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추석 잘 쇠셨습니까? 추석이 예년보다 빨라 몹시 더우셨다고요. 올해는 '여름 추석'이다 뭐다 해서 호들갑이 많았습니다. 윤 9월이 있는 해이기 때문이죠.
그래도 아침저녁으로 부는 선선한 바람은 계절을 속일 수 없습니다.
추석인 지난 8일은 음력 8월 15일이기도 하지만 24절기의 백로(白露)이기도 했습니다. 예부터 백로에는 흰이슬이 내리고 이후부터 날씨가 차가워진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바야흐로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을, 가을의 정체는 뭘까요?
가을의 속내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어떤 이는 일교차가 10도 이상 나면 가을이라고도 하고, 또 시인묵객은 '하늘이 높고, 그리움이 커지면 가을'이라고도 했습니다. '가을이 되면 편지를 쓰겠다'는 가객도 있습니다.
부산기상청 김태희 장기예보관은 "가을은 하루 평균 기온이 20도 미만으로 떨어진 후 다시 올라가지 않는 첫날부터"라고 잘라 말합니다. 수치로 계절의 변화를 판단하는 예보관이니 당연히 그리 해야 하겠습니다.
그럼 부산의 가을은 대체로 언제부터 시작할까요. 기상청의 도움을 받아 약 100년 동안의 통계자료를 살펴 봤습니다.
1910년대는 9월 26일이 가을의 첫날이고, 1930년대는 다소 빠른 9월 23일이었습니다. 1950년대는 9월 27일로 늦어졌고, 1980년대는 9월 28일, 1990년대는 10월 3일, 2000년대는 10월 4일로 조금씩 늦어지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일까요.
그런데 지구온난화로 봄과 가을이 없어진다고 말들을 하지만 장기 기상 통계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매 10년 단위 기상청 통계를 보면 가을은 적게는 71일에서 많게는 93일까지였고 2000년대에도 평균 81일간 가을이 지속돼 넉넉했습니다. 다만, 겨울은 점점 줄어들긴 합니다.
참고로 겨울은 하루 평균 기온이 5도 미만으로 떨어진 후 다시 올라가지 않은 첫날부터, 봄은 그 기준이 5도 이상, 여름은 20도 이상 올라간 후 다시 떨어지지 않은 첫날부터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기온 보다 절기가 더 정확하게 가을을 알려준다고도 합니다. 절기를 아이들 교육에 접목시키고자 하는 '꽃피는학교' 전 교장인 김희동 통전교육연구소장은 '절기는 하늘로 이어진 길'이라고 합니다.
태양의 길(황도)의 변화에 따라 만든 24절기는 너무도 계절을 잘 반영하여 처서(8월 23일)를 지나면 하늘이 쑥 높아지고 백로(9월 8일) 이후에는 낮과 밤의 기온차가 뚜렷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한낮에는 더워도, 밤에 문을 열어 놓고 자다 시나브로 이불을 끌어당기는 이유가 있었군요.
자, 이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이라는 시를 읊어 볼까요.
'지난 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지금 고독한 사람은 계속 고독하게 살아/ 잠들지 않고,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여름의 끝, 당신의 온전한 가을을 맞을 준비가 되셨나요.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