월남사지 모전석탑과 비교된다. 전채 높이는 3.23m이며 제작 시기는 고려시대이다.
운주사 마애여래좌상(雲住寺 磨崖如來坐像)
마애불은 지금의 대웅전에서 북쪽으로 약 40m 떨어져 있는 거대한 바위의 벼랑에 새겨져 있다. 육계는 도툼하게 솟아 있고 퇴미한 눈썹과 기다란 코는 양각으로, 귀바퀴는 음각으로 표현되었다. 손을 모으고 있어서 왼쪽 어깨에서 내려오는 옷 주름과 오른쪽 어깨에서 내려오는 옷 주름이 팔자(八)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는 운주사 석불의 대부분과 같다. 좌대는 8개의 연꽃무늬가 복련으로 음각되었다. 광배는 두광과 신광을 구분하지 않고 무릎 위쪽까지만 음각 선문으로 표현하였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운주사 석불군 가운데 유일한 마애불이며 광배나 좌대를 포함한 전체 높이가 5.16m로 규모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