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평화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가 얼마나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는지에 대해 정당하게 평가하지 않는다.
우리 중에 천 년 동안 살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과거 세상이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를 쉽게 망각한다.
그리고 전쟁이 점점 드물어 질수록 한 번 발발하면 더욱 많은 관심을 끈다.
브리질 사람과 인도 사람이 누리는 평화를 떠올리는 사람보다
오늘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다.
이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이 있다.
우리는 집단 전체보다 개인의 고통에 더욱 쉽게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거시적 역사 과정을 이해하려면, 개인의 이야기보다 대중의 통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2000년에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는 31만 명, 폭력 범죄로 인한 사망자는 이와 별도로 52만 명이었다.
개별 희생자는 한 명 한 명이 하나의 파괴된 세계이고, 파탄 난 가정이며, 친구와 친척이 평생 안고 살아야 할 상처다.
하지만 거시적 시각에서 보면,
이 83만 명은 2000년의 총 사망자 5,600만 명에서 1.5퍼센트를 차지할 뿐이다.
그해 자동차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126만 명(총 사망자의 2.25퍼센트),
자살로 인한 사망자는 81만 5천 명(1.45퍼센트)이었다.
9.11 테러가 일어난 다음 해라서 테러와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개인을 죽이는 것은 테러리스트나 군인, 마약상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일 가능성이 컸던 것이다.
오늘날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사람들은 잠자리에 들면서
한밤중에 이웃 부족이 자기 마음을 둘러싸고 모두를 학살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품지 않는다.
부유한 영국 시민은 녹색 옷을 입은 명랑한 강도들(의적 로빈 후드 )이
자신을 습격해 돈을 빼앗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없이
(실제는 여행자를 살해하고 돈을 자기들이 챙길 가능성이 더 크지만 말이다.)
노팅엄에서 셔우드 숲을 지나 런던으로 매일 여행한다.
학생들은 선생의 채찍질을 견디지 않으며,
아이들은 부모가 청구서의 돈을 내지 못해 노예로 팔릴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여성들은 남편이 자신을 때리거나 외출을 막는 것을 법이 금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세계 도처에서 이런 기대는 점점 더 많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폭력이 감소한 것은 대체로 국가의 등장 덕분이다.
역사를 통틀어 대부분의 폭력은 가족과 공동체가 서로 일으키는 국지적 반목이 원인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위의 숫자가 가리키듯이 지역 범죄로 인한 희생자가 국가 간의 전쟁 희생자보다 훨씬 더 많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지역 공동체보다 큰 정치 조직을 알지 못했던 초기 농부들은 만연하는 폭력으로 공통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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