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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청어람입시연구소 ☎ 043-232-5551 원문보기 글쓴이: 김준기대표
제목 : 별이
비는 새벽부터 내리고 있었다.
장맛비는 아니라도 장맛비를 닮은 비였다. 지붕을 후려치며 쏟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금세 그칠 듯 가벼운 빗방울도 아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내리기로 작정한 것처럼, 세상 모든 골목과 처마와 신발 끝에 조금씩 스며들어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비였다. 젖는 줄도 모르고 젖게 하고, 추운 줄도 모르고 서늘하게 만드는 비였다.
민호는 새벽 여섯 시가 조금 못 되어 편의점 앞 파라솔을 접었다. 바닥은 밤새 내린 비로 번들거렸고, 인도 가장자리엔 젖은 전단지들이 진창처럼 들러붙어 있었다. 그는 창고에서 음료 박스를 꺼내 매장 안으로 옮겼다. 종이박스는 빗기를 먹어 축축했고, 손가락 마디는 물과 먼지로 금세 쪼글쪼글해졌다. 허리를 굽힐 때마다 등뼈 사이로 시큰한 통증이 올라왔지만, 민호는 이를 악물고 박스를 들었다.
오늘만 버티자.
그 말만은 아침 내내 민호의 머릿속에 못처럼 박혀 있었다.
오늘은 꼭 일찍 들어갈 생각이었다. 야간조 형과 근무를 바꾸면서까지 시간을 냈다. 어제도, 그제도 늦게 들어가 별이를 제대로 보지 못했으니까. 아니,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어제와 그제가 다였던가. 돌아보면 그건 몇 달의 일이었고, 몇 년의 일이었고, 어쩌면 별이가 늙기 시작한 뒤의 모든 시간에 가까웠다.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정육점에 들러 소고기를 살 것이다. 제일 좋은 고기로. 기름이 적당히 서려 있고 색이 붉고 선명한 걸로. 별이가 냄새만 맡아도 벌떡 일어날 만큼 좋은 걸로.
그리고 먹일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장 좋은 고기를.
그 생각을 하면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쩌면 그 두근거림은 기대라기보다 죄책감의 다른 이름이었는지도 몰랐다. 사람은 오래 미뤄온 일을 겨우 하게 될 때, 그것을 기쁨으로 착각하곤 하니까.
손님이 뜸한 시간, 민호는 계산대 유리창 너머로 내리는 비를 보았다. 유리에는 희미하게 자기 얼굴이 비쳤다. 스물여섯의 얼굴이라기엔 지나치게 지쳐 보이는, 그러나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디선가 오래 미뤄온 울음을 품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 위로 문득 작은 흰 그림자 하나가 겹쳐졌다. 비 오는 날이면 그의 운동화 끈을 툭툭 건드리던 젖은 코, 낮게 흔들리던 꼬리, 비닐우산 아래 반쯤 안겨 들던 따뜻한 몸.
별이는 원래 비를 싫어하지 않았다.
민호가 열 살이던 그해 여름도, 비가 왔었다.
학교가 일찍 끝난 날이었다. 미술 준비물을 잔뜩 든 채 골목을 돌아오는데, 쓰레기봉투 옆에 젖은 종이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처음엔 누가 버린 헌옷인 줄 알았다. 그런데 상자 안에서 아주 희미한 소리가 났다. 끼잉, 하는, 울음이라기보다 떨림에 가까운 소리.
민호는 우산을 기울여 상자 안을 들여다보았다.
작고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젖은 수건 위에 웅크리고 있었다. 물기를 먹은 털은 군데군데 누렇게 엉켜 있었고, 코끝은 새까맸다. 그런데 눈만은 이상하리만치 맑았다.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으면서도, 민호가 상자를 들여다보는 순간 그 눈이 잠깐 반짝거렸다. 꼭 어둠 속에 박힌 작은 별 같았다.
“엄마! 엄마!”
민호는 상자를 안은 채 집으로 뛰었다. 운동화에서 물이 철퍽철퍽 튀었고, 우산은 어깨 뒤로 밀려 등짝이 다 젖었다. 엄마는 문간에서 성을 냈다.
“비 맞고 뭐 하는 짓이야, 얘가!”
그러나 상자 안의 강아지를 본 순간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강아지는 젖은 몸을 조금 더 둥글게 말고, 엄마를 힐끔 올려다보았다. 그런 눈빛은 대개 사람의 마음을 아주 쉽게 흔들었다. 버려진 것들의 공통된 눈빛이었다. 다가오지 못하고, 그러나 아주 작게 붙는 눈빛.
“안 돼?” 민호가 물었다. “엄마, 얘 우리가 키우면 안 돼?”
어머니는 처음엔 고개를 저었다. 집이 좁다느니, 너 하나도 키우기 벅차다느니, 강아지 키우는 게 장난이 아니라느니. 그 말은 다 옳았다. 그러나 옳은 말이 늘 이기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엄마는 마른 수건과 드라이기를 가져왔고, 주방 구석에서 따뜻한 물을 끓였고, 민호는 두 손으로 그 작은 몸을 감싸 안은 채 한참을 있었다.
털이 마르고 나자 강아지는 예상외로 복슬복슬했다. 온몸이 우유를 쏟아놓은 것처럼 희고, 귀끝만 아주 살짝 누르스름했다. 민호는 그날 저녁 강아지 이름을 혼자서 열두 번도 더 바꾸었다. 솜이, 하양이, 뭉치, 눈이. 그러나 밤이 되어 창밖 비가 그치고, 먹구름 사이로 별 하나가 희미하게 보이자 민호는 마침내 말했다.
“별이.” “왜?” 어머니가 물었다. “눈이 별 같아.”
그날부터 녀석의 이름은 별이가 되었다.
밤하늘의 별처럼 오래 함께하자고, 어린 민호는 진심으로 믿었다. 아이들은 영원을 쉽게 약속한다. 자기의 시간엔 아직 끝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별이가 집에 온 뒤 민호의 세상에는 이전과 다른 시간이 생겼다.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뛰어가야 할 이유가 생겼고,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불러볼 이름이 생겼다. 별이는 민호를 유난히 잘 따랐다. 다른 가족이 밥을 줘도, 문밖에서 나는 발자국 소리 중 민호의 것만 기가 막히게 알아들었다. 골목 어귀에서 “별이야!” 하고 한 번만 불러도, 마당에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현관문에 앞발을 걸쳤다.
어릴 적의 둘은 꽤 자주 함께 굴렀다. 공 하나만 있어도 놀 수 있었고, 공이 없어도 놀 수 있었다. 민호가 앞장서 뛰면 별이가 따라 뛰었고, 별이가 방향을 꺾으면 민호가 따라 돌았다. 여름엔 뜨거운 시멘트 바닥을 피해 그늘진 골목만 골라 걸었고, 겨울엔 패딩 안으로 파고든 별이를 품에 넣은 채 숨을 호호 불었다. 눈 온 아침이면 별이 발자국이 마당에 콩콩콩 찍혔다. 발바닥이 시려서 오래 걷지도 못하면서, 민호만 밖에 나오면 좋아서 제 발자국도 잊고 달려들었다.
비 오는 날에는 우산을 함께 썼다. 정확히 말하면 민호가 우산을 들고, 별이는 반쯤 안기고 반쯤 걸었다. 작은 다리로 물웅덩이를 피하지 못해 금방 배가 젖었기 때문이다. 민호는 그런 날이면 별이의 턱 밑을 받쳐 안고 말했다.
“우리 오래오래 같이 살자.” 별이는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듣고도, 혀를 내밀고 눈을 가늘게 뜨며 꼬리를 흔들었다.
그 약속을 오래 믿은 건 아마 별이 쪽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민호의 세상은 점점 넓어졌고, 별이와는 오히려 좁아졌다. 중학생이 되자 학원이 생겼다. 고등학생이 되자 야간 자율학습이 생겼다. 대학에 가서는 동아리와 과제와 아르바이트가 생겼다. 취업 준비를 시작하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조급함이 생겼다. 남들은 벌써 인턴을 하고 자격증을 따고 면접을 본다는데, 자기만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 같은 불안이 생겼다. 불안은 이상한 방식으로 사람을 갉아먹는다. 가장 가까운 것부터 대충 대하게 만든다. 어차피 내 편일 것 같은 것들, 어차피 떠나지 않을 것 같은 것들부터.
별이는 언제나 거기 있었다.
민호 방 문 앞, 낡은 방석 위에.
저녁 아홉 시가 지나고, 열 시가 지나고, 어떤 날은 자정이 다 되어 귀가해도, 문 여는 소리만 나면 별이는 잠결에도 몸을 일으켰다. 예전처럼 가볍게 뛰어오르지는 못해도, 꼬리만큼은 힘껏 흔들었다. 몸 전체가 아니라 꼬리 하나로만 기뻐하는 법을 늙은 개는 서서히 배워갔다.
민호가 가방을 던져 놓고 휴대전화를 꺼내 들면, 별이는 조심조심 발을 옮겨 그의 발등에 코를 댔다. 그러면 민호는 대개 이렇게 말했다.
“피곤해.” “내일 산책 가자.” “조금 있다 놀아.” “오늘은 좀 쉬자.”
조금 있다, 는 말은 늘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는 말과 서로 닮아 있었다.
어느 날은 면접에서 떨어지고 돌아온 뒤였다. 비가 오지는 않았지만, 민호의 마음은 젖은 솜처럼 무겁고 축축했다. 집에 들어오자 별이가 어김없이 다가왔다. 민호는 신발도 벗기 전에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불합격 메일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순간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았고, 아무것도 닿지 않았으면 싶었다. 별이가 발등을 핥자 그는 무심결에 발끝으로 녀석의 몸을 밀어냈다.
“비켜.”
세게 찬 것은 아니었다. 정말 가볍게 밀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별이는 그 한 번의 밀침에도 잠깐 휘청했고, 멍하니 민호를 올려다보았다. 빨리 따라오던 꼬리가 그 순간만큼은 느려졌다. 민호는 그것을 보았지만 못 본 척했다. 방문을 닫을 때까지, 복도에 홀로 남은 별이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또 어느 겨울밤이었다. 창문 틈으로 찬바람이 들고, 책상 스탠드 불빛만 방 안 한가운데에 노랗게 고여 있었다. 민호는 기말고사를 앞두고 새벽까지 노트를 외우고 있었다. 정적 속에서 부드러운 발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별이가 낡은 분홍색 공 하나를 입에 물고 서 있었다. 한때는 둘이 하루에도 수십 번 던지고 물고 뛰던 공이었다. 오래 물어 뜯겨 여기저기 헤지고, 물기와 먼지로 색도 바랬지만, 별이는 아직도 그것을 장난감처럼 여기는 모양이었다.
별이는 조심스럽게 공을 내려놓고, 민호를 올려다보았다. 한 번만 던져 달라는 눈빛이었다.
민호는 계산하지 못한 문제 하나에 붙들려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는 고개도 제대로 돌리지 않은 채 말했다.
“아, 좀!”
목소리는 그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컸다. 공이 그의 손등에 닿지도 못하고 바닥을 한 번 데구루루 굴렀다. 별이는 화들짝 놀란 듯 귀를 움츠렸다. 까만 눈이 동그랗게 흔들렸다. 잠시 뒤 녀석은 천천히 몸을 굽혀 낡은 공을 다시 물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동물 특유의 조용한 체념 속에서, 자기 자리로 돌아가 웅크렸다.
민호는 그날도 공부를 계속했다. 문제집을 넘겼고, 형광펜 뚜껑을 열었다 닫았고,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침이 되어서는 어젯밤 일을 잊었다. 사람의 잊음은 이렇게 무심하다. 자기 쪽의 날카로움은 금세 사라지고, 남의 쪽에 남은 상처만 오래 남는다.
그날 이후 별이는 공을 물고 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
민호는 그 사실을 아주 한참 뒤에야 떠올렸다. 그리고 떠올렸을 때에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것들 속에 그 장면도 섞여 있었다.
세월은 그들 사이에서 소리 없이 지나갔다. 어느 날 문득 별이의 입가에 흰 털이 덧난 것이 보였고, 또 어느 날 문득 계단을 오르다 중간에서 쉬어 가는 걸 보았다. 산책길도 짧아졌다. 예전에는 동네를 한 바퀴 돌고도 모자라 더 가자고 보채던 녀석이, 어느 순간부터는 골목 입구까지만 나가도 숨을 헐떡였다. 기다리는 자세조차 달라졌다. 예전엔 두 앞발을 번쩍 들고 현관문을 긁었는데, 나중에는 문 아래에 조용히 턱을 괴고 누워 있었다. 그래도 민호가 돌아오면 꼬리만은 흔들었다. 늙어 가는 건 몸뿐이었다. 마음은 처음 데려오던 날 그대로였다. 사람을 좋아하는 일과, 기다리는 일과, 다정한 목소리 하나에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하는 일은 별이에게서 끝내 늙지 않았다.
며칠 전, 엄마가 저녁상을 치우다 말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별이를 돌봐 주겠다는 분이 계셔.”
민호는 젓가락을 멈추었다.
“무슨 말이야?”
“아는 분 지인인데, 노령견만 돌보는 부부래. 마당도 넓고, 하루 종일 집에 계셔서 같이 있어 줄 수 있대.”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오래 망설인 흔적이 배어 있었다. 사실 그 말은 잔인해서가 아니라 미안해서 더 조심스러웠다. 민호도 알고 있었다. 부모님은 이제 오래 걷는 일도 힘들어했고, 민호는 오전엔 편의점, 오후엔 학원 조교, 틈틈이 자소서와 면접 준비로 집을 비우기 일쑤였다. 별이의 약도 챙겨야 했고, 병원도 더 자주 가야 했고, 혼자 두는 시간도 줄여야 했다. 누구도 별이를 미워하지는 않았지만, 사랑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현실이 몇 가지 있었다.
“내일 한번 데리러 오신대.”
민호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숟가락에 비친 자기 얼굴이 낯설었다. 마치 누군가 늦장 부리다 결국 중요한 것을 놓치기 직전의 사람처럼 보였다.
자신이 취업 준비와 아르바이트를 핑계로 별이의 노년을 방치하는 동안, 별이의 남은 시간마저 현실이라는 무게에 밀려 타인의 손에 넘겨지고 있었다. 내 힘으로는 늙어가는 생명 하나 온전히 책임질 수 없다는 지독한 무력감이, 목구멍에 걸린 마른 밥덩이처럼 서글프게 삼켜졌다. 자신이 만든 소홀함의 대가를 결국 별이에게 치르게 하는 것 같아,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차마 소리 내지 못한 부채감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래.” 민호는 겨우 말했다. “그게 별이를 위해 더 좋겠지.”
그러나 그 말을 하고 나서야 이상한 것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좋겠지, 라는 말은 맞는 말이었지만, 맞는 말이라고 해서 덜 아픈 것은 아니었다. 내일이면 별이는 다른 집으로 간다. 별이가 늘 누워 있던 방문 앞은 비게 될 것이고, 저녁때마다 따뜻한 숨을 훅 내쉬며 기대 오던 몸도 없어질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제야 민호는 열여섯 해라는 시간을 처음 받아들이는 기분이 들었다. 늘 거기 있다고 생각했던 존재가, 사실은 하루하루 닳아 가며 자신 곁을 지켜왔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그 시간을 얼마나 함부로 썼는지를.
그날 밤 민호는 좀처럼 잠들지 못했다. 방문 앞에서 뒤척이는 기척이 들릴 때마다 괜히 문을 열어 보았다. 별이는 거기 있었다. 눈을 반쯤 뜬 채, 그래도 꼬리를 두어 번 흔들며. 민호는 괜히 녀석의 머리를 한번 쓸어 주었다. 별이는 그 짧은 쓰다듬음에도 눈을 가늘게 떴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은 것처럼. 그 단순하고 순한 기쁨 앞에서 민호는 자꾸만 가슴이 저렸다.
마지막 하루만큼은 행복하게 보내고 싶었다.
좋아하는 소고기도 먹이고. 사진도 찍고. 짧더라도 산책도 하고. 그리고 미안하다고, 아주 미안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것이 겨우 마지막 하루에 떠올랐다는 사실이, 이미 좀 늦었다는 증거였지만.
아르바이트가 끝날 무렵 비는 더 가늘어졌다. 가늘어졌다는 것은 그칠 기미가 아니라 오래 더 내리겠다는 뜻이었다. 민호는 퇴근 시간을 확인하자마자 앞치마를 벗었다. 젖은 운동화 끈을 다시 묶고, 우산도 펴지 않은 채 골목 끝 정육점으로 달려갔다. 전등 아래로 고깃덩이들이 붉은 결을 내보이며 걸려 있었다. 정육점 안은 바깥의 눅눅한 공기와 달리 따뜻했고, 생고기 특유의 맑은 냄새가 감돌았다.
“사장님.”
숨을 고르며 말하자, 저울을 닦던 주인이 돌아보았다.
“어이구, 비 맞고 왔네. 뭐 줄까?”
민호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제일 좋은 한우로 조금만 주세요.”
주인은 그 말에 슬쩍 웃었다. “무슨 좋은 일 있어? 여자친구라도 오나?”
민호도 따라 웃으려 했지만, 이상하게 입술이 떨렸다. “아뇨. 우리 강아지요.” “…오늘 마지막으로 같이 있는 날이라서요.”
주인은 민호 얼굴을 잠깐 보더니 아무 말 없이 고기를 골랐다. 칼이 도마 위를 쓱, 쓱 지나갈 때마다 선홍빛 살결 사이로 하얀 지방이 곱게 박힌 단면이 드러났다. 보기만 해도 부드러워 보이는 고기였다. 주인은 그것을 정성스레 종이에 싸고 비닐봉지에 넣어 건넸다.
“좋은 냄새 맡으면 좋아하겠다.”
민호는 봉지를 받아 들었다. 손바닥을 통해 미지근한 온기가 전해졌다. 방금 썬 살의 체온 같은 것이었다. 그 온기를 쥔 채, 그는 문밖으로 뛰쳐나왔다.
별이가 소고기 냄새를 맡으면 어떨까.
분명 몇 걸음 못 가서 벌써 코를 킁킁댈 것이다. 그 느린 몸으로도 제일 먼저 부엌으로 가려 할지 모른다. 꼬리를 얼마나 흔들까. 오래 누워 있던 다리를 버둥거리며 일어나려 할지도 모른다. 그는 그 장면을 상상하며 비에 젖은 골목을 거의 뛰다시피 걸었다. 가슴이 이상하게 들떴다. 꼭 무언가 좋은 일이 이제 막 시작되려는 사람처럼.
사람은 종종 가장 슬픈 날,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현관문 앞에 섰을 때 민호는 숨이 찼다. 젖은 앞머리에서 물방울이 턱 끝으로 떨어졌다. 그는 비닐봉지를 치켜든 채 문을 열며 크게 불렀다.
“별이야!”
대답이 없었다.
조금 이상했다. 평소 같으면 이미 발톱 부딪히는 소리가 먼저 났을 텐데. 느려진 뒤로는 한참 지나서야 오곤 했지만, 그래도 기척은 있었다. 문턱 어딘가에 몸을 일으키는 소리, 바닥을 긁는 미세한 소리, 숨을 몰아쉬며 다가오는 작은 마찰음.
“별아?”
집 안은 너무 조용했다.
조용하다는 말로도 모자랐다. 마치 누군가 방금 전까지 켜 두었던 모든 소리를 일제히 끈 것처럼, 조용함 자체가 벽과 바닥에 붙어 있는 느낌이었다. 거실 불은 켜져 있었는데도 이상하게 집 안이 어두워 보였다.
안방 쪽에서 아주 희미하게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민호는 그제야 가슴 어딘가가 서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엄마?”
어머니는 방 문턱에 손을 짚은 채 서 있었다. 눈은 이미 퉁퉁 부어 있었고, 입술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어머니는 무언가를 말하려 했으나 목이 메어 몇 번이나 입만 달싹였다. 그러다 겨우, 정말 겨우 한마디를 뱉었다.
“조금 전에…” 그 말 뒤로 어머니의 눈물이 먼저 떨어졌다. “…별이가 갔어.”
민호는 그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지 않으려 했다.
“무슨 말이야.” 그는 얼빠진 사람처럼 웃었다. “내일 입양 가잖아.” “오늘은 아직 안 갔잖아.”
말이 자꾸 엉키는데도, 그는 계속 웃었다. 믿기지 않는 순간에 사람은 종종 운다기보다 웃는다. 지금 벌어지는 일이 너무 말이 안 돼서, 누군가 악의 없는 농담을 하는 것 같아서, 그래서 금방 ‘아니야’ 하고 정정될 것 같아서.
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대답이었다.
민호의 손에서 비닐봉지가 미끄러질 듯 흔들렸다.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거실 쪽으로 걸어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닥에 젖은 양말 자국이 찍혔다. 그 자국은 이상하게 미안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거실 한쪽, 별이가 늘 누워 있던 낡은 담요 위에 녀석이 누워 있었다.
평소처럼 앞발을 가지런히 모은 채. 평소처럼 눈을 감은 채. 평소처럼, 너무 평소처럼.
금방이라도 이름을 부르면 눈을 뜰 것 같았다. 느리게 꼬리를 두어 번 흔들 것 같았다. 민호는 그 옆에 무릎을 꿇었다. 손을 내미는 순간 이미 알았다. 알면서도 손을 뻗었다.
머리를 쓰다듬었다.
차가웠다.
귀를 만졌다.
차가웠다.
앞발을 잡았다.
더 차가웠다.
살아 있는 동안 너무 익숙해서 귀하지 않던 온도가, 사라진 뒤에야 얼마나 거대한 것이었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체온은 사랑이 몸으로 남겨두는 마지막 언어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식은 몸은 그 사랑이 더 이상 여기 없다는 가장 명확한 증거였다.
“…별아.”
목소리가 갈라졌다.
“…일어나.” “봐.” “소고기 사 왔어.”
그는 다급하게 비닐봉지를 열었다. 붉은 고기 냄새가 눅눅한 공기 속으로 번져 나갔다. 분명 별이가 좋아하던 냄새였다. 고기를 삶지도 굽지도 않았는데, 그 비린 듯 향긋한 냄새만으로도 예전엔 별이가 부엌 근처를 서성였다.
“…너 좋아하잖아.” “먹어.” “…먹으라니까.”
떨리는 손으로 고기를 꺼내 별이 앞에 내밀었다. 손등에 핏빛 물기가 묻었다. 그러나 별이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 순간 민호의 손에서 봉지가 떨어졌다.
툭.
붉은 고기 몇 점이 바닥으로 흩어졌다. 젖은 비닐이 옆으로 쓰러지며 안에 고인 핏물이 바닥 위로 천천히 번졌다. 그 선홍빛은 너무 선명해서, 오히려 현실 같지 않았다. 생의 색이 죽음 곁에서 더 붉게 보이는 이상한 순간이었다.
민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별이의 머리를 품에 안았다. 차갑고 가벼웠다. 너무 가벼워서 더 울컥했다. 한때는 양팔로 안기 버거울 만큼 버둥거리던 몸이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가벼워질 때까지 자신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그제야 기억들이, 오랫동안 닫혀 있던 서랍이 한꺼번에 열리듯 밀려왔다.
비 오는 날 우산을 같이 쓰던 어린 오후. 젖은 코로 그의 손등을 밀며 더 안아 달라 조르던 감촉. 공 하나만 던져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뛰어오던 흰 몸. 겨울밤 패딩 안으로 파고들던 따뜻한 체온. 며칠씩 우울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날, 조용히 발치에 와 웅크리던 작은 숨소리. 방문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다 꾸벅꾸벅 졸던 밤들. 그리고 “아, 좀!” 그 한마디에 놀란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던 얼굴. “비켜.” 그 말 뒤에 조용히 물러나던 뒷모습. 산책은 내일 가자고 말해놓고 잠든 수많은 밤. 한 번만 쓰다듬어 주면 됐을 순간에 휴대전화를 더 오래 바라본 저녁들.
그 모든 장면이 한꺼번에, 비가 터진 둑물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그 순간 민호는 아주 선명하게 깨달았다.
별이는 한 번도 자신을 귀찮아한 적이 없었다. 귀찮아했던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었다.
별이가 기다린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비싼 장난감도, 좋은 사료도, 특별한 이벤트도 아니었다. 십 분 남짓한 산책. 공부하다가 한 번 불러 주는 이름. 무릎 위에 턱을 얹게 허락해 주는 짧은 시간. 그 정도면 별이의 하루는 충분히 빛났다. 그런데 자신은 왜 그 쉬운 것들을 그렇게 자주 미뤘을까. 왜 늘 내일이 있을 거라 믿었을까.
민호는 별이의 식은 이마에 얼굴을 묻고 처음으로 소리 내어 울었다.
어머니도 따라 울었다. 그러나 사람 둘의 울음으로도 이미 떠난 한 몸의 빈자리를 메울 수는 없었다. 집 안은 이상할 만큼 넓어졌고, 조용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평범했던 거실이 갑자기 장례식장처럼 낯설어졌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뒤에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사흘쯤 계속 오는 비는 사람을 지치게 하지만, 막상 멈출 때는 무엇 하나 해결해주지 않은 채 지나간다. 집도 그랬다. 바닥은 말랐고, 별이 방석은 그대로였고, 물그릇도 그대로였지만, 정작 있어야 할 것 하나만 없었다. 민호는 습관처럼 현관문을 열며 안을 먼저 살폈다. 혹시라도 하얀 그림자 하나가 느릿하게 몸을 일으킬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냉장고에는 손대지 못한 소고기가 남아 있었다.
민호는 한참을 망설이다 그것을 꺼냈다. 도마 위에 올려두자 붉은 살결이 다시 선명했다. 그는 고기를 아주 천천히 삶았다. 물이 끓기까지 오래 기다렸고, 질기지 않게 불을 줄였다. 국자 끝으로 익은 조각을 잘게 찢으며, 별이가 이 정도 크기면 먹기 편했을까 생각했다. 살아 있을 때는 한 번도 제대로 해 보지 않던 일을, 이제 와 지나치게 정성스럽게 하는 자신이 우스우면서도 견딜 수 없었다.
부드럽게 익은 고기를 작은 그릇에 담아, 민호는 별이의 사진 앞에 올려놓았다.
사진 속 별이는 아주 어렸다. 처음 집에 온 지 몇 달 안 되었을 때였을 것이다. 까만 눈동자로 카메라를 올려다보며 혀를 조금 내밀고 있었다. 세상을 의심해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저 웃음이 결국 자기 쪽으로 향한 신뢰였다는 것을, 민호는 너무 늦게 알았다.
그는 사진을 쓰다듬으며 오래 울었다.
“미안해.”
한마디를 꺼내는 데도 숨이 막혔다.
“너는…” “열여섯 해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나를 기다렸는데.” “나는…” “…늘 나중이라고만 했어.”
말이 끝나자마자 울음이 다시 올라왔다. 사람의 사과는 대개 듣는 이가 있을 때보다,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늦게 찾아온다.
그날 이후 민호는 한동안 집 안에서 자꾸만 별이의 기척을 들었다. 새벽녘 마룻바닥이 삐걱하면 잠결에 ‘별이가 돌아눕나’ 생각했고, 비닐봉지가 부엌에서 스치는 소리가 나면 ‘또 간식 냄새 맡았나’ 싶었다. 현관문을 열면 무심코 먼저 아래를 보았다. 혹시 발등에 무언가 와 닿지 않을까 싶어서. 밤에 방 문을 닫을 때는 자꾸만 문턱 밑을 살폈다. 다치지 않게 몸을 먼저 확인해 주던 오래된 습관이 몸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집은 끝내 조용했다.
조용함이라는 것은 단순히 소리가 없다는 뜻이 아니었다. 있어야 할 소리가 없다는 뜻이었다. 환영이 사라진 무대처럼, 그 자리에 누군가의 부재만이 정직하게 남아 있는 상태였다. 민호는 그 정직함이 견디기 힘들었다.
비가 오면 더 그랬다.
어느 저녁, 또다시 비가 내렸다. 처음 별이를 데려오던 날 같은 비였다. 민호는 우산을 들고 마당에 나가 한참을 서 있었다. 바닥에 빗물이 고였고, 가로등 불빛이 그 위에서 가늘게 흔들렸다. 문득 오래전 장면 하나가 또렷이 떠올랐다. 어린 자신이 별이를 안고 우산 속에 넣어 주던 모습. 별이는 우산 밖으로 삐져나간 앞발이 젖어도 괜찮다는 듯, 오히려 민호 쪽으로 더 파고들었다. 그 다정한 의지. 믿고 맡기는 무게. 사랑은 어쩌면 거창한 감정이 아니라, 저렇게 아무 의심 없이 몸을 기울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별이는 살아 있는 동안 줄곧 그 일을 했는데, 자신은 그 무게를 자주 피했다.
사람들은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가장 사랑하는 존재에게는 늘 시간을 미룬다.
조금만 더 크면, 조금만 더 여유가 생기면, 이번 시험만 끝나면, 이번 일만 마무리되면, 취직만 하면, 돈만 좀 벌면.
그러나 기다림은 살아 있는 자가 마음대로 세우는 계획일 뿐이다. 떠나는 쪽은 그 계획을 한 번도 존중해 준 적이 없다. 죽음은 늘 사정없이 오늘의 문을 열고 들어온다. 우리에게 내일을 약속해 준 적도 없으면서, 우리는 자꾸만 내일을 믿는다.
민호는 너무 늦게 알았다.
별이가 기다린 것은 비싼 소고기가 아니었다. 거창한 마지막 하루도 아니었다. 제 발치에 와 누웠을 때 한번 내려다보아 주는 눈길, 피곤해도 잠깐 손을 내밀어 주는 온기, 문을 열고 들어오며 밝게 불러 주는 이름,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 작은 것들을 사람은 너무 쉽게 나중으로 미룬다. 그 쉬운 일들이 가장 어려운 후회가 될 줄도 모르고.
비는 창문을 오래 두드렸다.
민호는 텅 빈 방문 앞에 한참 서 있었다. 거기엔 아직도 별이 방석이 있었다. 둥글게 눌린 자국이 조금 남아 있었다. 그 자국이 사라지면 더 아플 것 같아, 그는 차마 치우지 못했다. 바닥에 주저앉아 방석을 쓰다듬자, 오래된 털 몇 가닥이 손끝에 묻어났다. 너무 가볍고, 너무 하찮아서, 그래서 오히려 더 견딜 수 없었다. 사랑했던 존재가 마지막에 이렇게 가벼운 흔적으로 남는다는 것이.
그는 방석 앞에서 아주 오래 앉아 있다가, 마침내 낮은 소리로 말했다.
“별아.”
대답은 없었다.
그래도 그는 다시 불렀다.
“별아.” “이제 안 미룰게.”
그 말은 이미 너무 늦은 약속이었다. 그러나 늦은 약속이라고 해서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지 몰랐다. 사람은 때로 돌아오지 않을 것을 향해서도 맹세해야 겨우 사람이 된다.
창밖에서는 비가 그칠 줄 모르고 내리고 있었다.
민호는 그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어떤 날은 아침부터 이상하게 일이 잘 풀리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가장 큰 상실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날일 수 있다는 것을. 손에 따뜻한 소고기 봉지를 들고, 사랑하는 존재가 얼마나 기뻐할지를 상상하며 집으로 뛰어오던 그 짧은 길이, 실은 자기 생애 가장 잔인한 저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운이 좋다고 믿었던 순간이 가장 슬픈 재앙의 전주곡일 때가 있다.
그리고 사람은 꼭 그런 날이 지나간 뒤에야, 사랑은 나중에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운다.
민호는 식어 버린 집 안에서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빗소리는 끝이 없었고, 빈 방은 이상하리만치 넓었고, 불러도 오지 않는 이름 하나가 그날 밤 내내 집 안을 떠돌았다.
죽음은 단 한 번도 내일 온 적이 없었다.
늘, 오늘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