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선한 목자로 오신 예수님
성경: 에스겔 34:20-31
서론>
오늘은 온 세계인들이 함께 축하하고 기뻐하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 하신 날입니다. 학자들은 예수께서 주전 4년 전에는 탄생하셨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올해가 2023년이니, 주전 4년을 더해 2027번째 생신을 맞은 것입니다.
여러분, 죽은 사람은 죽은 날을 기념해서 사람들은 제사를 지냅니다. 그러나 산 사람은 태어난 날 곧 생일을 기념합니다. 따라서 국가와 종교 이념을 떠나서 크리스마스를 함께 축하하며 이날을 축제로 여기는 분은, 예수님이 우리 곁에 계시고 살아계신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제일 이날을 기다리며 반길까요? 바로 어른 보다는 어린이일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보다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2000번 이상 크리스마스도 아이들과 신자들이 설레는 마음과 기쁜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반기는데, 그렇다고 한다면,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가장 손꼽아 기다리며 반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탄생을 가장 기뻐하고 가장 반기고 가장 감사해할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의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전했습니다. 그들은 성전 희생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 무리가 아닙니다. 율법을 가르친 유대인의 선생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도 아닙니다. 당시 유대를 통치하던 헤롯 대왕은 더욱더 아닙니다. 성경은 그들이 누구라고 말씀합니까?
바로 목자들입니다. 사복음서 가운데 연대기적으로 기록된 누가복음서 1장 10절에 따르면, 천사로부터 예수님 탄생을 가장 먼저 전해 들은 이는 그 밤에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이었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예수님이 오늘 본문의 에스겔 선지자가 예언한 선한 목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양 떼의 선한 목자로 이 세상에 성탄 하셨습니다(겔 34:20-24).
본문 20절과 22절에 보시면, 양과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는 말씀이 두 번이나 반복되어 기록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21절에 보시면 너희가 옆구리와 어깨로 밀어뜨리고 모든 병든 자를 뿔로 받아 무리를 밖으로 흩어지게 하도다.”라는 아주 흥미로운 표현이 나옵니다.
이러한 선지자 에스겔의 묘사는 너희라고 하는 이스라엘 목자들과 그들이라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켜서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목자들 그룹에는 좁게는 힘과 권력을 가진 왕, 대제사장, 제사장, 넓게는 장로나 율법을 가르치는 선생들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역시 하나님이 보실 때는 양무리 중에 속한 하나님의 양에 불과합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는 주님의 양을 먹이고 치는 목자로 세워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도 하나님이 보실 때는 한 마리 양일 뿐입니다. 양이지만,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양을 맡겨 놓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양을 잘 먹이고 돌보라고 맡겨놓았는데, 오히려 자기만 먹이고 그것도 양의 털과 기름으로 양을 잡아서 자기 배만 채우고, 양이야 병들거나 말거나, 짐승에게 잡혀서 죽거나 말거나 우리를 떠난 양들이 흩어지거나 말거나 그렇게 양 떼를 관리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에스겔이 활동하던 시기가 포로기이기 때문에 흩어졌다는 것은, 백성들이 포로 생활 가운데 있음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 책임이 백성들을 통치하고 예배를 가르치며 율법을 가르치는 지도자들이 그들을 잘못 인도한 책임이 크다는 것입니다. 양들은 시력이 좋지 않기 때문에 목자가 인도하는 데로 따라 가게 돼 있습니다. 목자가 무슨 풀을 먹이느냐에 따라, 맑은 시냇물을 마실 수도 있고, 더러운 물을 마실 수도 있습니다.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목자들이 백성들을 포학으로 다스렸고, 백성에게서 착취하여 자기만 먹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백성에게 하나님 경외하는 법과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순종하도록 해야 하는데, 백성들에게 본이 돼야 하지만, 제사장 그룹이나 장로들도 우상숭배를 하고,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따라 살지 아니하고, 불순종하며 산 것입니다.
뇌물을 받고 판결하고, 가난한 자의 재산을 빼앗고 가족들을 빼앗아서 노예로 삼고 그들은 착취하기만 급급했지, 백성들이 무엇을 먹고 입고 어떻게 살아가는지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그들이 철저히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사는지 감독하며 지도해야 함에도 목자들이 먼저 하나님의 법을 범했기 때문에, 결국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지 않고 돌보지 않아서 그들에게는 사실상 목자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양과 양 사이를 심판하러 누가 오신다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내 양을 찾으러 오시고, 내 양을 구원하러 오시고, 목자들을 심판하러 오시겠다고 하십니다.
34:11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12절, 목자가 양 가운데에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 낼지라.”
그런데 23절 말씀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한 목자를 세워서 양 떼를 노략자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그들을 먹이고 돌보겠다고 하십니다. 그 목자가 다름 아닌 다윗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대략 주전 970년경에 죽었고, 에스겔이 활동하던 시기는 주전 586, 87년 포로기이기 때문에 다윗은 아닙니다. 바로 다윗의 왕위를 영원히 물려받을 자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이 왕위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곧 마리아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경 누가복음 1장 32, 33절 말씀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여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릴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아멘.
이제 이 말씀을 본문 23, 24절 말씀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24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아멘.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 나는 선한 목자라고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목자들이 자기 양이 아니라서 양 떼를 먹이지 않고 양 떼를 돌보지 않았다면,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은 내 양이라고 하십니다. 내 양이 아니라서 이스라엘 목자들은 양 떼를 병들고 파리한 양으로 만들었을까요? 그들은 악한 짐승이 오면 양 떼를 버리고 도망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은 이런 목자를 삯꾼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선한 목자가 오시면, 양 떼가 다시는 노략질 거리를 당하지 아니하고 병들고 파리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가 푸른 초장으로 양 떼를 인도하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양 떼를 돌보지 아니한 삯꾼들에 대해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선한 목자가 오시면, 누가 진실한 목자인지 아니면 삯꾼인지가 드러날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양 떼의 목자와 세움. 받은 이들이 깊이 새겨야 할 말씀입니다. 내가 삯꾼인지 아닌지, 내가 악한 종인지 아닌지는 내가 먹이고 치는 양이 살이 찌고 기름지고 건강한 양인지, 아니면 병들고 파리한 양인지가 명확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의 선한 목자가 되신 주님이 오실 것을 생각한다면, 목자들은 착하고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이 되어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어 먹여 할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선한 목자는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하게 하십니다(겔 34:25-29).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삯꾼은 이리가 오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나지만,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오히려 양을 위하여 자가 목숨을 버린다고 하셨습니다. 바로 그러한 말씀이 에스겔서 34:25절의 화평의 언약입니다.
화평의 언약은 어느 때 맺는 것입니까? 전쟁 중에서 이제는 전쟁을 그치고 서로 화평하자고 할 때 맺는 언약입니다. 그렇게 이 언약은 사람과 사람이 맺는 또는 국가와 국가가 맺는 언약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맺는 언약입니다. 그리고 이 화평의 언약이 실제로 효과가 있으려면, 반드시 다윗을 통해서 맺어야 합니다. 쉽게 말씀드리며, 다윗을 통하지 아니하고는 화평의 언약을 임의로 맺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화평의 언약은 당사자가 하나님과 사람이 맺는 언약으로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화평하게 하려면 세운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한 목자로 오신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0장 11절에서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양 떼 사이의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양들을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화목제물이 되셔서 곧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야먄, 희생제물이 되셔야만, 그것이 언약의 보증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과 양들 사이에 맺은 언약이 효력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아닌 다른 목자는 이 화목제물 자체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내 종 다윗이어야만 된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양 떼들 사이에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화평의 언약 효과는 무엇입니까? 땅에서 평안을 누리고, 땅에서 복을 받는 것입니다. 왜 땅이 중요합니까? 첫 사람 아담과 화와의 죄지음으로 인해 인간이 터전으로 삼는 땅이 저주받았습니다.
창세기 3장 17절, 18절의 반대되는 말씀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에스겔서 34 : 25~29절의 말씀입니다. 먼저 창세기 3장 17, 18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절 말씀입니다.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따라서 선한 목자가 오시면 제일 먼저 무엇이 임합니까? 그 땅에 평강이 임하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5절,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왜입니까? 그래야 빈 들에서도 양 떼가 푸른 풀을 먹고 배가 불러서 마음 놓고 수풀에서 잘 것입니다.
그리고 27절에 보시면, 땅이 복을 받아서 복된 소낙비가 내리니 땅은 그 소산을 내어서 양 떼들이 그 땅에서 평안할 것입니다. 그리고 28절 말씀에 보시면, 땅이 평안을 얻으니 양 떼가 그 땅에서 짐승들에게서 잡아 먹히는 일도 없습니다. 또 29절 말씀을 보시면, 선한 목자가 오시면 양 떼들을 위해서 파종할 좋은 땅을 일으키니 그 땅에서 기근으로 멸망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여러 나라의 수치를 받지 아니할 것입니다.
이 말씀이 언제 이루어집니까? 바로 이사야가 11장에서 예언한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실 때 이러한 결실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11장 6절에 보시면,
“그때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명에서 장난하며 젖 땐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이며” 아멘.
바로 선한 목자가 오시면, 특히 그로 말미암아 맺은 화평의 언약이 법적으로 효력이 발생하면, 가져오는 풍성함입니다. 따라서 양 떼는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한 목자는 양 떼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그로 말미암아 세운 화평의 언약으로 양 떼는 더 풍성해지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선한 목자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시며 백성이 되게 하십니다(겔 34:30, 31절).
본문 30, 31절 말씀에 보시면, 알고 알리라는 말씀이 계속 반복해서 강조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그들이 주 하나님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스라엘의 목자들이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 목자는 거기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주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신지, 어떻게 그분을 섬겨야 하고, 어떻게 해야 그분이 명령하신 말씀들을 준행하며 살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일에 소홀히 했습니다. 목자들의 관심은 오로지 자기들이 가진 특권을 수단으로 해서 돈을 긁어모으고, 땅을 긁어모으고, 종들을 많이 거느리는 일에, 자기의 아방궁을 건축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선한 목자가 오시면, 다윗의 영원한 왕위를 가지고 오시는 분이 오시면, 어떻게 된다는 것입니까? 그로 말미암아 맺은 화평의 언약 때문에, 양 떼들이 하나님께서 주 여호와시라는 것,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알고 알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내 이성적으로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닌, 경험적으로 아는 것을 뜻합니다. 달리 표현하며,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시고, 나의 주시라는 것, 나는 그분의 백성, 그분의 자녀라는 것을 무엇을 통해 안다는 것입니까? 체험을 통해서 알고 알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성경책 속에 갇혀 있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선한 목자로 오신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하나님과 나, 우리의 관계를 화평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이 내 하나님, 나는 그분의 자녀요, 백성이라는 것이 직접 보지 않았어도, 만나지 않았어도 체험을 통해 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31절의 말씀은 내 초장의 양 너희는 사람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는 말씀은, 에스겔이 말한 양 떼는 사람으로 의인화해서 표현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양 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30절에 보시면 바로 그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있는 줄을 알고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선한 목자로 오신 예수님이 바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장막을 치셨음을 말씀한 것입니다. 따라서 임마누엘 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됨과 백성 되었음. 곧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시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백성이라는 체험으로 알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에스겔의 말이 에스겔 스스로 마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것은, 주 여호와께서 반드시 에스겔을 통해서 예언한 대로 선한 목자를 보내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주고자 하신 말씀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첫 번째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천사들의 찬양 소리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 중에 평화로 다 하였습니다. 이 평안을 온전히 누리도록 하시기 위해서 선한 목자로 오신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고, 더 풍성하게 하시려고 예수님은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 외에 자기가 선한 목자라고 하는 이들은 절도요 강도입니다. 그들은 양의 생명을 빼앗고 땅에서 저주받게 하는 이스라엘의 삯꾼 목자들입니다. 따라서 잘 분별해야 합니다. 오직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만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화평케 하시도록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하셨고, 그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또한 목자로 세움. 받은 이들은 내 양이 아니라 하나님의 양이며, 목자들 또한 하나님 앞에서는 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목자장 되시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는 양과 양 사이에 심판하실 것입니다. 살찌고 기름지고 건강한 양이 되게 했는지, 아니면 병들고 파리한 양이 되게 했는지, 그리고 양 떼가 우리 밖을 떠나 흩어졌다면 찾아서 데리고 왔는지, 악한 짐승이 나타났을 때 양을 버리고 도망가지는 않았는지, 노략질 거리가 되게 했는지를 반드시 양과 양 사이에 심판할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드립니다.