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에세이
음력 9월 9일
남정화
사랑하는 남자는 한 놈도 빠짐없이 아버지를 닮았다.
벗겨진 머리, 언뜻 언뜻 스치는 행위와 동작, 그리고 무엇보다 보고 싶은 얼굴,
그 얼굴은 고향의 미루나무 같기도 하고, 하얀 모시적삼을 입고 장에 가시던 할아버지 같기도 하다. 내가 사랑한 그 놈들, 몇 놈을 제외하고는 모두 고향 같아서 그들을 영원히 떠날 수 없다. 그러나 사랑한 그대들이여! 오해 마시라.
그 놈들 중 미루나무 같거나 고향 같거나 아버지 같은 이는 단 한 놈,
그 놈만을 사랑하는 까닭이다. 그 까닭은 그와 같아서 그는 고향이고 아버지고 할아버지고 그 모든 것이다.
- 졸시 「음력 9월 9일」 전문
나는 내일 부산에 가기로 오늘 아침 문득 결정했다.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미리 당겨쓰는 느낌이랄까. 단단한 책임감이 벌써 시작된다. 그렇다면 미래를 당겨쓰는 일은 부질없다. 이런 섣부른 결정과 선택이 모여 삶을 이루었다.
아버지의 기일은 음력 9월 9일이다. 제사는 중요하지 않다고 그는 늘 말한다. 그래서 가끔 나도 ‘그건 중요하지 않아 라고 속삭이며 외면 한다.
아버지는 보리 한 포대, 감자 다섯 알, 마늘 세 뿌리를 짊어지고 히말라야를 넘는다. 창팡에서 빛과 소금을 구하고 다시 히말라야를 넘는다.
히말라야는 모든 게 귀하다. 귀한 것들은 귀한 것들끼리 귀한 곳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아버지는 히말라야를 택한다.
히말라야는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높고 험준한 고갯길이 아닌 아버지의 아버지가 두 발로 걷기 시작했던 직립의 길일뿐이다.
ㅡ『우리詩』 2019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