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글 올립니다. : 세상의 모든 최대화 / 황유원
앞서 소개한 두 편의 시는 학우님들이 보셨듯이 신춘문예 당선작과 문학상 당선작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시는 문예지 당선작입니다. 문학동네 당선작이죠. 감이 옵니까? 속칭 S급으로 분류되는 문학동네 당선작이라고 하니까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죠. ㅎ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시를 먼저 소개하지 않고 설명부터 먼저 합니다.
왜냐하면 습작기에 있거나, 이제 시에 좀 흥미를 갖게 된 분들이 시를 먼저 보면 이게 무슨 말이야? 아이고 길기도 하네, 도대체 이게 왜 당선작이야, 이런 생각이 들 게 뻔해서입니다. 그리고 이건 제 생각인데요. 시를 어느 정도 아는 분이라도 이렇게 쓰긴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좌절할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물론 현대시를 곧잘 쓰시는 분들이라면 이 시가 왜 당선작이 됐는지 한번 읽어보면 느낌이 올 겁니다.
여기서 제가 왜 느낌이라고 말했냐면 그런 분들조차도 느낌일 뿐이지, 확실히 말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제가 결론을 한번 말해보겠습니다. 문예지, 특히 S급이나 A급으로 분류되는 문예지의 시들은 대개가 이런 스타일이라는 겁니다. 다음에 올릴 글에서 다시 한번 설명하겠지만, 문예지 당선작들은 조금 어려워 보이는 시를 선호해섭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춘문예 당선작보다 더 쉬울 수도 있습니다.
학우님들, 혹시 누아르 영화 좋아하세요? 저는 누아르라고 하면 주윤발 주연의 「영웅본색」이 떠오릅니다. 비장한 음악과 슬로우 모션이 가미된 액션 같은 거죠. 일단 폼 나거든요. 문예지 당선작을 저는 그런 종류로 봅니다. 일종의 폼이나 멋입니다. 멋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사람마다 취향이 다 다르거든요. 설령 멋의 정의가 확실히 있더라도 그조차 느낄 뿐입니다. 우리가 흔히 ‘필’이 온다고 할 때의 그 ‘필’이죠. 그러니 문예지의 현대시는 ‘필’로 느끼면 됩니다. 기승전결 식으로 해석하지 마세요.
이쯤 말하면 아직 읽어보지 않은 분들이라면 시가 더 궁금할 겁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이번엔 당선작으로 뽑은 전체 심사평과 네 분의 심사자가 각각 어떤 코멘트를 했는지 살펴볼 겁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요. 앞으로 우리가 현대시를 읽어나갈 때 꼭 참고해야 하거든요. 이 역시 제가 다음 주차에 한 번 정리해 볼 생각이니 오늘은 이 시의 심사평만 먼저 봅시다. 우선 전체적인 심사평은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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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본심은 불과 십 분 만에 끝나고 말았다. 네 분의 심사위원이 회의에 참석하면서 당선자로 염두에 둔 응모자가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최대화」외 네 편을 응모한 황유원씨였다. 더 이상 회의를 진행할 이유가 없었다. 심사위원들은 황유원씨의 작품이 어째서 우수한가에 대해 잠깐 동안 의견을 교환하고 그를 당선자로 최종 확정했다. 마라톤이 되기 일쑤인 심사회의를 백 미터 달리기로 만들어준 황유원씨에게 축하의 인사를, 함께 달려준 모든 응모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이렇게만 보니까 시가 상당히 궁금하죠. 그럼, 네 분의 심사자가 각자 평가한 걸 보기 전에 제가 읽어본 이 시의 대략적인 내용을 비속어를 써서 아주 간단히 말해보겠습니다. 기차가 기타를 졸라 많이 싣고 갑니다. 철로는 기차도 무거운데 기타까지 졸라 많이 실었으니 압사 직전이겠죠. 근데 기차가 뭐 손가락이 있나요. 발가락이 있나요. 우리가 생각한 것처럼 힘 안 듭니다. 진짜 힘든 건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그게 없을 때 힘들겠죠. 아까 기타를 실었다고 했으니 기타리스트에게 손가락이 없거나 발로 움직이는 애벌레가 발이 없다면 어떨까요? 거의 죽음이죠.ㅎ 그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죽지 않고 살려면 약을 먹어야겠죠.
그래서 다음 이미지에서는 ‘약’이 주 소재로 나옵니다. 바늘 가는 데 실이 따라가듯이 약에 따라붙는 이미지는 병과 환자죠. 처음엔 기타를 졸라 실었는데 이젠 약을 졸라 싣고가는 기차가 나옵니다. 그리고 탈선하는 기차, 쏟아지는 약들. 환자들은 그 약을 먹어야 살 수 있으니 애벌레처럼 기어서라도 갑니다. 아까 발가락을 언급할 때 말했던 애벌레가 환자인 셈이죠.ㅎ 기어서라도 갈 수 있는 거리가 바로 최대로 갈 수 있는 거리일 테고, 여기서 우리는 이 시의 제목에서 말하는 ‘최대화’의 의미를 어렴풋이 짐작하게 됩니다. 엎어지고 깨지고 넘어지고 부서져서 쏟아진 것들이 어디까지 뻗어가는지, 그리고 우리는 그것들을 주워 담으려고 어디까지 나아가는지. 일테면 원상복구랄까요.
저는 이 시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술을 많이 마셔서 토할 때의 느낌 같은 거요. 아니면 급똥 신호가 와서 변기에 앉자마자 좌-악 퍼지는 설사라든가. ㅋㅋ 다들 그런 경험 있으시죠? 아무튼 그게 무엇이든 사방 좌우로 한꺼번에 좌-악 퍼져간 것들의 황량한 이미지가 생각났네요. 그걸 다시 정리해야 하는 수습 같은 것들요. 그럼 한번 생각해 봅시다. 좌-악 퍼져간 것들에게서 느낀 감정을 적은 게 뭐 그리 대단한 작품일까요? 맞습니다. 대단한 거 없어요. 그런데 그걸 표현한 형식(표현)이 기가 막히다는 겁니다. 제가 일전에 올린 게시물에서도 얘기했죠. 현대시의 묘미는 표현의 형식에 있지,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요.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리듬감이 차고 넘칩니다. 마치 파도가 일렁이듯이 출렁출렁, 남녀가 섹스를 나눌 때 부지런히 피스톤 운동을 할 때의 리드미컬함이죠. 제가 섹스를 예로 든 이유는요. 섹스 자체가 뭡니까? 남자의 성기를 여자의 성기에 집어넣는 겁니다. 그런데 왜 누구는 만족(당선)하고 누구는 만족 못 할까요(탈락)? 전희도 전희지만, 피스톤 운동의 리드미컬한 움직임 없이 냅다 넣는 데만 집중해서입니다. 이 시의 당선 이유는 아까 언급한 것처럼 큰 이유 없이 리듬감 있게 앞으로 왔다가, 뒤로 갔다가 우로, 좌로 가면서 넘어지고 엎어지고 일어나서 다시 기어가고 이들의 마음을 보듬어주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니 기차나 기타나 약이나 환자, 병은 그걸 말하기 위한 소재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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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용 소개는 이쯤하고 그걸 떠올리면서 이제 네 분의 심사자가 어떻게 평가했는지 한번 봅시다. 그리고 다른 작품을 떨어뜨린 탈락의 이유는 또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비판적으로 말한 게 곧 탈락의 이유일 테니 그건 제 임의로 표시하겠습니다.
김혜순 시인-이미지 구축의 묘미라고나 할까. 형식이 내용을 구축하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역시나 형식을 말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본 셈이죠)
시를 읽고 있노라면 이미지들이 시 텍스트의 표면을 부풀리면서 상승하고, 하강하면서 숨겨진 차원을 드러내는 모습이 유쾌하고도 풍자적이다. 능숙하게, 세련되게 나선형으로 움직이고 있는 이미지를 타는 재미도 남다르다. 그렇지만 언젠가 느껴본 적이 있는 리듬의 구사, 너무 능숙한 이미지 운용은 오히려 시인 스스로 경계해야 할 덕목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탈락의 사유-감각의 낯선 부분을 두드리는, 그런 드문 기쁨을 주는 시들을 만나기를 바랐다. 무릇 새로운 시인이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다면 서툴지만 깊거나, 낯설지만 다층적이거나, 어눌하지만 새로운 감각의 세계를 확장한 시들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했다.
남진우 시인-이 응모자는 언어를 다루고 시적 얼개를 짜고 상상력을 진전시켜 나가는 데 있어서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고 있으며... 기차와 기타를 넘나들며 화자가 펼치는 분방한 진술은 음악으로 표상되는 예술적 도취의 세계에 대한 갈망과 현실에서 그것의 좌절을 힘있게 전달하고 있다.
신형철 문학평론가-황유원씨의 「세상의 모든 최대화」를 읽고 이런 생각을 했다. 올해는 이 사람이 당선자가 되거나 아니면 당선자가 없겠구나. 다행스럽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당선자를 뽑지 말자고 주장하는 심사위원은 아무도 없었다.
「화물칸에 일렉기타를 한 만 대쯤 싣고 가는 가장 길고, 무거운 마음
그 속을 누가 알겠냐마는 철로만은 알지,
짓밟힌 몸길이를 짓밟힌 시간으로 나눠 기차가 절망하기 시작한 지점에서부터 자기 합리화에 성공하는 지점까지 걸린 속도를 계산해내며 자기를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짓밟고 가는 기차의 무게를 참고 견디지」
이런 도입부는 분석이고 뭐고 하기 이전에 바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의미와 리듬이 서로 뒤엉켜 달려나갈 조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탈락의 사유-좋은 서사를 만들어낼 능력은 없지만 재치 있고 세련된 문장을 쓰는 일 정도라면 자신 있다, 라는 생각으로 시를 쓰고 있는 응모자가 적지 않다고 느꼈다. 번듯하게 시의 꼴을 갖춘 작품들에서 그런 내심이 감지될 때면 답답함이 커진다. 자기 자신조차도 믿지 않는 문장을 써놓고 그 문장이 자신이 투여한 것 이상의 힘을 발휘하기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맥락도 없이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주어와 술어를 어색하게 연결하기만 하면 이근화나 신해욱의 좋은 시와 비슷하게 보일 거라 믿는 것일까. 소설에 비해 시가 독자를 속이기 쉬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사행성 글쓰기는 곤란하지 않을까.
이문재 시인-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활달한 상상력이었다. 활달하면서도 여유가 있었다. 시적 대상이나 시 속의 상황, 또는 시를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대해 적절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누가 알겠냐마는" "말하자면" "상관은 없겠지만"과 같은 표현은 거리를 확보하지 않으면 쉽게 구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일렉기타, 알약, 포도주를 가득 싣고 가는 기차—비현실적인 설정이지만, 시는 제법 강한 흡인력을 내장하고 있었다.
시 쓰기에 대한, 아니 삶에 대한 은근한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자폐적 독백을 뛰어넘는 개방적 대화의 문체에 신뢰가 갔다. 근래에 만나기 힘들었던 구심력-방사선적 상상력이었다.
탈락의 사유-고양이와 개가 곳곳에서 출현하고 각주(脚註)가 수시로 달렸다. 다양한 서체(書體)를 동원했고, 그럴수록 문장이 길어졌다. 부모나 가족이 등장할 때는 어김없이 대화체였다. 대부분의 응모작이 분량이 길었고, 길어진 만큼 산만했다. 시를 수렴, 확장시키는 중심이 없었다. 무엇을 왜,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희박했다. 쓰기 자체에 대한 열정만 대단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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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상으로 네 분의 심사자가 당선작으로 뽑은 이유를 읽었습니다. 조금 느껴지나요? 여전히 확실하게 잡히는 건 없지만, ‘필’은 조금 올 겁니다. 뭔지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흔한 말로 ‘감’이라고 하죠. 그런 감이 좀 올 겁니다. 더불어 네 분의 심사자들 역시 이 시의 미덕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현대시의 당선작 평을 보면 얼척 없는 이유도 많거든요. 그 역시 다음 주차에 정리해서 한번 올려드릴게요.
아무튼 오늘 심사한 네 분의 심사평은 아주 정확합니다. 그중에서도 신형철 평론가와 이문재 시인의 평을 유심히 보시면 좋습니다. 신형철이 말합니다. “이런 도입부는 분석이고 뭐고 하기 이전에 바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그리고 이문재 시인이 말하죠. "누가 알겠냐마는" "말하자면" "상관은 없겠지만" 이게 아주 중요합니다. 앞서 언급한 모든 형식 중에서 가장 압권인 표현이 바로 이런 형식이거든요.
당선의 이유로 언급한 표현 외에 제가 몇 개 더 뽑는다면 이겁니다. “그 기분은 누가 알까” “엎질러진 아이나 알까” 이걸 다르게 표현한다면 “ㅇㅇ은 알까?”로 쓰는 형식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한 가지 더 있는데 시에서 행의 어미가 ‘-지’로 끝나다가 다음 행에서 명사형으로 끝나고, 또 어떤 곳에서는 느닷없이 “있니!”로 끝나는 형식입니다. 리드미컬하게 변화를 주는 거죠. 그리고 여기선 ‘말하자면’만 나오지만 이 외에도 ‘그러니까’ ‘이를테면’을 한번 써보세요. 시의 느낌이 확 달라집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현대시에서 많이 봤겠지만, 그냥 일상적으로 써나가다가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의문형인 ‘-까?’가 나오는 스타일 아실 겁니다. 이는 분위기의 전환으로 아주 그만입니다. 그러니 좀 이상하다 싶어도 갑자기 중간에서 ‘-까’로 한번 바꿔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현대시에서 아주 많이 사용하는 기술이라면 기술입니다.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신형철이나 이문재가 언급한 탈락의 사유를 한번 보세요. 말을 저렇게 해서 그렇지, 저걸 조금만 바꾸면 당선의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일테면 신형철의 탈락 사유를 이렇게 바꿔보겠습니다. 스크롤바를 올렸다 내렸다 비교하면 답답하니까 다시 한번 더 쓰겠습니다. 같이 두고 비교해 보시길.
탈락의 사유-좋은 서사를 만들어낼 능력은 없지만 재치 있고 세련된 문장을 쓰는 일 정도라면 자신 있다, 라는 생각으로 시를 쓰고 있는 응모자가 적지 않다고 느꼈다. 번듯하게 시의 꼴을 갖춘 작품들에서 그런 내심이 감지될 때면 답답함이 커진다. 자기 자신조차도 믿지 않는 문장을 써놓고 그 문장이 자신이 투여한 것 이상의 힘을 발휘하기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맥락도 없이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주어와 술어를 어색하게 연결하기만 하면 이근화나 신해욱의 좋은 시와 비슷하게 보일 거라 믿는 것일까. 소설에 비해 시가 독자를 속이기 쉬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사행성 글쓰기는 곤란하지 않을까.
탈락의 사유를 다르게 적는다면-「좋은 서사가 없는 밋밋함 속에서도 재치 있고 세련된 문장이라는 게 느껴졌다. 일단 시의 꼴을 갖춘 작품들에서 그런 내심이 감지될 때면 눈에 확 띄기 마련이다. 어쩌면 이 작품은 자기 자신조차도 믿지 않는 문장이기에 자신이 투여한 것 이상의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맥락도 없이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주어와 술어를 어색하게 보이는 것 또한 이미지의 다변화와 낯설게 하기 측면에서 독자를 완벽하게 속이고 있다.」
어떤가요? 분명 탈락 사유였지만 조금만 바꾸니까 당선 이유로 그럴듯합니까? 이문재의 탈락 사유도 마찬가집니다.
탈락의 사유-고양이와 개가 곳곳에서 출현하고 각주(脚註)가 수시로 달렸다. 다양한 서체(書體)를 동원했고, 그럴수록 문장이 길어졌다. 부모나 가족이 등장할 때는 어김없이 대화체였다. 대부분의 응모작이 분량이 길었고, 길어진 만큼 산만했다. 시를 수렴, 확장시키는 중심이 없었다. 무엇을 왜,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희박했다. 쓰기 자체에 대한 열정만 대단해 보였다.
탈락의 사유를 다르게 적는다면- 「고양이와 개가 곳곳에서 출현했다. 다양한 서체(書體)를 동원했고, 그럴수록 문장은 자연스럽게 길어졌다. 화자에 따라 시점에 따른 대화체가 인상적이었다. 대부분의 응모작이 길었지만, 그만큼 사유의 진폭도 크다 할만하다. 시를 수렴, 확장시키는 중심이 곳곳에 포진해 있어 무엇을 왜,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 또한 사방에서 모여들고 분산하는 효과를 주고 있다. 응모자의 열정이 대단하다 할 수밖에.」
어떤가요? 이 역시 당선작의 사유로도 충분해 보이지 않나요? 현대시라는 게 이렇습니다. 제아무리 어렵게 보여도 실상 알고 보면 아주 간단한 걸 말하고 있죠. 다만, 그 간단한 걸 빙빙 돌려서 쉽게 말하자면 말장난을 하는 겁니다. 시는 ‘말놀이’라더니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늘 말하지만 현대시는 ‘무엇’을 말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떻게’입니다. 어떻게 표현하는지 그 형식이 중요합니다. 그런 형식은 어떻게 얻는지 이 역시 다음 주차에서 나름의 생각을 적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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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편하게 당선작을 한번 감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당선작이 어렵다는 생각은 안 들고 재밌게 느껴질 겁니다. 저는 시를 아주 대단한 ‘무엇’으로 보지 않습니다. 각종 글에서 시란 무엇인가? 주제로 쓸데없이 길게 설명한 글을 볼 때가 있습니다. 정말 읽으나 마나 한 글이죠. 시를 잘 쓰고 싶다면 본인의 노력이야 필수고, 그 노력 중엔 알게 모르게 배우고 익혀야 할 이 같은 기술(?)도 있습니다. 그러한 기술을 어디 가서 썰로 풀 때는 고고한 문학이니 어쩌니 하는 건 본인의 자유지만, 잘 쓰기 위해서는 배워야겠죠. 그런 노하우를. 그리고 이렇게 계속해서 글을 올리진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모든 당선작이 비슷한 방식으로 쓰이고, 비슷한 이유로 당선되니까요.
참,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이 작품은 2년 후인 2015년 '제34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으로도 뽑혔습니다. 그때 심사평은 '세상의 모든 최대화'에 대해 "철학적이고 동시에 실험적이며, 단단하면서 동시에 유연한 시 세계를 보여줬다"고 평했다........... 고 하나마나한 소리였고요.ㅎ 이제 이쯤 되면 현대시의 심사평이 아주 대단한 무엇을 말하는 게 아니란 걸 눈치채야 합니다. 말이 길었네요. 이제 진짜로 당선작을 감상해 보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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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최대화 / 황유원
화물칸에 일렉기타를 한 만 대쯤 싣고 가는 세상에서 가장 길고, 무거운 마음
그 속을 누가 알겠냐마는 철로만은 알지, 짓밟힌 몸길이를 짓밟힌 시간으로 나눠 기차가 절망하기 시작한 지점에서부터 자기 합리화에 성공하는 지점까지 걸린 속도를 계산해내며 자기를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짓밟고 가는 기차의 무게를 참고 견디지
기차가 아무리 짓밟고 가도 손가락도 발가락도 잘리지 않는 건 손가락도 발가락도, 아무것도 없어서
손가락을 잃은 기타리스트는 알지 흉측한 음악을 만들 바에야 약을 먹고 죽는 게 낫다는 걸 발가락이 없는 애벌레는 알지 발가락이 없으면 기어서라도, 가고 싶은 곳엔 가고 봐야 한다는 걸
말하자면 비시각적 음표들의 시각적 극대화
그러나 약은 치료하기도 하는 것,
병명보다 더 많은 치료제를 잔뜩 싣고 가던 기차가 마침내 말기에 다다라 포기하고 탈선할 때 눈 내린 들판에 처박힌 기차에서 동그란 알약들이 쏟아져나올 때의 기분이란
그 기분 누가 알겠냐마는 환자들만은 알지, 환자들은 꿈속에서 거기까지 걸어가 그 약을 모두 주워 먹은 다음날 아침 병실에서 깨어나 기차의 차가운 몸을 이해하지 넘어진 채 몸을 뒤로 돌리던 기차를 이해하며 몸을 정확히 당신들 반대편으로 돌리지
현실도피는 없어, 현실의 최대화만이 있을 뿐
오늘밤 그들의 기도가 기차처럼 길어져 결국 지구를 몇 바퀴씩이나 돈 기도들의 속도가 기차를 조금씩 허공에 뜨게 해 마침내 이륙한 기차를 바라보며 철로가 난생처음으로 편안해질 수 있다는 희망, 을 품자마자 기차는 곤두박질치고 지진처럼 지축이 흔들려 복부를 강타당한 남자처럼 철로가 신물을 토할 때 신물 위로 기타가 쏟아지는 기분
그 기분은 누가 알까 침대에서 굴러 떨어져 꿈에서 엎질러진 아이나 알까
아무리 길게 써도 저 레일에는 모자랄 것이므로 여기서 그만둬도 상관은 없겠지만
고요한 밤, 캐롤을 싣고 가다 넘어져 모두 엎질러버린 아주아주 거룩한 밤, 깨진 전구를 뛰어넘어 크리스마스의 본질을 거침없이 이해하고 산타를 엉망진창으로 때려눕히고
지구가 한 바퀴 돌기 전까지 기타를 모두 수리해야 하는 수리공의 마음은 망가진 리프(riff)들을 밤새 고치고 있는 기타리스트밖에 모르지
너에겐 싣고 가다 넘어져 모두 엎질러버릴 만한 그 무엇이 있나? 넘쳐서 어쩔 수 없이 들켜버리는 리듬이라도 있니? 넘쳐서 어쩔 수 없이 들켜버리는 리듬을 타고 비옥한 꿈속을 달리다 넘어지는 곳이 늘 절벽 앞이어서 느껴보는 아찔함, 그 뒤에 웅크리고 앉아 그 리듬을 정면으로 견뎌본 적 있니!
구겨진 리듬을 잘 펼치면 과연 어디까지 펼쳐질 수 있을지, 무엇까지 덮어볼 수 있을지를 가늠하며 최대한 붉은 와인을 박스째 주문해
뱃속에 와인을 만 박스나 싣고 가는 기차가 오늘밤 도무지 몸을 가누지 못하는 이유를 누가 이해하겠냐마는 사랑을 한 박스나 마시고도 제대로 서 있는* 조니 미첼은 이해하지, 어쩌면 술집을 이름표처럼 달고 다니다 이름을 아무 데서나 콸콸 쏟아버리던 에이미 와인하우스**도 이해하지
잠시 동안의 짧고 굵은 경악과 모든 최대화에 따르는 극심한 부작용, 그때마다 벌어진 가랑이 사이로 경적을 울리며 긴 열차 한 대 빨려들어오는 느낌, 결국 일망타진 당하고 마는 느낌을
너무 긴 문장에겐 이제 그만, 쉼표를
* Joni Mitchell, 〈A Case of You〉중에서. ** Amy Winehous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