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원작을 기반으로 한 영화는 결과가 좋더라도 욕을 먹기 마련이다. 원작의 자유로운 시간성, 독자의 주체적인 의식적인 독서 영향에 비해 한정된 시간 안에 주어진 것을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이는 관객으로서의 불가피한 수동성이라는 이 두가지 측면은 독자와 관객이라는 자세와 영향의 불가피한 차이가 생기곤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니 빌뇌브 감독은 [컨택트]를 통해 원작인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에 누가 되지 않을 정도로, 어떤 면에서는 가장 영화다운 방식으로 멋진 작품으로 탄생시킨 것 같다. [컨택트]는 의식했든 하지 않았든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로버트 제메키스의 [콘택트]의 가치를 일정 부분 공유하고 있다. 이는 물리과학적인 특성을 보여주는 면과 주제의식의 두가지 모두이다.
외계인과의 조우는, 특히 지구보다 앞선 지적생명체의 지구 당도는 아마 앞으로 발생할 가장 큰 뉴스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문명과의 만남을 역사적으로 많이 본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당도한 것도 결국은 다른 문명과의 조우이다.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상황을 넘어서서 더 나은 상태로 만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아무튼 우리가 외계문명과의 조우 이전에 타 인종과의 조우, 타 대륙과의 조우, 동서양 간의 조우와 이해가 더 낳은 상태에 있다면 그만큼 우리는 그만큼 더 조화와 평화에 가깝게 서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외계문명이 당도한다면 우리는 그들과 싸우기 전에 우리끼리 싸우다가 멸망을 자초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첫째 미덕은 소통과 이해의 가치이다.
과거의 과정들이 모여 현재가 되고 현재의 과정들이 모여 미래를 결정한다. 모이는 것들은 나안의 것과 나밖의 것, 내 문명 안의 것과 내 문명 바깥의 것들이다. 과거의 문명은 미래의 문명을 만나 영감을 얻고 미래의 문명은 과거의 문명을 만나 또 하나의 미래의 문명을 예비한다. 미래를 보여주는 ‘예언의 책’은 봉인되어 있다. 그러나 어떤 연유로든 그것이 보여지자마자 그것은 새로운 세계로 재구성되며 업그레이드되어 새로 쓰여진다. 미래의 자식이 과거의 부모에게 돌아와 살해할 수 없는 이유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두 번째 미덕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그것은 매번 새로 생성된다는 가치이다.
원작에서 외계인들인 헵타포드인의 언어는 하나의 그림처럼 그 안에 온전한 세계를 담은 만다라에 가깝게 이해했지만 영화에서는 그런 점이 관객들에게 어렵거나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원형(circle) 스타일의 문자로 단순화했다. 굳이 꼽자면 이런 점이 아쉽다면 아쉬운 부분이지만 영화의 입장에서는 나름 잘 극복한 부분이라고 보여졌다. 원작인 책은 그것에 관심있는 독자가 접근해서 이해하는 쪽이라면 각색된 영화는 불특정 다수의 대중이 접근하기에 이해의 수준은 좀 더 일반적으로 가는게 맞기 때문이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매력은 영화의 중심을 놓치 않고 끝까지 잘 유지하는 점인 것 같다. 영화는 중반까지는 몇몇 설정 변화에도 불구하고 원작에 충실할 정도로 따라 가다가 중반 이후부터 변화를 꾀하기 시작한다. 나는 이 순간에 솔직히 긴장하면서 보기 시작했다. 아마 적지 않은 감독들은 원작의 가치에도 불구하고 이런 변화를 급속하게 혹은 처음부터 상업적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흥미오락위주의 블록버스터물로 대치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는 중반 이후로 원작과는 다르게 흘러가되 영화적 특성과 장점을 살리며 원작을 접하지 못한 일반 관객들을 고려하되 작품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간다. 외계인의 소통에 대한 방식의 지구인들간의 대립 구도와 일촉 즉발의 상황 등은 원작과는 다르지만 영화를 더욱 극적으로 이끌어갔다. 원작에 가깝게 흘러갔다면 SF나 지적인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의 매니아 영화로 남았을 것 같다. 모든 이가 선물을 받는다고 그 선물을 잘 활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헵타포트인은 지구인에게 선물을 주었고 지구인은 그 선물을 근사하게 활용했다. 결국 이것은 모두에게 좋은 윈-윈(non-zero sum)이었다. 영화를 보기 전 밤을 새느라 수면은 부족했고 몸은 피곤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나갈 때 나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헐리우드의 영화들은 흥미오락 위주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지만 규모가 워낙에 크기에 그리 단순하게 정의할 수도 없다. 예전에는 능력있는 감독들을 헐리우드로 불러서는 상업적으로 변질(?)시키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헐리우드로 온 감독들의 작가적 역량을 잘 살려 나오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에이미 아담스, 제레미 레너, 포레스트 휘태커를 비롯한 적재적소에 배치된 배우들, 요한 요한슨의 멋진 음악, 드니 빌뇌브의 훌륭한 연출 등이 헐리우드의 장점인 협업 시스템과 만나서 작품에 등장하는 물리학자의 표현대로 ‘고도로 근사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원작은 지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의 세계를 새롭게 이해해가는 성찰의 작품이고 영화는 다른 속도의 문명을 지닌 세계가 만나 이루어지는 사건을 극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이 두 세계를 모두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란다.
첫댓글 상상력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영화였지요
정말 인간의 생각을 한 차원 업그래이드 시키는
멋진 생각, 멋진 영상이었습니다
율리시즈님의 글을 읽으니 다시 감동이 살아옵니다
그런데, 다시 확인해보니 이전에 보았던 그 영화가 아니라 새로나온 거군요.
이 영화도 다시 볼께요. 율리시즈님이 추천하는 작품이니 기대가 됩니다.
@가을아침 ㅎㅎ 20년전 조디 포스터가 나왔던 콘택트도 너무나 아름다운 영화였지요. 그에 못지않게 이번 영화도 매우 좋습니다. 한번 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