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씨가 허생의 재주를 알아주다
어느날, 변씨가 오 년동안 어떻게 백만 냥이나 되는 돈을 벌었던가를
조용히 물어보았다.
“다섯 해 사이에 어떻게 백만금을 벌었소?”
허생이 대답하였다.
“그야 알기 쉬운 일이요. 우리 조선은 외국과 무역이 없고, 수레가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닐 수 없어서, 온갖 물건이 제자리에서 생산되고 제자리
에서 소비되지요. 대체로 천 냥은 적은 금액이라 한가지 물건을 독점할
수는 없지만, 천 냥을 열로 쪼개면 백 냥이 열이라, 또한 열가지 물건을
살 수 있지요. 그리고 물건이 가벼우면 나르기도 쉬워서 한가지 물건이
물건이 시세가 좋지 않더라도 나머지 아홉 가지 물건에서 재미를 볼 수
있소. 이것은 보통 이익을 내는 방법으로 작은 장사치들이 하는 짓이
아니요? 게다가 만 냥을 가지면 대개 한 가지 물건을 몽땅 살 수 있기
때문에 수레면 수레전부, 배면 배를 전부, 한 고을이면 한 고을을 전부,
마치 총총한 그물로 훑어내듯 다 사들일 수 있지요. 이를테면 물에서
나는 만가지 중에 한 가지를 슬그머니 독점해 버리든지, 물에서 나는
만가지 중에 슬그머니 독점해 버리든지, 약 재료 중에서 슬그머니 한
가지만을 독점하면, 한 가지 물건이 한 곳에 묶여 있는 동안 모든 장사
치들은 그 물건을 구경할 수도 없게 되는 것이지요. 값이 뛸 것은 당연
하오. 그러나 이는 백성들을 못살게 하는 길이 될 거요. 백성들을 도둑
놈으로 만들기 좋은 방법이지요. 훗날에라도 나랏일을 맡은 관리가 만약
나의 이 방법을 쓴다면 반드시 나라는 곧 병들고 말 것입니다.”
변씨는 다시 물었다.
“그럼 내가 선뜻 만 냥을 내어줄 줄은 어떻게 알고 나를 찾아와 청하였소?”
허생이 대답하였다.
“당신만이 내게 꼭 빌려줄 수 있었던 것은 아니고 만 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주었을 것이요. 나 스스로 내 재주를 헤아려 보면 넉넉히
만 냥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운명은 저 하늘에 달려 있는 것이니,
낸들 그것을 어찌 알겠소? 그러므로 나를 알아보고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이지요. 반드시 더욱더 큰 부자가 되게 하는 것은 하늘이
시키는 일일 텐데, 어찌 주지 않았겠소. 그리고 일마다 곧 성공했던 것이고,
만약에 내가 내 재산으로 혼자서 일을 시작하였다면 그 성패 또한 알 수
없었겠지요.”
변씨는 허생의 재주가 아깝다고 생각하였다. 자기와 같은 장사치로서는
상상도 못할 배포 요, 도량과 재주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런 큰 그릇을 어찌
그냥 썩힌단 말인가?
“바야흐로 지금 사대부들은 전날 남한산성에서 오랑케에게 당했던 치욕을
씻으려 하고 있소. 지금이야말로 지혜와 재주를 갖춘 선비가 팔뚝을 걷어붙
이고 한번 일어설 때가 아니오? 선생의 그 재주로 어째서 파묻혀 지내려
한단 말이오?”
“어허, 예로부터 한평생 묻혀 지낸 사람이 한둘이었겠소? 우선 조성기 같은
분은 적국에 사신으로 갔더라면 솜씨 있게 일을 처리할 사람이었지만 일생
을 베잠방이 늙어 죽지 않았던가? 유형원 같은 분은 군량을 조달할 만한
재능이 있었건만, 저 바닷가에서 소요하고 있지 않았소? 그러니 오늘날 국정을
맡아 처리하는 사람의 기량을 알 수 있지요. 나로 말하면 장사에 솜씨가 있어,
그 돈으로라면 넉넉히 아홉나라 임금의 머리라도 살 수 있었지만, 그것을
바닷속에 던져 버리고 돌아온 것은, 도대체 쓸 곳이 없기 때문이었지요.”
변씨는 후 하고 긴 한숨을 쉬고는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