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14.저녁
김용호 자매 말씀 요약
이런 자리에 앉을 수 잇어 감사하다. 함께 찬양을 하니까 너무 좋고 계속 뛰고 싶다. 너무 좋으니까. 말씀 하나를 읽겟다.
너희는 ㅎ께로 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고... 의로움과 지혜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셧으니. 고전1:30이다. 예수 안에 잇게 되면 바로 구속이고 그러면 지혜라고 햇다.
인생이라는 것, 위치이탈이기에 생겨난 문제라는 것 몰랏다. 그 해답을 어디서 찾아야할지 몰랏다. 충성인지 어딘지. 해답 가진 자가 없엇다. 그런데 해답가진 목사님을 만난게 큰 복이다.
나는 선교사 되기 위해 중국에 나가게 되엇다. 한국에 잇엇으면 예수에 대해 의심이 없을 ㅅ이다. 그런데 중국 나가면서 하나님, 복음, 믿음 다 흔들리게 되엇다. 이 복음이 효과가 없어서 이상햇다. 그때는 ㅎ에 대해서도 나를 버리시는 하나님이라는 생각 들엇다. 나는 믿지 않는 ㅅ보다 불행해보엿다. 이불뒤집어쓰고 정말 괴로울 때엿다.
그러던 중 목사님 안으로 이끌리게 되면서 마치 목사님이 예수같앗고 일반 목회자가 아닌 아버지. 인생 해답을 주는 목사님을 보면서 정말 신기하고 아름다웟다.
내가 저분을 알게 되면 저분처럼 되어서 선교의 길을 가겟구나. 햇다. 한국에 와서 쉬고 싶엇을 때엿다. 이 빛이 오니 하늘과 땅이 갈라지며 내가 피조물, 흙인줄 알게 되엇다. 마지막에는 죽음을 살아내는 것이 ㅅ을 살리는 길인줄 알앗다. 목사님도 그렇게 보엿다.
나를 이기신 ㅎ을 만나서 아들로 나타난 ㅎ, 나를 이긴 ㅎ을 만나면서 받으며 살앗다. 내 앞의 언니 오빠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더도 말고 언니오빠들처럼 살기 바랫다. 문제도 그 앞에서 해결되엇다.
그런데 죽음을 살아내는 삶에 문제가 생겻다. 이 죽음을 사는데 내가 그렇게 살수없엇던 내가 나타낫다. 조금만 기다려라. 햇지만 폭발하는 내가 나타나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내 삶이 부도낫다. 나는 목사님처럼 언니 오빠들처럼 못 되는구나...
내 마음대로 하는 나를 보면서 목사님이 내게 해답이 안되엇다. 죽음을 사는 삶이. 목사님이 그분이엇지만 병원 다녀오면서 내려오지 못하는 예수 말씀하셔도 왜 자꾸 보태지? 그런 생각이 들면서 바닥을 치고 잇엇다. 무시 멸시 당하는 상황이 잇으면서 완전 바닥이엇다. 내가 차라리 ㅎ을 위해 안 살앗다면 최소한 먹고 사는 부분은 해결되엇을텐데. 왜 내가 목회자, 선교자의 길을 간다고 햇지?
종교 안에서는 선교지에 나가면 이런 저런 일이 많다. 그런데 그 마지막 끝에 다 끝나고 나니 다 흔들리면서 내가 왜 그렇게 살앗지? 해답이 안되는 이 사회, 나가야겟다. 10년 이상 살앗지만 해답이 안되어서 나갈 곳을 알아보게 되엇다.
혼자 처절하게 남모르게 우는데 목사님 말씀하시는데 십못내 예수, 바닥인 예수가 보엿다. 저 ㅅ이 나구나. 목사님이 이 ㅅ이구나. 그렇게 보엿다. 목사님이인 이 ㅅ을 보는데 예수 안에, 십못내 예수 안에 목사님만 계신 것이 아니고 나만 잇는게 아니라 온 인류가 그렇게 지어졋고 ㅎ의 계획 안에 ㅅ은 누구라도 그 안으로 부르심 받아야할 ㅅ이엇다. 조건은 없이 다만 ㅅ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 ㅅ은 내가 태어날 때부터 잇엇던 ㅅ인데? 우리의 형상과 모양대로 ㅅ을 만들자 햇던 그 ㅅ이 이 영원한 한 ㅅ이엇다. 그런데 이 ㅅ이 안 나타낫던 것이다. 모두 바벨로 올라가는, 이미테이션이엇다.
예수 안에서 함께 죽고 함께 사는 것이 없엇다. 이상하게 목사님이 말씀하실 때 내가 다리가 가려운데 남의 다리를 긁엇다 할 때 몰랏는데 이 정확한 자리에 오니 딱 끝난 그 ㅅ이엇다. 확실히 보엿다. 모든 소유가 깨끗이 끝난 ㅅ이엇다.
ㅅ아닌 자 잇는가? 온인류가 다 ㅅ이다. 그런데 속아서 다 바벨로 올라가는 ㅅ이엇다. 내가 너무나 애를 썻구나.. 그냥 ㅅ이기만 하면 되는데. 이 ㅅ이 너무나 비밀이어서 몰랏던 것이다.
내가 괜찮다고 하는 소유, 어떤 것도 내가 아니다. 마이너스라고 생각햇던 내 신뢰가 무너진 그것도 다 내가 아닌, 예수 안에 잇는 ㅅ만 나엿다.
ㅎ이 시작하셧고 이미 완성된 이 길을 보고 발견하는 것뿐이다. 그냥 받는 것이다. ㄱ그전에는 노력하고 내가 죽어야하고.. 그랫는데 이 세계에는 ㅎ이 하신 일을 보는 것뿐이엇다.
그래도 선교사로 산 ㅅ이, 14년 가까이 그 선교사로 살앗던 사람인데 그렇게 나가서 살앗던 것이 축복이엇다. 사실 나가서 아주 핍절한 삶이엇다. 정말 아이러니다. 이 세계를 만나 구속이 된게 너무나 감사로 되엇다. 이 모든 것이 구속이 되니 다 보상되엇다.
분명 힘들엇는데 그것이 다 사라지고 없엇다. 놋뱀 앞에서 모든 독이 다 사라졋다. 이 영원한 한 ㅅ을 보면서 사실 처음에는 너무 싫엇다.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회로가 끝나는 것이다. ㅎ앞에서만 잇는 그 ㅅ이 싫어서 1년 이상 도망가며 살앗다. 아무 가능성 없는 ㅅ이라는게 다 뽀롱낫다.
가난한 마음도 없지, 충성도 없고 목사님처럼 되고 싶은 소원도 사라졋다. 아예 그런 마음 다 사라지니 근본적 위치 이탈한 ㅅ이라 가난한 마음이 잇엇는데 내 필요가 사라지니 아예 그런 마음이 없엇다. 예수 관심이 없는게 다 들키고 나밖에 없는 내가 다 들켯다. 누구를 위해 산다는 것도 다 끝낫다.
위치를 보니 내가 어디서나 위치구나. 이 ㅅ을 보는데 목사님이 말씀하실 때마다 나는 이 ㅅ이 싫어서 버렷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뜨거워졋다. 정말 신기햇다. 진희형제가 말씀할 때마다 얼마나 좋은지. 토요일마다 기다려졋다. 그래서 싫엇던 이 ㅅ이 시간지나면서 이 ㅅ이 사실 나의 정체성이고 나 자신이다. 나는 원래 없엇던 ㅅ인데 나를 위해 사는 ㅅ인줄 알앗는데 목사님 한 ㅅ안으로 불러서 ㅎ의 목적으로 사는게 ㅅ이 사는 주된 목적이엇다.
ㅅ이 모두 수고와 슬픔이다. 위치이탈해서 살면 내로남불이다. 내것만 커보엿다. 그러니 불행할 수밖에 없다. 위치이탈한 인생, 근원회복하여 살도록 지어졋다. 인생은 행복하고 싶고 해방되고 싶은데.. 다 만들어서 대치할 수잇는 대치품을 찾아가는데 예수를 대치할 것이 없고 만족이 없고 시원함이 없다.
다만 끝나고 0점인게 진실인데 이 자리 안오면 만족 없고 시원함 없다. 옛판 쉼을 거기서는 누려본 적이 없고 이 ㅅ안에서 내가 발견되엇는데 만족이고 쉼이 된다. 너무 감사하다.
그러고 나니 내가 또 이 말씀 알아들엇다 하면서 시원함이 없엇다. 그런데 우리는 다 빈밭, 바닥이다. 목사님을 그동안 능력으로 바라봣다. 그런 나는 위치를 몰라서다. 시간이 지날수록 목사님은 나와 같은 피조물이고 은혜 받은 한 ㅅ이엇다.
하마터면 결혼 못할 뻔햇다, 내일 밥을 먹을지 안 먹을지 모른다. 마지막에는 야반도주 하듯이 나온 자리.. 그리고 금식 못하신 분. 능력 면에서는 내가 오히려 목사님보다 나은 부분이 잇엇다. 위치에서 보니 처음으로 보엿다. 전에는 목사님, 범접할 수 없는 분이엇다. 이분 안것만으로 내 인생 족하다 햇는데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인생인데 은혜입어서 그렇게 사셧구나. 위치 회복되니 다 알게 된다.
우리 자신의 말이니 ㅎ을 알라 할 필요없는 세계 온 것이다. 받아주는 것이 복음 아니다. 세상에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ㅅ이 많다. 그게 복음인줄 알앗지만 복음은 십못내 안에서 발견된 것만 복음이다. 끝난 그사람이 내 자신으로 발견되는 이것이 복음이다.
바깥의 ㅅ은 ㅅ인데 ㅎ과 연합하여 사는 ㅅ이다. 사탄에 의해 바벨 올라가는 ㅅ이 아니다. 아름다운 미덕이 가장 바벨이구나. 이런 생각도 들엇다.
나는 그동안 돌아보고 점검하는 삶을 살앗는데 이미 우리는 지어질 때 합격품이엇다. ㅎ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어진 ㅅ은 다 합격이엇다. 너무 당당해졋다. 내려오지 못하는 이 ㅅ안에서 발견된 인생, 다 바닥이고 아무 것도 아닌 인생인데 ㅎ을 대신하는 ㅅ이엇다. 올려도 올라갈 수없고 내려도 내려갈 수 없다 할 때 나는 신기햇는데 우리 인생이 그 안에서 발견되니 우리도 그사람이다.
날마다 그 ㅅ을 보면서 뜨인 돌이 하나 날라와서 금은동 동상을 깨뜨리고 높아진 것은 깨뜨려서 평지 되고 낮아진 곳은 북돋아져 평지가 되는, 그런 평지를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이 길은 새롭게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ㅎ이 계획하고 세우신 ㅅ의 정해진 길이다.
지금은 가장 듣고 싶은 말, 내려오지 못하는 예수가 나다. 이 말이 내 정체성을 살리는 말이다. 이 생명 안에서 존재자로 잇을 때 내가 살아낫다. 끝난 ㅅ앞에서 내가 살아난다. 존재자로 계신 목사님, 어떻게 이런 세계를 펼쳐 보여주셧을까. 모두가 이 길로 들어오길 바란다.
영원한 이 한 ㅅ이 보여졋다. 이 영원한 한 ㅅ안에, 이 씨가진 자 안에 없으면 이 길 안에서 내가 발견할 수 없다. 이 교회 안에 흐름 안에 잇을 뿐 아니라 엠지 앞에 서면 나는 긴장된다. 넘 아름답고 우리 희망이다.
당신이 나입니다. 이 안에서 이 말을 할 수 잇다. 사고는 달라도 내려오지 못하는 이 ㅅ안에서는 다 만나진다. 지금은 교회 안에서 허다한 증인이 잇다. 그 ㅅ을 보고 씻기고.. 우리가 모르던 세계, 숨겨지고 비밀인 이 세계가 보여졋으니 날마다 더 볼 수밖에 없다. 좀더 분명히 이 세계를 보기 원한다.
영원한 이 한 ㅅ안에 발견되니 피조물이엇다. 내려오지 못하는 그 ㅅ안에서 죽엇다 끝낫다 하는데 영원을 살게 된다. 이 안으로 나를, 모두를 불러주심 감사하다.
이 복음 말할 때마다 슬픔 변하여 춤이 되는지. 원망뿐인 인생이 왜 감사로 바뀌는지. 이 ㅅ을 보게 되니 각자 바뀐다. 내가 한게 아무 것도 없다. 그냥 보여진게 전부고 포함된것이 전부다. 행위와 상관없는 판이 바뀐 곳으로 온게 전부다.
그냥 너무 좋다. 찬양 속에서 소리도 지르게 되고 저절로 터쳐 나오는 것이다. 내려오지 못한 예수 안에 내가 잇다. 주님을 찬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