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죽과 무나물
최 화 웅
투석 3년차에 접어들었다. 건체중 유지를 위한 식이요법과 투약에 매달린 일상이다. 혈액투석이 안정적으로 진행되면서 컨디션이 회복되고 입맛도 서서히 돌아오고 있다. 입맛을 돋우는 음식은 대체로 간이 진하고 짜서 물을 들이키게 만든다. 만성신부전증 환자에게는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다. 투석치료를 받는 만성신부전증환자에게는 식사량은 물론 수분과 염분섭취량의 조절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서양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BC460~377)는 일찍이 “음식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다.”고 하지 않았던가.
신장(kidney, 腎臟)은 우리말로 콩팥이다. 척추를 중심으로 주먹만 한 크기로 두 개의 신장이 좌우에 하나씩 달렸다. 신장은 우리 몸의 정수기로 혈액속의 노폐물을 걸러내서 오줌으로 내보내고 혈액속의 전해질 농도와 혈압을 조절한다. 전해질이란 생리작용에 관여하는 나트륨, 칼륨, 염소, 중탄산염 등 4가지로 흔히 나눈다. 이들 전해질은 우리 몸의 대사과정을 조절한다. 만성신부전증이란 신장이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는 만성질환이다. 신장의 기능이 여러 가지 요인으로 정상의 35~50%에 그치더라도 별다른 증상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흔히 신장을 두고 침묵의 장기라고 일컫는가 보다.
나는 신장이식을 준비하던 2014년 3월 하순 부산의 신장내과 전문의 공진민 박사와 서울의 한대석 박사, 김성권 박사와의 상담진료 결과 요독(BUN)수치 84.8에 크리아티닌(Cr)수치 5.54로 신장기능이 고작 10.78%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결과를 통보받으면서 앞으로 슬라이딩 상태로 그벽히 나빠질 것에 대비해서 혈액투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투석에 의존해야 하는 신장병환자를 말기신장질환자라고 부른다.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얼굴색이 검어지고 식욕이 떨어지며 경사길을 걷기에 힘이 부쳤다. 5월 19일 투석을 위한 동정맥루 혈관수술부터 예약했다.
그리고는 6월 24일 수요일에 첫 투석을 받았다. 투석은 또 하나의 시작이었다. 라카룸에서 환자복을 갈아입은 뒤 낯선 투석실로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체중기에 올라서고 투석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체중을 달았다. 그만큼 건체중(Dry Weight)이 환자가 지켜야할 제1수칙이었다. 건체중이란 혈압이 떨어지지 않고 근육경련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에서 몸속의 필요 없는 수분을 거의 또는 모두 제거한 투석 직후의 체중을 말한다. 목표 건체중은 투석 초기에 가슴X레이를 찍은 뒤 주치의와 상의해서 결정하게 된다. 투석환자의 건체중은 투석이 끝난 뒤로부터 다음 투석 때까지 체중의 증감이 없으면 이상적이지만 0.5~1kg 정도의 변화를 허용하고 늘어난 체중만큼 다음 투석 때 제거한다.
다음은 혈당과 혈압유지다. 이를 위해 염분섭취량을 하루 5~7g정도로 무염식에 가깝도록 싱거운 음식을 먹고 건체중 유지를 위한 물 섭취량을 조절하라고 권한다. 국과 찌개, 젓갈과 김치류의 짠 반찬을 피하고 야체류는 삶거나 데쳐서 물에 한 두 시간 당근 뒤 칼륨을 충분히 뺀 뒤에 먹어야 한다. 건과류와 과일도 과감히 줄였다.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해서 혈당 혈압강하제와 인 칼륨결합제, 이뇨제와 항응고제와 가려움에 먹는 약까지 복용한다. 나는 아침저녁에 이와 관련된 15~17알의 약을 먹는다. 약을 먹기 위해서 밥을 먹어야 한다. 낮에 외식을 했거나 아침을 먹기 거북해도 약을 먹기 위해서는 끼니를 거를 수 없다. 투석환자의 일상은 병원에서 반을 집에서 반을 사는 셈이다. 그만큼 병원의 치료와 집에서의 간호가 중요하다.
투석은 삶을 위한 새로운 시작이다. 음식을 싱겁게 먹고 물도 줄여야 한다. 투석을 해도 평소 앓아온 당뇨와 고혈압은 몸속에서 계속 진행하고 있으므로 눈, 심장, 폐, 뇌혈관 등 다른 장기를 튼튼하게 유지시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이를 위한 소식과 적당한 운동, 그리고 충분한 휴식과 잠을 통해서 컨디션을 유지하고 하루에 두 세 번씩 혈당과 혈압을 체크하고 정해진 투약시각을 지켜야 한다. 어떠한 음식이든 한 가지를 계속 장복하는 것은 문제가 있고 내가 좋아하는 육류와 멸치, 등푸른 생선과 건과류, 콩과 과일은 칼륨과 퓨린 농도가 높아 제한 식품이다. 이 모든 투병생활이 사랑하는 아내와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삶이다.
투석 3년째 접어들면서 아내와 함께 궁리해 낸 하루 한 끼의 건강식이 흰죽과 무나물이다. 나는 평소에도 푹 퍼진 흰죽과 미음을 좋아하고 김장철 들쩍지근한 무나물과 무로 담은 상큼한 피클을 좋아한다. 점심을 외식한 날 저녁이나 이튿날 아침에는 흰죽을 먹는다. 흰죽에 무나물을 먹을 때는 기름 냄새가 베이지 않도록 담백한 무나물이 음식궁합에 맞는다. 가공되지 않은 자연식에 가까운 흰죽과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무나물은 속이 편하고 부족함이 없다. 어릴 때부터 "제대로 쑨 흰죽은 고기보다 살로 간다"고 듣고 자랐다. 그렇다. 요즘에 와서 몸에 맞는 나의 영양식은 흰죽이다. 계란을 넣을 때도 흰자만 넣고 인 성분이 높은 우유는 삼가 한다. 아내가 끓이는 흰죽 한 그릇이 내 병든 몸을 다스린다.
우리나라에서도 2018년부터 웰다잉(Well Dying)법이 시행된다. 소생 가능성이 없거나 더 이상 회복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사망시간만 연장하는 환자가 자기결정에 따라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은 마침내 존엄하게 죽을 권리인 존엄사를 보장하게 된 것이다. 연명치료를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으로 밝혔다. 늦게나마 스페인의 라몬 삼페드로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싶다. 투병생활을 하는 철부지 환자들은 오늘도 제한 식품과 금지 식품을 이겨내지 못하고 여기저기서 밥상머리 투정으로 가족의 애를 태울 것이다. 신장병은 완쾌가 없다. 한 번 망가진 신장은 결코 회복되는 일이 없다. 오직 상처 입은 신장과 더불어 사는 길뿐이다. 나는 오늘도 착한 아내, 엘사가 정성스레 끓여주는 구수한 흰죽과 들쩍지근한 무나물 볶음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투병의 십자가를 메고 걸어간다.
첫댓글 환자가 된다는 건 너무 힘든 일인 것 같습니다.
흰죽과 무나물을 드시더라도 날로 나아지시길 빕니다.
투병생활의 힘듬을 절제와 인내로 잘 이겨나가시고 내조의 힘으로 건강이 점점 좋아지시는 게 참 감사하네요^^
엘리사벳님은 참 훌륭한 아내의 표본이십니다.
그런 아내를 두신 그리움님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분이시구요.
투병생활을 잘 하고 계신 그리움님, 감사합니다.^^
엘리사벳님은 내조뿐아니라
모습도 참 아름다우세요.^^
복이 많으신 그리움님,
저와 기호가 비슷하세요.
좋아하는 음식이 똑같아요.
다만 전 먹을 수 있다는 차이,
저도 갑자기 흰죽과 무나물로
한끼 식사를 해볼까 합니다.^^
힘드실텐데 담담하게 삶의 한부분으로 받아 안으시는 모습에 마음이 먹먹하네요.
착하고 현명하신 엘사형님과 함께 셔서 너무 다행이고 감사하네요..
주님께서 너무도 사랑하시는 두분의 건강을 빕니다~^^*
환자인 국장님도 힘드시겠지만 간호하시는 엘리사벳 사모님 고생이 얼마나 많으십니까 투병으로 내외분의 사랑이 하느님 보시기에 더 아름다운 성가정 이루시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움님을 위해서 기도중에 함께 기억하겠습니다. 엘사님을 위해서도요.
또한 투병중인 모든 환우들이 힘든 시간을 통해 주님을 더 깊이 사랑하고 위로받는 시간이 되시길...
투병 중에도 늘 열심히 생활하시는 그리움님께 응원을 보냅니다...
저의 외숙모님께서도 일주일에 3번 투석을 받으시러 다니셔서 투석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조금을 알고 있습니다. 체중이 더 많이 나가면 일주일에
4번을 투석하기도 하시더군요. 그래도 외숙모님은 투석받는 시간을 내가 휴식을
취한다고 생각하시며 자신을 다스리시는것 같았어요.
그리움님도 그렇게 생활하고 계시는것 같아 그래도 마음한구석 안심이 되는것 같아요.
기도중에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