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해자로 풀어보는 천자문[88] 이궐가유 면기지식(貽厥嘉猷 勉其祗植) <훌륭한 계책을 남겨 주고, 그것을 공경히 세우는 데 힘쓰라>
1. 들어가는 말
《천자문(千字文)》의 여든여덟 번째 구절인 「이궐가유 면기지식(貽厥嘉猷 勉其祗植)」은 앞 구절에서 제시한 소리와 모습을 세심하게 살펴 이치와 기색을 분별하는 자세(聆音察理 鑑貌辨色)를 이어받아, 훌륭한 가르침과 계책을 남겨 전하고 그것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세워 실천하는 계승의 도리를 보여 주는 구절입니다.
앞 구절이 잘 듣고 자세히 살펴 사람과 사물의 이치를 분별하는 지혜를 다루었다면, 이번 구절은 그러한 지혜와 좋은 가르침을 자신에게만 머물게 하지 않고 남겨 전하고 실천하는 데로 시선을 넓힙니다. 훌륭한 계책과 도리를 남기는 일과 그것을 공경히 받아 삶 속에 세워 나가는 일이 서로 이어져야 함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궐가유(貽厥嘉猷)는 훌륭한 계책과 도리를 남겨 전한다는 뜻입니다. 이어지는 면기지식(勉其祗植)은 그 훌륭한 가르침과 계책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세우고 실천하는 데 힘쓴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貽厥嘉猷 勉其祗植」은 훌륭한 가르침과 계책을 남겨 전하는 일(貽厥嘉猷)과 그것을 공경히 받아 세우고 실천하는 일(勉其祗植)을 서로 짝지어 보여 줍니다. 《천자문》은 이 여덟 글자를 통해 좋은 가르침과 지혜는 한 사람에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잘 남겨 전하고 이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받아 실천할 때 그 뜻이 오래도록 이어질 수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2. 들어 있는 말
가. 어구의 핵심 의미와 철학적 배경 「이궐가유 면기지식(貽厥嘉猷 勉其祗植)」은 훌륭한 가르침과 계책을 남겨 전하고, 그것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세워 실천하는 계승과 실천의 도리를 두 글자씩 짝지어 보여 주는 구절입니다.
• 이궐(貽厥): 이(貽)는 ‘끼치다·남겨 주다·전하다’를, 궐(厥)은 ‘그·그것’을 뜻합니다. 여기서는 훌륭한 계책과 가르침을 남겨 전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가유(嘉猷): 가(嘉)는 ‘아름답다·훌륭하다’를, 유(猷)는 ‘꾀·계책·도리’를 뜻합니다. 따라서 嘉猷는 훌륭한 계책이나 좋은 방도를 가리키며, 넓게는 후대에 전하여 본받게 할 만한 바른 가르침과 지혜를 뜻합니다. • 면기(勉其): 면(勉)은 ‘힘쓰다·힘쓰게 하다’를, 기(其)는 ‘그·그것’을 뜻합니다. 여기서는 앞에서 말한 훌륭한 가르침과 계책을 소홀히 하지 않고 힘써 실천하고 이어 가는 것을 뜻합니다. • 지식(祗植): 지(祗)는 ‘공경하다’를, 식(植)은 ‘심다·세우다’를 뜻합니다. 따라서 祗植은 훌륭한 가르침과 도리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굳게 세워 실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은 좋은 가르침과 지혜를 남기는 일과 그것을 받아 실천하는 일이 서로 이어져야 한다는 유가의 계승 의식과도 통합니다. 《시경(詩經)》에는 「貽厥孫謀,以燕翼子」라 하여 자손에게 좋은 계책을 남겨 후대를 편안하게 한다는 뜻이 나타납니다. 이처럼 「貽厥嘉猷 勉其祗植」은 훌륭한 가르침은 남겨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받은 사람이 공경히 받아 삶 속에 세우고 실천할 때 비로소 그 뜻이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나. 《설문해자(說文解字)》를 통한 문자학적 고증 「이궐가유 면기지식(貽厥嘉猷 勉其祗植)」의 여덟 글자는 각각 남겨 전함·그것·아름다움·계책·힘씀·그것·공경함·세움이라는 뜻으로 이어지며, 본문에서는 훌륭한 가르침과 계책을 남겨 전하고 이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받아 세우도록 힘쓰는 계승과 실천의 자세를 나타냅니다. • 貽(끼칠/남길 이): 《설문해자》에는 貽 대신 통용되는 詒를 수록하여 「詒,相欺詒也。一曰遺也。从言,台聲。」이라 하였습니다. 허신은 詒에 ‘속이다’라는 뜻과 함께 “남겨 주다·전해 주다(遺也)”라는 뜻도 있다고 풀이하였습니다. 단옥재는 《이아》와 《모전》의 「詒,遺也」를 들고, 후대에는 이 뜻으로 貽를 많이 빌려 썼다고 하였습니다(「俗多假貽爲之」). 《강희자전》 역시 貽를 「贈遺也」라 하고 경전에서 詒와 통용한다고 밝혔습니다. 본문의 貽는 이러한 뜻으로 쓰여 훌륭한 계책과 가르침을 남겨 전함을 나타냅니다. • 厥(그 궐): 「厥,發石也。从厂,欮聲。」 허신은 厥을 “돌을 들추어 일으키다(發石也)”라고 풀이하였습니다. 그러나 고문헌에서는 《이아》의 「厥,其也」처럼 ‘그·그것’을 뜻하는 其의 가차자로 널리 쓰였습니다. 단옥재도 「此假借也。假借盛行而本義廢矣」라 하여 이러한 가차 용법이 성행하였음을 밝혔습니다. 본문의 厥 역시 ‘그·그것’이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 嘉(아름다울/훌륭할 가): 「嘉,美也。从壴,加聲。」 허신은 嘉를 “아름답다·훌륭하다(美也)”라고 풀이하였습니다. 壴가 뜻에 관여하고 加가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입니다. 단옥재는 《이아》의 풀이를 들어 嘉에는 ‘좋다·선하다(善也)’라는 뜻도 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또한 《주례(周禮)》의 「以嘉禮親萬民」에 대한 정현(鄭玄)의 주석 「嘉,善也」를 인용하여 그 뜻을 밝혔습니다. 자형의 壴에 대해서는 “壴는 음악을 벌여 놓는 것이다(壴者,陳樂也)”라고 설명하였습니다. 본문에서는 猷와 결합한 가유(嘉猷)로 쓰여 훌륭한 계책이나 도리를 뜻합니다. • 猷(꾀/도리 유): 오늘날에는 猷와 猶를 구별하지만, 고전에서는 두 글자의 용법이 지금처럼 엄격히 나뉘지 않았습니다. 《이아》에는 「猷,謀也」, 「猷,圖也」, 또 「猷,道也」라 하여 猷를 ‘꾀하다·도모하다’, 나아가 ‘도리’라는 뜻으로 풀이하였습니다. 단옥재는 圖와 謀가 모두 일을 신중하게 헤아려 이루려는 의미에서 서로 통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본문에서는 嘉와 결합한 가유(嘉猷)로 쓰여, 훌륭한 계책이나 바른 도리를 뜻합니다. • 勉(힘쓸/권면할 면): 「勉,彊也。从力,免聲。」 허신은 勉을 ‘힘쓰다’라는 뜻으로 풀이하였습니다. 力이 뜻을 나타내고 免이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입니다. 단옥재는 「凡言勉者皆相迫之意」라 하여 스스로를 다그쳐 힘쓰거나 남에게 힘쓰도록 권면하는 뜻이 있음을 밝혔습니다. 본문에서는 其와 이어져 그것에 힘쓰다·힘써 행하도록 하다는 뜻을 나타냅니다. • 其(그 기): 《설문해자》에는 오늘날의 其가 독립된 표제자로 수록되어 있지 않고, 箕의 고문자 𠀠을 「古文箕」라 하여 키[箕]의 옛 자형으로 제시하였습니다. 허신은 箕를 「箕,簸也。从竹𠀠象形,下其丌也。」이라 하여 곡식을 까부르는 키라고 풀이하였으며, 𠀠은 그 모양을 본뜬 상형 요소입니다. 단옥재 역시 𠀠을 「古文箕。象形不用足」이라 하여 箕의 고문자임을 밝혔습니다. 한편 《강희자전》은 오늘날의 其를 「指物之辭」라 하여 ‘그·그것’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勉其祗植」에서는 이러한 대명사적 용법으로 쓰여 앞에서 말한 가르침과 계책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祗(공경할 지): 「祗,敬也。从示,氐聲。」 허신은 祗를 “공경하다(敬也)”라고 풀이하였습니다. 示가 뜻을 나타내고 氐가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입니다. 곧 마음을 삼가고 공경하는 태도를 뜻합니다. 본문에서는 植과 이어져 공경하는 마음으로 세운다는 뜻의 지식(祗植)을 이룹니다. • 植(세울/심을 식): 「植,戶植也。从木,直聲。」 허신은 植을 “문에 세워 놓은 나무[戶植]”라고 풀이하였습니다. 단옥재는 이를 “곧게 세운 나무(直立之木)”라고 설명하고, 여기에서 식물을 ‘심다[植物]’와 곧게 ‘세우다[植立]’라는 뜻으로 확대되었다고 하였습니다(「植之引伸爲凡植物,植立之植」). 본문의 「祗植」에서는 ‘세우다’라는 뜻으로 쓰여, 가르침과 도리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굳게 세움을 나타냅니다. 《설문해자》와 관련 훈고의 자의를 종합해 보면, 貽·厥·嘉·猷는 훌륭한 계책과 좋은 도리(嘉猷)를 남겨 전하는 뜻으로 이어지고, 勉·其·祗·植은 그것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받아 굳게 세우고 실천하도록 힘쓰는 뜻으로 이어집니다. 이처럼 여덟 글자는 좋은 가르침을 남겨 전하는 일과 그것을 공경히 받아 삶 속에 세워 나가는 일이 서로 이어져야 함을 글자 하나하나의 뜻을 통해 보여 줍니다.
3. 맺는 말
살다 보면 앞선 사람에게서 참 많은 것을 물려받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부모에게서 배운 생활 습관도 있고, 선생님에게 들었던 말 한마디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기도 합니다. 함께 일했던 선배가 일을 처리하던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배운 것도 있습니다. 그때에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일이 세월이 흐른 뒤 내 삶의 한 부분이 되어 있음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이궐가유 면기지식(貽厥嘉猷 勉其祗植)」의 ‘남겨 준다[貽]’는 말을 생각하면, 사람은 재산이나 물건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했는지, 사람을 어떤 마음으로 대했는지, 맡은 일을 얼마나 책임 있게 해냈는지도 곁에 있던 사람에게 남습니다. 특별히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는데도 자녀가 부모의 모습을 닮고, 후배가 선배의 일하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이어 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좋은 것을 남기는 일은 좋은 말을 많이 해 주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자신의 생활이 그 말과 다르면 오래 마음에 남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말은 많지 않았어도 평생 약속을 지키고, 어려운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며, 자기 일을 성실하게 해 온 사람의 모습은 곁에 있던 이들에게 하나의 가르침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은 들은 말보다 오래 지켜본 삶의 모습을 더 깊이 기억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물려받은 사람에게도 할 일이 있습니다. 앞선 세대의 가르침이라고 해서 무조건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오늘에도 지켜야 할 뜻이 무엇인지 헤아려 자신의 삶에 맞게 이어 가는 일입니다. 植이 무언가를 세우고 심는 뜻으로 이어지듯, 좋은 가르침도 내 삶에 다시 심어 실제 행동으로 옮길 때 비로소 살아 있는 것이 될 것입니다.
「貽厥嘉猷 勉其祗植」의 여덟 글자를 되새기며 나 역시 언젠가 다음 사람에게 무엇을 남기게 될지 생각해 봅니다. 거창한 가르침이나 훌륭한 말을 남기지 못하더라도,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 “그 사람은 그렇게 살았다”고 기억해 줄 만한 모습 하나쯤은 남길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가르침을 남기는 가장 오래된 방법은 어쩌면 그것을 먼저 자신의 삶으로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종(終)>
2026. 10. 10. 두서(杜西) 류시언(柳時彦)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