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22회 탄허와 장자 – 2
그 때에 중국 책들을 구하기가 참 어려웠을 겁니다.
그것도 오대산 산중에서요. 그러나 탄허스님은 방대한 주석을 구해서
보시고, 나중에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지금 구해볼 수 있는 노장의 책들은 다 가지고 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최고의 노장의 주석을 한번 쓰실 그런 생각을 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결국은 예를 들면 감산덕청의 주석이라든지,
보고 싶었던 장자설?라든지 이런 책들은 구해보지 못하셨던 것 같습
니다. 그러니까 아쉬움을 남기시고, 그래서 그런가요?
장자에 대한 원고만 써놓으시고 책은 안 내고 입적하셨습니다.
그런데 사후에ㆍ10년 이후에 장자원고가 나왔습니다.
장자원고가 나와서 스님의 장자책이 이렇게 출간되는 그런 인연을 맞
이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맨 마지막에 나온 책은 주역이고,
맨 마지막까지 교정을 마치고 49재때 출간한 책이 노자고요.
스님입적 이후에 장자의 원고가 나와서 장자 책이 나오면서 노자ㆍ
장자ㆍ주역! 3현에 대한 주석이 남게 되었습니다.
저도 동양학을 전공을 해서 노자ㆍ장자 많이 열심히 봤고요.
중국에 있는 많은 주석서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장담하건데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나온 노자ㆍ장자.
“특히 장자같은 경우는 주석에 있어서 탄허스님의 장자를 능가하는
것이 아직까지 볼 수 없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득하신 경지가 막 나와 있습니다.
스님의 경우에는 장자를 완전하게 다 외우셔서 해부가 되어있는 상태
에서 궁극적으로 좀 모르는 대문들이 몇 군데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것을 불교 공부하시면서, 참선을 하시고, 교학적인 내용들, 불교의 경
전들을 다 보시면서, 장자의 내용에 막혔던 부분들이 늘 화두가 되어서
늘 함께 대상이 되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장자라고 하는 부분에 있어선 자신이 있으셨던 것 같습
니다. 아주 반야심경 외우듯이 장자 내7편을 다 외우셨다고 그럽니다.
장자가 내편이 있고, 외편이 있고, 잡편이 있는데요.
순수한 장자의 진짜 친설은 “내편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있지 않습
니까?
스님께서 어디 강의나 법문하러 가실 때는,
운전을 해서 가면 뒷자리에서 뭘 중얼중얼 외우고 계신다는 겁니다.
“스님, 뭐 하십니까?” 이러면
“장자 한번 왼다.” 그러신대요.
“오늘 강의를 해야 될 것인데 장자 한번 왼다.” 이러신다는 겁니다.
장자의 문자가 어렵습니다. 글도 어렵고 문장도 어려운데요.
탄허스님은 장자를 줄줄 외우셔서 마치 우리 천수경 반야심경외우듯이
외우고 계셨던 분입니다.
우리 교재에도 이런 인연들을 설명해 놨습니다.
장자와의 인연. 교재 259쪽에서부터 쭉~~ 보면, 무슨 말씀을 했느냐?
이렇게 해놨습니다. 이 부분이 아주 중요한 대문일 것 같아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탄허스님이 법문하셨던 CD의 내용을 제가 여기에 받아 적어
놨습니다.
[노장사상은 불교를 몰라서는 해부를 못한다는 것이
내 결론입니다.
내가 노장사상을 공부하다가 중이 된 사람이거든.
내가 20세부터 노장사상을 파고들다가 선생님이 없어서
사방으로 선생을 구하다가 방한암 스님이 유명하다는 말을
듣고서 편지를 해보고 참 도가 있는 선비 같아서 3년간 서로
편지로 연애가 깊어져서 따라와서 중이 됐거든.]
道 공부를 서로 논하는 것을 “연애가 깊어졌다.” 이렇게 얘기하고 있
습니다.
[노장사상은 불교를 모르고서는 해부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딱 못 박아놓는 거예요.]
노장은 불교 모르면 도저히 알 수 없다는 겁니다.
[내가 유교 7서를 보고 나서 노장 사상에 달라붙어서
한 3년 동안을 그렇게 애를 써봐도 해부가 안돼.
중이 되어서 7년 동안을 내가 이력을 봤거든.]
“이력”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불교의 기본 교리 내용 “경전”을 말하는
겁니다.
[이력을 7년을 보고 나서 그 뒤에 노장 사상을 다시 한 번
훑어봤단 말이야. 그러니까 이제 풀어졌어. 그게 내 경험이거든.
유교와 불교 사이에서 노장사상이 자득이 된 거란 말이지.
그 전엔 절대 안 풀려. 유교 7서 다 봐 가지고는 안 풀려.
아무리 文理(문리)가 좋아도 안 풀린단 말이야.]
한문을 아무리 잘 보고, 문장을 아무리 잘 봐도 노장은 해부가 안 된다
는 것입니다. “불교 공부를 다 마치고 났더니 노장이 자득이 됐다.” 이런
얘기를 쭉~~~ 해놓고 있으셨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한암스님이,
“오대산 상원사에서 장자 주석하는 것을 허용해 주셨다. ”
탄허스님이 주석다는 것을 그 때부터 한암스님이 허락하셨다는 겁니다.
왜냐면 이미 선과 화엄을 가지고, 불교적 내용을 가지고 주석을 달기 시작
했으니 잘 하는 일이라고 한암스님이 허락을 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탄허스님의 명성이 처음으로 났을 때는, 장자로 명성이 많이 나신
것 같습니다.
[1955년에 한국대학이라고 하는 대학에서 스님의 특강을
요청을 해서 탄허스님이 1주일간 노장학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너무너무 좋으니까 수강생들이 아주 열렬하게 요청을 해서 두 달
동안 연장 강의를 하게 됐다.]
이때 처음으로 청강생으로 오신 1기생 분이 함석헌 선생입니다.
함석헌 선생의 나이가 열두 살이 많습니다.
그리고 기독교계에서 다석 유영모 선생의 제자로써 회통학에 대해서
관심이 굉장히 많았던 분이 함석헌 선생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최근에 이 책을 내고나서 전화도 받았습니다.
기독교 공부하시는 분들이 너무 좋아하십니다.
유교ㆍ불교ㆍ도교를 전부 기독교로 회통해낸 내용이 탄허스님에게
있다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큰 반응이 있고 너무나 좋아합니다.
그리고 저의 책의 내용을 보면서,
“함석헌 선생같은 분이 아주 탄허스님한테 가서 장자도 배우고,
동양학을 배워서 기독교와 회통하는 것에 어떤 개발을 받아서 그렇게
활발발하게 동양학의 박학 지사가 되셨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됐다!” 는
분들이 여러분 계십니다.
탄허스님이 그때 당시에 많은 지성인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거든요.
함석헌 선생이 당시에 동국대 교수로 계셨던 양주동 선생.
자칭 국보 제 1호라고 했던, “내가 남대문이다.” 이랬던 양주동 선생한테
가서, “자네가 국보 1호라고 할 수 있는지 탄허스님을 한번 보고 와서 얘기
해라.” 이랬다는 겁니다.
첫댓글 _()()()_
주석이 (님)게 되었습니다.^^
@무량화*
홍시 드릴까요? 단감 드릴까요?
@釋대원성 철지난 단감은 맛이 줄었고
홍시철이지요.^^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나무 대방광 불 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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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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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점점 강의에 흠뻑 젖어듭니다
참 대단하신 우리 불교계의 거목이신
탄허스님께 예경올립니다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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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꽃이 피면서부터 말랑한 홍시가 되기까지 갖가지 겪은 일들이 많았겠지요.
탄허스님께서 이루어놓으신 업적들이 문광스님을 만나는 시절인연으로 그 빛을 내게 되었나 봅니다.
홍시가 되기 전에는 결코 감을 먹을 수 없듯이...
훌륭하신 스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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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하신 분들을 훌륭하게 볼 줄 아시는 보살님도 훌륭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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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
_()()()_고맙습니다
文光스님 - 韓國學(呑虛思想) - 22-2. 呑虛와 莊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