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복지관,
결국 복지관 정체성에서 시작
지난 4월 19일 서울시복지재단 서울복지교육센터에서 열린 ‘내일로 가는 클래서 ESG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인천세화종합사회복지관 김용길 관장님과 ESG에 관하여
지금까지 공부하고 실천한 내용을 참석자 20여 명 앞에서 나눴습니다.
김용길 관장님 발표를 통해 현재 복지관들이 ESG를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하려고 하는지 알았고,
제 이야기를 나누면서는 다시 한번 주장과 논리를 정리했습니다.
이번 일정은 여느 세미나와는 다른 방식이었습니다.
발표자 두 사람이 각각 25분 정도 이야기한 뒤 청중에게 질문이나 소감을 들었습니다.
잠시 쉬었고 다시 다음 주제를 같은 방법으로 나눴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발표시간이 짧으면 이야기를 하다 마는 건 아닐지, 다소 산만해지면 어쩌나 했습니다.
여러 주제를 각각 짧게 나누니 핵심을 말하려 애쓰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들을 때는 집중이 잘 되었고, 발표할 때는 부담이 없었으며,
수시로 청중의 생각을 말로 들으니 참석자 전체가 함께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나아가, 이번 세미나로 깨달은 게 있습니다.
ESG 가운데 특히 ‘E’, 기후환경과 같은 주제를 이해하고 적용하는 데에서
여느 복지관과 제 생각의 차이가 결국 ‘복지관 정체성’이나 ‘복지관 이상’, ‘복지관 지향’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를 조금 정리해 보았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사업 현장에서는 복지관마다 그 정체성을 달리 하고 있습니다.
합의한 정체성이 없는 건 분명합니다. 이를 크게 두 모습으로 나눴습니다.
① 복지관은 더불어 살게 지원하는 기관
어느 복지관은 복지관을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복지를 이루고,
나아가 더불어 살게 지원하는 기관(agency, community welfare center)’으로 정의합니다.
이런 복지관은 그 이상이 ‘더불어 사는 지역사회’에 있습니다.
이웃을 만들고 인정이 생동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런 동네나 마을을 이루려고 힘씁니다.
따라서 사람을 도울 때, 그가 어떤 사람이든 분명 사회 속에서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믿고
이를 찾아가는 ‘사회역할모델’을 선택합니다.
이런 복지관에서 ESG 가운데 ‘E(Environment)’를 요구받는다면,
더욱 더 당사자의 사회적 관계를 풍성하게 하는 일에 힘쓸 겁니다.
자연환경을 위한 일은 결국 우리의 ‘소비 방식’을 바꾸는 일입니다.
사람 사이 관계가 생동하면 ‘함께 쓰고 나눠 쓸 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울려 살아가면 왕래가 잦고 부탁하기 수월하니 궁극적으로 개별 소비를 줄일 것이라 기대합니다.
고립되어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 이를 증명합니다.
고립사의 전조가 쌓이는 쓰레기라고 합니다.
또한, 타인과 교류가 없어 애정과 인정, 나아가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이 뭇 생명을 아끼고 생각할 리 없습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지 않는 이의 마음 씀이 지구환경까지 닿기란 불가능합니다.
② 복지관은 복지서비스를 지원하고 조정하는 기관
반면, 어느 복지관은 복지관을 ‘당사자의 문제 상황에 적절한 복지 서비스를 지원하고 연계하는
종합 관리 기관(welfare service center)’으로 설정합니다.
이런 복지관은 그 이상이 ‘복지서비스를 받거나 복지관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여느 사람처럼 살아가는 모습’에 있습니다.
당사자가 지역사회에서 소외되지 않게 지원하는 뜻은 귀하지만,
사회복지사의 판단과 주도로만 이뤄지는 서비스 진행 방식이 당사자를 자기 삶에서 소외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복지관은 사회복지사의 진단과 사정 능력으로 문제를 판단하고 개입하는 ‘의료‧병리모델’을 선택합니다.
사회복지사가 빛나는 만큼 당사자에게는 그늘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 복지관에서 ‘E’를 요구받는다면,
복지관이 지원하는 복지서비스를 환경 친화적인 방식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을 궁리할 겁니다.
혹은, 복지서비스는 그대로 둔 채 에너지 절약 운동, 쓰레기 버리지 않기나 줍기와 같은
자연환경을 위한 별도의 일을 벌일 겁니다.
근본적으로 ‘복지서비스’ 그 자체가 이미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식임을 모른 채,
그래서 당사자가 이루고 지역사회가 함께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도
‘별도의 에너지를 더 사용해야 하는’ 복지서비스로 이루고자 합니다.
지구 환경을 위해 복지서비스를 중단하거나 줄이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급진적 실천으로 다가올 겁니다.
결국, 복지 서비스를 중심으로 하는 복지관이 만든 ESG 지표 가운데 E 지표는
‘쓰레기 배출을 줄이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쓰레기를 줍자’고 하는 제안 정도로 나올 수밖에 없게 됩니다.
지역사회에 이웃이 있고 인정이 흐르게 하는 데 마음 둔 복지관의 환경지표는 다를 겁니다.
‘한 달간 도시락을 지원하더라도 두세 번은 받은 도시락 함께 드시게 거들었고,
그 덕에 만들어진 식사 공동체에서 한 달에 한두 번이라도 당신들끼리 모여 드시게 함으로써
도시락이 나갈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지구환경을 위한 복지관다운 적용과 근본 변화입니다.
이웃을 만들고 인정을 생동했으니 복지관답게 일한 것이며,
하루 이틀 도시락 배달을 하지 않음으로써
그때 사용하는 물, 불, 전기, 자동차 기름, 도시락 용기, 포장 비닐 사용을 줄이는 환경 친화적 실천이 되었습니다.
마을 주민들과 쓰레기 줍는 ‘줍깅’을 하더라도 활동 평가를 위한 질문이
‘얼마나 많이 주웠는지’를 인증하는 방법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환경단체가 아닙니다. 공동체를 지향하는 복지관은 활동 뒤 묻는 질문이 다릅니다.
‘함께’ 활동 하니 얼마나 좋은지, 이 활동으로 ‘서로 알게 되거나 가까워졌는지’ 묻습니다.
줍깅은 ‘구실’이요, 목적은 ‘관계’입니다.
복지관은 사람 사이 관계를 생동하는 곳이니 관계를 목적을 활동했지만,
지금 시대가 이러하니 이왕 벌이는 일을 ‘줍깅’으로 한 겁니다.
사람 사이 관계를 생동하여 당사자 둘레 생태계를 생동하는 ‘복지생태’.
자연생태에 이로운 방식으로 복지서비스를 진행하나는 ‘생태복지’.
둘 다 귀한 일입니다. 지금은 뭐라도 해볼 때입니다.
그러나 근본을 생각한다면 복지관 정체성에서 이 고민을 시작합니다.
ESG 논의를 몇몇 프로그램을 돌리는 일로 이뤄간다면 이는 분명 또다시 유행에 편승하는 모습입니다.
복지관 평가 따위에 적절히 대응하며 지금 상황을 모면하려는 소극적 자세입니다.
ESG는 복지관 정체성을 돌아보게 하는 주제입니다.
더 멀리 내다본다면 복지관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생각이 깊어지다 보면 분명 공동체에 닿을 겁니다.
더는 미루지 말고 변화를 시작할 때입니다.
더 늦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