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원래 아무거나 잘 먹는 여자였다. 그러던 어느날 '꿈'때문에 채식을 하게 된다. 남편이 다그쳐도 보고, 아버지가 뺨을 때리면서 억지로 먹여보기도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녀는 점점 야위어가고 사회와 어울려 살아가는 것도 힘들어진다. 억지로 먹이려는 아버지에 반항하여 손목을 긋는 자살 시도까지도 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그녀에게 남은 것은 이혼.(채식주의자)
그렇게 독신으로 살게 된 그녀. 그리고 그녀를 성적인 욕망으로 바라보는 형부. 형부는 그녀를 탐하기 위해 예술 '작업'을 빌미로 그녀를 불러들인다. 그녀의 나체에 꽃을 그린다. 욕망을 가졌던 그는 욕망조차도 잊는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작업을 하기 위해 그녀를 부른다. 그리고, 대단원을 아우르기 위해 섹스를 한다. 그 다음날, 그의 부인에게 그 현장이 발각된다.(몽고반점)
마지막, 형부의 부인, 그녀의 언니의 이야기. 남편은 정신에 아무런 이상이 없어 수감되었고, 그녀의 동생인 영혜는 정신병원에 들어갔다. 영혜의 채식은 계속되다 못해, 절식을 하기까지 이르렀다. 영혜는 이제 그녀 자신이 나무가 되어간다고 했다. 햇빛을 쬐기 위해 옷을 벗고, 비오는 날 나무처럼 오도카니 서있기도 한다. 밥은 먹지 않아 점점 야위어 간다. 억지로 동맥에 혈당주사를 놓아도 뽑고 토해버리기 일쑤고, 어떤 방법도 찾을 수 없다. 점점 죽음에 가까워져 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척추에 혈당 주사를 놓기 위해 서울에 있는 병원 가는 길로 마무리된다. 영혜는, 그녀에게 '왜 죽으면 안되냐'고 묻는다. 그녀는, 어쩌면 이게 꿈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한다. (나무불꽃)
맨부커상 수상 작품
“바로 이 책입니다.” 보이드 톤킨 맨부커상 심사위원장이 ‘더 베지터리안(The Vegetarian)’을 꺼내 한 손에 들자 객석의 박수 소리는 컸다. 만 9년 전 소설이 번역의 힘으로 언어 장벽을 넘자, 올해 수상자로 뽑힌 한강은 세계 문단이 일순간에 주목하는 작가로 다시 태어났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힘있지도, 갸늘프지도 않지만 차분하고 정갈한 목소리의 소설가 한강은 수상소감을 전했다. 연단에 선 한강은 영어로 “오래 전 쓰인 책으로 지금 이런 상을 받게 된 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면서도 “독자들이 소설 읽기를 좀 다르게 생각해 주시면 좋겠다. 내치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을 갖고, 질문을 나눠갖는 마음으로 읽어주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고 말했다.
한강은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의 7번째 수상자다.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은 2005년 이스마일 카다레를 시작으로, 2015년 라슬로 크라스나오카이까지 전 세계 작가들에게 영예를 안겼다. 필립 로스, 리디아 다비스 등을 수상작가로 둔 미국은 수상자를 유일하게 복수 배출했고 알바이나, 나이지리아, 캐나다, 헝가리는 한 명씩 배출했다. 한국은 6번째 수상국의 명성을 확보했다. ‘채식주의자’는 알바니어아, 헝가리어 외에 영어로 쓰이거나 번역된 다섯 번째 수상작이다.
맨부커상은 1969년 영국 출판사 부커사가 제정한 상으로, 2002년 맨(Man)그룹이 후원자로 나선 뒤 명칭이 ‘맨부커(The Man Booker)상’으로 바뀌었다. 한강이 수상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은 비(非)영연방 작가들을 대상으로 삼는다. 한국인이 한강 이전에 후보자로 거명된 적은 없다. 1930~1950년대생인 기존 수상자와 달리 한강은 1970년생으로 최연소 수상자다.
벼락같은 희소식에 문단의 찬사는 이어졌다. 문학평론가 정과리 연세대 교수는 “순수한 문학적 평가를 통해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을 탄 첫 사례가 될 것”이라며 “언어장벽에 가로막혀 절연돼 있던 한국문학이 번역으로써 장벽을 허물었다. 한국문학이 한반도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세계라는 틀에서 이해되기 시작했다”고 평했다. 문학평론가 신수정은 “한국문학과 세계문학 간의 낙차가 없다는 진실이 밝혀진 사건”이라며 “한국문학 위기설이란 쓸데없는 경멸의 담론에 대한 저항의 기반이 마련됐다”고 극찬했다. “이미 한국문학이 지역적인 내부 문제뿐 아니라 세계적 공감을 살 만한 주제와 이미 만나고 있었음을 증명했다”고 덧붙였다.
한강 소설가의 가족사진. 왼쪽부터 남편 홍용희 문학평론가, 한강, 모친 임감오 여사, 부친 한승원 소설가.
한강 소설은 첫 작품부터 웅숭깊었다.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은 인간 상처를 탐구하는 한강의 문학관(觀)을 세상에 알렸다. 첫 장편 ‘검은사슴’은 도심을 기억상실증에 걸린 여성의 모습으로, 두번째 장편 ‘그대의 차가운 손’은 석고로 인체의 본을 뜨는 라이프캐스팅으로 인간 심연을 파고들었다. ‘바람이 분다, 가라’는 촉망받는 여자 화가의 의문사에서 기억과 고통을, ‘희랍어 시간’에서는 최고(最古)의 언어인 희랍어란 소재로 말(言)을 잃어가는 여성의 삶에서 침묵과 소멸을 조명했다. ‘소년이 온다’는 광주민주화운동을 통해 희생과 상처를 다뤘다. 한강표 소설을 단 한 단어로 압축한 키워드는 ‘인간’이다.
‘채식주의자’가 넘어선 경쟁작 5편은 거대 담론과 감성적 서사로 무장한 수작이었다. 옌런커의 ‘The Four Books’는 노동교화소에서 핍박받는 인물을 그려, 자유를 쟁취하는 과정에 맞딱뜨린 억압에 대항하려는 인간 신념을 설파했다. 오르한 파묵의 ‘A Strangeness in my Mind’는 이스탄불 남성의 모습에서 우리의 선택이 인간을 행복하게 할지, 운명이 우리의 내면을 결정할지를 되묻는다. 로버트 시탈러의 ‘A Whole Life’는 오스트리아 알프스에서 살아가는 주인공 안드레아스가 아내 마리와 태중의 아이를 잃고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줄거리로, 절대적 고독 속의 근원과 아름다움을 모색했다.
한강은 지난 4월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숏리스트(shortlist)에 포함된 직후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자신의 전(全)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를 ‘인간에 대한 이해’라고 말했다. 당시 한강은 “인간이란 주제는 내가 지금까지 소설을 쓴 동력”이라며 “인간에 대한 질문은 계속 또 다른 질문을 부르고, 그 질문을 딛고 앞으로 가는 과정 속에 소설가로서의 내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수상은 번역이 빛을 발했다. 톤킨 위원장은 번역자인 데보라 스미스에 대해 “놀라운 번역”이라고 칭찬했다. 그는 기묘하면서도 뛰어난 ‘채식주의자’가 영어에 들어맞는 목소리를 찾았다”고 평했다. 영국과 한국 9000km 거리를 수시로 오가며 한강 작품을 해외에 소개한 이구용 KL매니지먼트 대표는 “외국에 한국문학을 소개하면서 내건 목표 중 하나는 같이 일하는 작가가 국제적인 인지도를 지닌 문학상을 받는 것이었다”며 기뻐했다.
한국문학계에 모처럼 낭보가 날아들었다. 한강 작가의 장편소설 <채식주의자>가 세계적인 권위의 맨부커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룬 것. 한국문학이 이를 계기로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을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영국 맨부커상 선정위원회는 현지시각으로 지난 16일 ‘채식주의자’를 올해의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으로 ‘채식주의자’를 선정했다. 한 작가와 그의 작품을 영어로 옮긴 영국인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가 공동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3개의 연작으로 구성된 ‘채식주의자’는 개가 죽어가는 어릴적 기억으로 인해 육식을 거부하고 자신이 나무가 되어간다고 생각하는 주인공 영혜를 둘러싼 이야기. 이 과정에서 인간의 폭력성을 그렸다. 지난 2007년 출간됐으며 2년 뒤에는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맨부커 상은 노벨문학상, 공쿠르 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아시아 작가의 작품이 맨부커 수상작에 이름을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게다가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한 작가의 작품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올해 만 46세인 한 작가는 최연소 맨부커상 수상자라는 기록도 갖게됐다.
▲ 세계적 권위의 맨부커 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
국내 언론들도 한 작가가 거둔 쾌거에 고무된 모습이다. 주요 신문들은 18일자 사설을 통해 한 작가의 수상을 축하하면서 한국문학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시각을 나타냈다. 이와 함께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번역가 양성에 힘써야 한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