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생 분주다사한 하루 보낼 듯. 48년생 오래된 질병 재발하니 사전 예방하라. 60년생 추문은 하루저녁에 천리 간다. 72년생 밤나무에서 은행 열기 바라나. 84년생 친구의 도움은 기대 마라. 96년생 가면 갈수록 첩첩산중. 37년생 하다가 중지하면 아니함만 못하다. 49년생 순간의 선택이 하루를 좌우. 61년생 꿀도 약이라면 쓴 법. 73년생 문제도 해답도 배우자에게. 85년생 상대 탓하기 전에 나부터 점검. 97년생 불(火) 성씨가 귀인. 38년생 기도와 정성이 필요. 50년생 닭띠와의 거래에 주의. 62년생 마음이 움직여야 몸도 움직이지. 74년생 분수 지키면 온 집안이 편안. 86년생 최고를 희망하되 최악도 대비. 98년생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 난다. 27년생 큰소리친다고 옳은 건 아니다. 39년생 나무(木) 성씨와는 거래 삼가라. 51년생 값싼 게 비지떡. 63년생 돼지띠와 함께라면 못 넘을 고비 없다. 75년생 남쪽은 운기가 살아나는 방위. 87년생 진심은 언젠가 통한다. 28년생 물도 얼음 되면 부러진다. 40년생 내 일 아니면 곁눈도 주지 마라. 52년생 욕심으로 인한 번민. 64년생 누런색과 숫자 5, 10은 피하라. 76년생 생각 바꾸면 길이 보인다. 88년생 차분히 쉬면서 다음을 대비하라. 29년생 기운 세다고 소가 왕 노릇할까. 41년생 진퇴동정을 시의에 맞게. 53년생 물건 깨지면 오히려 전화위복. 65년생 무리한 계획은 세우지 마라. 77년생 ㅇ, ㅎ 성씨가 귀인. 89년생 해결책은 소띠나 닭띠에게. 30년생 흰색과 숫자 4, 9는 피하라. 42년생 착수가 곧 성공이니 주저 마라. 54년생 기다리지 말고 먼저 다가가도록. 66년생 명분 없다면 실속도 없다. 78년생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 90년생 다투지 않고 얻는 법 찾도록. 31년생 뿌리가 마르지 않는 한 꽃은 핀다. 43년생 쇠(金) 성씨가 귀인. 55년생 기선제압부터 하고 봐야. 67년생 성질대로 하면 구설과 잡음 난다. 79년생 소탐대실 주의. 91년생 구설수 있으니 말과 행동 조심. 32년생 분해도 감정조절에 유의. 44년생 가는 정 있어야 오는 정도 있지. 56년생 직장문제로 인한 근심이나 손재수. 68년생 복이 엷으면 계란에도 뼈가 있다더니. 80년생 말(言)이 났을 때 처리하라. 92년생 검은색과 숫자 1, 6이 행운 부른다. 33년생 단점까지 품을 수 있어야 어른. 45년생 상대를 포용하면 내가 편안. 57년생 소소한 일상에 행복 있다. 69년생 붉은 옷 입은 사람 주의. 81년생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비. 93년생 버린 우물 다시 먹을 날 있다. 34년생 가는 세월에 오는 백발. 46년생 뚝배기보다 장맛. 58년생 집중력 안 잃으면 역경은 없다. 70년생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져라. 82년생 열정만 있으면 꿈은 이루어진다. 94년생 감정에 치우치면 일 그르칠 수도. 35년생 분노를 경계하라. 47년생 조용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 59년생 낙상(落傷)이 두려우니 조심 또 조심. 71년생 흔들리지 말고 목표에 집중. 83년생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는구나. 95년생 쥐띠와의 관계에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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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2년 3월 18일
부산 미 문화원 방화사건 발생
부산 미 문화원 1층에서 발생한 화재로 문화원 3층건물이 불길에 휩싸이고 있다. 1982년 3월 18일 오후 2시 부산 고신대생들이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및 독재정권 비호에 대한 미국측의 책임을 물어 부산 미 문화원 1층에 방화한 사건이 발생했다. 때를 같이해서 주변에는 유인물 700여 장이 뿌려졌다. ‘반미’의 금기를 깬 이 사건은 대담하고 격렬한 투쟁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고, 미 문화원이 1980년대 반미투쟁의 표적이 되는 신호탄 역할을 했다.
방화를 실행한 고신대생 이미옥 등이 3월 30일 잡히면서 사건의 윤곽이 드러났으며, 주범으로 공개수배된 고신대생 문부식과 김은숙은 4월 1일에 자수했다. 이튿날인 2일에는 문부식의 배후로 지목된 광주민주화운동의 수배자 김현장이 검거됐다. 3일 뒤에는 김현장을 은닉한 혐의로 원주교육원장 최기식 신부가 연행되면서 천주교까지 연루되는 사건으로 번졌다. 전두환 정권은 평소 탐탁치 않던 천주교에 대대적인 공세를 가하기 시작했고 천주교 측은 범죄 혐의자라도 도움이 필요할 때는 도와줘야 한다는 교회법을 내세우며 맞섰다.
8월 11일, 사건 관련자 16명 전원에게 유죄가 선고됐다. 김현장과 문부식은 사형, 김은숙과 이미옥은 무기징역 등 사건 관련 피의자 전원에게 3년 이상의 징역이 선고됐으나 1983년 감형됐다. 부산 미 문화원 방화사건은 일단락 됐지만 전국의 미 문화원도 반미투쟁의 표적이 되어 1982년 11월 광주 미 문화원에는 화염병이 투척됐고, 1983년 9월 대구 미 문화원에서는 폭발물이 터져 수 명이 사상당했다. 1985년 5월 서울의 미 문화원은 73명의 대학생들에게 점거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테러리스트적 투쟁방식으로 인해 운동권일각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한편 사건의 주모자로 사형선고을 받은 문부식은 6년 9개월만에 풀려나 운동권으로부터 반미운동의 선구자로 추앙받았지만 2002년 경찰관 7명이 순직한 부산동의대 사태를 민주화운동으로 지정한 것을 잘못됐다는 입장표명으로 진보세력으로부터 곤욕을 치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