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석의 「깡통」 감상 / 황봉학
깡통 / 김유석
툭, 차버리고 싶은 감정과 툭, 차이는 감정 중 소리를 내는 쪽은 어느 쪽일까
채워지기 전과 채웠다 비워낸 공간 가운데 어느 편이 더 시끄러울까
통과 깡통의 차이, 깡통을 차다와 깡통차다 사이
만들어질 때 미리 담긴 소음인지 비워진 후의 울림인지 깡 찬 소리가 난다
몇 배 새끼를 빼낸 뒤 뱃가죽 늘어진 늙은 돼지를 이르기도 하는 속된 말, 깡통이 뭐길래
깡통을 보면 차고 싶어지나
그 속에서 뭐가 튀어나와 참새들을 화들짝 놀라게 하나
깡통을 깡통으로만 아는 순 깡통들, 납작하게 눌러 밟아버리면 차라리 나을 건데
툭, 툭, 누군가 자꾸 나를 걷어차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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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차여 본 적 있는가? 남을 차 본 적 있는가? 이 경우 어느 쪽이 더 아플까?
무엇인가를 아예 가져보지 못했던 자와 가졌다가 잃어버린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아플까?
통은 무엇을 담기 위해 만들어져 사용되는 기구이지만, 깡통은 무엇인가 채웠다가 비워진 빈 통을 말한다.
깡통을 차는 것은 내가 분풀이로 하는 행위가 되지만,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빈 털털이가 되는 것은 참을 수가 없는 행위다.
깡통을 만들 때의 소음은 무척 컸으리라. 그것이 깡통에 담겨 있다가 비워진 후에 소리를 낼 수 있겠지만, 나는 비워진 허전함이 소리를 낸다고 믿고 싶다.
우리는 깡통을 보면 차고 싶어진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이라기보다 잔뜩 채웠던 것 다 잃어버린 머저리 같은 물건이라고 업신여기는 심리도 작용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 깡통을 깡통으로만 아는 자들 또한 깡통임을 어쩌랴?
업신여기고 발로 차지 말고 차라리 납작하게 눌러 밟아버리면 좋지 않을까?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깡통이 아닐까?
누가 자꾸 뒤에서 나를 걷어차고 있다.
- 황봉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