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따르기로!
김봉기 - 신부, 수원 율전동 본당 주임
1. 내 한평생을 예수님 안에 / 내 온전하게 그 말씀 안에 / 내 결코 뒤를 바라봄 없이 / 그분만을 따릅니다 // 2. 모두가 나를 외면하여도 / 모두가 나를 외면하여도 / 내 결코 뒤를 바라봄 없이 / 그분만을 따릅니다 // 3. 이 땅 위에서 산다하여도 / 이 땅 위에서 산다하여도 / 십자가만을 바라보면서 / 그분만을 따릅니다. 『가톨릭 성가』 445번 「예수님 따르기로」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급성 폐렴에 걸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경험이 있다.
이것이 나중에는 폐결핵으로 이어졌고, 병을 치료받는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나는 죽음을 묵상하며 청년 시절을 보냈다. 병의 끝 무렵에 나는 죽음을 예감하였다.
초기 치료에 실패한 내 병은 더 이상 치료약이 없었다.
또한 약이 있다 하더라도 약을 살 돈이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보건소에서 주는 약을 먹으며 치료에 집중하였지만 병이 낫지 않았고,
오히려 질병의 원인인 결핵균의 내성이 강해져서 당시로서는
더 이상 손을 쓸 수도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급기야 병원에서도 치유가 어렵다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죽음이 눈앞에까지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나는 죽음의 문턱에서 하느님께 감사드렸다.
늘 병으로 고생하시는 어머니와,
자식들을 위해 고생하시며 몸 어느 한 구석도 성한 곳이 없으신 아버지와,
장애인 여동생, 당시 간질로 고생하던 막내 여동생이 눈앞에 아른거렸지만
나는 하느님께 감사드렸다.
모든 것이 그냥 감사했다.
아무것도 감사드릴 게 없는 것 같았지만 모든 것이 다 감사했다.
이 감사하는 마음을 마지막으로 주님께 말씀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아주 미약하게 힘이 남은 몸을 이끌고 성당으로 향했다.
나는 감실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다가 마지막으로 성가를 불렀다.
‘내 한 평생을 예수님 안에 / 내 온전하게 그 말씀 안에 / 내 결코 뒤를 바라봄 없이 / 그분만을 따릅니다 // 모두가 나를 외면하여도 / 모두가 나를 외면하여도 / 내 결코 뒤를 바라봄 없이 / 그분만을 따릅니다 // 이 땅 위에서 산다하여도 / 이 땅 위에서 산다하여도 / 십자가만을 바라보면서 / 그분만을 따릅니다
성가를 부르고 나서 나는 또다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감사의 정이 마음의 샘에서 솟아올라 내 눈에는 감사의 눈물이 가득 고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때 그 시간이 나에게는 내 인생 전부를 통틀어 가장 평화로웠던 시간으로 기억된다.
그때, 감실에서 주님께서 나에게 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다 나았으니, 가거라.”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내 몸은 날아갈 듯이 가벼워졌고,
내 머리는 놀라운 광채로 빛나는 듯했다.
성령께서 순식간에 내 몸을 감싸 안았으며,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사도들이 불 혀 모양의 성령을 받은 것처럼
나는 완전히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바오로 사도가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자에게
“두 발로 똑바로 일어서시오”(사도 14, 10) 하고 말하자
그가 벌떡 일어나서 걸었던 것처럼, 나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성령에 가득 차 나는 나도 모르게 이렇게 주님을 찬미하였다.
“주님, 저는 이제부터 주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을 살겠습니다.
밥을 먹을 때도, 길을 걸을 때도, 앉아 있을 때도, 누워 있을 때도
오직 주님의 영광만을 생각하겠습니다.
일을 할 때에도, 사람을 만날 때에도,
쉴 때에도, 제 모든 삶이 주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는 성당을 나왔다.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높고 푸른 하늘과 비둘기 떼가 나를 반겼다.
나는 죽을 병자로 주님 앞에 나아갔다가 건강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마지막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리러 갔다가 주님께 영광을 드리는 주님의 일꾼으로 다시 태어났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사랑의 혁명가’가 되겠다는 풍운의 꿈을 안고
늦은 나이에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당시 수원 가톨릭대학교 학장이던 고 배문한(도미니코) 신부님은
‘십자가의 프로 선수’, ‘사랑의 혁명가’,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자는 인생 목표를 가지고
신학생들을 지도하고 계셨다.
나는 신학교 편입 시험을 치를 때 논술 제목을 자유롭게 정해도 된다는 말에,
그동안 내가 생각해 왔던 ‘사랑의 혁명가’라는 제목으로 논술 답안을 제출하였다.
학장 신부님과 같은 인생의 목표를 갖고 있던 덕분이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수원 가톨릭대학교 편입학 통지서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배문한 신부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제자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배문한 신부님께서 영성 훈화 시간에
당신이 ‘즐겨 부르는 성가’ 한 곡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셨다.
바로 『가톨릭 성가』 61번 「주 예수와 바꿀 수는 없네」였다.
신부님은 이 성가 한 곡에 당신의 모든 인생관과 목표가 다 들어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정말 배 신부님은 이 성가를 즐겨 부르셨다.
그래서 당시 우리 신학생들도 배 신부님이 집전하는 미사 때마다
이 성가를 꼭 불러드리려고 노력하였다.
나는 배 신부님의 애창 성가를 함께 부르며,
평소에 아무 생각 없이 부르는 성가에
우리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인생관과 목표가 잔잔하게 배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죽음을 예감하고, 감실 앞에서 기도드리며 부른 「예수님 따르기로」도
그런 내 인생관이 담겨 있는 성가이자, 나를 사제의 길로 이끈 성가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미사 때마다 교우들에게 성가를 마지막 절까지 다 부르도록 권고한다.
성가는 참으로 아름다운 기도이고 그 안에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